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날씨도 춥고 그래서 여러분의 퀴즈실력을 한번 테스트해보고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할아버지 발이 크다.” 이 말을 4자로 말하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노발대발”입니다. 늙을 노자, 큰 대자, “노발대발”입니다. 한 가지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신경통환자가 제일 싫어하는 악기가 있습니다. 무슨 악기일까요? “비올라”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물어보겠습니다. 제가 입은 가운은 자주색입니다. 붉은색입니다. 그런데 거지가 제일 싫어하는 색이 있습니다. 무슨 색일까요? 바로 “인색”입니다. 걸인은 인색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두 개의 본문을 읽었습니다. 누가복음 12장은 하나님께 대하여 인색한 어떤 부자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매우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한해 농사를 잘 지었는데 수확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창고에다가 보관하려니까 창고가 너무 작아서 더 큰 창고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창고에 자신의 곡식과 재물들을 가득히 쌓고 나니 마음이 너무 흡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영혼아! 너처럼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 창고에 가득 쌓아놓았으니 내 일생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 안해도 평생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내가 오늘밤에 너의 생명을 도로 가져가면 네가 준비한 이 모든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정작 하나님이 네 생명을 거두어 가시면 네가 그렇게 기대하며 쌓아놓은 이 재물과 곡식이 누구의 손에 넘어가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 마디 덧붙이십니다. “자신의 위하여 많은 재물을 쌓아놓았지만 하나님께 대하여 부유치 못한 자는 이와 같으니라.” 이 부요치 못하다는 것은 인색한 자입니다. 자신에게는 관대하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많이 준비해놓았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인색한 자의 종말은 이와 같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 역대상 29장 두 번째 본문을 읽었습니다. 다윗 왕이 그의 일생에 소원을 이루는 그런 내용입니다. 그는 원래 전쟁이 다 끝나고 통일왕국을 이루어서 편안한 백향목궁에 거하고 있었는데 다윗의 마음에 너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좋은 집에 있는데 하나님의 법궤는 텐트 속에, 천으로 만든 회막 속에 있다는 것이 늘 마음에 아팠습니다. 그래서 ‘내가 우리 하나님의 법궤를 모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둘 성전을 내가 건축해야겠다.’ 이것이 다윗의 순수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노”하셨습니다. “안 된다. 너는 너무나 많은 전쟁에 나갔고, 너의 손에 피가 묻어 있기 때문에 그 피 묻은 손으로는 평화의 성전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제가 성전을 지을 수 없다면, 제가 성전을 지을 모든 재료를 준비하겠습니다.” 다윗은 온 백성에게 공포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재료들을 우리가 기쁜 마음으로 드립니다. 온 백성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유 중에 하나님 앞에 재물을 가지고 와서 드립니다. 성막을 만드는 데 필요한, 성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들을 주님 앞에 드렸습니다. 다윗도 자신이 가진 것의 거의 전부를 다 드렸습니다. 성서 주석가들은 다윗이 그 당시에 드린 금과 은과 보석들을 계산해 보니까 약 40조에 이르는데, 세계적인 대부자 빌게이츠보다 더 많은 재산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이렇게 백성과 다윗이 하나님 앞에 드렸으면 어떤 마음이 있을까요? 좀 허전하지 않았을까요? ‘재물 다 드리고 나니 난 이제 뭘 먹고 사나?’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다윗은 너무너무 마음이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고 나니 기뻤습니다. 신앙의 최고의 경지는 받아서 기쁜 것이 아니라 드릴 때 더 기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축복을 받을 때, 기도를 받을 때 물론 기쁩니다. 그러나 진짜 신앙의 성숙은 하나님 앞에 드릴 때, 찬양을 드릴 때, 기도를 드릴 때, 예물을 드릴 때, 예배를 드릴 때. 거기에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너무 좋아서 지은 찬양시입니다. 드리고 나니 더 기뻤습니다. 그래서 그는 춤을 추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내용이 오늘 본문입니다. 여러분! 처음에 말한 어리석은 부자와 오늘 다윗왕은 좋은 대조가 되지 않습니까? 한 사람은 많은 것을 가졌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넉넉하고 풍요로웠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지극히 인색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 밤에 그의 생명을 거두어가시니까 그는 아무것도 써보지도 못하고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왕은 하나님이 주신 그 많은 것들을 주님을 위해 드렸더니 하나님이 더 많은 복을 주셨고 그의 자손 대대에 왕위가 끊어지지 않는 축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소개된 다윗이란 이름은 950번 정도가 나오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이나 엘리사를 능가하는 횟수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더 다윗을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린 것만이 남는 것이며 드린 것만이 영원한 것입니다.
소아과 전문의사이며 미국가정학회의 권위자이고 유명한 가정단체 ‘포커스 온더 패밀리’의 설립자인 제임스 돕슨이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이 자신의 책에서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이 대학생 때 너무 테니스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테니스선수가 되어서 대회만 있으면 나갔습니다. 트로피만 타면 자기 학교의 영예를 드높이고 그 트로피를 교장실 뒤에 진열하는 것이 그의 큰 자랑이며 보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에 그가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에 그에게 한 소포가 배달되어 왔습니다. 뜯어보니 거기엔 낡은 트로피가 담겨있었고 편지가 있었습니다. “제임스 돕슨씨! 저는 당신을 조금 아는 사람입니다. 제가 우연히 학교 근처를 지나가다보니까 학교가 지금 재건축 공사를 하고 있는데 쓰레기더미에 당신의 트로피가 버려져있는 것 아닙니까? 당신의 이름이 있기에 제가 이것을 고이 싸서 보내드립니다.”
그때는 그렇게 영광스러운 우승트로피였는데 몇 년이 지나니 쓰레기더미 속에 처박히는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제임스 돕슨은 이 일을 기억할때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당신의 영광스러운 트로피는 누군가에 의해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입니다. 요즘에 무슨 임직을 받을 때 무슨 패를 드리면 권사님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사할 때 되면 어디 버릴 때도 없고 어디 둘 데가 없어서 고민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영광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드린 것만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IMF때 한 권사님이 너무너무 사업이 어려워서 부도직전까지 가고, 결국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팔아서 부도를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는 결국 다 날려버리고 빚은 지지 않았지만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예배에 나왔더니 자기가 IMF전에 교회 건축할 때 드렸던 강대상은 그대로 있더랍니다. IMF때에도 강대상은 안 날아갔습니다. 자기가 헌물한 피아노는 역시 그대로 있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헌금한 의자는 그대로 교인들이 앉아서 예배드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 깨달은 진리가 있습니다. ‘세상에 투자한 것은 다 날아가지만 하나님께 드린 것은 영원하구나.’ 물론 그러면 속으로 이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이고! 목사님 모르는 소리, 예배당도 30~40년 지나면 재건축 할 때 다 없어질 것 아닙니까?’ 물론 그렇겠죠.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 헌물 드린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나라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린 것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상급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존속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19절 이하에 말씀합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오늘 다윗은 하나님 앞에 드리니까 그렇게 좋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역대상 29장 9절에도 “백성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기뻐하였으니 곧 저희가 성심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며 다윗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니라” 백성과 왕이 하나님 앞에 그렇게 드리고도 너무 좋아서 어절 줄 몰라 하는 모습입니다. 다윗은 어떻게 드리고도 기뻐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그렇게 기쁘게 드릴 수 있었을까요?
첫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즐겁게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내 것을 드린다고 생각하면 괴롭습니다. ‘아이고! 하나님은 뭘 자꾸 달라고 요구하시고, 목사님은 교회만 오면 지난주에도 그러더니 이번 주에도 또 헌금 설교하시나봐, 뭘 자꾸 내놓으라고 그러셔.’ 내 것을 내 놓는다고 생각하면 너무 불편합니다. 시험 들기 딱 좋습니다. 그러나 내 것이 아닙니다. 누가 나에게 맡겼던 것을 다시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은행에다가 저금하면 그 돈이 내 돈입니까? 은행 돈입니까? 은행에 잠시 맡겨둔 것입니다. 내 것입니다. 내가 찾아가는데 은행이 뭐라고 합니까? 내 줘야합니다.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경 본문을 읽어봅니다. 역대상 29장 11절입니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이 아닙니다. 주인의 모든 재산을 자기 것처럼 관리하는 사람이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소유가 없습니다. 주인의 소유를 맡아서 관리할 뿐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것을 관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이 다시 필요해서 돌려달라는데 할 말이 어디 있습니까? 기쁘게 돌려 드려야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쓴 것만 해도 감사한데, 아니 다 돌려 달라고 하지 않고 일부만 조금 돌려달라고 합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신앙의 사람은 드리는 것이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없으면 내 것을 빼앗기는 것 같습니다. 세금 뜯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괴롭고 불편한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가진 것 중에 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생명,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생명을 선물로 주셨고 때가 되면 그 생명을 거두어 가시는 것입니다. 내 육체, 내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재능, 내 은사, 내 물질, 내 소유,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 이하에 보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호흡을 불어넣으시고, 숨결을 불어넣으시고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창조하신 분이 우리를 소유하심과 동시에 우리의 주관자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죄의, 마귀의 종이 되었지만 비싼 보혈의 피값을 주고 우리를 다시 사오셨습니다. “너희는 다시 찾은바 되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내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 드리는 것, 그것 내 것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10을 주셨는데 그 중에 하나만 돌려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쁘게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소유이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다 주의 것입니다. 이 어리석은 부자의 착각이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생명도 자기 것, 물질도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중에 그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니까 그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자랑하던 소유는 누구의 손에 갔는지 알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불행한 종말을 겪은 것입니다. 다윗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 줄 알았기 때문에 기쁨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적은 예물을 드리던, 많은 예물을 드리던 기쁘게 드리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다윗은 왜 기쁘게 드릴 수 있었을까? 크고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우리의 인생이 달려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잠깐 흔드시면 날아가는 것입니다. 미국도 날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온 우주도 날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성경 본문을 다시 보십니다. 역대상 29장 12절 말씀입니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크게 하고 강하게 하심이 다 주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좀 이룬 것, 다 내가 이룬 것 같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내가 좀 큰 것 같지만 내가 큰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큰 자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면 어리석은 자입니다. 교만에 빠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미워하십니다. 교만한 자를 배척하십니다. 겸손한 자를 사랑하십니다.
사무엘상 2장 6절 이하에 보니까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민족이 어렵고 나라가 어려우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부르짖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통치자요, 주권자요, 주인이십니다. 만유의 주재가 되십니다. 찬송에도 만유에 주재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만유의 통치자가 되시는 분, 주권자가 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이 자기 일생을 가만히 돌아보니까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냥 갑자기 나온 생각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일생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면 하나님의 손길이 없으면 여기까지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언젠가 말씀드렸습니다. 6.25 전쟁 때 우리교회 장로님 두 분이 장교로 전쟁터에 나갔었는데 정말 너무너무 이상하고 신비하게 두 분이 생명을 건졌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한 분은 양평 지역으로 소대를 이끌고 지나가고 있는데 밭에 먹을 게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 좀 먹으며 쉬다 가자.” 하고 잠깐 쉬는 사이에 앞에 가는 소대가 점멸 당하였습니다. 폭격을 받아가지고. 만약에 무를 안 먹고 그냥 갔더라면 다 죽었을 것입니다.
또 한 장로님의 고백이 전방에 있었는데 지프차를 차고 시찰을 가는데 몇 대가 동시에 갔습니다. 가다가 지프차가 펑크가 나서 잠깐 세우고 다른 차들을 먼저 보냈답니다. 그런데 앞에 가던 차가 지뢰를 밟아서 다 죽었답니다. 먼저 갔으면 죽었을 것입니다. 펑크가 나서 살았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이래도 하나님의 손에 있지 않다고 말하겠습니까? 죽을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순간순간을 피하게 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입니다. 뭐 조금 높아졌다고 교만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이 낮추시면 하루아침에 떨어져 버립니다. 너무 낮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올리시면 하루아침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이며 고백입니다.
다윗은 시골 무명의 목동이었습니다. 양치는 목동입니다. 아버지 이새의 아들, 8형제 중에 막내였습니다. 장남, 차남은 그래도 이름이 있지만 막내는 쓸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양이나 치고 목동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버지 심부름이나 하고. 그의 마음속에 자신이 이스라엘 왕이 되리라는 꿈도 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 시골 목동, 무명의 소년을 들어서 사용하시니까 그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한 나라를 세우기도 하시고 헐기도 하십니다. 한 민족을 흥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를 오늘 이 자리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는데 어찌 아까워할 수 있습니까? 다윗은 기쁘게 드리는 것입니다. “야 이놈아! 너 지금까지 먹고 산 게 누구 덕인데?” 자식이 부모를 잘 돌봐드리지 않는 것이 나쁜 것입니다. 자녀가 지금까지 산 것이 누구 덕인데. “다 부모가 입히고, 재우고, 먹이고 지금까지 길러놨는데 부모 은덕을 몰라?” 부모에게 드리는 것 기쁘게 드리셔야 합니다. 부모가 없었더라면 내가 어찌 있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나 혼자 컸어요. 그런 사람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다면 내가 오늘 여기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데 내 것 드리는 것 얼마나 즐겁게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마음입니다.
세 번째는 다윗은 어떻게 즐겁게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을까요? 그분은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역대상 29장 14절 말씀을 읽어보십니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 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다 주의 손에서 받은 것입니다. 주의 손에서 받은 것 다시 드리는데 할 말이 뭐 있습니까? 즐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의 필요를 공급하시고 채워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모든 것을 공급해주셨다고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 33절에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은 바꿔 말하면 “내가 너희의 필요를 공급해 줄 것이다.”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러분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구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의 필요를 채워줄 것이다.”
제가 한 2주전에 심방을 갔는데 어떤 권사님이 재밌는 간증을 하셔서 제가 허락도 안 받고 전달을 좀 하겠습니다. 그 권사님 아주 재밌는 간증을 하셨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2005년 12월 25일이 다 된 날이었습니다. 교회가 새 성전을 건축하고 성탄절에 막 입당을 하려고 준비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주간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여기가 공사가 마무리되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여신도들은 나와서 바닥을 닦고 먼지를 털고 수건을 들고 막 정신없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25일 우리가 처음으로 입당예배를 드렸습니다. 참 감격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이 그날따라 교회 청소하러 왔는데 청소도구가 부족해서 청소를 못 하였습니다. 직장에도 나가야 하고, 그래서 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일은 못하지만 내가 청소도구를 사서 보내줘야겠다.’ 한 20만원어치만 사면 충분히 예배당을 다 쓰겠더랍니다. 그래서 ‘내가 나가면 그렇게 해야겠다.’ 생각을 하고 가는데 갑자기 생각하니 어제 통장을 봤는데 돈이 20만원이 안 되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버스에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통장에 돈 좀 보내주세요. 20만원은 되어야지 청소도구를 사서 보내는데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시내에 직장 가까이 가서 은행에 가서 카드를 집어넣었습니다. 그랬더니 20만원을 찾으려고 했더니 “잔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는 안내멘트가 나왔습니다. 몹시 실망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그렇게 기도했는데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 것입니까?’ 하고 돌아가려다가 한 번 더 기도해야지 하고 은행 앞에 가서 잠시 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교회 청소도구가 없어서 제가 사서 보내려 하는데 이것도 안 주시면 어떡합니까?”하고 기도했습니다. 잠깐 기도하고 다시 카드를 집어넣었더니 세상에 그때는 잔금이 있다고 합니다. 20만원을 뽑은 줄로 믿습니다. 불과 몇 초 사이에 어디 거래처에서 대금 들어올 것이 그 시간에 정확히 맞춰 들어왔는지 하여튼 들어왔습니다. 방금 전에는 없었는데 20만원을 뽑아서 청소도구를 사 가지고 퀵서비스로 보내서 교회가 청소를 잘 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권사님의 간증을 듣고 나니 너무 실감이 나는 것입니다. 이런 일도 있구나.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했더니 하나님이 그 순간에 20만원을 채워주시다니. 뭐 그것 한가지면 제가 이야기 하지도 않습니다. 그 권사님이 우리 교회에 오기 전에 다른 동네에 살 때 다른 교회를 다녔는데 아주 허름한 교회였답니다. 어느 날 추수감사절이 되어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더랍니다. “아무개야! 너 교회 커튼 좀 봐라.” 커튼을 봤더니 벌써 5~6년은 된 것처럼 때가 새카맣게 묻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야! 너는 사시사철 추우면 겨울옷입고 여름엔 여름옷 사 입으면서, 왜 교회 커튼은 만날 저 꼴이냐?”그러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라고요?” “야! 네가 좀 새로 해 놔라.”그러시더랍니다. “아이고 하나님! 저는 돈이 없는데요. 저는 요즘 어려워요. 하나님도 알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부담을 주시더랍니다. 그 부담을 자꾸 눌렀습니다. 집에 돌아와 자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자꾸 이런 마음에 부담을 주십니다. “야! 네가 교회 커튼 해야 해. 네가 안하면 누가 하겠니? 뻔히 서로 사정 알면서.” 그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 돈 없어서 못 해요.” 그리고 다음 날 직장에 갔는데 점심시간인데 한 분이 제안을 합니다. “우리 조금씩 아껴서 목돈을 좀 만들자. 우리 좋은 의미에서 계 한번 안 할래?” 그래서 계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직원들끼리 뽑았는데 이 권사님이 1번이 나왔습니다. 그 돈이 그 돈입니다. ‘이거 하나님을 피할 길이 없구나.’ 그래서 목돈이 생겨서 교회 커튼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공급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하나님이 다 채워주십니다. 이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의 주인이십니다. 부와 귀가 주의 손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참 너무 흥미 있으시죠?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 그것은 신앙이 성숙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의 보화를 쌓는 것, 하나님 앞에 드리는 마음입니다. 제가 종종 소개하는 인물이 존 워너메이커입니다. 그는 1837년 미국 필라델피아 한 벽돌공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주 어려운 가정입니다. 아버지가 벽돌을 찍는 인부입니다.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돈이 없어서 졸업을 못하고 그만 중퇴를 했습니다. 그리곤 아버지가 일하는 벽돌공장에서 일했습니다. 벽돌을 나르고 품삯을 받아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교회에 갔더니 목사님이 광고를 합니다. “우리 교회당이 낡아 비가 새고 이래서 예배드릴 수가 없는데 우리 하나님 앞에 새 성전을 지어드립시다.” 그랬더니 아무도 아멘을 안 합니다. 집사님, 권사님들도 아멘을 안 합니다. 그런데 이 소년이 마음에 감동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데, 목사님이 저렇게 말씀하시는데 내가 순종해야지.’
그런데 이 소년이 무슨 돈이 있습니까? 한 달 동안 일하고 자기 임금으로 벽돌을 한 리어카 얻어서 교회로 끌고 왔습니다. “목사님! 제가 여기 벽돌 가지고 왔습니다. 이거 가지고 예배당 쌓을 수 있죠?”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목사님이 다음 주일 광고했습니다. 우리 교회에 이 어린소년이 벽돌 한 리어카를 가지고 왔는데 우리도 힘을 냅시다. 그때서야 집사님, 권사님들이 마음이 열려서 서로 헌금을 하기 시작해서 아름다운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그 존 워너메이커가 나중에 어떻게 되었느냐? 미국의 백화점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채신부장관을 지냈습니다. 채신부장관을 지내면서도 주일이면 꼭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봉사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 이야기를 너무 좋아하는데 제가 지난주일 4부 청년예배에 가서 여러분과 똑같은 설교를 했습니다. ‘청년들이 자기들도 바쁜데 그들이 헌금 낼 여력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그러면서도 믿음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청년들 중에서도 2명이 작정을 했습니다. 청년이 한 구좌 작정하기가 쉽습니까? 2명이서 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정말 눈물 나도록 고맙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데 내가 데이트 할 돈을 아껴가지고, 내가 쓸 돈을 아껴가지고 하나님 앞에 헌금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바로 그 청년들을 축복할 줄로 믿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랜만에 두 친구가 만났습니다.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여보게! 자네 어떻게 지내나? 자네 아들은 어떤가?” “우리 아들? 그 녀석은 만날 만나면 돈 달라는 것이 인사야. 뭐 책 사 달라. 옷 사 달라. 어릴 때는 자전거 사달라고 난리더니, 이제는 크더니 자동차를 사달라고 졸라. 아이구 죽겠어. 자네 아들은 어떤가?” 그랬더니 옆에 있던 친구가 “내 아들은 불행하게도 2년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네. 자네 아들처럼 아침에 돈 달라고 하는 아들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나는 너무 행복하겠어. 나한테는 돈 달라고 조르는 아들도 없어.” 그는 그렇게 토로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죽은 아들은 돈 달라고 안 합니다. 살아있는 아들은 돈 달라고 손 내밉니다. 죽은 교회는 돈 달라고 여러분에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헌금하라고 광고하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교회, 미래가 있는 교회, 내일이 있는 교회는 오늘 여러분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여러분이 희생의 댓가를 치르라고, 여러분 자신을 드려 헌신하라고, 여러분의 물질을 드리라고, 그것이 바로 하늘의 상급을 쌓는 일이라고 여러분에게 요구합니다. 이 교회는 비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아름다운 대역사에 동참하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힘 닿는대로 여기에 동참하실 마음이 없으시겠습니까? 그것이 하늘의 상급을 쌓는 일이고, 축복을 쌓는 일이고,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