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도뼈 위골의 은총

환도뼈 위골의 은총

                                                                                                                         환도뼈 위골의 은총

                                                                                                                              창세기 32:24-32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새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인격이 변화되어야 하고, 성품이 변화되어야 하고, 생각이 변화되어야 하며, 행동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변화될 수 있습니까? 사람은 자기 스스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 윤리, 도덕적인 삶을 추구한다고 해서 거듭날 수 없으며, 철학적, 문학적, 과학적 지식을 습득한다고 해서 거듭나는 것도 아닙니다. 변화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인격의 변화, 성품의 변화, 행동의 변화는 은혜 받음의 결과입니다. 은혜를 받아야 옛 사람의 옷을 벗고 새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옛 사람의 옷을 벗고 새 사람의 옷으로 갈아입는 변화의 은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변화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Ⅰ. 야곱의 귀향과 에서의 출현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로 옛 사람의 옷을 벗고 새 사람으로 거듭난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야곱입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의 나그네 삶을 청산하고 귀향길에 올랐습니다. 떠날 때에는 빈손이었으나 돌아갈 때에는 처자와 노복들과 심히 많은 가축 떼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세일 땅 에돔 들에 이르게 되었을 때 쌍둥이 형 에서를 생각했습니다. <형은 아직도 옛날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밀려오는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받을 장자권과 축복을 가로챈 장본인입니다. 그 일로 말미암아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했고, 야곱은 에서의 낯을 피해 외삼촌 라반이 살고 있는 밧단아람으로 도망치게 되었고, 벌써 20년의 세월이 흘렀던 것입니다. 야곱은 사자를 보내 화해를 청하며 그 대가로 한 떼의 가축을 선물로 보냈습니다.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때 사자가 갖고 온 소식은 에서가 사 백인의 군사를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에서에 관한 소식을 듣기 전만해도 야곱의 귀향길은 그야말로 기쁨과 소망의 길이었습니다. 거부가 되어 20년 만에 돌아가는 즐거움의 길이요, 금의환향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에서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찬 야곱의 귀향길은 두려움과 공포의 길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야곱은 두려웠습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에 가족과 가축을 두 떼로 나누어 얍복 강을 건너게 했습니다. 한 떼를 치면 다른 한 떼가 멀리 도망가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래도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야곱이 마지막으로 택한 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야곱은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자 무릎을 꿇었습니다.


 ->우리도 뜻밖의 문제에 부딪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뜻밖의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면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을 먼저 하십니까?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온갖 인간적인 방법을 시도한 후에 마지막으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야곱의 경우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그 다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가장 빨리, 가장 합당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Ⅱ. 홀로 있을 때

 얍복 강가에 홀로 남은 야곱, 지금 야곱의 주변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는 혼자였습니다. 아내도 없고, 자식도 없습니다. 노복도 없습니다. 혼자 있는 사람의 심정을 아십니까? 어떤 경우이든지 사람이 홀로 되는 경우는 외롭고 적막하고 쓸쓸하고 고독합니다.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홀로 되거나, 사회적인 활동으로부터 홀로 되거나, 어떤 경제적인 소유권으로부터 홀로 되는 경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깊은 고독을 느끼거나 죽음에 이르는 비참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홀로 있는 것을 싫어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홀로 되는 것은 괴로움 그 자체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홀로 되는 것이 적어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축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은혜의 보좌로 달려가는 첩경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던 믿음의 선배들은 예외 없이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났고, 홀로 있을 때 주신 자와 받은 자만이 아는 기막힌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가시떨기 나무 사이의 불꽃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 출애굽의 대명을 받았던 것도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며 홀로 있을 때였습니다.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군대 장관을 만나 여리고 함락 작전의 비젼을 받은 것도 홀로 장막을 거닐며 가나안 정복 전쟁을 구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소년 사무엘이 자기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도 엘리 제사장의 집에서 홀로 있을 때였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의 계시와 환상을 보았던 것도 홀로 있을 때였습니다. 사도 요한이 종말 계시의 놀라운 비젼을 받았던 것도 밧모섬에 유배되어 홀로 있을 때였습니다.

  

 ->인간이 적신 상태의 인간 본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고, 자기 자신까지도 믿을 수 없는 전적 무능함을 직감하여 하나님을 찾게 되는 시간은 홀로 있을 때입니다. 성도 된 자는 세상의 혼잡함을 피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한 집에 살면서도 적어도 한 시간 정도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홀로 있는 시간은 자아 발견을 위한 최적의 시간입니다. 홀로 있는 시간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최상의 시간입니다.

 ->여러분은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십니까? 하루 종일 대화할 사람이 없어서 입에 거미줄이 쳐질 지경이라고 푸념하십니까? 텔레비전 앞에 앉아 연속극이나 보면서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지, 어떤 일을 하셨는지,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으며,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무의미의 시간이 아니라 자아 발견을 위한 명상의 시간으로 선용해야 합니다. 고독이나 외로움을 느끼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친교의 시간으로 선용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시간으로 활용해야 하고, 찬송하는 시간으로 활용해야 하고, 성경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도 혼자만의 은밀한 시간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 시간이 하나님과의 친교의 시간으로, 자아 발견의 시간으로, 신앙 증진의 시간으로 활용되어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Ⅲ. 환도뼈의 위골

 홀로 남은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은 밤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했습니다. <씨름>은 결사각오의 정신으로 응답받고자 매달리는 기도의 웅변적인 표현입니다. 그야말로 간절한 마음으로 구하는 기도요, 찾는 기도요, 문을 두드리는 기도입니다. 씨름 중에 야곱의 환도뼈가 위골되는 뜻밖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창세기 32장 24-25절에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 되었더라”라고 했습니다.

 <환도뼈>는 엉덩이 골반을 형성하는 좌우 한 쌍의 뼈를 가리키는데 사람에게 있어서 생명과 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위골되었다>는 것은 뼈가 부러졌다는 뜻입니다.

 기도하던 야곱의 환도뼈가 갑자기 위골된 까닭이 무엇입니까?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위골시킨 분은 하나님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 야곱이 소망하는 것은 문제 해결의 은총입니다. 하나님도 밤새도록 기도한 야곱에게 문제 해결의 은총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는 지금 야곱의 모습으로는 기도의 응답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야곱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삭의 아들입니다. 말하자면 야곱은 믿음의 계승자요, 후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야곱의 모습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옛 사람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믿음의 옷을 입고 있었으나 실상은 육의 사람이었고, 정욕의 사람이었고, 속임수와 술수에 능한 사람이었고, 세상에 속한 옛 사람입니다.


 야곱이 문제 해결의 은총을 받으려면 옛 사람이 죽어야 합니다. 이유는 옛 사람은 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옛 사람은 영이 아니라 육입니다. 옛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케 하는 죄악의 요소요, 범죄케 하는 원흉이요, 실족케 하는 원흉입니다. 구원의 길을 훼방하는 원수입니다. 옛 사람은 하늘의 신령한 것을 추구하지 않고 땅의 것을 추구합니다. 옛 사람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고자 합니다. 그런즉 옛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옛 사람으로는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옛 사람으로는 축복의 반열에 들어설 수 없습니다.

 구멍 뚫린 전대가 복을 담을 수 있습니까? 구멍 뚫린 전대에는 복을 담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구멍 뚫린 전대에 복을 부어 주시는 무모하신 분이 아닙니다. 복을 주시기 전에 먼저 구멍 난 전대를 꿰매고, 헌 전대를 새 전대로 바꾸신 다음에 복을 부어 주십니다. 그래야 복을 온전히 받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환도뼈가 위골되었다>는 말의 영적 의미는 <야곱의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났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으려면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합니다. 야곱의 환도뼈가 위골된 그 시간은 옛 사람 야곱이 죽고, 새 사람 야곱으로 다시 태어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인간 야곱이 끝장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녹명되는 시간이었습니다.



Ⅳ. 야곱이 이스라엘로

 날이 밝아오자 씨름하시던 하나님이 떠나려고 했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한 채 환도뼈만 위골된다면 그것보다 더 억울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급해진 야곱은 하나님을 붙잡고 축복하지 않으면 보내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야곱은 죽으면 죽겠다는 심정으로 은총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름을 물었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는 물음에 야곱은 자신이 이름이 야곱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몰라서 물었을까요? 하나님은 전지자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이름을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야곱의 본성을 뒤돌아보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야곱은 <속이는 자> <빼앗는 자> <발뒤꿈치를 잡은 자> 등의 뜻을 가진 어둠의 이름입니다. 야곱은 그 이름의 뜻처럼 지금까지 어두운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속이고, 빼앗고, 발뒤꿈치를 잡는 삶을 살았습니다.

 ->은혜는 의인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죄인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은 죄인을 긍휼히 여겨주시는 자비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까? 속이고 빼앗고 발뒤꿈치를 잡던 야곱에게 놀라운 축복이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환도뼈가 위골된 야곱에게 임한 은혜와 축복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새 이름이었습니다. 야곱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새 이름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방백>이라고 하는 뜻을 가진 승리자의 이름입니다.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새 이름은 야곱 자신에게 있어서 에서와의 갈등을 해결하고, 새로운 삶을 가능케 한 활력소가 되었을 뿐 아니라 장차 선민국가의 대명사가 되었고, 신령한 이스라엘의 칭호가 되었습니다.



Ⅴ. 새 이름의 주인공

 우리도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새 이름을 받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새 이름을 받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나의 환도뼈가 위골되어야 합니다.

 사람마다 자기가 자랑하는 환도뼈가 있습니다. 힘과 생명의 상징으로 삼는 환도뼈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랑하는 환도뼈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외모입니까? 지능입니까? 재산입니까? 돈 많은 부모입니까? 판, 검사 아들입니까? 여러분이 자랑하는 현대판 환도뼈의 정체가 무엇이든지간에 그 환도뼈는 깨어져야 합니다. 옛 사람이라고 하는 환도뼈는 깨어져야 하고, 죽어야 합니다. 환도뼈가 위골되어야 거짓을 버리고 오직 참된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과 속이는 것과 음행과 탐욕을 버릴 수 있습니다. 죄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야곱의 환도뼈를 위골시킨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야곱의 환도뼈가 위골되었듯이 저와 여러분들이 힘의 근원으로 삼고, 자랑하는 환도뼈도 위골되어야 합니다. 환도뼈 위골의 은총을 받으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야곱의 환도뼈가 위골된 것은 하나님과 씨름할 때였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환도뼈를 치신 것은 그가 울며 간구할 때였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사각오로 기도할 때였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나의 환도뼈가 위골되기를 소망한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때마다 시마다 분마다 초마다 눈물로 기도해야 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결사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침노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낙타 무릎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입니다. 울며 간구하는 시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환도뼈 위골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챤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얍복 나루에서 소망의 아침을 맞이한 사람은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옛 사람이 아닌 새 사람 야곱이었습니다. 육의 몸이 아닌 영의 몸을 입은 야곱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야곱이 환도뼈 위골의 은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새 이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환도뼈 위골의 은총을 받기 전까지의 야곱은 속이는 자요, 빼앗는 자요, 발뒤꿈치를 잡는 자였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속이고, 빼앗고, 발뒤꿈치를 잡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야곱이 환도뼈 위골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환도뼈를 치시니 야곱에게서 어두운 밤은 물러가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과 함께 새 아침, 새 날, 새 평화, 새 영광이 찾아왔습니다. 환도뼈의 위골로 야곱의 육신은 절름발이가 되었지만 그 인격은 새 사람이 되었고, 그 영혼은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도 환도뼈 위골의 은총입니다. 은과 금과 명예와 권력이 아니라 환도뼈 위골의 은총입니다. 환도뼈 위골의 은총을 받아야 내 인격이 변화될 수 있고, 내 성품이 변화될 수 있고, 내 생각이 변화될 수 있고, 내 행동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환도뼈 위골의 은총을 받아야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거듭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야곱에게 주셨던 브니엘의 은총으로 나를 주장하여 주소서. 성령의 능력으로 나의 환도뼈를 위골시켜 주소서. 옛 사람의 성품이 죽고 새 사람의 거룩한 옷을 입게 하소서. 내 인격이 변화되고, 성품이 변화되고, 생각이 변화되고, 행동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믿음의 종이 되게 하옵소서”

 여러분에게 환도뼈 위골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