| (추수감사절 메시지) 감사의 이유 Reason to Give Thanks 신명기 26:1-11 1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으로 여러분은 들어갈 것이오. 그 땅을 점령하고 그 땅에서 살 것이오. 2 그 때가 되면 여러분은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땅에서 자라난 작물 가운데 처음으로 거둔 것을 광주리에 담아 하나님 여호와께서 예배 받으시기 위해 선택하신 곳으로 나아가시오. 3 그리고 그 당시의 제사장에게 이렇게 말하시오. ‘오늘 제가 제사장의 하나님 여호와께 선언합니다. 여호와께서 저희 조상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제가 왔습니다.’ 4 제사장이 여러분이 가져온 광주리를 받아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앞에 놓으면 5 여러분은 여호와 앞에서 이렇게 말씀 드리시오. ‘제 조상은 떠돌아 다니던 아람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집트로 내려갔다가 몇 안 되는 사람과 함께 그 곳에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에서 강하고 번성한 큰 나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6 그러나 이집트 사람들이 우리에게 고된 일을 시킴으로 우리를 학대하고 괴롭혔습니다. 7 그래서 저희 조상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저희 기도를 들어 주셨고, 여호와께서는 저희가 고통 당하는 것과 고된 일을 하는 것과 학대 받는 것을 보셨습니다. 8 여호와께서는 크신 힘과 능력으로 저희를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위엄과 표적과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9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저희를 이 곳으로 인도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을 주셨습니다. 10 이제 제가 여호와께서 저에게 주신 이 땅에서 거둔 첫 열매를 여호와께 가져 왔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광주리를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놓고, 여호와 앞에 엎드려 경배하시오. 11 여러분은 레위 사람과 여러분 가운데 사는 외국인과 함께 즐거워하시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집에 주신 온갖 좋은 것을 나누며 즐거워하시오.” (쉬운 성경) 언제부터인지 추수감사절이 하나의 절기가 되었습니다. 마치 일년 내내 감사를 잊고 살던 사람들이 이 날이 되면 잊고 있었던 감사의 마음을 되찾는 것 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감사”는 말은 영어로 “Thanksgiving”이라고 합니다. 문자적인 의미는 “감사의 행위(the act of giving thanks)” 혹은 “감사의 표현(an expression of thanks)” 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올 한 해 동안 무슨 감사 드릴 일이 있습니까? 무슨 감사를 표현할 일이 있습니까? 어렵고 힘든 일만 있었지 감사 드릴 일은 없습니까? 한국의 세브란스 병원에 가면 심장혈관병동이 있는데, 그 병동에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어느 환자의 고백”이라는 시가 걸려 있다고 합니다. 주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로 인해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일이 제대로 안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이 반성될 수 있습니다. 아들, 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부모와 동기가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로 인해 인간된 보람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데 힘겨웁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서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의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진실로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님! 이 모든 일로 감사할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모든 일로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문이 입원 환자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뿐만 아니라 내방객들에게도 신앙적인 도전을 주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수술을 앞둔 환자가 이 시를 보는 순간 말할 수는 위로와 용기를 얻고, 또 병문안을 왔다가 이 시를 발견하고 이 시를 베껴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연약한 것입니까? 병들고, 낙심하고, 외롭고, 일이 뒤틀리고, 걱정과 근심이 떠나지 않고, 게다가 경제적으로 힘들면 저절로 세상에 대한 불평과 원망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세상을 원망해 봐야 아무 것도 바뀌는 것이 없습니다. 자기 자신만 망가지고 맙니다. 성격이 삐뚤어져서 왜곡된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자연히 인간 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삶의 의욕을 잃어 버리고, 열등의식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반대로, 똑 같은 일을 겪으면서도 그 마음에 감사의 마음이 든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똑 같은 환경 속에서도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고 파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감사로 자신을 변화 시키고, 자신을 더욱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 시키고, 주변을 변화 시켜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에 속한 사람입니까? 성경에 “감사”라는 말이 수도 없이 많이 등장합니다. 구약성경에 127번, 신약 성경에 57번, 모두 184번이나 등장합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에서 감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신앙의 인물들이 그만큼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감사를 “토다”라고 합니다. 이 “토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고백적인 언어입니다. 그래서 이 “토다”라는 말에는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뜻이 들어 있고, 하나님께 감사 제물을 드린다는 뜻이 있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자(시편 95:2)”라고 했을 때, 감사라는 말이 “토다”입니다. 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편 100:3-4)라고 했을 때, 여기 감사라는 말이 “토다”라는 말입니다. “토다”라는 말은 “토를 단다”라는 말이 아닙니다. 누가 말하면 꼭 뒤에 뭐라고 종알종알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토를 단다”고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감사라는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말이요, 하나님께 대한 고백적인 말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감사라는 말을 가볍게 여기지 말자는 것입니다. 금방 “Thank God” 하고 나서 돌아서서 불평하는 그런 우리 태도를 반성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특별한 의미를 담아서 드리자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대한 고백으로 감사를 드리자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편 136편은 감사의 시편으로 널리 알려진 시편입니다. 우리는 이 시편에서 진정한 감사의 의미가 무엇인지 배워야 합니다. 제가 앞 부분을 읽으면 여러분은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His love endures forever)”하고 말하시면 됩니다. 단순히 기계적으로 반복하지 말고 하나님께 대한 여러분의 신앙고백이 되게 하십시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1절)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11절)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12절) (우리 앞에 놓인)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13절) 자기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16절) 우리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21절)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23절)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24절)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25절)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26절) 어떻습니까? 바로 이것이 성경적인 의미에서 감사, 토다입니다. 여러분, 오늘 읽은 신명기 26장 말씀을 보십시오. 아마도 이 말씀은 구약 성경에 기록된 추수감사절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 아닌가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어 처음 익은 열매를 광주리에 담아 그것을 여호와의 성소로 가지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저희 조상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제가 들어 왔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그 광주리를 받아서 하나님의 제단에 앞에 놓습니다. 그 때 너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 드리라고 합니다. “제 조상은 떠돌아 다니던 아람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집트로 내려갔다가 몇 안 되는 사람과 함께 그 곳에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에서 강하고 번성한 큰 나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 사람들이 저희에게 고된 일을 시킴으로 저희를 학대하고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저희 기도를 들어 주셔서, 크신 힘과 능력으로 저희를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셨습니다. 이제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이 곳으로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을 주셨습니다. 이제 제가 여호와께서 저에게 주신 이 땅에서 거둔 첫 열매를 여호와께 가져 왔습니다.” 여기서 “아람 사람”이라는 말은 메소포타미아의 밧단 아람(Paddan Aram)에서 20년 동안을 살았던 야곱을 의미합니다. 모세는 지금 그의 백성들에게 감사의 삶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르치는 방법이 특이합니다. 자기들의 역사를 돌이켜 보게 합니다. “우리 조상은 떠돌아 다니던 아람 사람이었습니다. 흉년을 피해 이집트로 내려 갔지만 몇 명 안 되는 소수의 사람들이었고, 그 땅의 나그네에 불과했습니다.....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왔습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거둔 첫 열매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특이한 것은 막상 이 말씀에는 감사라는 말이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 속에 구구절절이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인자하심, 하나님의 “enduring love”가 끊이지 않은 강물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감사는 지금 내가 가진 것이 많고 적음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아닙니다. 감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에 대한 고백입니다. 우리의 손에 든 것이 많든지, 적든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서 그렇게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고난의 역사 속에서 나에게 인자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 그리고, 여기까지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이 땅에서 거둔 첫 열매입니다”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모세가 자기 백성들에게 가르친 감사의 교훈이 하나 더 있습니다. 11절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레위 사람과 여러분 가운데 사는 외국인과 함께 즐거워하시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집에 주신 온갖 좋은 것을 나누며 즐거워하시오.”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이웃을 초청해서 함께 즐거워하는 축제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축제를 벌여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because of all the good things the Lord your God has given to you and your household” 모세는 계속 이렇게 말합니다. “Remember to include the Levites and the foreigners living among you in the celebration.” “추수감사 헌금을 드리는 일곱 단계”라는 아주 감동적인 글을 읽었습니다. 이 말씀은 실제로 한국의 어느 교회 주보에 실렸던 글입니다. (1) 오늘부터 한 주간 동안 올 일년을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한 것들을 열심히 찾아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2) 마음 속으로 얼마를 헌금할 것인가를 작정하여 봉투에 넣은 다음 하나님께 감사 함으로 드린다고 기도하십시오. (3) 여러분 주위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찾아보십시오. 그 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던 먼 친척도 좋습니다. 자신의 가족도 좋습니다. (4)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 그 돈의 일부를, 혹은 전부를 따뜻함으로 전달하십시오. 혹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이 자신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은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돈을 쓰셔도 좋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그 이웃들과 함께 추수감사의 기쁨을 그 돈으로 나누시기 바랍니다. (5) 이렇게 하고도 그 봉투에 남은 돈이 있거든 교회의 헌금함에 넣으시기 바랍니다. (6) 혹 그 봉투에 돈이 모자라거든 여러분들이 그 동안 교회에 헌금한 돈이 있으니 교회에 청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귀하고 아름답고 가치 있는 교회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이 곧 교회가 하는 일입니다. 내가 목회자의 양심으로 말하건대 여러분 모두가 빈 봉투를 헌금함에 넣는다면 나는 매우 기쁘겠습니다. (7) 위의 여섯 단계를 거치면서 그 봉투에 돈을 더 넣고 싶은지 좀 뺄까 하는 생각이 드는지 자신을 잘 살펴보십시오. (1994. 11. 6. 오전예배 설교 중에서) 위의 내용은 대전시 유성구에 있는 한 교회의 주보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여기 소개된 내용은 매년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그 교회 성도들에게 설교하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올해도 그 교회의 목사님은 똑 같은 꼭 같은 설교를 했을 것이고, 그 교회 교인들은 똑 같은 설교를 들었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세상에 이상한 교회도, 별난 교회도 다 있다는 생각이 듭니까?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 보면 이 말씀은 감사절의 깊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교회에다 헌금을 안 해도 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과연 \"교회가 무엇이냐?\" 하는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누가 우리의 이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이상한 교회의 주보에 실린 이 내용들을 우리 모두가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