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회원 목회자님들이 은혜속에 교회를 세워가실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특별히 개척교회를 섬기시는 목회자님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4. 전 세계적인 경제적 위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선교사님들이 환율 때문에 원화의 가치가 낮아져서 무척 어려운 모양입니다.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5. 조그만 공간에서의 카페지기의 교회개척이 임박해 있습니다. 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하시길 기도해주세요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시편 139:1-12
.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전능하시며 무소부재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에 대한 네 가지 속성을 오늘의 본문은 가르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150편 가운데 본문인 139편은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짧은 시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중요한 속성을 다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본 시에서 다윗은 신학적으로도 이해하거나 설명하기가 어려운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님의 전지성, 하나님의 편재성, 하나님의 전능성, 하나님의 공의성 같은 깊고 오묘한 진리를 시적으로 설파하고 있습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오늘의 본문에서 살펴보면,
먼저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1-4).\"\"라고 고백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전지성, 즉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나의 앉고 서고, 자고 깨는 것, 나의 생각과 행동, 말까지 모두 알고 계시는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신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교리입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7-10).\"\" 이는 하나님의 편재, 즉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의 무소부재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13-14).\"\" 이는 하나님의 창조주이심과 하나님의 전능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정녕히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19-24).\"\" 이 말씀은 악과 선에 대하여 공의롭게 심판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짧은 글에서 그것도 문학적이고 시적인 높은 표현으로 기독교 신학의 중요한 교리요, 하나님의 속성을 가르치고 고백하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의 신학자 얼킨스는 \"\"내 임종 시에 한가지 부탁이 있다면 시편 139편을 읽어주시오.\"\"라고 했던 것입니다. 신학자 슈미트는 \"\"이 시야말로 신실한 인간의 영혼과 창조주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일어나는 침묵의 시요, 침묵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신실한 학자인 피터스는 \"\"이 세상의 악에서 주의 인도하심을 간구하는 믿음의 주문이요...\"\"라고 했고 어느 교수는 시편 중에 가장 깊은 신학과 신앙 고백이 담긴 문학적인 시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십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모든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공의롭게 판단하시며 축복할 자를 축복하시고, 악한 자를 보복하시며 심판하십니다.
그가 바로 우리의 아버시지시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의 구주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특별히 신학을 연구하거나 선지학교에서 배운 사람도 아닙니다. 그가 10년 동안 그리고 40년 동안 사울에게 쫓겨다니거나 왕으로서 통치하면서 직접 체험한 하나님을 노래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변적, 철학적인 논리가 아니라 체험적 신앙고백입니다.
다윗이 이토록 짧고 간결한 몇 줄의 시로 이러한 엄청난 하나님의 속성을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고백한 것은 그의 지혜가 아니요, 순전히 성령의 인도였음을 우리는 고백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이와같은 하나님을 고백하고 믿고 그 생활 속에 하나님과 함께 살아왔기에 인간으로서 승리하고 신앙인으로서 성공하고 하나님께도 사랑받고 위대한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들도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를 받기 위해서는 다윗과 같은 바른 신앙 고백이 있어야 하고, 그 고백 속에 삶을 심을 때 힘이 있습니다. 용기가 샘솟듯 솟아납니다. 인간으로서 승리하게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와같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과 그 분의 속성에 대해 확신이 있으면 몇 가지 삶에서 현저히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I.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리빙스턴은 그의 묘비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나머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은 자\"\"라고 써 달라고 했습니다. 홍해 바닷가에서 애굽 병정을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는 외쳐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 14:13).\"\" 요단강가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 1:9).\"\"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무서운 질병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은 실패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재앙과 유혹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그토록 의지하였기에 야수같은 사울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골리앗같은 인간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같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고 안심하고 기뻐하며 감사하고 용기를 새롭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II.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다윗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분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그리하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지도하셨음을 체험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아들이 경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진 일이 있었습니다. 매스컴에서는 케네디 가(家)의 비극에 대해 연일 보도하며 많은 말들이 떠돌고 있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는 아일랜드계의 조셉 케네디였습니다. 그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셋이 모두 비운의 사건으로 죽었고, 이번에는 그의 손자까지 경비행기 사고로 죽은 것입니다. 큰 아들 조셉은 세계 제2차 대전 때 비행사로 출격했다가 전사했습니다. 둘째 아들 존은 대통령 시절 달라스에서 암살당했습니다. 셋째 로버트는 LA에 있는 엠베서더 호텔에서 죽었습니다. 넷째 에드워드는 여비서와 함께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가 겨우 자기 생명만 건졌으나 그 후유증으로 폐인같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비극을 거듭 당하던 그 아버지도 비운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의 딸 캐슬린도 배우자 선택 과정에서 부모와 크게 언쟁을 벌인 후 유럽으로 결혼식을 위해 떠났다가 비행기 사고로 죽고 말았습니다. 이번에 숨진 케네디 대통령의 외아들도 자기 부인과 처형과 함께 경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추락하여 죽고 만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제일 가는 명문가정이라고 하는 이 가정이 이렇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이에 대해서 그 누구도 단언하여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추측으로 말할 따름입니다. 그 추측은 무성합니다. 막강한 재력과 명문 가정의 인간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라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재산이 많았고 그 재산을 의지해서 아들 대통령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평소 케네디 가의 교육 목표가 자신감과 가족 단결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의 자신감이 무모한 행동의 동기가 되고 만 것입니다. 큰 아들의 죽음도 위험을 무릅쓰고 독일군 군사기지 폭격을 감행한 자신감 때문이요,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달라스에 간 존 에프 케네디도 그의 자신감, 이번의 그의 아들 죽음도 비행기 조정 면허증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그것도 경비행기로 야간 비행을 시도한 그의 피에 흐르고 있는 자신감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추측은 미국 초중고등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공중 기도하는 것을 중단시킨 것이 바로 케네디 대통령이라고 합니다. 미국 학교에서 성경 교수가 금지된 이래 미국은 급격히 달라졌습니다.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폭력과 마약, 향락에 젖어 급속도로 부패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태는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분을 믿고 순종하기보다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와 두뇌, 실력, 기술을 더 믿은 소치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시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이야기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미꾸라지를 의지해도 의존하는 존재이다.\"\" 사람을 의지할 것인가, 물질이나 기술을 의지할 것인가, 하나님을 의지할 것인가... 바울은 힘있게 말씀합니다. \"\"나는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5).\"\"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III.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은 하나님께 헌신합니다
미국의 남북전쟁 역사가로 유명한 사뮤엘 다니엘은 그가 쓴 \"미국 역사\"라는 책에서 \"\"헌신은 복종의 어머니다(Devotion is the Mother of Obedience).\"\"라고 했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헌신 없는 복종이나 순종은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마음으로 그의 생명과 삶 전체를 그리스도에게 헌신하였습니다. 다윗도 하나님께 복종하는 마음으로 그의 생을 하나님께 바쳐 헌신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 복종한다고 하면서 그의 몸된 교회에 대하여 헌신하지 않는다면 그 복종은 거짓일 것입니다. 온갖 변명과 핑계를 늘어놓기 전에 우리 중직자부터 하나님의 몸된 교회에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속성과 그 분의 존재하심을 믿고 고백하는 신앙의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시편 139편에서 참으로 위대한 신학적 교훈과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변적 논리나 학습을 통해 배운 것이 아니라 그의 기구했던 지난 날의 삶에서 하나님을 체험한 생생한 고백입니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이와같은 분명한 신앙과 신학 위에서 굳게 서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세상을 겁내기 마십시오. 내가 위대하다거나 자신감에서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분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십시오. 하나님께 헌신하십시오. 그것이 이기는 길이요, 행복의 길이요, 믿음의 길입니다. 건강한 인생을 원하십니까? 행복한 가정을 희망하십니까? 성장하는 신앙을 바라십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시고, 그 분을 믿고 헌신하십시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아시고 영원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