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의 교훈 (사1:18)

 
 
6.25전쟁은 세계적인 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나라들이 참전했고 피해도 막대했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맥아더 장군을 임명하였고,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16개국이 직접 참전하였고, 스웨덴을 비롯한 5개국이 의료지원을 했습니다. 6.25전쟁은 450만 명의 인명피해를 가져왔고, 산업시설의 43%, 가옥의 33%가 전소되었습니다. 미국은 당시 한국전쟁에 150억 달러를 손해 보았습니다.
6.25전쟁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은 남한을 무력으로 정복하기 위해 38선 이남으로 무장간첩을 파송하기도 하고, 남한 내에의 공산당 활동을 지원함으로 남한 정부의 전복을 꾀했습니다. 1946년 9월의 철도파업, 10월의 대구 폭동, 1948년 10월의 여순반란사건 등은 모두 남한 내의 공산당 활동과 관계있는 사건들이었습니다. 6.25가 나기 전까지 북한 김일성은 10여 차례 남한을 무력으로 통일시키려고 노력했지만 불가능해지자 전면전을 개시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6.25전쟁입니다.

우리는 6.25를 맞이하면서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범죄 하는 자는 징계하지만, 그러나 회개하고 돌아올 때 긍휼을 베푸시어 환난에서 건져주신다는 것입니다.
6.25가 일어나기 전, 1945년 36년간의 일제의 압박에서 해방되기 전에 우리 한국 기독교는 큰 죄를 범했습니다. 즉,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일본신사참배가 정당하다는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십계명 중에 1,2계명을 어기는 중대한 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진노하셨고, 우리는 6.25전쟁을 통해서 많은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부산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했을 때, 많은 목사님들이 그곳에 모여서 통회자복하며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竪돋?들어주시고 우리 민족을 북한의 위험 속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방탕하고 범죄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망하길 원치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범죄할 때 우리가 개인, 가정, 교회, 민족적으로 채찍을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개인과 가정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 여러 가지 환난과 시련, 고통들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고 만약 우리의 죄 때문이라면 철저하게 하나님께 통회자복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오늘 이민족이 여러 가지 혼돈과 무질서와 위기 속에 빠져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한국의 기독교가 하나님께 범죄한 결과요 세속화된 결과입니다. 우리는 모두 6.25 56주년을 맞이하면서 하나님께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통회하고 자복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을 다시 축복의 길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우리를 살리시고(호6:1-2), 우리를 용서하시고 환난 가운데서 구원해 주십니다.(사1:18)
하나님은 과거를 묻지 않고 우리에게 회개할 길을 열어주시고 회개하기를 기다리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요일1:9
성경을 보게 되면 아버지의 품을 떠난 탕자를 밤낮 가리지 아니하고 문밖에서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사랑이 나타납니다. 멀리 탕자가 보이게 될 때 아버지는 체면불구하고 뛰어가서 그 냄새나고 초라한 아들을 붙잡고 입을 맞추고 반겨 맞으면서 옷을 갈아입히고 목욕을 시키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하는 모습은 우리 하나님의 사랑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는 것입니다.
(요일 1: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 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개할 길을 열어주시고 회개할 때를 기다리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이나 저주하며 부인했을 때 우리 주님께서는 닭을 울게 함으로 베드로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를 팔기로 생각했을 때 우리 주님께서는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누구든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가 나를 팔리라” 그러나 베드로는 회개의 복을 받았고 가룟유다는 회개하지 아니하고 범죄 했기 때문에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떠한 죄를 범했느냐 얼마나 하나님을 떠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죄를 내어놓고 통회하고 자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시간도 우리가 우리 죄를 내어놓고 회개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해주시고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 민족이 다시 한 번 부흥의 기회가 있고 이 민족이 안전한 통제 안에 있기 위해서, 하나님께 복을 받는 길에 있기 위해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고 내어놓는 일입니다. 그리고 통회하고 자복할 때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이 민족에게 축복의 길을 열어주시리라고 확실히 믿습니다.

둘째는 하나 되고 연합할 때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6.25의 위기 속에서 16개국의 나라들이 연합해서 육해공군을 보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5개국에서 의약품을 보내왔습니다. 그들이 한 덩어리 돼서 이 땅을 지켜주었고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 되는 곳에는 언제나 승리가 있습니다. 하나 되는 곳에 기쁨이 있고, 발전이 있고, 성장이 있고, 그 곳에 건설이 있고, 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헤어지는 곳에 갈라지는 것은 언제나 눈물이 있고, 고통이 있고, 거기에 파괴가 따라오게 되고, 멸망이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의 명언을 기억합니다. “뭉치면 살고 헤치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큰일이나 작은 일에나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건설되어지고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이 내 마음에 비록 맞지 않아도 내 뜻과 달라도 한 덩어리 되어 일하게 될 때 연합해서 하나가 될 때 하나님이 그곳에 임재하시고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 되는 그곳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 되는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를 분리하게 합니다. 멀어지게 합니다. 파괴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은 우리가 하나 되게 하고 건설하게 하고 성장하게 하고 생산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중풍병자와 네 친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네 친구는 중풍병자를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무덥고 찌는 듯 더위가 심합니까? 뿐만 아닙니다. 그 거리가 혹은 5리가 되는지 10리가 되는지 100리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네 친구는 한 사람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중풍병자를 고치려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무더위에 친구를 데리고 어디를 어떻게 예수님께 데리고 가나, 혼자도 걸어가기 힘든데, 아니, 그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그 먼 거리를 우리가 어떻게 데려가나.’ 거기에 불평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있음직한데 이 네 친구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예수님께 가보니 큰일 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러 온 사람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가득 찼습니다. 예수님께 갈래야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 봐, 이제 기다려야지 어떻게 하나.’ 아니 기다리다 보면 예수님 만나려고 보면 밤을 새야 될지도 모릅니다. 아니 이틀, 사흘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지붕위에 올라갔습니다. 지붕을 뜯어냈습니다. 반대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예의상 기다려야지’ 거기 환자가 어디 이 사람 뿐이었겠습니까? 다른 환자들은 지금 와서 기다릴 것입니다. 순서를 지켜야지 요즘 말로해서 새치기해서 되냐고 이론을 제기할 만합니다. 아, 사람하나가 환자 하나가 누운 데로 내려가려면 침상을 달아 놓았으니까 누운 데로 내려가려면 지붕을 얼마나 많이 뚫어야 되겠습니까? 아마 거의 다 뜯어야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무리한 짓을 해서 되나, 나만 생각해서 되나, 내 친구만 생각해서 되나, 다른 사람도 생각해야지. 남에게 그렇게 지붕을 뚫는 피해를 입히면서 고쳐줘야 되나. 아니, 예수님께서 아래에서 가르치다가 위에서 막 먼지가 떨어지고 흙이 떨어졌겠지요, 예수님께서도 결례지요. 거기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예의가 아닙니다. 충분히 반대할 수 있습니다. 반대 이론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네 친구는 마음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누구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한 마음이 되어서 지붕을 뚫고 친구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달아 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거기에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거기에 불가능이 가능해졌습니다. 하나 되는 것에 불가능이 가능해지는 것이고 하나 되는 것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 되는 것에 하나님이 능력을 행합니다. 교회에서 이런 일 저런 일 해나갈 때 그거 불평하게 되고 옆에서 삐뚤어진 마음 가지고 이야기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 되어야 됩니다.
120문도가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합니다. 열심히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더운 지방입니까? 그 때 무슨 선풍기가 있었겠습니까? 에어컨이 있었겠습니까? 그 무더운 지방 아래층도 아니고 다락방 그 좁은 곳에 올라가서 120문도가 기도에 힘을 썼으니 얼마나 땀이 나고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나 누구하나 불평하는 사람 없었습니다.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전혀 하나가 돼서 한 덩어리가 돼서 열심히 기도할 때 성령에서 혀 같이 갈라지는 불처럼 역사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건설하게 되고 세계 선교의 주춧돌을 놓지 않습니까? 하나 되어야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 되어야 위대한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나뉘는 것은 파괴하는 것이요 나뉘는 것은 멸망하는 것이요 나뉘는 것은 사단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의를 제기하고 불평하는 것을 사단은 좋아합니다.
(빌 2: 1-2)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무슨 일을 하든지 오늘 하나님의 교회에서 어떠한 일을 하든지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 뜻을 가져야 합니다. 같은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나누이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게 내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내 이권에 좀 손해가 된다고 나도 다른 사람처럼 같이 열심을 낼 수 없다고 내 생각과 다르다고 의견을 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안 맞으면 입이나 다물고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요? 하려고 하는 사람들 마음에 상처 줘서야 되겠습니까? 교회에서 이단을 말하거나 잘못된 교리를 선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중심에서 말씀대로 교회 성장과 부흥을 위해서 하는 일에 이의가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고 한 덩어리가 될 때에 그 곳에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 교회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수군거리고 저 곳에서 불평 해봐요, 그 교회 꼴이 되지 않습니다. 사단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보면 사단의 회라고 했습니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사단의 회라 자칭 하나님을 잘 섬기는 신자라고 하지만 그것은 사단의 모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요한계시록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2: 3)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내가 낮아지고 겸손하게 될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왜 하나가 되지 못합니까? 왜 그렇게 똑똑한 척 하고 의견을 많이 내고 말을 많이 합니까? 교만해서 그렇습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왜 하나 되지 못하고 늘 싸우고 분쟁합니까? 교만해서 그렇습니다. 겸손해서 아내가 남편게 순종하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부부는 행복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할 때 그 가정은 행복합니다. 교회도 사랑으로 하나가 될 때 그 교회는 힘 있게 평화롭게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오늘까지 우리 교회가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게 은혜롭게 성장해갑니까? 사랑으로 하나 되고 겸손해서 그렇습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들어줄 때 하나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6.25의 교훈 중에서 하나 되면 승리한다고 하는 것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셋째는 합동해서 유익이 되고 선이 된다는 사실도 배우게 됩니다.
여러분, 6.25의 피해라고 하는 것은 엄청났습니다. 6.25 당시의 피해는 많은 인명피해를 빼놓고도 때로는 학교와 중요 건물들이 2만2437개소가 파괴가 되었습니다. 또 우리 교회나 사찰도 마찬가지입니다. 5236개소가 파괴가 되었습니다. 대소도시가 50개소 촌락 읍이나 면이 5400개소가 파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만 그러나 따져놓고 보면 거기에 유익도 꽤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만해도 남쪽에서는 폐쇄적 보수적 국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저 북쪽의 사람 1000명 이상이 남쪽으로 피난 오게 될 때 서로 문화가 교류되면서 개방적이요 진취적인 사회로 발전해나가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북쪽은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고통당하고 남한의 기독교는 서서히 발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1000명에 가까운 선교사들이 남한 땅에 와서 남한 방방곡곡 산골짜기에 교회를 건축하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찬양하기 때문에 남한 땅이 순식간에 부흥하고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계 선교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부흥을 이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6.25의 피해도 대단하고 남쪽 사람들이 1000만 북쪽 사람들을 받아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수지맞은 겁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험한 인생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환난 시련 직면해서 괴로운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모든 어려운 일이 여러분 주위에서 일어나는 환난 시련들이 결국은 합동해서 선이 되고 유익이 된다는 사실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말씀대로 있고 나는 나대로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환난 시련 당할 때 낙심하지 말고 말씀으로 돌아가서 말씀을 굳게 붙들게 될 때에 말씀의 능력이 여러분들을 사로잡게 됩니다. 아닌 말로 재수가 잘 맞아서 때를 잘 만나서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가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합력하여 선이 되고 유익이 되도록 섭리해주시고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을 이렇게 전쟁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우리 나라를 돕기 위하여 찾아 왔던 많은 나라들 그 민족들에게 날마다 감사하며 살아가야 될 책임이 있습니다. 감사를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6.25의 피해라고 하는 것은 막대했습니다. 전쟁미망인 30만, 전쟁고아 10만, 이재민 370만, 이산가족 1000만을 배출했습니다. 이와 같이 6.25가 일어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최근에 미국에 있는 한 연구소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무기체제의 발달로 인해서 6.25 당시보다 17배의 위험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남북한 군인을 합하면 175만이 되고 무기체제 발달로 인해서 그 때보다 80배로 이 무기가 발달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면 우선 식수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왜? 화학무기 사용으로 인해서 식수가 다 오염되고 전기가 끊어지고 유류공급이 끊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에도 보온을 할 수가 없고 취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음식을 해먹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글자 그대로 남북한에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6.25 56돌을 맞이하면서 우리 다시 6.25를 회상하고 6.25를 상기하면서 다시는 이와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이 땅위에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여러분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로 인해서 하나님이 이 민족을 지켜주고 이 민족이 하나님께 복 받는 길로 나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