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힘써 해야 할일 (딤후4:1-8)
몇 일전 신문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소개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십년 전에 술 취한 취객을 폭행하고, 돈을 빼앗은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는 경찰에 쫓기게 되지만 그 수사를 피해서 숨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꼭 10년이 지났습니다. 죄를 지은 지 10년이 지나면 공소시효가 만료되어서 그 죄로 인해서 벌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그는 10년이 지난 것을 확인하고 사회활동을 시작하기 위해서 운전면허증을 따려고 자동차학원에 갔습니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댔더니 경찰 컴퓨터에 조회가 되어서 현장에서 체포가 되었습니다. 그는 “왜 나를 체포하느냐, 10년이 지났는데?”라고 말했지만 경찰은 “아닙니다. 당신의 공소시효는 올 10월이 되어야 만료가 됩니다.” 이 사람이 착각을 한 것입니다. 4월이면 10년이 된 걸로 알고 갔다가 덜컥 10만에 잡히고 말았습니다. 안되기도 했지만 뭐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 사람의 착각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종종 신앙생활 하면서 착각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나는 성가대로 매주일 봉사하는데, 남보다 한 시간 먼저 와서 연습하고, 또 예배 마치고 또 연습하는데, 성가대는 전도를 안 해도 되지 않나?’ ‘나는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는데’, ‘나는 주방에서 열심히 땀 흘리며 설거지하는데’, ‘나는 안내위원하는데, 뭐 나 같은 사람이야 전도 안한다고 어떻겠어?’ 이런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전도는 모든 사람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전도라는 것은 은사가 있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명으로 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언을 남기셨는데, 그 유언의 내용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전도의 명령입니다. 오늘 읽은 디모데후서는 사도바울이 그의 생애의 말미에 기록한 책입니다. 그는 디모데에게 명령하기를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항상 힘쓰라!” 이것이 주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힘써야 할 일은 바로 전도입니다. 상황이 안 좋더라도, 내가 전도를 하고 싶지 않더라도, 이유 불문하고 해야 될 사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전쟁이 났는데, ‘나는 오늘 컨디션이 좋으니까 전쟁에 나갈거야.’ ‘나는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 난 오늘 안 나갈래!’ 이럴 수가 있습니까? 군인은 컨디션이 좋던 안 좋던 전쟁에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주님의 명령이고, 사명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요 목회자인 존 스토트 목사님이 쓴 책에 제목이 원어로 보면 입니다. 그대로 번역하면 죄스런 침묵입니다. 한국어로 그 책이 나오면서 <전도하지 않는 죄>란 제목이 달렸습니다. 예수 믿고 전도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죄라고 생각해 본 적 있으십니까? 혹시 주일성수를 못한다면 주일 예배 빠진 것에 대해서 ‘아이고 오늘 내가 죄 지었네.’ 십일조를 몇 달 못 드렸다면 ‘아이고 내가 하나님 앞에 죄 지었네.’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전도를 안 했다고 해서 이것을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가리켜서 죄라고 말씀합니다. “너희는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했는데 그 말씀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1절에 보니까 “하나님 앞과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엄히 명하노니” 엄히 우리에게 명령했습니다. 너희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목회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누구든지 모든 그리스도인은 전도의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바울은 이것을 가리켜서 직무라고 표현합니다. 5절에 보니까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그랬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사명이요 그들의 직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주일 설교를 하시고 나서 이렇게 광고를 하셨습니다. “여러분! 다음주일에는 제가 이 강당에 서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다음 주일에는 설교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교인들은 어리둥절했습니다. ‘아니 목사님이 어디 외국에 가시나? 왜 주일설교를 못하신단 말씀인가?’ 목사님이 이어서 말씀합니다. “예배인도와 주일 설교는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도 할 수 있지만, 제가 기도하고 전도하려고 애쓰고 있는 저의 태신자가 다음 주일 마라톤대회에 나가기 때문에 제가 거기에 가봐야 합니다. 주일날 마라톤 대회 하는데 제가 거기 가서 그분을 돌봐줘야 합니다.”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교인들은 처음엔 당황스러워 했습니다. ‘아니 목사님은 주일 예배 인도하고 설교하는게 당신의 사명인데, 어떻게 예배도 안 드리고 마라톤 하는데 가서 뭘 도와주겠다고?’ 그러나 목사님은 다시 설명했습니다. “내가 전도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 사람에게 전도할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지옥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는 가서 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때서야 교인들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 주무시다가 뒤에 이야기만 듣고 ‘아 주일날 예배 안 드리고 마라톤 하는데 가도 괜찮은가보다’ 생각하시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그 목사님에게 주어진 사명은 예배를 인도하고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한 영혼에게 전도하는 것이 그 목사님의 사명이기도 했습니다.
미국 시애틀에 가면 퍼시픽 유니버시티라는 아주 유명한 기독교 대학이 있습니다. 이 대학의 총장이 데이빗 메케나라는 분입니다. 학교가 창립 50주년을 맞이해서 기념식과 졸업식을 동시에 치르게 되었습니다. 총장님은 누구를 강사로 모실까 고민하다가 자신과 아주 막역한 사이이고 절친한 빌리그래함 목사님을 초청하기로 생각했습니다. 목사님께 전갈을 보냈습니다. 그랬는데 당연히 올 줄 알았던 승낙이 오질 않고, 거부통지가 왔습니다. 목사님께 “왜 오실 수 없습니까?” 그랬더니 빌리그래함 목사님의 말씀이 “기독교 대학 창립 50주년 예배는 제가 아닌 다른 목사님도 훌륭하게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시간에 우리 마을 주유소 주인을 전도하기 위해서 식사 약속을 해 놨습니다. 만약 제가 그 사람에게 전도하지 않으면 그는 지옥 갈 수도 있기 때문에 저는 그에게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총장님은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되었지만 그러나 깊이 생각할 때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남에게 거절을 당하고도 이렇게 기뻤던 적이 없었습니다. ‘역시 빌리그래함 목사님은 위대한 전도자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총장님이 졸업식장에서 많은 학생들에게 이 이야기 했더니 그곳에 참석한 분들이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전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이고 하나님의 명령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에게 엄히 명하신 명령이 바로 전도의 명령입니다. 그러면 전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전도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요? 이 전도의 직무를 잘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용기를 내서 태신자를 만나셔야 합니다. 우리는 충분히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전도하고자 하는 태신자에 대해서 충분히 연구할 것입니다. 그러면 만나야 합니다. 용기를 가지고 만나야 합니다. 만나지 않으면 전도할 수 없습니다. 만나지 않으면 그의 성품도 알 수 없고 그의 고민과 기도제목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만나야 합니다. 전도는 만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여기는 믿음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지난 주일에 교회에서 여러분들에게 태신자를 만날 때 그냥 만나지 말라고 치약을 하나씩 선물로 드렸습니다. 여러분 그 치약 가지고 가서 태신자에게 전달하셨습니까? 이번 주일에는 여러분에게 초청장과 전단을 다 드렸을 겁니다. 아직 만나지 못한 분들은 그것을 꼭 선물과 함께 가져가셔서 전달하십시오. 만나지 않으면 전도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믿음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스갯소리이지만 고등학교 남학생이 소매치기를 당해서 돈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집에는 가야하는데 버스 탈 돈이 없었습니다. 고민을 합니다. 누가 안 오나 했더니 버스 정류장에 예쁜 여학생이 걸어왔습니다. 그래서 그 여학생에게 다가가서 용기를 내서 돈 좀 달라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차비가 없다고... 참 배짱이 있죠. 그랬더니 여학생도 보통 용기 있는 여학생이 아니었습니다. 이 남학생에게 싱긋 웃더니 질문했습니다. “혹시 시간 있으세요?” 라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아 나하고 사귀자는 뜻인가 보다.’ 남학생이 너무 좋아가지고 “예 시간 많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여학생이 “시간이 많으면 집에까지 걸어가세요.” 그랬답니다.
여러분 용기를 가지고 태신자를 만나셔야 합니다. 만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 다음엔 자랑해야 합니다. 뭘 자랑해야 할까요? 어떤 분은 전도하러 가서 그 집 애는 작년에 대학 떨어졌는데 우리 애 대학 붙은 거만 실컨 자랑했답니다. 전도가 되겠습니까? 역효과입니다. 안 맞고 오면 다행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자랑해야 합니까? 순서대로 세 가지를 자랑해야 합니다. 첫째 예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내가 믿는 예수님,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심으로 내 생명을 구원하시고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지.
두 번째는 교회를 자랑해야 합니다. 어느 교회를 자랑해야 합니까? 영신교회를 자랑해야 합니다. ‘영등포 신길동에 있는 영신교회’, ‘영원히 새로운 영신교회’를 자랑해야 합니다. “영 신통치 않은 교회라고.” 이렇게 자랑하면 안 됩니다. 교회를 자랑해야 합니다. “영신교회는 사랑이 많은 교회입니다.” “영신교회는 행복한 교회입니다.” “영신교회는 장로님. 권사님들이 아주 훌륭한 교회입니다.” “영신교회는 경로대학을 운영하는데 수요일이 되면 100여분이 넘는 어른들이 오셔서 재미있게 즐기고 말씀도 듣고 노래도 배우고 탁구도 치고 너무 좋은 교회입니다.” 자랑하셔야 합니다. “영신교회는 방과후교실을 운영하는데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면 40명 가량이 방과후교실에 와서 열심히 공부하다가 집에 돌아갑니다. 집에 가봐야 어머님도 계시지 않은데 교회 와서 열심히 공부하고 간식을 먹고 돌아갑니다. 그 아이들의 성적이 쑥쑥 오르고 있습니다.” 자랑하셔야 합니다. “영신교회는 지역을 섬기는 교회입니다. 영신교회 어린이집에는 100명이 넘는 어린아이들이 매일 와서 배우고 즐겁게 생활하고 있는데 그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여러분이 영신교회의 좋은 점을 자랑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영신교회 자랑하라고 했더니 “영신교회는 건축하고 나서 부채가 좀 있긴 있는데...” 그런 이야기 뭐 하러 합니까? 요즘은 PR의 시대입니다. 피할건 피하고 알릴건 알리라는 것입니다. 자랑하셔야 합니다.
세 번째는 목사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 영신교회 부목사님들이 얼마나 훌륭한지 모릅니다. 담임목사님을 닮아서 다 미남이구요. 그리고 설교도 다들 잘하구요, 찬양인도도 잘하구요,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담임목사님은 부목사님보다 조금 더 훌륭한대요 담임목사님은 얼마나 훌륭한 지 몰라요.” 자랑하셔야 합니다. 자랑할 때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자랑할 때 만약에 모여가지고 자기 교회 흉보고 자기 교회 목사님 헐뜯으면 전도가 되겠습니까? 전도라는 것은 하나님과 불신자들을 중매시키는 것입니다. 중매쟁이가 전도자입니다. 여러분 내가 누구 어느 집 딸 중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집 딸을 자랑해야 합니다. “내가 중매할 그 색시는 얼마나 참하고 착한 지 몰라. 한번 보시라구. 며느리감으로 딱 좋아” 이래야지. “아이고 그 처자는 말이야 버릇도 없고, 주끈깨도 많고, 눈도 좀 삐뚤어졌고, 데려갈라면 데려가” 그러면 누가 데려가겠습니까? 여러분 딸 시집 보내려면 딸 자랑 많이 하셔야 합니다. “우리 딸은 말이야 날 안 닮고 위에 할머니를 닮아서 얼마나 성품이 좋고 예쁜 줄 몰라. 어른들 잘 공경할 줄 알고 참 좋아.” 이렇게 자랑해야지. “아이고 젊은 것들은 쓸때가 없어. 어디다 쓸는지 시집도 안 가고 집구석에 앉아가지고...” 이러면 누가 데려가겠습니까? 여러분 많이 자랑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전도는 자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자랑하고, 교회를 자랑하고, 목회자를 자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전도가 됩니다.
또 한가지 효과적으로 전도하려면 상급을 기대해야 합니다. 전도자에게는 상급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본 사도바울은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했고, 그 직무를 다해 왔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이 떠날 기약이 가까웠는데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해서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전도인의 삶을 산 사도바울에게 아름다운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전도자에게는 상급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받는 상이 있고, 하늘에서 받는 상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 보니까 “내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생명의 면류관을 줄 것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다니엘서 12장 3절에 보니까 “많은 사람을 옳은 대로 돌아오게 한 자는 궁창의 별과 같이 비추리라”라고 말씀합니다. 별과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 오후에 저희 교회 오셔셔 간증한 문방현 장로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중계동 쪽에서 몇 년 전에 크게 학원을 운영하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학원을 좀 확장해는데 IMF가 나서 너무 이자가 비싸서 감당을 못해 학원이 부도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시의원에 출마했는데 돈만 쓰고 보기 좋게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남은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빛 잔치하고 나니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월세방을 전전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 동안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 후회가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돈이 있고 힘이 있을 때 총동원주일 되면 목사님이 전도하세요. 작정하세요. 해도 한 명도 안 했다고 합니다. 안수집사지만 10년동안 한명도 전도하지 못 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전도를 해 본적이 없었기에 전도 잘 하는 집사님을 따라 다니며 전도지 나눠주는 것부터 배웠습니다. 결국 그는 1년에 700명씩 전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놀랍게 그의 사업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는 지금 먹고 입는 것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전도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그의 사업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전도에는 하늘의 상급도 있지만 이 땅의 복도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는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당연한 직무요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6절에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그랬습니다. 내가 떠날 기약이 가까웠다. 여러분 이 관제란 말은 다른 번역에 보면 전제라고 나옵니다. 구약에서 제사를 드리는데 제사의 가장 절정에 그 위에 붓는 술을 관제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제단에 자신을 관제로 쏟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과 붉은 피를 십자가에서 흘리심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제사를 완성시키셨습니다. 또한 사도바울은 이제 곧 자신이 순교당할 것을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순교의 때가 되면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 마지막 십자가의 제단에 순교의 제물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것이 바로 관제입니다. 마지막 남은 것까지 다 쏟아 부어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관제라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권사님 한분이 헌금을 가지고 만나주셨습니다. “목사님 이거 버스 헌금으로 드립니다.” 제가 이야기를 들어드리니까 “자식들이 이제 칠손잔치해야한다고 그러는데 자기 생각에 내가 칠순잔치해서 뭐하냐? 밥 한끼 먹는건데 그렇지 않겠는가, 그걸 가지고 버스 헌금 내는데 드려야겠다” 해서 세 구좌를 가지고 왔습니다. 저는 그 마음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하루 잔치 벌이는 것, 그것은 먹고 끝나는 것이지만 버스 사는데 내가 헌금하면 그 버스가 낡을 때까지 많은 교인들이 그 버스를 타고 예배에 나올 것이고 구원을 받을 것이고 예수를 믿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 버스를 이용합니다. 여러분 그 마음이 얼마나 기특합니까? 참 감동을 받았습니다. 권사님은 따님과 계시지만 자신의 노후도 준비해야 할텐데. 내가 마지막으로 주님께 쏟아붓고자 하는 관제와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복음화율이 높은 도시가 전남 신안군입니다. 전남 신안군은 그 지역주민이 35%가 예수를 믿는다고 합니다. 많이 믿는것이죠. 다른 지역의 2배 정도 됩니다. 부산 같은 경우는 10%가 채 2안 됩니다. 신안군에서도 증도라는 작은 섬이 있는데 주민이 2천여명입니다. 그 섬에 교회가 11개가 있습니다. 근데 주민의 95%가 예수를 믿습니다. 그 동네에는 예수 안 믿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문중경이라는 여전도사님이 자신의 삶을 전도를 위해서 쏟아 부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안군 남태도에서 1891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17세가 되던 해 결혼을 했습니다. 시집을 왔는데 결혼식을 올린 첫날에 소박을 맞고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생과부가 되었습니다. 그가 집에 있는데 어느 지나가던 전도부인이 예수 믿으라고 권면해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결교의 유명한 이성복 목사님이 집회하는 곳에 가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서학원에 들어가서 졸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도부인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신안군 일대의 수많은 섬을 돌며 복음을 증거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훗날 48명의 순교자를 낸 인자도 진리교회, 증도의 증동리 교회. 대추리 교회 등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순교자를 양성했습니다. 그녀가 바로 문중경 전도사님입니다. 그녀가 6.25가 터졌을 때 그 증도를 지키다가 결국 인민군에 의해서 순교 당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자신의 생명까지 복음을 위해서 다 쏟아 부었습니다. 한 사람의 희생, 한 사람의 헌신이 한 군 전체를 복음화 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것입니다. 그 이야기가 바로 지난 금요일 우리 교회에 와서 성령집회를 인도한 김우현 감독이 제작한 천국의 섬이라는 영상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한 사람으로 희생으로, 한 섬 전체를 복음화 시켰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까지 여러분을 위해서 살아왔다면,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서, 여러분의 인생과 사업을 위해서 살아왔다면 이제 남은 두 주간은 한번 복음을 위해서 십자가를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여러분 자신을 쏟아 붓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이 복음 전도를 위해서 영혼 구원을 위해서 투자해 보지 않겠습니까? 이 복음 전도를 위해서 관제와 같이 자신을 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