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큰사랑을 인하여 (에베소서2:1-7)
여러분은 혹시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 그런 광경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한번 이런 상상을 해 보십시오. 장례식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염을 하고 입관을 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아침이 되어 발인을 하고, 하관을 하려고 장지에 갔습니다. 관이 들어갈 만한 구덩이를 팠습니다. 그리고 이제 줄로 매어서 관을 조심스럽게 구덩이에 내려놓는데, 어느 인부가 그만 잡았던 줄을 놓쳐서 이 관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있어났습니다. 그 죽어있던 시신이 갑자기 정신이 난 것입니다. 안에서 기침소리가 막 납니다. 인부들은 깜짝 놀라 하관할 수 없었습니다. 관 뚜껑을 열었는데 죽었던 사람이 살아났다면, 그리고 일어나 앉아서 매일 굶었더니 배고프다고, 밥 달라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참으로 놀라운 광경입니다. 저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외국의 사례에서는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장례를 치르려고 하는데 며칠 만에 죽었던 사람이 깨어난 것입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성경에도 죽었던 사람이 살아난 일이 있습니다. 누군지 아시지요? 바로 나사로입니다. 그는 죽은 지 나흘이 되어서 동굴 안에 뉘어져 있는데, 썩어서 냄새가 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그 돌문을 치우게 하시고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고 부를 때, 그 죽었던 나사로가 베옷을 동인채로 걸어 나와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성경에서 아주 놀랄 만한 충격적인 한 구절을 읽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1절 말씀입니다. 1절을 한번 다시 읽어보시죠.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다시 살리셨도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 전에 우리들은 죽어 있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종종 권사님들 중에 대표기도하실 때 이렇게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저희들을 다시 살리셔서...”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하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죽었습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사망선고가 내려졌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 인간을 아름답게 창조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금하셨습니다. 다른 모든 동산의 과실은 먹어도 좋지만, 선악과만은 먹지 말라고 아담과 하와에게 분명히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뱀의 유혹에 빠져서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고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죄를 범하는 순간에 인간에게 고통과 저주와 불행이 들어오고, 또 하나, 죽음이 들어왔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았습니다. 인간에게 사망이 왔습니다. 그 순간 인간은 죽은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육체적인 죽음과 영적인 죽음이 있습니다. 육체적인 죽음은 태어나서 생활하다가 병이 나던가, 혹은 노쇠해서, 혹은 사고로 죽는 것을 말합니다. 영적은 죽음은 하나님과 교재 하던 관계가 끊어진 것을 말합니다.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 인간에게 영적인 죽음이 선고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순간에 영적인 죽음이 회복되어지고,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가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영적으로 죽었습니까? 살았습니까? 혹시 내가 아직 영적으로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른다면 곤란합니다. 그 차이는 분명한 것입니다. 세상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은 영적으로 죽었습니다. 이 대답을 못하는 사람들은 ‘아직 나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데, 남이야 뭐 내가 알게 뭐야?’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 분들은 예배 끝나고 남으십시오. 저하고 나머지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내가 영적으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것을 잘 모른다면 곤란한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입구에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곳에 두 부류에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예약을 하고, 돈을 치르고, 티켓을 받았습니다. 자리까지 받았습니다. 창 쪽, 통로 쪽. 걱정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다 되어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 분들은 다른 곳에 있다가 시간이 되면 와서 여유 있게 탑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입구에서 불안해하는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약은 했지만 자리를 받지 못한 분들, 누가 탑승을 취소하면 그 좌석에 배정될 분들입니다. 그 분들은 불안합니다. ‘이 비행기를 못 타는 큰일인데, 어떡하나?’ 얼굴에 쓰여 있습니다. 비행기 좌석을 구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이미 구원을 받고 생명을 얻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는 미래가 두렵지 않습니다.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이미 그에게는 영원한 천국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어도 아직 그 확신이 없는 사람들, 내가 구원을 받았는지, 아직 잘 모르는 분들은 불쌍합니다. 여러분!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으로 임재해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일찍부터 믿은 분들은 그 확신을 가지고 사셔야 합니다. 초청잔치에 우리교회에 오셔서 처음 예배드리신 분들, 제가 여러분에게 기도를 가르쳐 드렸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기 원합니다.” 결신하신 분들은 저를 따라 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내 마음 속에 모셔 드렸습니다. 그 때 생명 되신 그리스도께서 이미 여러분의 심령 속에 들어와 임재해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들이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입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만약에 요즘에 어느 가정에서 장례식을 치르는데 벽제화장터에 가서 화장을 하려고 뚜껑을 열었더니 사람이 살아났다면, 놀랍고 충격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영적인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이와 마찬가지로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정말 쇼킹한 사건입니다. 여러분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여러분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 운 바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4~5절 말씀을 같이 읽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사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하나님의 그 큰 사랑 때문에 우리를 죽음의 자리에서 건져내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이고 축복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나무를 키우실 때, 나무 원가지에서 가지 하나를 잘라내 보십시오. 그리고 두어보십시오. 가지를 자른 순간, 그 가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는 줄기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 서서히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간이 죽음 당했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졌습니다. 하나님과의 생명에서 분리가 되었습니다. 그 순간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육신적으로는 살아있지만 그는 영적으로 죽은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다시 우리가 생명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영접하고 모셔드릴 때 우리는 생명의 존재, 생명의 사람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크신 사랑으로 인해서 우리는 건짐을 받고, 살림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믿기 전에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오늘 성경에 보니까 “이 세상 풍속을 쫓아 살았다”고 말합니다. 공동번역에 보니까 “이 세상 풍조를 따라 살던 삶”이라고 나옵니다. 이 세상 풍조는 무엇입니까?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악의 영향을 받은 이 세상 가치관에 나도 모르게 오염되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고 내 욕망대로, 내 본성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강을 한번 보십시오. 홍수가 나서 모든 것이 쓸려 내려갈 때 살아있는 고기는 강물을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나 죽은 고기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것입니다. 마치 그것이 이 세상 풍조를 따라 살아가는 우리의 과거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세상을 거슬러 살아가는 진리의 사람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본문 2절에 보니 말씀합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 살았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악한 영입니다. 사탄, 혹은 마귀라고도 합니다. 우리는 마귀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왔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마귀에게 노예가 되어 살아갔습니다. 마귀가 시키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이후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에게 속했던지 하나님께 속했던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에 속하셨습니까? 옆에 계신 분께 물어보십시오. “당신은 어느 편에 속했습니까?” 마귀에게 속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공중권세 잡은 자에게 속하여 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오늘 3절에 보니까 “그들은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거역하는 그런 불순종의 영을 받은 사람들과 함께 속해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이제는 하나님의 영,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해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옛 사람, 악한 마귀에 속해있는 사람은 진노의 자녀이고, 그는 심판을 받을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이제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이미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참으로 내가 구원받은 영원한 생명을 얻은 확신이 없다면 그는 참으로 불쌍한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큰 사랑으로 인하여서 우리는 죽음에서 건짐의 자리로, 생명의 자리로, 절망에서 소망의 자리로 옮겨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그 큰 사랑 때문에...
그러면 그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그 사랑은 바로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큰 사랑으로 인해서, 그 큰 사랑은 최고의 사랑입니다. 최상급의 사랑입니다. 자신을 희생하신 사랑입니다. 자신의 외아들까지 내어주신 사랑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죽을 자리에 대신 죽으신 사랑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죽음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의 한 작은 시골마을의 조그만 보건소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미랑이라는 한 여인이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땀범벅이 된 시골청년이 보건소에 들어와서 “우리 어머니가 다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좀 와서 살려주십시오.”하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시골보건소라 의사도 없었습니다. 간호사 한 사람이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청년의 모습을 보니 심각해 보였습니다. 간호사는 가방을 챙겨서 따라갑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습니다. 얼마나 먼 길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간호사는 불평하지 않고 환자를 찾아갔습니다. 가는 길이 너무나 험했습니다. 자갈밭이었습니다. 사람이 잘 다니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돌에 채이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무릎에 피가 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간호사는 열심히 달려갔습니다. 도착을 해서 보니 백발이 된 청년의 어머니가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영양주사를 놓아드리고, 최선을 다해서 간호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그 환자를 또 찾아갔습니다. 그 다음날도 또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갈 때마다 변화된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거칠었던 길이 점점 평탄한 길로 매일 갈 때마다 바뀌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큰 돌이 옮겨지고, 길이 골라지고, 구덩이가 채워지고, 아주 가기 좋은 길로 바뀌어가고 있었습니다. 참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어머니가 기력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간호사에게 고맙다고 만두를 빚어서 대접을 합니다. 간호사가 그 어머님이 주신 만두를 먹는데 아들이 옆에서 함께 만두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손이 상처투성이였습니다. 손이 어디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때 간호사는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이 청년은 이 간호사가 자기 어머니를 정성을 다해서 그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와서 봉사해 주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간호사에게 사랑의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오는 그 길을 평탄하게 만들었던 것이었습니다. 간호사가 편안하게 올 수 있도록 해 준 것입니다. 간호사는 청년의 사랑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그 사랑에 감격해서 그 간호사는 청년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간호사가 오는 그 길을 달빛 아래에서 손의 부상을 입으면서 길을 닦았던 그 젊은이는 그 길을 ‘사랑이 오는 길’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이 오는 길을 위해서 그렇게 정성을 다해서 희생했던 이 젊은이의 사랑,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주님의 사랑입니다. 죄 가운데, 저주와 슬픔과 질병과 고통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아닌 죽었던 우리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희생을 치러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리게 한 사건입니다. 그분이 바로 그 모든 값을 치러주신 것입니다. 그 엄청난 사랑을 쏟아 부어 주신 것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죽음의 자리에서 건져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죽음에서 건짐을 받기 위해서 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니까 “너희가 그 은혜를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노니 이것이 너에게서 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합니다.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우리가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내가 헌금을 많이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착한 일을 많이 한 것도 아니고, 내가 구제를 많이 한 것도 아닙니다. 업적을 쌓은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부어주신 구원의 선물입니다. 구원의 바로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 것입니다.
양계장을 경영하던 주인이 하루는 잠깐 외출을 하고 돌아왔더니 양계장에 불이 났습니다. 양계장이 불덩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양계장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이 지났습니다. 불이 다 꺼진 다음에 양계장을 정리하러 들어가 보니 닭들이 여기저기 다 죽어서 숯덩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한 쪽 구석에 보니 큰 어미닭이 쓰러져 있는데 숯덩이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잘 옮겨서 땅에 묻어주려고 그 어미닭을 드는 순간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어미 닭 품속에서 “삐악 삐악”하면서 병아리 한 마리가 기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불구덩이 속에서 이 어미닭은 자기 새끼를 그를 품속에 품고 그대로 죽어갔던 것입니다. 양계장주인은 그것을 본 순간 감격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이 엄청난 심판 가운데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셔서, 내가 달려야할 십자가에 달리시고 내가 맞아야할 채찍에 맞으시고 내가 흘려야할 피를 대신 흘려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그가 마음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큰 사랑으로 인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 받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에 주목해 보니 “함께”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5절 이하에 보니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그리고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우리를 앉히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고백하고 그를 모셔드리는 순간에 이미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죽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미 오래전에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내 모든 죄를 지시고 죽으실 때 나도 그와 함께 죽은 것입니다. 나도 죄와 함께 죽은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보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실 때 나도 같이 못 박혔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능력으로 부활할 때 나도 같이 생명으로 부활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실 때 우리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두 나라 시민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백성이지만 동시에 우리는 또한 천국시민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선물로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우리는 하나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 보니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내가 저 안에, 저가 내 안에, 바꿔 말하면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영접하고 모셔드린 분들은, 여러분의 심령 속에 예수님이 성령으로 임재해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전에 유행했던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 나오는 대사 중에 “너 안에 나 있다”라는 대사가 있었습니다. 잘 이해가 안 됩니다. 너 안에 어떻게 내가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그들이 하나 될 때, 일치된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리스도 안에 내가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다면 나는 생명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요한1서 5장 11절에 보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생명이시기 때문에 그를 내 마음 속에 영접하면 내 안에 생명이 들어와 임재해 계십니다. 우리는 생명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겨진 사람들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죄로 인하여 죽었던 우리들이 예수의 새 생명을 통해서 예수의 붉은 흘리신 피를 통해서 우리 죄가 용서받고 생명의 선물을 받게 된 것, 그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우리는 옛사람을 던져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천국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상속자가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이 특권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일까요? 내가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내가 구원받은 백성이 되는 것, 이것이 가장 큰 축복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로 주어진 선물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단지 믿음으로 그 분의 그 은혜를 받은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은 이렇게 너무나 쉽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팔을 뻗칠 때 구원의 선물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죽은 사람과 살아있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제가 언젠가 여름에 휴가를 받아서 속초 바닷가에 갔더니 오징어를 많이 널어놨더라고요. 오징어 가격을 물어봤더니 10마리에 만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싸네!” 그랬더니 “그게 아니고요 그 오징어는 죽은 오징어예요. 죽은 오징어는 10마리에 만원입니다.” 그런데 살아있는 싱싱한 오징어는 한 마리에 만원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은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때로는 가난하고, 때로는 병들고,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들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는 예수의 생명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가운에 임재해 계시기 때문에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고 ‘옛날 행동은 아직 변하지 않았는데’, ‘예수 믿고 변하지도 않고 엉터리네’ 아닙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여러분의 옛 행동, 과거의 습관은 금방 안 변하겠지요. 그러나 여러분 속에는 이미 예수님의 생명이 임재해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값어치가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한 가지 이야기를 더 드리겠습니다. 1979년 2월에 미국 캘리포니아에 엄청나게 비가 와가지고 산사태가 났습니다. 산 정상에 있던 바위 하나가 굴러내려 오다가 중턱에 걸려버렸습니다. 그 산 밑에 고속도로가 있습니다. 차가 많이 지나다니는데 그 바위가 흔들흔들하다가 굴러 떨어지면 큰일이 날 판 이였습니다. 정부에서는 그 바위를 치워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 바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이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한 젊은이가 오더니 그 바위를 자신에게 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결국 그 청년은 100불에 그 바위를 샀습니다. 우리 돈으로 10만원을 주고 그 큰 바위를 샀습니다. 그 바위를 자기 작업장으로 옮겨서 조각하기 시작했습니다. 8주가 지났는데 그 바위에서 어떤 사람의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서부영화로 유명한 존 웨인의 얼굴이었습니다. 존 웨인은 당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젊은이는 이 조각을 통해서 존 웨인을 격려하고 응원하기 위해서 조각을 했던 것입니다. 매스컴을 타게 되고 전국에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그것을 구경하기 위해 정신이 없었습니다. 존 웨인은 완성된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지만, 많은 관광객이 와서 찬사를 보내고 그 조각을 한 젊은이의 마음을 칭찬해주었습니다. 그 바위얼굴을 사고 싶다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경매를 통해 그 바위얼굴을 100만 불에 팔게 되었습니다. 우리 돈으로 약 10억에 판 것입니다. 10만원을 주고 산 그 바위를 10억에 판 것입니다. 그 바위는 조각가에 손에 들려질 때 위대한 작품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버려진 존재, 죽은 영혼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분을 영접하게 될 때 우리는 10억 이상의 가치 있는 존재, 살아있는 존재가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 순간부터 우리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우리 인생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고, 미래의 꿈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누구나 귀한 존재입니다.
제가 우스갯소리 하나 하겠습니다. 요즘 여름이 되니까 모기가 생깁니다. 어떤 청년이 자는데 모기가 하나 날아와서 자기 살을 뚫고 그 대롱을 피를 뽑기 시작했습니다. 따끔하게 아팠겠지요. 그래서 일어나서 보니 모기가 있었습니다. 모기를 잡으려고 손바닥을 펼쳤습니다. 그랬더니 모기가 살살 비는 것입니다. “주인님 제발 절 죽이지 마세요. 제발 제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청년이 죽이려다가 묻습니다. “야! 내가 너를 살려줄 이유가 어디 있느냐?” 그랬더니 모기가 한 마디 했습니다. “제 몸 속에 당신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존귀합니까? 우리의 몸속에도 예수님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절에 보니까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우리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 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안에 보화 되신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오늘 이 기쁨, 이 감격, 이 은혜 가운데서 오늘도 당당하게 승리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