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한 사람들의특징 (행4:23-37)

성령 충만한 사람들의 특징(사도행전 4:23~37)



  남편을 위해서 늘 기도하던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해 왔는데, 어느 주일 아침 남편이 제 발로 나서면서 “오늘은 나도 교회 가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부인이 그 말을 듣고 기쁜 맘으로 남편과 함께 나란히 교회를 향해 갑니다. 그런데 불안한 생각이 찾아왔습니다. ‘우리 남편이 처음 교회 가는데 오늘 누가 설교할까? 오늘 설교 제목이 뭘까? 오늘 설교 본문은 뭘까?’ 이런 불안함이 찾아왔습니다. 교회에 도착을 해서 주보를 펼쳐보는 순간 이 여신도는 더욱 걱정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설교 본문이 창세기 5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5장에는 족보가 나옵니다. ‘아담이 누구를 낳고, 몇 살에 죽었더라.’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담에서 노아까지 한 가문의 족보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가 930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그런 이야기입니다. 거기에 무슨 복음이 있겠습니까? 그 이야기만 계속되는데... 큰일 났습니다.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남편이 그래도 관심을 가지고 잘 듣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이다’ 생각을 했습니다. 몇 주 후에 남편이 교회에 등록을 하고, 교인이 되었습니다. 부인은 궁금해서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어떤 면 때문에 예수를 믿기로 작정을 했어요?” 남편이 대답했습니다. “창세기 5장 때문이야.” “아니 거기에 은혜 받을 구절이 어디 있어요?” “1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죽었더라는 말만 반복되잖아. 그런데 그 ‘죽었더라’라는 말이 은혜가 되더라고. 아 사람은 다 죽는 구나. 결국 나도 죽겠지. 나도 죽는다면 내게도 구주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지.”



  성령은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우리는 “야! 그 설교로 무슨 은혜를 받겠느냐?”하지만, 성령님이 일하시니까 그 남편이 깊이 은혜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은 이와 같습니다. 성령은 우리 인간을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기자신을 바꾸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많이 경험합니다. 오죽했으면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생겼겠습니까? 결심해 봤자 삼일을 못 간다는 것입니다. ‘올해는 좀 일찍 일어나야지.’ 하지만 삼일을 못갑니다. ‘이제는 말을 좀 조심해야지.’ 몇 일을 못 갑니다. 내가 내 자신을 바꾼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습니다. 아니 거의 불가능합니다.



  제가 지난 금요일에 심야기도 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친구 목사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전화를 받습니다. “얘야 아버지 계시냐?” “예 계세요.” “그래, 그럼 아버지 좀 바꿔줘 봐.” 그랬더니 “못 바꿔요” 그러는 것입니다. “아니 왜 못 바꾸냐? 어디 화장실에 계시니? 식사하시니? 왜 못 바꿔?” 아들이 그래도 못 바꾸겠다고 합니다. “야 이놈아! 아버지 좀 빨리 바꿔봐!” 그랬더니 아들이 하는 말이 “목사님도 참 답답하시네요. 세상에 아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바꿔요!”



  이 말의 뜻을 이해하십니까? 아들이 어떻게 아버지를 바꿀 수 있냐는 것입니다. 넌센스이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못 바꿉니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자신을 못 바꿉니다. 그럼 누가 자신을 바꿀 수 있습니까? 하나님만이 나를 바꿀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오실 때 나를 바꿀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살인자가 전도자가 되고, 핍박자가 증거자가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성령님이 임재하실 때, 성령께서 나를 다스리고 지배하시기 때문에 언어가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좀 엉뚱한 데가 있습니다. 큰소리를 잘 칩니다. 큰소리 치는 사람들은 다시금 봐야합니다. 베드로는 큰소리를 잘 치고 다혈질입니다. “다른 사람은 예수님을 다 버려도 나만은 절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내 사전엔 배신이란 말은 없습니다.” “나는 결코 주님을 떠나는 법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웬걸. 이 베드로가 허물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신 후에 마당 안에 예수님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어린 계집종 하나가 “당신! 갈릴리 사람 아니야? 예수님의 종 베드로 아니야?” 그는 아니라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심지어는 저주하면서까지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그는 그 후 예수님 말씀이 생각났기에 마음에 걸려서 나가서 크게 회개하며 통곡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자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니 예수님의약속의 말씀을 순종해서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이 모여서 간절히 성령받기를 위해서 기도할 때, 거기에 성령이 임했는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그들 위에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 같이 성령이 충만해서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더라는 것입니다. 120문도 전체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습니다. 성령 받은 그들은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도 말해보지 못한 언어,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방언이 성령 받은 것의 절대적인 증거는 아닙니다. 성령 받았지만 방언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방언은 성령 받은 강한 증거입니다. 많은 분들이 의심을 갖고 있습니다. ‘정말 내가 성령 받았나?’ ‘정말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나?’ 이런 의심을 많이 합니다. 집안이 잘 되고, 사업이 잘 되고, 건강 할 때는 잘 믿어집니다. ‘아! 주님이 축복하시니까 잘 되는구나.’ 그런데 병이 생기고, 몸이 아프고, 사업이 안 되고, 고통이 오면 의심하는 마음이 들어옵니다. ‘정말 하나님이 계시나?’ ‘목사가 사기 치는 거 아냐?’ ‘정말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나?’ ‘정말 성령님이 나에게 임재해 계신가?’ 의심이 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방언을 하게 될 때 이 의심이 사라질 줄로 믿습니다.



  방언은 절대적인 성령의 임재의 증거입니다.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증거가 바로 방언입니다. 물론 다른 증거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쉬운 증거가 방언입니다. 방언하는 사람이 하나님 부인하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방언 하는 사람이 성령이 나와 상관없다고 부인하는 것 또한 보지 못했습니다. 방언은 하나님의 영이 내게 임재해 계실 때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꼭 방언을 못 받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할 수 있다면 방언의 은사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확신, 구원의 증거,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강하게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확신만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망해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확신이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어떤 집사님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목사님! 사는 것도 힘들구요, 다 힘들어요. 그런데 한 가지 확신만 있으면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솔직하게 대답해 주세요!\" \"정말 천국이 있어요? 천국만 있다면 나는 이렇게 고생을 해도 괜찮아요.”



  여러분이 성령 충만을 입고, 천국이 믿어지고, 구원의 확신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앙생활 10년, 20년 한 것은 관계없습니다. 이 확신이 없으면 마지막에 다 허물어집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면, 주님이 나와 하시는 확신이 있으면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거기서 사람들은 변화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또 많은 사도들이 성령 충만을 입고, 나가서 힘 있게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안식일이 되어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는데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가 앉아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걸인이며 노숙자입니다. 이 사람은 수십 년 동안 걷지 못하는 장애인입니다. 이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돈을 좀 달라고 손을 내밉니다. 그 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그럴 때 이 앉은뱅이가 다리에 힘을 얻고, 일어나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양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한 두 해도 아니고 30년 동안 움직이지 못한 사람이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 소문이 예루살렘 전역에 삽시간에 번져 나갔습니다. 무려 오천 명의 무리가 베드로에게 몰려들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참으로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그 예수가 부활하심으로 오늘 이런 일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왜 나를 바라보느냐? 이는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들은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다 심문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을 위협했습니다. “너희가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복음 전하지도 말아라.”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조금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천하 인간의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구원받는데 어찌 우리가 잠잠할 수 있느냐? 너희 말 듣는 것이 옳으냐?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옳으냐?, 판단해 보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조금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민중들 때문에 베드로와 요한을 어찌할 수 없어서 그냥 풀어주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나와서 자기 동료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그들이 경험한 것을 그대로 간증했더니 많은 사람이 듣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할 때에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거기에 임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베드로와 요한의 변화된 모습, 사도들의 변화된 모습이 바로 성령 충만의 특징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요?



  첫째, 성령 충만하면 기도가 달라집니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기도와는 다른 차원의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24절 말씀입니다.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내 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오”

  그들은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기도했습니다. 일심이란 한 마음입니다. 마음이 하나 되어 소리를 높여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주석가들은 이것을 최초의 통성기도라 합니다. 그들은 마음을 합해서 소리를 높여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절박한 가운데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드리면서도 딴 생각 할 때가 많습니다. 설교 들을 때도 잡념이 떠오릅니다. 기도하면서도 ‘오늘 비도 오는데 집에 가서 뭐하고 시간 보낼까’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집중이 안 됩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한 사람들의 특징은 기도할 때 집중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 속에 간절함이 있고, 절박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볼 때 너무 안타까워서 눈물로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간증을 합니다. 외국 여행을 갔다 오면서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내리려 하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앞바퀴가 빠지지 않아 불시착을 할 수 밖에 없고, 동체착륙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굉장히 위험한 순간입니다. 기름이 남아 있으면 불이 날 위험이 있기 때문에 하늘을 돌면서 기름을 다 소모합니다. 그리고 활주로에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착륙하는 순간 승객들은 고개를 파묻고, 귀를 막고,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합니다. 이 분도 자기 생애에 그렇게 간절히 기도해 본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자기 가족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는데 ‘이게 마지막이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려달라고 얼마나 절박하게 기도했는지 땀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십일조 빼 먹은 것까지 다 회개했습니다. 정말 충성스럽게 섬기겠다고 기도했습니다. 딴 생각, 잡념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기도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기도 덕분인지 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집중해서 기도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성령 충만한 사람들의 두 번째 특징은 기도의 내용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성경 29~3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저들의 위협 가운데서 우리를 돌봐 주시고, 우리가 담당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옵소서.” 그것이 기도제목입니다. 기도의 내용입니다. 전에 같으면 “하나님! 이 핍박있는 곳을 빨리 떠나게 하옵소서. 우리를 안전한 처소로 옮겨 주옵소서.” 이렇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핍박 가운에 하나님이 우리를 굽어 살펴주시고, 담대히 하나님 말씀을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기도였습니다. 이기적인 기도가 아닙니다. 내 안위만을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이고, 복음 전파를 위한 기도로 기도가 바뀌어졌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분이 중요한 문제를 가지고 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하는데, 옆자리에 누군가 기도를 합니다. 그분은 밤새도록 “충만 충만 충만 충만” 이렇게 성령 충만을 달라고 기도를 하더랍니다. 아침이 되어서 궁금증을 갖고 “왜 그렇게 충만을 위해서 기도를 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분이 하는 말이 “장사가 요즘 안 되는데 성령 충만을 입으면 장사가 잘 된다고 그래서 충만을 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게 옳은 기도입니까? 올바른 기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틀렸다고 할 순 없지만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외의 문제들도 책임지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6장을 보십시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구하고, 그 일에 우선순위를 두면 구하지 아니한 것까지도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을 보십시오. 일천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묻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솔로몬은 무엇을 구했습니까?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이 백성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하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는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구하지 아니한 부까지 더하여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간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모든 필요를 채우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녀의 문제, 건강의 문제, 물질의 문제 등 모든 것을 하나님이 덤으로 채워주시는 겁니다. 이것이 바른 기도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기도 중에 하나님이 응답하는 기도가 있고, 응답받지 않는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할 수 없는 기도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는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 복음 전파를 위한 기도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기적인 마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마음으로 바뀌어지시길 바랍니다.



  성령충만한 사람들의 셋째 특징은 담대히 말씀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31절 말씀을 보십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그들이 빌기를 다했을 때 모인 곳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일은 성경에 또 나타납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사도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지하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한밤중에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기도하니까, 옥토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려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에 이렇게도 응답하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영신교회 교우들이 심야기도 와서 너무 열심히 기도하십니다. 아주 뜨겁게 기도하십니다. 저는 우리가 모여서 하나님 앞에 간절함으로 기도할 때 성령충만을 받고, 정말 지진이 일어나는, 온 환경이 진동하는 이런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니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의 진동이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했다고 합니다. 성령 충만 받고 난 뒤 담대히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러 나갑니다. 그들은 원래 담대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지금 서슬이 시퍼런 위협 가운데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을 때 그들은 다 다락방에 들어가 숨을 죽이고 문을 잠그고 숨어있던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데 그들이 성령 충만 받고 나니까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이제 권능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33절 말씀입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여러분들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실 때, 제가 정말 큰 권능으로 말씀을 증거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큰 권능으로 말씀을 증거하니까 성도들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들도 말씀을 전할 때 정말 마음을 열고 겸손함으로 큰 은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큰 권능으로 말씀을 전하니까 큰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제 성령 충만 받으시고 나가서 복음 증거하고 전도할 때에, 정말 담대한 성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충만한 사람들의 특징은 가진 것을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32절 말씀을 보십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그 중에 핍절한 자, 가난한 자가 없고, 서로 유무상통했다는 것입니다. 성령 받기 전에는 이기적인 마음이 꽉 차 있습니다. 정말 물질에 인색합니다. ‘내가 얼마나 땀 흘리며, 수고하며, 몸 바쳐서 얻은 물질인데 이거 함부로 쓸 수 있는가?’ 꽉 움켜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할 때 이 모든 물질은 주님이 주신 것임을, 아니 주님이 주인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내 시간과 재능과 내 생명도 다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게 되는 겁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를 도구로 드리는 것입니다. 물질이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기쁨으로 헌금할 수 있고, 구제도 하고, 선교헌금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물질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이 내게 맡기신 것을 고백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 마지막 부분에 성령 충만을 받은 그들의 특징이 나오는데 공동생활을 하며 자신의 물질들을 내어놓고, 서로 유무상통했다고 했습니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에 그들이 다시 재 충만을 받게 되었을 때 또 물질을 나누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물질에 대한 소유욕이 사라져 버립니다. 이기적인 마음이 사라져 버리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나눌 수 있는 그런 마음에 은혜가 생겨지는 것입니다.



  우리 영신교회 교우들이 내 소유만을 고집하지 아니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위해 드릴 수 있는 그런 믿음들이 생겨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이와 같은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려면 성령의 능력을 구하셔야 합니다. 에베소 5장 18절에 보니까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처럼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지혜로운 삶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실 때 우리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 간절히 구하십시오.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누가복음 11장 13절에 보니까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하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영신교회 교우들 모두가 성령 충만 받으시고 담대히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고, 주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