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앞에도 역경 앞에도
고난 앞에도, 역경 앞에도“
출애굽기5:1-23
사람이 고난과 역경을 만나면 어떻게 변할까요? 도피자가 될 수 있습니다. 비겁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당하게 직면하여 도전하는 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이스라엘은 고난과 역경 앞에 서있습니다. 그들은 자유민으로 왔다가 노예로 전락하였습니다. 이것은 민족적인 박해요 압박이요 서러움입니다. 그들의 조상 요셉이 애굽에 미친 아름다운 역사를 잊은 집권자들의 횡포 앞에 속수무책인 이들의 모습은 철저히 애굽에 동화되었거나 아니면 비굴한 굴종으로 생명을 연명하는 비참한 자리에 떨어진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이들을 구원하시고자 모세를 보내?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찾아온 고난과 역경 앞에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요? 출애굽 직전의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현실을 극복하고 이길 새로운 지혜를 얻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1. 예배를 회복하여야 합니다.(1)
이스라엘의 청원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광야로 나아가 절기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란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 앞에 찬송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기도하기를 소원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고난을 이깁니다.역경을 극복합니다.
예배를 회복하는 것은 바로 믿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회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회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회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백성을 보내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기를 지키는 사람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1)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관심과 은총의 대상이요 고난도 이기게 합니다.
2. 종교성을 인정받아야 합니다.(2-19)
우리는 사람의 인정을 받고 세상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다. 세상 속에 사는 사람으로서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믿음의 일이 될 때 상황은 급전합니다. 과연 세상 속에서 우리의 믿음이 인정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겪고 있는 일을 보십시다. 그들은 이미 애굽에서 오랜 세월을 살았습니다. 400여년을 살면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독특한 문화를 이루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관습과 종교 그리고 삶의 모습을 이루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독특한 특색을 유지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는 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조상의 하나님이신 여호와 신앙은 이미 분명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애굽의 태양신 숭배를 그들은 강요당하고 있었다는 일단의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2-3)
인정받지 못하는 종교성을 여러 가지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은 잊고 살았을 것입니다. 오랜 세월 지나다 보니 애굽에 동화되었을 것입니다. 애굽의 생활에 젖었습니다. 타성에 젖은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독자적인 종교를 유지할 구심점이 없었을 것입니다. 아직은 제사장이 없었고, 하나님을 섬김에 민족을 이끌 구심점이 없었고, 하나님 중심의 삶에 대한 이상이 없었을 것입니다.
리더쉽이 부재한 이스라엘은 파편 조각처럼 흩어져 그날 그날을 연명하는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조직은 없었습니다. 힘의 실체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수는 많으나 흩어진 구슬처럼 아직은 목걸이가 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로는 그들을 마음껏 유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4-19) 그 결과가 더 과중한 부역이었습니다. 고통이었습니다. 역경이었습니다. 더 과중한 화가 미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종교성이 인정받지 못하는 자리에는 바로 이와같은 고난과 역경이 기다립니다. 화가 미치는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종교성이 인정받기 위하여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인정받는 길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용감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① 순교자적인 각오를 하여야 합니다.
② 경건의 삶이 일상화되어 있어야 합니다.
③ 언행심사에 귀감이 되어야 합니다.
④ 진솔하여야 합니다.
⑤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⑥ 교회생활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만사에 우선 교회여야 합니다. 모든 일에 겹치는 경우 무조건 뒤돌아보지 말고 교회로 달려와야 합니다.
⑦ 만사에 하나님 제일주의로, 교회 제일주의로, 성도 제일주의로 생활하여야 합니다.
만약 중도 성향을 띄거나 세상 쪽에 가까운 것처럼 생각하고 주장하고 행동한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은 외면하실 것입니다. 고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감찰하십니다.(20-23)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항상 염두에 두시고 때를 기다리십니다. 때가 찰 때까지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에 감탄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서두르시지 않습니다. 그의 때가 이르기 전에는 움직이시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종결 된 뒤 그때야 후회하시는 하나님은 결코 아니십니다. 결코 고난 중에 홀로 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감찰하신 것입니다. 오늘 한 패장이 원망어린 마음으로 모세를 향하여 말했는데 사실 그는 하나님의 의도를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도가 바로 하나님의 감찰하심에 포함된 것을 그는 깨닫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는 자와 모르는 자 사이엔 이만큼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① 모르는 자는 원망합니다.
② 모르는 자는 시비합니다.
③ 모르는 자는 절망합니다.
④ 모르는 자는 헤맵니다.
⑤ 모르는 자는 절규합니다. 한탄합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에게 참 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는 자는 다릅니다.
① 아는 자는 감사합니다.
② 아는 자는 당당합니다.
③ 아는 자는 인내합니다.
④ 아는 자는 비젼을 가집니다.
⑤ 아는 자는 객관성을 가집니다.
⑥ 아는 자는 주관적인 판단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압니다.
⑦ 아는 자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습니다.
⑧ 아는 자는 긍정적입니다. 적극적입니다. 경솔함이 없습니다. 소망에 넘칩니다. 사랑에 넘칩니다. 참고 견디며 감사하며 매사에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그는 고난가운데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결국 고난이 복이 됩니다. 고진감래요 전화위복의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감찰하심을 알고 모르고는 이만큼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패장들과 모세의 차이를 우리가 안다면 우리는 아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20,21) 패장들의 원망을 듣고 기도하는 모세는 바로 중보기도자의 모습입니다.(22,23) 감찰하심을 아는 사람은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과 의논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는 역사와 현장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가 처한 형편과 처지를 개의치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기에 그는 하나님은 향하여 모든 것을 의뢰합니다.
하나님이 감찰하심을 확신하시고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친구를 위하여, 가족과 일가친척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은 바로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감찰하심을 확신하는 사람은 고난과 역경을 통하여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욱 깊은 믿음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우리는 모세가 애굽에 내려가 드디어 바로를 만나 역사적인 담판을 벌이는 과정의 첫부분을 보고 들었습니다. 바로가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세상이 우리의 복음적인 삶의 제시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난하고 경멸하고 박해합니다. 그러나 꾸준한 경건의 삶을 보여주고 중보기도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반드시 크게 역사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난이 와도 역경이 와도 그 앞에서 믿음을 지키고 당당하게 사는 사람이 되어 모세와 이스라엘백성들처럼 출애굽의 쾌거를 이루어 내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예배를 회복하고 종교성을 인정받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 고난과 역경을 이기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