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인생 (요4:13-14)

목마른 인생(요한복음 4:13-14)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두 가지의 목마름을 느낀다고 합니다. 목마름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육체적인 목마름과 영적인 목마름입니다. 먹지 않으면 배가 고파지고, 물을 마시지 않으면 갈증이 납니다. 이런 것들이 육체적인 목마름입니다. 육체적인 목마름은 먹고 마심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목마름은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나오는 이 여인은 영적인 목마름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결혼을 다섯 번씩이나 했던 여인입니다. 사람들에게 늘 손가락질을 당합니다. 인생에 기쁨이 없습니다. 자유가 없습니다.



  물을 길러 나갈 때도 사람이 아무도 다니지 않는, 해가 쨍쨍 내리쬐는 정오에 물을 길러 나옵니다. 그런데 마침 거기에서 기다리시던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만나려고 그 자리에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말합니다. “여보시오. 네게 물 한 바가지만 주시오.” 그냥 주면 될 텐데 이 여인은 퉁명스럽게 답합니다. “아니 유대인 남자인 당신이 사마리아 여인인 나에게 왜 물을 달라 하시오?”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보면 두 나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 한 민족이었지만 나뉘어져 있습니다. 남왕국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하지만 70년이 지나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들은 외국에 나가 살다왔지만 같은 민족끼리 결혼해서 순수한 혈통을 유지했습니다. 반면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점령을 당했습니다. 앗수르 사람들은 자기 민족들을 데리고 와서 북이스라엘을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사람들과 앗수르 민족들을 결혼시켰습니다. 앗수르 사람들과 유대인이 결혼을 하니 혼혈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쉽게 말하면 요즘 국제결혼을 통해서 혼혈이 태어나는 것같이 말입니다. 이렇게 되고 나니까 남쪽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인간 취급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너희들은 피가 더러워서 못 쓴다.’ ‘너희들은 우리하고 같은 동족이 아니라’고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늘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깜짝 놀라며 짜증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화를 내지 않고 대화로서 풀어 가십니다. “너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너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물을 먹는 자는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영원히 샘솟는 샘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목마르지 않는 여인이 됩니다. 그 속에 영원히 샘솟는 기쁨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동네에 돌아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만났다’고 소개해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도 어릴 때부터 입은 상처들이 있습니다. 상처를 가진 사람들은 목마름을 잘 느낍니다.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쌀밥에 생선을 먹기 어려운 시절에, 어느 날 어머님이 꽁치를 구워서 상에 올려놨다고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아버지부터 드셔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젓가락이 꽁치에게 가 버렸습니다. 아버지가 굉장히 엄하신 분이셨는데 이 아들의 손을 탁 쳤습니다. “건방진 놈, 아버지도 안 먹었는데 너부터 먹느냐”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그 일로 아버지에게 상처를 받았습니다. 어찌나 무섭게 했는지, 아버지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도 없고, 아버지 앞에서 밥을 먹으면 식은땀이 나고, 소화도 안 되고, 자꾸 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집에 한번 놀러갔더니 그 친구가 아버지하고 씨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저런 아버지도 있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아버지하고 아들하고 씨름을 할 수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성장해서 은혜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아버지를 용서하게 되고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이러한 상처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크리스티김이라는 여선교사님은 세 살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해서 할머니 손에서 자라났습니다. 10살이 되던 해 아빠가 미국에 건너가서 재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빠를 따라 미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아빠의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새엄마가 있어서 사랑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빠 품에서 자고 싶은데 아빠는 맨날 새엄마하고 안방에서 자고, 혼자 자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는 마음에 상처가 깊어지고 잠이 안 오게 됩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상처, 사랑받지 못한 상처로 인해 그때부터 잠이 안 오면 자위행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처녀때까지 습관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예수를 믿고 다 고쳤지만, 그녀는 자위행위를 하면서 잠들 수 밖에 없는 버림받은 상처와 영적인 목마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속의 영적인 목마름은 하나님만이 채워줄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다른 세상의 것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지고, 명예와 권력과 지식을 가져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내신 이어령씨는 세계적인 지성이고 한국이 자랑하는 지식인입니다. 그 분이 얼마 전에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고, 어느 교회에서 간증을 했는데 간증제목이 지성에서 영성으로입니다. 자기는 세계적인 지성이고 박사이지만 자기 영혼의 목마름을 채울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예수를 믿게 된 순간부터 그의 마음속에 행복과 기쁨이 찾아온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영원한 갈증을 해소하게 될 때 그는 영생의 기쁨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사랑이 부족합니다. 사랑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해 주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내가 맞아야 할 채찍을 대신 맞으시고, 내가 찔려야할 창에 찔리시고, 내가 내야 할 생명을 내 대신 치르셨습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보호하느라고 대신 싸우다가 맞아 죽었다면 여러분은 그 분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바로 그런 분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어떤 과수원에서는 사과나무를 키우는데 농약도 안 주고 거름도 별로 안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과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잘 자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과수원 주인이 아침에 일어나서 과수원을 다니면서 사과나무를 붙들고 인사를 한답니다. “야! 영희야 잘 잤냐? 아이고 예쁘다. 오늘도 예쁜 열매 맺어야지.” 또 옆에 가서 다른 나무에게 “오! 철수야 오늘도 잘 잤지? 너 너무 행복해 보이는구나! 나도 너무 행복해. 너 오늘 행복한 하루 되어야 돼!” 나무 하나하나를 붙들고 축복의 인사를 나눕니다. 사랑해 주고 쓰다듬어 주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나무들이 너무나 건강하고 먹음직스러운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사랑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가족들도 내 마음을 몰라줍니다. 남편하고 30년을 살아도 아직도 내 마음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어느 집에서 그랬답니다. 어느 남편이 집에 오면 너무 외로웠습니다. 아내와 대화도 안 되고 점점 외톨이가 되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의 사랑을 못 받으니까 강아지 한마리를 키우기로 했습니다. 이 강아지가 항상 꼬리를 치고 따라주니까 강아지를 너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자기 말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맨날 돈 못 벌어온다고 구박만 하는데... 그러다가 어느 날 강아지를 보고 “아이고 이 강아지 같은 놈 하나만 더 있으면 좋겠다.”이렇게 혼잣말을 하였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내 아내도 나를 좀 사랑해 줬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회사에 갔다 왔더니 아내가 비슷한 강아지를 또 한 마리 사다 놨답니다.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습니다.



  강아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내의 사랑, 가족의 사랑이 필요한데 그것이 그렇게 어렵습니다. 우리에겐 주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고아원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부모들이 전쟁터에서 죽었기 때문에 고아원이 많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두 개의 고아원이 있었는데 한 쪽 고아원의 아이들은 아주 우유를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건강하게 잘 성장합니다. 그런데 한 쪽 고아원의 아이들은 우유를 먹으면 설사를 하고, 시름시름 앓고, 자꾸 죽어가는 것입니다. 이유를 조사해 봤더니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건강한 아이들이 있는 고아원은 저녁만 되면 어떤 아줌마가 온답니다. 이 아줌마는 조금 정신이 이상한 아줌마입니다. 전쟁으로 두 살짜리 아이를 잃어버렸답니다. 그래서 정신이 이상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아이만 보면 자기 아이인줄 알고 쓰다듬어 주고, 예뻐해 주고 사랑해 주는 것입니다. 이 아줌마가 고아원에 와 가지고 아이 한명 한명을 자기 아이인 줄 알고 쓰다듬어 주고, 이불 덮어 주고, 사랑해 주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줌마에게 사랑을 받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랐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사랑도 필요하지만 우리에겐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보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 사랑을 부어주시기를 원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려고 해도 상대방이 그 선물을 받으려고 해야 줄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향해 손을 펴고, “사랑하는 딸아!,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네 상처를 안다. 너희 외로움을 안다. 너의 고독을 안다. 내가 너희에게 내 사랑을 부어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시간 주님의 사랑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27편의 기자는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러분이 인생의 짐, 죄의 짐, 질병의 짐 다 주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한번 받아보십시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와 더불어 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외롭지 않으십니까? 여러분에게 상처가 있으십니까? 여러분은 늘 외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가족들도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언제 직장에서 내가 나와야 할까 불안하고 염려 되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의 친구가 되시고, 영원한 동반자가 되시고,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예수님께로 나오시지 않겠습니까? 오늘 이 시간 이 결단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