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하는 성도가 되자

날짜 : 2008.11.09
예배명 : 한국 평양신학교 제자들 에게
설교자 권 다니엘 목사
제목 : 감사하는 성도가 되자.
본문 : 골 3:15-17

사도 바울이 쓴 편지는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교리와 실천 편이다. 교리 편에는 신론, 구원론, 교회론 등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실천 편에서 사회생활, 가정생활, 경제생활 청지기 생활 등 예수 그리스도인의 삶 전반에 걸쳐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과 삶의 이중 구조가 아니며 함께 취급되고 일치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골3:1-4:6은 실천편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새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골3:1-17에서는 새 사람의 생활원리를 밝히고 있습니다.

1. 생활원리는 위엣 것을 찾으라.

골3:1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고 하셨습니다. 2절에서는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뿌리는 밑으로 뻗어 나갑니다. 모든 싹은 위를 향해 뻗어 올라갑니다. 그것이 생명의 특징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 새 사람이 된 사람이라면 위엣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 위를 바라보아야 하느냐

첫째 : 자기의 참 생명이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 영화로운 보상이 그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 내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가 거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피조물 가운데 하늘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기뻐하는 존재는 사람뿐입니다. 비바람과 함께 태풍이 지나간 다음에 하늘에는 티 하나 없는 푸른 하늘만이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간에 원숭이나 돼지나 개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하늘을 예찬이 없습니다. 사람만이 위를 바라보는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적용하신 몇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 하나님이 인간을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사람들의 목에는 금목걸이를 걸고, 귀에는 귀걸이를 하고 손가락에 보석반지를 끼고 다닙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사람의 원자재는 흙입니다.

둘째 :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나무나 풀, 짐승과 곤충은 하나님의 생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창조 방법이 다릅니다.

셋째 : 하나님이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생기란 : 숨, 바람, 기운 성령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산소를 호흡해야 살 수 있습니다. 짐승도 물고기도 곤충도 심지어 들풀도 산소를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산소 호흡만으로 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생기를 불어 넣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짐승이나 물고기가 받은 선물과 인간이 받은 선물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넷째 : 하나님이 사람에게 위를 바라보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위엣 것을 찾으며,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땅의 것이란 현세적이며 물질 적인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물질이 불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땅의 것이 위엣 것을 가로 막든지 방해가 되든지 해서 그것 때문에 신앙이 죽는다면 그것은 불행과 비극의 씨가 되는 것입니다.

마 6:33에 주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땅의 것만 찾으면 위엣 것도 잃어버리고 땅의 것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위엣 것을 찾으면 땅의 것은 축복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2. 생활원리는 땅의 있는 자체를 죽이라.

본문 5절을 보면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지체와 관련된 못된 것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음란, 부정, 사욕, 악한정욕, 탐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지나친 금욕주의도 신앙생활에 방해가 됩니다. 그러나 방종과 향락은 신앙의 원수이며 적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음락 마귀가 성도덕과 가정윤리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탐심 마귀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닫아버렸습니다. 실컷 챙기고, 먹고 나서 들통이 나면 “뇌물”이 아니다. 정치 탄압이나 표적수사다 떡값이다 나는 먹는 일이 없다. 고 얼버무리고 맙니다.

3. 생활원리는 사랑을 더 하라.

13절을 보면 “누가 뉘게 협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용서 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 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하였습니다. 14절에는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서로” 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서로” 용납하여 피차용서 하라. 네가 용서하라가 아닙니다. 나도 너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용서도 사랑도 함께 서로 피차 해야 합니다. 남을 용서 하지 않고 앙심을 품으면 여러 가지 손해가 뒤따르게 됩니다.

첫째 : 정신 건강에 해로운 것입니다. 분노는 신경 조직을 경직시키고 긴장시킵니다. 그래서 정상적 신체 기능에 작동을 방해합니다.

둘째 : 앙심 품으면 육체 건강에 해롭습니다. 앙심을 품고 화를 내면 혈압이 오르고 위벽이 긴장해서 위액 분비가 안 됩니다. 암 세포도 빠른 속도로 전이 된다고 합니다.

셋째 : 앙심 픔으면 기도가 막힙니다. 기도가 막히면 하나님과의 교통이 차단되고 그렇게 되면 신앙이 시들고 메말라 죽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를 모든 긴장 관계를 풀어주고 막힌 통로를 열어 줍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그 어느 때 보다 사랑과 용서가 필요한 것입니다. 부부가 부모와 자녀가 형제와 이웃이 교인과 교인이 서로 용서하고 사랑할 때입니다. 그 이유는 세상이 점점 전투적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살벌한 황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더 하시기 축원합니다.

4. 생활윤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15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 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고 하셨습니다.

감사의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은 감사의 보편성입니다. 편식이 나쁘고 투정이 나쁜 것처럼 선택적 감사는 참 감사가 아닌 것입니다.

둘째 : 늘 언제나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은 감사의 일상성입니다.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평안과 고통 등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늘 언제나 어디서나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 : 계속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은 감사의 지속성입니다. 지난 일에 대해서 단 한번만 감사를 표현하고 끝내는 것은 세상이나 사람을 대하는 감사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감사가 중단되면 감격이 중단되고 감격이 중단되면 신앙이 중단 되는 것입니다.

넷째 :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은 감사의 고백 성입니다. 대상이 분명합니다. 사건도 사람도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죄에서 건지셨습니다. 고통과 시련과 위기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앞으로 영원한 천국에 이르도록 인도해 주실 분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 참으로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 감사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