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날을 , 성경이 말씀하는 [마지막 날]보다 훨씬 편협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지막 때\"라고 하면, 우리는 마치 마지막 남은 하루를 생각하기 쉬운데, 신약 성경이 말하는 \"마지막 때\"란 {예수님께서 처음 오신 그날로부터, 다시 오실 그날 사이}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지금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오늘}도 [마지막 날]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나시기 전,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여러 선지자를 통해 구원자 메시야가 땅에 오실 것이며, 그 때에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사실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셨을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그런 모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써 시작된 {새로운 시대}는, 두 개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 그런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로운 시대}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첫 번째 오셨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는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그날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예수님의 [처음 오신 날]로부터, 새로운 시대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 재림의 날]에 이르는 전체를 통털어 \"마지막 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기자는 \"마지막 날\"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1장 1절과 2절입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우리는 마지막 때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마지막 때를 사셨습니다. 사도 바울, 성 어거스틴, 토마스 아퀴나스, 죤 칼빈, 챨스 스펄젼, 그리고 무디 선생에 이르기까지, 그들 모두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마지막 때\"를 살다간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마지막 때\"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이 내일 다시 오실 것으로 여기고 생활하십시오. 그러나 주님이 천 년 뒤에 다시 오실 것으로 생각하며 계획을 세우십시오. 이것이야말로 {균형잡힌 그리스도인의삶}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태어나 말구유에 누우셨을 때부터 마지막 날이 시작되었으며, 지금 이 순간도 주님 만나기를 기대하는 마지막 때}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시다.
2008년도 한해의 마지막 달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은 하루 하루를 주님의 재림이 있을 마지막날이라 생각하며 살아오셨는지요?
성탄절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땅에 찾아오신 주님께 올해의 계획했던 일의 열매를 드릴 것은 있으신지요?
늦었지만 남은 기간동안 종말론적 신앙으로 준비해 보시지 않으렵니까?
벧후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1. 한해의 마지막 12월입니다.
한해의 계획을 점검하며 유종의 미를 거둘수 있도록 기도해야 겠습니다.
2. 카페를 통해서 어려움속에서 주님의 복음을 위해 수고하시는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 목회자님들을 도울수 있는 길들이 열려지길 기도해주세요.
2. 중국과 티벳, 일본에서 선교하시는 회원 선교사님들을 위해 지속적인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3.. 회원 목회자님들이 은혜속에 교회를 세워가실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특별히 개척교회를 섬기시는 목회자님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4. 전 세계적인 경제적 위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선교사님들이 환율 때문에 원화의 가치가 낮아져서 무척 어려운 모양입니다.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5. 조그만 공간에서의 카페지기의 교회개척이 임박해 있습니다. 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하시길 기도해주세요
참된 종말의 지혜 (본문:벧전4:7-11)
종말이 가까와 올수록 성경적인 종말론을 부인하고 성도의 신앙과 교회의 위상을 파괴하려는 사단의 일꾼들이 많이 일어나 우리를 미혹하려 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종말의 때가 될수록 거짓 선지자와 같은 자들을 경계하고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24:4)고 교훈 하셨습니다.
이제 종말의 때는 분명 가까웠습니다.
문제는 어떤 것이 참된 종말론적 신앙이며 지혜인지 분명하게 알고 행하는 것입니다.
1. 내일을 대비하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롬13:11-13)
1)탐심을 버리고 살아야 함 종말이란 현세는 사라지고 새로운 미래가 시작된다는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최후 섭리입니다. 단순히 이 세상이 파괴하고 내일은 없다고 말하는 세상적 종말론과 다른 점 중 한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이란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새로운 \'내일\'이 시작되는 때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림자 같은 현세의 삶을 마감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내용의 미래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종말의 의미를 아는 성도들은 현세에 집착을 하지 않고 도래할 그 내일을 대비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영광이나 물질에 대한 영원한 애착은 버려야 합니다. \"세상 물건으로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라\"(고전7:31)고 했습니다. 종말을 외치는 자들 중에 사람들을 현혹하여 물질을 갈취하고 그것으로 치부하는 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내일 영원하고 새로운 세계가 분명히 도래할 것을 믿고 있다면 이 세상의 물질이나 영광에 대한 미련은 당연히 버려야 할 것입니다.
2)자신을 지키며 살아야 함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여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빌1:10)라고 성경은 교훈 합니다. 성도에게 종말의 말은 바로 성도들이 주님과 왕으로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는 날입니다. 즉 주 예수와 실제로 만나는 날이 성경의 종말의 날입니다. 단순하게 이 세상이 멸망당하는 날이 아니라 꿈에도 그리던 사랑하는 주 예수님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고, 손과 손을 잡는 환희의 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와 같이 주님을 만날 때 부끄럽지 않게 만날 수 있도록 자신을 세상 죄악과 불의로부터 지키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혼인날을 기다리는 신부처럼 정결한 영혼과 몸으로 주님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혼인날을 기다리는 신부처럼 정결한 영혼과 몸으로 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도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7절)고 한 것입니다. 불신앙인들은 종말의 때가 가까워 올수록 자포자기하며 무분별한 의식과 생활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성결과 선한 생활을 하도록 노력해야 온당합니다.
2. 오늘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마25:23)
1)사회적인 책임을 다함 본문 9절에서는 종말 생활을 하되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고\'라고 교훈 합니다. 사회의 의무나 책임을 내던지고 이기적인 자세, 도피적인 자세로 일관하여 사람들에게 원망을 듣는 자들이 많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분명히 종말을 당할지라고 원망듣는 행동은 하지 말 것을 명하는 것입니다. 어느 자동차 대리점을 운영하는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종말론이 극성을 부리던 1992년 중반 어느 교회의 목사님과 장로님이라고 하는 분들이 할부로 승합차를 구입하시겠다고 오셨답니다. 집사님은 교회의 일에 쓰일 차이기에 최선을 다해 친절을 베풀었답니다. 그런데 그들은 최장기 할부로 차를 계약한 후 그 차에 \'××선교회\'라고 스티커를 붙이고 차 옆과 뒤에 \'1992년 10월 ××일 주님의 재림, 성도들의 휴거\'라고 붙히더랍니다. 그제서야 그 집사님은 그들의 기존교회 목사, 장로님들이 아니고 당시 시한부 종말을 외치는 \'××선교회\'에 소속된 아들임을 알았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아니 분명 올해 10월달에 주님이 재림하시고, 당신들 교회는 휴거되는 것이 분명합니까? 라고 물었답니다. 물론 그들은 확신있게 \'예! 그렇습니다\'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 대리점을 운영하는 집사님은 \'그렇다면 나는 당신들에게 차를 할부로 팔 수 없습니다. 몇 달 있으면 저 하늘나라로 휴거되어 사라지는 분들이 왜 차를 할부로 삽니까\" 현찰로 사셔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라고 했답니다. 만일 내일 주님의 재림으로 이 세상에 종말이 올 것을 믿는 성도라면 오늘을 더욱 중요하며 여기며 사회인으로서의 윤리와 책임을 다해야 마땅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독교의 종말론은 도피 수단이 아닙니다. 내일 온전한 삶이 기다리고 있기에 오늘 여기 주님이 주신 자리에서 더욱 바르고 성실하게 살 수 있는 힘을 주는 진리인 것입니다.
2)직분에 충성을 다함 \"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10절)고 베드로 사도는 명합니다. 종말론에 현혹되어 직분까지 팽개치고 오직 광신적인 기도 생활만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일 종말이 닥칠지라도 맡은 바 주님 몸된 교회의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참된 종말 신앙생활이요, 주님이 바라시는 자세입니다. 지혜 있고 성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눅12:42-43)고 주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오실 때, 직분에 충성하는 생활을 하는 성도를 주님은 가장 충성스러운 성도로 인정하신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직분을 내던지고 휴거되기만을 기도하는 자세가 과연 참신앙의 자세이며, 주님께 인정받는 성도의 태도인지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3. 사랑을 삶의 영원한 지혜로 삼아야 합니다(요일4:17,18)
1)심판을 면하는 수단이 됨 기독교의 종말론은 단순하게 세상이 외적으로 파멸되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유사이래 모은 인간들의 삶과 그 행동을 심판하는 섭리가 시행되는 것이 성경의 종말 의미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크고 두려운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종말 그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종말 후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해야 하며 그 심판에서 영벌대신 영생의 판결을 받는 사람이 복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 심판대에서 영생을 선고받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 구주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증표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아니 사랑은 바로 하나님을 신앙하고 있다는 증거요 하나님 자녀임을 나타내는 가장 큰 증표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8덜)고 교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말 심판은 하나님의 계명을 불신하고, 사랑 대신 거짓과 악으로 행한 모든 자들에 대한 최종 심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의 때가 가까워 올수록, 세상의 미움과 악이 더욱 넘칠수록 더욱 사랑을 삶의 지혜와 수단으로 삼으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와 같은 생활이 확실한 종말 심판을 명하는 길인 것입니다.
2)진리와 선이 승리하기 때문임 기독교의 종말은 바로 하나님의 진리요 선하심이 사단의 악과 불의의 대해 승리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 날 그토록 사람들이 배척하고 불신앙했던 그리스도께서 바로 세상의 구주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모두 알게 될 것이요, 의와 진리와 선을 추구했던 성도들이 불의를 행한 사람들보다 지혜롭고 현명한 존재임이 입증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이 가까워 올수록 선으로 악을 이기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승리의 날이 가까워 오기 때문입니다.
결론 한때 열풍처럼 우리 주위를 휩쓸고 지나간 종말론들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계속해서 각종 이단 사설들이 우리 주위를 끊임없이 맴돌고 있습니다.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이런 미혹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굳건히 지키고 지혜롭게 행동해야 하겠습니다.
기도 영원하신 주 하나님, 이제 20세기가 저물어갑니다. 주님 오실 때도 그만큼 가까웠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혼란한 종말에 대해 우리 성도들이 이단 사설에 미혹되지 않고 이 종말의 때를 극복하는 신앙과 그 지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주님 만날 것을 대비하고, 오늘 맡은 직분과 의무에 충실하며 사랑으로 행하는 성도가 참으로 지혜로운 성도임을 알았사오니 그처럼 행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