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약 침묵하고 있다면 (왕하7:3-10)

우리가 만약 침묵하고 있다면...(열왕기하 7:3~10)



  언젠가 신문에서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씨의 발 사진과 아시아의 대표적인 축구스타 박지성 선수의 발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발레리나인 그녀는 날씬한 몸매처럼, 예쁜 얼굴처럼 발마저도 굉장히 예쁘지 않을까 기대를 했습니다. 가냘프고, 아주 보기 좋은 발을 가지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충격적이었습니다. 옹이처럼 튀어나온 뼈마디, 뭉개진 발톱, 굳은살과 상처들, 이것이 바로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씨의 발 모습입니다. 여러분들 어느 분의 발을 봐도 이보단 더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는 지금도 7시간에서 8시간씩 훈련을 한다고 합니다. 그녀가 초창기에는 15시간씩 발레연습을 했는데, 발레리나가 신는 토슈즈를 하루에 서너 켤레씩 갈아 신었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2~3주에 쓸 분량을 하루에 소비할 정도로 그녀는 연습에 열중했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발은 청동조형으로 본을 떠서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축구스타 박지성의 발 또한 그렇습니다. 그는 축구선수로서는 불리한 조건인 평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열심히 뛰었습니다.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그는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해 갈 수 있었습니다. 박지성선수의 발을 보면 정말 못 생긴 발입니다. 여기저기 상처투성이 발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발로 세계적인 축구스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강수진씨의 발이나 박지성의 발을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사람 있습니까? 누구라도 그들의 발을 가리켜서 정말 아름다운 발이라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에게 더 아름다운 발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 “복음 전하는 자의 발이 가장 아름다운 발”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2장 7절에 보니까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로마서 10장 15절에 보니까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하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복음 전하는 발이 가장 아름다운 발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옆에 분들에게 한번 물어보십시오! “당신의 발은 아름다운 발입니까?” 아무리 발을 열심히 씻고, 발을 잘 관리해도 복음 전하는 발이 아니면 아름답다고 표현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아무리 흉하고 못난 찌그러진 발일지라도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는 발은 아름다운 발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 가장 아름다운 발을 가진 사람들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들은 바로 북이스라엘 사마리아 도성 성문 밖 어귀에 앉아 있던 4명의 문둥이들이었습니다. 문둥이하면 나병환자. 요즘은 한센병 환자라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 여러분! 이들은 왜 아름다운 발을 소유했습니까? 가장 복된 소식을 증거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사마리아 도성은 아람군대에 의해서 철저하게 몇 겹으로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몇 달 째 그 상태가 지속되니까 성 안으로 들어올 수도 없고, 성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사마리아 도성은 이제 식량이 바닥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식량 때문에 다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귀 머리에 은 80세겔이 될 정도로 물가가 치솟았습니다. 나귀 머리는 소머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귀머리는 평소에는 먹지도 않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귀머리가 은 80세겔이나 했습니다. 은 80세겔은 샐러리맨 일 년 연봉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한 5천만 원 정도 했을 것입니다.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요즘 고유가시대라 해도 그 정도는 아닐 것입니다. 이렇다보니 가난한 서민들의 삶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어떤 여인들은 왕에게 와서 호소를 했습니다. “저 여인과 제가 약속을 했습니다. 어차피 어른들도 다 죽고 아이들도 죽을 텐데, 오늘은 우리 집 아이를 삶아 먹고, 내일은 당신 집 아이를 삶아 먹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우리 집 아이를 삶아 먹었는데, 오늘이 되니까 이 집의 아이를 빼 돌리고 내 놓지 않습니다.” 왕에게 와서 이런 고소를 한 사건이 열왕기하 6장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너무 괴로워서 옷을 찢으며 비통해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마리아 도성의 비참한 상황이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먹지 못하는 고통이 가장 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습니다.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라고 했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했습니다. ‘사흘 굶어서 도둑질 안 할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지난주일 오후에 서울남노회 남신도회와 장로회 연합으로 신앙 강좌를 열었는데, 제가 말씀을 전하면서, 저 북녘 땅에 우리 동포들이 살기위해 중국으로 두만강을 건너서 넘어가는 그런 사진들을 보여 드렸었습니다. 그들은 생명을 걸고 그 강을 건너가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옷을 벗고 건너갑니다. 어떤 이는 뇌물을 주고 건너갑니다. 어떤 이는 건너가다 총을 맞고 시신으로 썩어갑니다. 이런 모습들을 여기저기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먹지 못하는 것은 견딜 수 없습니다. 어떤 기자가 탈북한 사람과 인터뷰 해봤더니 북에서는 하루 한 끼 먹는 사람도 많고, 두 끼 먹으면 대단히 잘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비참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늘 먹지 못하는 우리 북녘 동포들이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사마리아 도성도 이렇게 비참한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문둥이들은 형편이 어떠했겠습니까? 문둥병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천형’이라고, ‘하늘이 내린 저주’라고 해서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가족과 떨어져서 성 밖에서 살아가는데, 마치 짐승처럼 살아갑니다. 그들은 누가 먹을 것을 주지도 않습니다. 성 안에서 누가 자비를 베풀어서 빵 한 조각을 던져주면 그것을 먹고 연명합니다. 성 안에서도 상황이 안 좋은데 성 밖의 문둥이들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몇 달을 굶었는지 문둥이들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말할 힘조차 없다. 이러다가 며칠 못가 죽을 것이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인데 우리 아람진영에 가서 투항해 보자. 혹시 그들이 살려주면 살 수 있고, 혹 죽이더라도 배불리 한번 먹고 죽으면 여한이 없지 않겠느냐?” 4명의 문둥이가 생사를 걸고 아람진영을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간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아람 진영의 군인들에게 말발굽소리, 함성소리, 대군이 몰려오는 소리를 듣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아니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안에 있는데 누가 우리에게 이렇게 달려올까? 아마 그들이 자신들의 우방인 애굽과 햇족속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지원군을 요청해서 연합군이 우리를 침공해 오나 보다.’ 이런 생각이 든 아람군대는 혼비백산하고 모든 걸 다 던져버리고 도망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4명의 문둥병자가 가보니, 그들이 있던 장막은 텅 비어있었습니다. 흐트러진 창, 검, 갑옷, 먹다 남은 빵 조각들, 식량들, 은과 금과 의복들이 가득 쌓여있었습니다.



  몇 달 동안 굶은 사람들이라 눈에 보이는 게 없습니다. 닥치는 대로 마음껏 먹었습니다. 내일 먹을 것까지도 감춰 놨습니다. 먹고 나니 의복이 보입니다. 좋은 비단옷도 가져다 감춰놨습니다. 은과 금도 다 가져다 감춰 놨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문둥이들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소위가 옳지 않다. 우리의 행동이 옳지 않다. 지금은 성안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우리가 빨리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지. 우리만 먹고 배불리고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 벌 받을 일이 아니겠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 열왕기하 7장 9절을 다시 한 번 읽어봅니다. “문둥이가 서로 말하되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찌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하고”



  문둥이들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먼저 그들은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우리의 행동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비판하자면 이렇게도 말할 수도 있습니다. ‘문둥이들이 잘못한 것이 뭐 있느냐? 죽을 바에야 여기 왔는데 마침 양식이 있어서 실컷 먹은 것뿐인데 뭐 잘못이 있는가?’ 아닙니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성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만 이렇게 배불리 먹고 이렇게 있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선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선이란 무엇입니까? 남에게 폐 안 끼치는 사람이 선한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폐 끼치는 사람은 나쁜 사람입니다. ‘나는 남에게 폐 안 끼치고, 남의 돈 안 떼먹고 남에게 피해 안 입혔으니 나는 착한 사람이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선이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선이란 어려움 당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입니다. 복음이 없는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한 사람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강도 만나서 산 중턱에 쓰러져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데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지나가다가 무서워서 못 본채하고 지나가버립니다. 그러나 유대인들로부터 멸시받는 사마리아 사람은 지나가다 그 어려움 당한 사람을 보고 지나갈 수가 없어서 다가가서 그의 상처를 싸매어 주고, 그의 상처에 기름을 부어주고, 그를 자기 나귀에 태워서 여관까지 인도해 주고, 그리고 주인에게 이 사람을 맡기고 부비를 주고, 치료        비를 돌아올 때 더 드리겠다 하고 갔습니다. 그게 바로 선한 사람입니다.



  우리 영신교회 성도님들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 머무는 사람들이 아니라,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위로자가 되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줄 수 있는 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이 갈급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것이 선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자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소위가 옳지 않도다. 선치 않도다. 지금 성안에는 수많은 사람이 굶주려가고 있는데 우리만 배불리 먹고 있다면 잘못된 일이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 죄악에 포로 된 영혼들, 오늘도 인생의 비참한 가운데 살아가는 무리들에게 생명의 복음, 희망의 복음,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반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그들은 그들의 침묵에 대해서 반성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아름다운 소식이 무엇입니까? 복된 소식입니다. 이 소식만 들으면 죽던 사람도 살아날 것입니다. “떡이 있대! 양식이 있대! 아! 그러면 살아야지!” 그러나 그 소식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그 밤에도 얼마나 많이 무수히 죽어갈 지 모릅니다.



  여러분! “오늘날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데, 우리가 침묵을 지키고 있다면, 하나님의 벌이 임하리라”고 그들은 반성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어떤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데, 재난을 피할 수 있는 길을 내가 알고 있는데, 그냥 침묵을 지키고 있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잘못된 일입니다. 중국의 쓰촨성에 지진이 일어나서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아이들이 무수히 피해를 입었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누군가 미리 알고 있다면 당연히 말해 주어야 합니다. 말해 주지 않고, ‘나는 그들이 미우니까’ 하고 시치미 떼고 있다면 그는 큰 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미국에서 그 지진의 기운을 감지하고 중국정부에 통보해 줬다고 합니다. “앞으로 당신 나라에 지진이 있을 것 같은데 조심하라”고, 그러나 중국은 이것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만약 오늘의 시대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이 갈 곳은 어디일까요? 그들은 아마 음부의 고통 받는 곳에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 보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부자가 지옥에 떨어졌는데, 거기서 물 한 방울을 구할 수 없어서 그는 혀가 말라서, “저 아브라함이여! 저 나사로에게 네게 물 한 방울만 건네주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거절당합니다. “너와 나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있어서 오갈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옥이란 그런 곳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옥이 뜨겁다고 하니까 사우나 한증막 정도 되는 줄 압니다. 한증막은 내가 들어가고 싶을 때 들어갔다 나오고 싶을 때 나옵니다. 지옥은 들어가는 것은 자유이지만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올 수가 없는 곳입니다.



  지옥에서도 괴로우니까 울부짖어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 기도에 응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영원한 고통 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곳이 바로 지옥과 음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사실을 알면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면, 여러분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도바울은 뭐라고 합니까?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입을 열어서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세 번째, 문둥이들의 반성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체함에 대해 반성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면 우리에게 벌이 임할것이다. 이제 곧 떠나서 왕궁에 가서 고하자.” 내일까지 기다리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갈 지 모릅니다. 우리는 지체할 수 없습니다. 이제 가서 곧 전합시다.



  여러분들! “태신자를 좀 만나십시오. 초청장을 좀 전달하세요. 선물을 좀 가져가세요.” 아무리 광고해도 요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요지부동입니다. ‘내가 바쁜데 뭐, 내 일이 급하지. 남의 일이야 뭐.’ 여러분 지체하지 마십시오. 가서 꼭 태신자를 만나시고 초청장도 전달하시고, 선물도 전달하세요. 정말 아름답고 행복한 영신교회로 우리 태신자들을 초청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이 문둥이들은 누구를 향해 갔습니까? 평소에 그들을 냉대하고 그들을 멸시하고, 인간 취급도 하지 않던 그 성안의 사람들을 향해서 그들은 그 밤에 달려갔습니다. “여기에 양식이 있어요. 여기에 먹을 것이 있어요.” 그것이 바로 복음의 소식입니다. 복음이란 굿 뉴스, 기쁜 소식입니다. 행복한 소식입니다. 생명의 소식이고, 희망의 소식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서 내가 생명의 떡이다. 나는 생명의 양식이다 그랬습니다. 오늘 영적으로 굶주려 있는 영혼들에게 예수님은 생명의 떡으로 오신 것입니다. 오늘 온 인류를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우리의 구원의 떡으로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전도자란 위대한 사람들, 정말 세상적으로 볼 때 돈 많고, 권력 있고, 지식 많은 사람들이 좋은 전도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성안에는 왕도 있고, 장관들도 있고, 훌륭한 지식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은 사용하십니까? 이 위대한 역사에 보잘 것 없고, 연약하고 버림받은 문둥이 네 사람이 쓰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내 삶이 비록 힘들고 어려움 가운데 있을 지라도, 정말 가장 아름다운 이 복음의 소식을 전하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 되셔야 합니다. 문둥이들은 구원의 통로로 축복의 통로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들은 그 구원을 누렸습니다. 배고팠던 그들이 마음껏 먹고 즐겼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내가 누리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누군가에게 이 구원의 소식이 전해져야 합니다. 그들은 누리는 사람에서 전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내가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무시면 안 됩니다.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이제는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만이 아니라 전하는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그들은 구원의 전령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발은 아름다운 발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발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흉악한 문둥이가 아니라 아름다운 복음의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나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자신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서 나누어주었습니다. 자신의 값진 보혈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교회는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교회는 자꾸 끌어 모으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물론 절약해야 하지만, 자꾸 절약만 하는 곳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절약할 것은 절약해야 하지만 복음을 위해서는 투자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교하는 일에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구제하는 물질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성도들의 축복도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나눌 수 있으면 자꾸 나누셔야 합니다. 끌어 모으면 끌어 모을수록 가난해지지만, 베풀면 베풀수록 축복이 내게 임하는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도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과도하게 아껴도 늘 가난하고 궁핍합니다. 어떤 사람은 늘 구제하여도 늘 풍족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교회도 자꾸 나누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자꾸 나눠주는 교회,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의 소식을 나만 가지고 계시지 말고 나눠주는 전도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물질을 나눠주십시오. 사랑을 나눠주십시오. 생명의 복음을 나눠주십시오. 그게 위대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목적은 전도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어떤 교회는 목사님이 교인에게 하는 질문에 잘 몰라도 그저 ‘전도’라고 답하면 90%는 정답이라고 합니다. 그 교회의 해답은 전도라고 합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전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슈퍼마켓에 왜 갑니까? 물건 사러 갑니다. 그런데 이제는 바뀌셔야 합니다. 슈퍼마켓에 전도하러 갑시다. 전도하고 물건도 사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식당에 왜 갑니까? 전도하러 갑니다. 전도하러 가서 음식도 먹고 오는 것입니다. 병원에 왜 갑니까? 전도하러 갑니다. 그리고 가서 치료도 받고 오는 것입니다. 직장에 왜 갑니까? 전도하러 갑니다. 그리고 가서 일도 하고 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전도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전도자로 부르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 10절에 보니까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니. 우리는 사람 낚는 어부입니다. 복음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복음, 이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는 아름다운 발,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이제 예수사랑큰잔치가 한 주간 남았습니다. 여러분이 남은 한 주간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증거합시다.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여러분 자신을 드리십시다. 물질도 드리고 시간도 드리고 정성도 드리고, 마음도 드립시다. 여러분의 발이 아름다운 발이 되고, 여러분의 인생이 아름다운 인생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