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번째 편지 내용을 보면, 주후 1세기 고린도 지역의 상황은, 20세기 말의 세계 정황과 아주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고린도 지역에서는 사회 전반에 걸쳐 도덕성의 상실과 가족의 붕괴, 이에 따른 낙태, 유아 살해, 그리고 동성 연애 문제가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지역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는, 고린도 교회와 성도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사회에 만연된 타락상 때문이거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도덕적인 방종이나 교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사랑의 결핍]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없으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나 영적인 은사나 능력도 아무 가치가 없다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의 은사 가 다른 어떤 영적 은사보다 귀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절로 3절을 보십시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사랑이 없는 행동은 무의미합니다. 혹시 우리는, 사랑 없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혹시 우리는, 그 마음에 사랑 없이, 사람들을 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우리는, 사랑하는 마음 없이, 자신의 일에 열심을 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은, 사랑이 없으면, 능력도, 믿음도, 선행도, 헌신도 아무 유익이 없다 고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사랑이 이렇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지 않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마음에서 나오지 않은 행동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우리들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것은, 모든 성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마 22:37-40). 오늘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당신과 가정 그리고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는 어떤것들이 있습니까?
혹 이 문제들이 당신의 사랑의 결핍에서 온 것은 아닐까요?
(갈 5: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1. 한해의 마지막 12월입니다.
한해의 계획을 점검하며 유종의 미를 거둘수 있도록 기도해야 겠습니다.
2. 카페를 통해서 어려움속에서 주님의 복음을 위해 수고하시는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 목회자님들을 도울수 있는 길들이 열려지길 기도해주세요.
2. 중국과 티벳, 일본에서 선교하시는 회원 선교사님들을 위해 지속적인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3.. 회원 목회자님들이 은혜속에 교회를 세워가실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특별히 개척교회를 섬기시는 목회자님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4. 전 세계적인 경제적 위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선교사님들이 환율 때문에 원화의 가치가 낮아져서 무척 어려운 모양입니다.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5. 조그만 공간에서의 카페지기의 교회개척이 임박해 있습니다. 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하시길 기도해주세요
사랑으로되는 치유 (본문:마20:34)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성육의 사건이나, 그분이 세상에 머무시면서 행하신 모든 일들은 모두가 죄인된 인간들에 대한 무한하시고 크신 사랑을 인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구원이나 치유와 같은 모든 사역들도 예수님의 사랑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흔히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진정 맞는 말입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사랑이시며(요일4:8),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 사랑의 화신이신 것입니다. 병든 자들을 치유하신 이적 역시 예수님의 사랑과 긍휼에서 나온 놀라운 결과였습니다.
1. 긍휼히 여기는 마음(마20:31)
1) 인간의 처지 복음서의 기자들은 한결같이 예수님 당시의 일반 백성들의 상황을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마9:36;막6:34). 물론 이 말은 예수님 당시의 팔레스틴의 유대인들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상황에 근거한 판단이요 묘사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그것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이미 구약에서부터 이 표현은 지도자도 없이 방황하는 불쌍한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민27:17;왕상22:17;대하18:16). 또한 이 말은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모든 인류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모든 인간은 사탄의 지배 아래서 허덕이면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2)하나님의 긍휼 복음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목자 없는 양과 같다고 묘사할 때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헐벗고 질병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보시고 민망해 하시며 긍휼히 여기셨음을 함께 보도합니다. 치유의 이적이 나타나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그들에 대한 이러한 사랑이, 그들을 병에서 치유하고 마귀의 눌림에서 해방하며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는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하는 직접적인 동인으로 작용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마20:29-34). 사실 죄악으로 병들고 왜곡된 인간들을 고치시려는 하나님의 전체 구속 역사는 바로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인하여\"시작된 것입니다(엡2:4).
2. 사랑의 표현(마8:3)
1)하나님의 능력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의 화신이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몸을 입으신 분이시지만, 동시에 능력이 충만하신 하나님이시기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에 그분의 능력이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제한을 받기도 했지만,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요1:1-3)으로서 자신의 말씀으로 수많은 일들을 행하셨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치유 방법을 살펴보면 말씀이나 능력에 의한 것 외에도 병자들을 만지시거나 안수하시는 방법 등을 사용하셨습니다. 그 모든 방법들은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로서 사용되었습니다.
2)접촉으로 표현하심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치유하시는 과정에서 소경의 눈을 만지시고(마9:27-31)귀먹은 자의 귀를 만지셨습니다(막7:32-37). 또한 누구와도 접촉해서는 안되는 문둥 병자를 만지시고(마8:3) 죽은 야이로의 딸의 손을 잡기도 하셨습니다(마9:25). 이러한 접촉 행위는 구약의 정결법에 의하면 부정을 타는 일로서 당시의 통념이나 율법에 의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으며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능력이나 말씀만으로도 병자들을 치유하실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병자들을 만지거나 안수하신 것은 예수님의 그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표현하는 한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도 가까이 하거나 접촉하기를 원치 않는 이들에게 가까이 가시고 접촉하심으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게 하셨던 것입니다.
3. 치유와 사랑(빌2:27)
1)치유와 사랑 예수님의 사랑의 표현은 당시에는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예수님의 사랑이 단순히 병자들의 치유를 위한 \'동기 제공\'의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과거에 성경의 치유 사건을 부정하던 현대 의학계도 \'사랑에 의한 만짐\'이 치유를 가져온 다고 하는 사실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행해지고 있으며, 또한 많은 부분에서 그것이 사실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미 구약에서부터 인간의 영과 정신, 그리고 육체의 상관 관계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정신적인 요소)이 양약(육체적인 요소)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은 오늘날 의학계에서도 널리 인정되는 사실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사랑은 치유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집니다.
2)사랑의 능력 사랑의 능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병자의 치유에 있어서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랑과 같은 긍정적인 정서 반응은 우리의 육체를 치유하고 강건케 하는 작용을 합니다. 누군가에게서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 또는 자신의 생명에 대한 사랑은 환자의 치료에 있어서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 나아가 영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적인 사랑보다 훨씬 더 크고 놀라운 효과를 가져올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를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강건하게 하며 온전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결론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나가는 동인이요 그것을 이루는 실제적인 힘입니다. 예수님의 치유에 있어서도 목자없는 양같이 방황하는 무리들을 향한 깊은 애정과 사랑은 그들의 치유에 직간접적이 영향을 미쳤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은 오늘날까지도 놀라운 역사들을 이루고 계심을 믿을 때에 우리 각자의 삶에도 동일한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기도 아무런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저희들을 그 크신 사랑으로 사랑하셔서 구원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 사랑을 인하여 저희의 영과 육이 항상 강건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