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물건을 잃어버리고 나서 그것을 찾으려고 고생한 경험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급히 외출해야 하는데 잠깐 벗어놓은 시계를 찾을 수 없다든지, 중요한 회의에 들어가야 하는데 필요한 서류를 찾지 못해서 곤란했던, 그런 경험 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장소가, 마치 우리가 찾고 있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본 곳인 듯한 느낌이 들지만, 아무리 찾아도 그곳에서는 찾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꼭 있어야 할 것을 잃버리고 나서, 그것을 찾으려고 노력해 본 사람이라면, 무엇을 찾아야 할 때,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초조하고 다급해지는지 이해하실 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언제나 무엇을 찾으십니다. 쉬지 않고 {그분이 지켜야 할 것}을 찾고 계십니다. 사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잃어버린 무엇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누가복음 19장 10절을 보십시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주님은 마치 거친 들판에 풀어놓은 양떼를 지키는 {목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양떼를 지키던 목자가, 무리 중에서 양 한마리를 잃어버렸다고 합시다. 양떼를 지키는 것이 목자의 일이라면, 잃은 양을 찾아오는 것도 목자의 일입니다. 그래서 목자는 잃은 양을 찾아 나섭니다. 목자의 뒤를 따라왔더라면 길을 잃고 헤메지 않았을, 그 한 마리의 양을 찾아내기 위해, 목자는 잃은 양이 안전하게 돌아올 때까지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도 우리가 그분의 품으로 안전하게 돌아올 때까지, 쉬지 않으십니다. 그 주님을 닮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생각하십시오.
첫 째, 주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려는 열심을 갖고 계십니다. 둘 째, 주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시기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셋 째, 주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아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아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주님이 필요했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그들의 삶을 인도할 {사랑의 목자}가 필요합니다. 때문에 먼저 {사랑의 목자}를 만날수 있었던 우리는, 세상에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을 안자로서, 주님을 전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당신의 주위엔 주님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영혼은 없으십니까?
그 영혼을 당신이 돌아보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간절한 마음을 아십니까?
(요 10: 15-16).
요 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 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 한해의 마지막 12월입니다.
한해의 계획을 점검하며 유종의 미를 거둘수 있도록 기도해야 겠습니다.
2. 주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육신을 입고 찾아오신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주님을 빈손으로 맞지 않기위해 기도하며 준비합시다.
3. 카페를 통해서 어려움속에서 주님의 복음을 위해 수고하시는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 목회자님들을 도울수 있는 길들이 열려지길 기도해주세요.
4. 중국과 티벳, 일본에서 선교하시는 회원 선교사님들을 위해 지속적인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5.. 회원 목회자님들이 은혜속에 교회를 세워가실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특별히 개척교회를 섬기시는 목회자님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6. 전 세계적인 경제적 위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선교사님들이 환율 때문에 원화의 가치가 낮아져서 무척 어려운 모양입니다.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7. 조그만 공간에서의 카페지기의 교회개척이 임박해 있습니다. 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하시길 기도해주세요
믿어지지 않은 불행 요 10장 19 - 28
*진정한 그리스도인 성 요한 크리소스톰은 4세기의 교부들 가운데 한사람이었다. 크리소스틈은 로마의 시이저가 주가 아니라,예수께서 주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다가 체포되어 로마의 아르카디우스 황제 앞에서 처형당했다. 아르카우디스는 크리소스톰에게 내릴 형벌을 신중히 고려하면서 맨 먼저 그를 추방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폐하, 폐하께서 저를 저의 집에서 추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전 세계가 제 아버지의 집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크리소스톰은 대답했다. 그 다음으로 아르카디우스는 크리소스톰의 모든 재산을 몰수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크리소스톰은 \"저의 보화는 하늘에 있읍니다. 아무도 그 곳을 뚫고 도적질 할수 없읍니다.\"라고 대답했읍니다.
그러자 황제는 \"나는 너를 감옥에 집어넣어 너의 친구들 뿐만 아니라사람과의 접촉을 일체 금지 시키겠다.\"라고 말했다. 크리소스톰은 \"저에게 결코 저를 떠나시지 않고 버리시지도 않겠다고 약속하신 친구가계십니다\"라고 대답했다. 격노한 아르카디우스는 그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크리소스톰은 \"저는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저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져 있으니까요\"라고 대답했다 . 크리소스톰,그 자신은 그의 환경,즉 속박과 투옥,그리고 죽음이 공포에상관없이 정말로 자유로웠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도 크리소스톰처럼 우리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태도를 갖기로 선택할수 있다. 환경은 인생의 10퍼센트만을 조성할뿐이며, 나머지 90 퍼센트는 자신의 태도가 조성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만약 우리가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감사하기로 마음 먹는다면 우리는 인생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조정할 수 있다. 우리는 환경에 좌우될 필요가 없다.
.사람은 누구나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 믿음은 일반적인 믿음이라고 한다. 이믿음이 없이는 우리가 살아갈 수 없으며 이 자리에 안심하고 앉아 있을수도 없다. 이 건물이 만약에 무너질지도 모르지만 이 시간 이렇게 평안히 앉아 예배 드릴 수 있는 것은 무너지지 않는 다는 믿음이 있기에 안심하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밥 먹으면서 이 밥먹으면 만약에 탈이 나지 안을까하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집에서 밥을 먹으면서 이렇게 의심하고 조심스럽게 밥을 먹는 분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한 가족이고 또 집에서 만든 음식속에 다른 독이나 나쁜 물질이 들어간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은 이 음식을 만든 사람을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에게는 그의 모든 전투 때마다 그를 따라다닌 좋은 의사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의사를 질투한 어떤 사람이 그를 없애 버리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알렉산더 대왕에게 의사가 어느 날 아침 알렉산더 대왕의 컵에 독약을 넣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편지를 썼습니다. 그 사람은 알렉산더 대왕이 그 의사를 당장 처형시킬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침 식사 때 알렉산더 대왕은 그 편지를 모인 사람들에게 읽어 주고 자기가 의사를 믿는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컵을 집어 그 안에 든 것을 마셨습니다. 그것은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의사를 믿고 그 의사를 신뢰하였습니다.
만약에 평범하고도 당연한 이 믿음이 없어진다면 매우 불행한 사태가 일어 납니다 어느 곳을 가도 혹시 이 집이 무너지지 않을까? 또 다리를 건널때는 이 다리가 무너지지 않을까? 음식을 먹을때도 매우 불안해져서 잠시도 마음놓을 수 없는 정신병에 걸리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세상을 살아 가는 동안 믿음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믿음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선한목자]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의 선한목자 되심을 말씀해 주실 때 유대인들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났다고 했다. 분쟁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아니하는 사람 사이에 일어났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말씀을 들었는데도 한쪽에서는 믿고 기뻐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믿지 않고 아주 완악한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죤 칼빈은 ‘구원받을 사람과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이 따로 있다.’라고 했는데 이는 구원받기로 예정 된 자와 구원받지 못하고 버림받는 사람이 구분 된다는 말씀입니다.
(엡1: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니까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들은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다 믿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전도해 보면 어떤 사람은 믿을 것 같은데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잘 믿지 않을 사람 같은데도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이것을 보면 전도자의 방법도 문제가 있지만 근본적인 것은 전도 받는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예수 믿을 사람이라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 지혜로는 하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비록 택함을 받은 자라 할지라도 전도를 통해서 믿게 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전도하는 것이 혹 미련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 전도를 통해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바꾸면 전도하는 것이 아무리 부족하고 미련해 보여도 이것을 통해 믿은 자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전도를 통해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로 하신 것은
1. 우리의 신앙 생할에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전도를 열심히 하다가 보면 자신의 믿음이 자라는 것은 물론이고 또 그만큼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충성하게 됩니다. 또 세상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니 늘 은혜의 생활을 누리게 됩니다.
2. 전도는 운동하는 것과 같아서 영적으로 건강해지게 합니다. 예수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 성경을 많이 아는 박사라도 전도하지 아니하면 기형적인 신자가 됩니다. 그러나 열심히 전도하게 되면 그 사람의 신앙은 건강한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먹기만 하고 운동하지 않는다면 배가 나오고 살만 찔뿐아니라 몸도 약해집니다. 적당한 운동이 건강을 지켜 주듯이 전도는 그사람의 영적인 건강을 지켜 줍니다.
3. 전도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일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보다 더 귀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전도를 통해서 많은 영혼을 구원하게 되면 누구보다 예수님이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기 까지 하셨기 때문입니다. (겔33:11)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하나님은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생각하십니다.
사랑하는 회원 여러분 전도하기 위해 수고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자요 누구보다도 예수님이 기뻐하시고 또 하나님 나라에 가서 가장 큰 상급을 받을 자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믿고 안믿고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볼때에는 누가 믿을 사람인지 믿지 않을 사람인지 알수 없기에 다만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고 결정하시는 일이며,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본문에 보면 믿지 않은 유대인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귀신들려 미쳤다고 몰아 부쳤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성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고 병든자를 고치시며, 벙어리와 소경을 치료하셨지만 이렇게 비난과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마9:32) 저희가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마9:33) 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거늘 무리가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때가 없다 하되 (마9:34) 바리새인들은 가로되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이렇듯 저와 여러분도 이세상에 사는 동안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해 어떤 비난과 멸시천대를 받는다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된 것을 오히려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마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스라엘 나라에서도 이렇게 핍박을 당했는데 하물며 우리나라처럼 이방나라에서야 오죽하겠습니까?
(요10: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요10: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 (요10: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그동안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누구이신가를 밝히시고 많은 말씀으로 증거하시며 수많은 표적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렇게 끝까지 믿지 못한 것입니다. 도리어 예수님께 말하기를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 이들에게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이나 표적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더 많은 표적을 나타 내어도 그들은 믿지를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 표적을 그들에게 나타 내셨습니다. 바로 요나의 표적과 같이 십자가에 죽어신후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시는 표적을 나타 내셨습니다. 그러나 이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자는 더 이상의 무엇을 해도 믿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말씀한마디만 듣고 예수님을 믿게된 사람들이 나오는데 바로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수가성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요4: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또 요한 복음 4장50절에 왕의 신하의 아들이 그렇습니다. (요4:49) 신하가 가로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요4:50)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왜 성경을 기록했습니까? 이는 이 말씀을 읽으므로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경말씀을 읽고서 예수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표적을 경험했으면서도 믿지 못한 까닭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 도다.’
그렇습니다. 만약 그들이 예수님의 양이라면 그음성을 듣고 목자를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모두 예수님의 양입니다.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에게는 영생을 주실뿐만 아니라 결코 멸망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믿는자에게 [ 궁극적인 구원 ]을 약속해 주고 계십니다. 일단 구원의 방주에 들어온자는 결코 내쫓기지 않으리라는 약속 , 이약속을 우리는 굳게 믿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믿고 따르는 여러분과 나는 영생을 얻었고 결코 버림을 받지 아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