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ovely회원님(자비량 이스라엘 선교사, 여 42세)이 국내에 들어와 계십니다. 1월 6일 출국을 앞두고 후원의 손길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회원님들의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 중보기도실에 선교사님들의 기도요청이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한번씩 확인해 주세요
3.. 회원 목회자님들이 은혜속에 교회를 세워가실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특별히 개척교회를 섬기시는 목회자님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4. 전 세계적인 경제적 위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선교사님들이 환율 때문에 원화의 가치가 낮아져서 무척 어려운 모양입니다.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5. 조그만 공간에서의 카페지기의 교회개척이 임박해 있습니다. 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하시길 기도해주세요
소망의 삶
(시107:)
시편 107편은 여러 가지 어려움과 시련을 겪은 사람들의 구원의 기쁨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전쟁에서 패배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어두운 지하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질병과 바다의 폭풍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그러한 어려움과 시련을 겪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과거를 회상해 보았을 때 자신들이 그러한 상황에 결코 홀로 내버려져 있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전혀 불가능한 절망의 상황에서 구원을 받았을 때 경험한 한 가지 공통된 것은 그들을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려는 그들의 마음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시편 107편의 시작입니다. 그것은 순수한 감사와 찬양에 대한 초대입니다. 이 시편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의 빛나고 기쁨에 가득 찬 얼굴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절망적인 고통에서 살아 남은 것에 대해서 너무나 놀라고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미적 감수성이 탁월한 화가가 이 시편에 나타나 있는 고난의 장면들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각기 배경과 중심 인물이 다른 네 장면의 그림들을 그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첫째 장면이 4-5절입니다. 그림의 배경은 사막입니다.
시야에 들어오는 데는 어디에나 모래밖에 없습니다. 나무도 풀도 식물이라곤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래를 움직이는 바람소리가 간신히 들릴 뿐, 모두가 침묵뿐입니다. 그림의 원근법에 따라 먼 곳에서 한 그룹의 무리들이 오고 있습니다. 그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들의 옷은 먼지로 덮여있고 머리는 바람에 날려서 흩어져 있고 얼굴은 햇볕에 타서 검어졌고, 눈은 충혈 되어 있으며, 입술은 말라서 터져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배가 고파 허기가 져 있고 갈증으로 인하여 속이 타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막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사막에서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때까지 헤매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습니다.
첫 번째 그림에 나타난 장면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포로들을 묘사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여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
이 절망적이고 암울한 상황에 갑자기 발견된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희망의 분기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6절의 말씀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입니다.
두 번째 장면의 그림의 소재는 10-16절의 내용입니다.
그림의 배경은 감옥의 내부입니다. 그 곳은 어둡고 우울한 장소입니다. 죄수들이 착고를 차고 차갑고 축축한 돌 벽에 사슬로 묶여 있습니다. 간수들은 잔인하게도 죄수들을 차고 때립니다. 이 암울한 상황에서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 때 갑자기 감옥이 흔들리며 놋대문이 부서지고 쇠빗장이 꺾였습니다. 이 두 번째 장면의 분기점은 16절의 말씀 \"저가(주께서)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입니다.
그림의 세 번째 장면은 17-22절의 내용입니다.
세 번째 그림은 매우 처참하고 불쌍한 장면입니다. 거기에는 온갖 질병으로 아픈 사람들이 여기 저기 널려져 누워 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아파서 음식을 보고도 일어나지 못합니다. 여기 저기서 신음 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역시 이 장면의 그림에서도 희망의 분기점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 처참한 상황에서 부르짖을 때 \"저가(주께서)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그림입니다.
이 그림의 소재는 23-30절의 내용입니다. 그림의 배경은 바다입니다. 섬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입니다. 거기에 고대의 돛단배들이 정상적인 항로를 따라 바다를 항해하고 있습니다. 그 목적지는 어딘지 잘 모릅니다. 갑자기 멀리서 폭풍 구름이 나타납니다.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이어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하늘은 점점 어두워집니다. 바람이 더 강해집니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며 파도가 크게 일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배 안에 있는 누구도 불안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폭풍우를 여러 번 겪었기 때문에 확신에 찬 모습으로 일상적인 일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곧 공포가 그들을 둘러싸기 시작합니다. 뱃사공들은 동료들의 얼굴에서 공포를 읽을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술 취한 것처럼 비틀거립니다. 금방이라도 그 배는 부서져서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공포로 가득 찬 분위기가 본문에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니 그 위험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 도다. 저희가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26-27)
다시 한번 이 시편의 중심된 내용이 나타납니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정케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 도다 \"(28-29)
그리고 나서 시편 기자는 이 네 번째 그림의 결론을 덧붙입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서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백성의 처에서 저를 높이며 장로들의 자리에서 저를 찬송할지로다\"(31-32)
사막이나 감옥, 병상이나 폭풍우 이는 바다는 모두 실제로 우리의 현실에 존재합니다. 그것들은 우리 인간의 경험의 한 부분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통한 우리의 경험은 좌절, 절망, 우울, 고독, 공포와 같은 희망과는 완전히 대치되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삶을 포기케하고 생을 비관하게 만듭니다. 삶을 긍정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결론은 사막에서, 감옥에서, 병상에서, 폭풍에서, 나올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생의 마지막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막에는 시원한 물과 오아시스가 있고, 캄캄한 감옥밖에는 상쾌한 공기가 있는 들판이 있으며 폭풍의 바다에는 잔잔한 물과 안전한 항구가 있습니다. 그러한 곳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이 위대한 시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삶의 불가능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혼자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절망적이고 암울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선하심,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감사의 찬양을 부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이차 세계대전 때 있었던 일 한 가지를 소개하므로서 저의 설교를 끝맺겠습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하고, 죄 없는 자유인들이 독일의 유대인 학살 수용소(아우슈비치)에서 피눈물을 뿌리고 죽어가던 그 현장 속에, 유대인들이 눈물을 뿌리면서, 피맺힌 절규를 통해서 외친 질문이 \'하나님,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입니다.
어느 날 연합군이 이 수용소를 탈환하고, 수용소의 벽을 검사하다가 한 쪽에서 뜻밖에 낡은 조각으로 쓰여진 찬송가의 가사를 보고 깜짝 놀라며 그 벽 앞에 서 있었습니다. 아마도 어느 그리스도인이 그의 신앙고백으로 기록해 놓았던 구절인 것 같습니다. 그 찬송가의 가사 내용은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두루마리로 이 하나님의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겠네.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하나님의 사랑을 기록할 수 없겠네.\' 였습니다.
이 놀라운 기록 앞에서 아연실색하여 바라보던 병사의 눈길에 그 아래 조그맣게 쓰여진 글자가 눈에 띄였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 (God is here.)였습니다. \"
우리의 희망은 \'하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입니다. 우리의 생의 모든 물음에 대한 해답이 바로 \'하나님은 여기에 계시다\'입니다.
지금 여기에 계신 하나님은 사막의 生活에서도 함께 계시고, 옥중에서도 함께 계시고, 병상에서도, 풍랑이 이는 바다에도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고난과 역경가운데서 경험하는 하나님 경험은 해방과 자유의 경험입니다. 그러한 경험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고 그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새로운 차원에서 삶을 사랑하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나는 육체의 아름다움과, 활동들의 리듬과, 눈들의 광채와, 포옹들과, 느낌들과, 형형색색의 이 창조의 소리들을 사랑합니다. 나의 하나님 당신을 내가 사랑할 때, 나는 모든 것을 껴안고 싶습니다. 당신의 사랑의 피조물들 속에서 나는 나의 모든 감각들을 가지고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내가 만나는 모든 것 안에서 나를 기다립니다.
오랫동안 나는 당신을 내 안에서 찾았고, 내 영혼의 달팽이 집 속으로 기어들어 갔으며, 접근할 수 없는 장갑차를 가지고 나를 방어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의 바깥에 계셨으며, 내 마음의 좁은 데로부터 나를 삶에 대한 사랑의 넓은 영역속으로 이끌어 내셨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내 밖으로 나왔으며, 나의 영혼을 나의 감각들 속에서 발견하였고, 내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 찾았습니다. 하나님 경험은 삶의 경험들을 더 깊게 하였고 그것을 위촉시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경험은 삶에 대한 절대적 긍정을 일깨우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할수록, 나는 더욱 더 여기에 있고 싶습니다. 내가 보다 더 직접적이며 전체적으로 여기에 있으면 있을수록, 나는 더욱 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삶의 무한한 원천을, 삶의 영원을 느낍니다.\" (Jürgen Moltma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