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훈련, 자아 깨뜨리기
박미가 목사(세계아버지마음사역자포럼 아시아 대표)
연세대 생화학과 졸업. 미조리 주립대 생화학 박사. 풀러신학대학 졸업(석사). 캔사스한인침례교회 담임. 현재 아가페신학교 교수, 세계아버지마음사역자포름 아시아 대표.
역서 : 「하나님 나라의 복음」(죠지 래드 저), 「열린 하늘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라」(마크 듀퐁 저), 「치유 사역의 거장들」(로버츠 리아돈 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 16:2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 2:20)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 6: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서 거하시느니라” (요일 4:16)
영성은 능력이 아니다. 영성은 사랑이다. 능력만을 추구하는 영성은 복음이 아니다. 영성은 사랑이다. 사랑 안에 복음과 능력이 있다. 방언을 하고 천사의 말을 해도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물 없는 사막에 불과하다.
예언을 뛰어나게 잘하고 하늘나라의 비밀을 깨달았다고 해도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자신의 소유물을 팔아 가난 사람을 구제해도 사랑이 없으면 역시 아무 소용이 없다(고전 13:1~3).
내 속의 선악과와 생명나무와의 싸움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고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마 5:44). 그러나 이 명령은 명령이 아니다. 군대식 명령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영원한 생명이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요 12:50).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은 영원한 생명이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이 하셨다(마 5:44).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요 12:49).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하고 싶은 말씀만 하셨다(요 12:50).
예수님은 깨어진 자아를 가진 분이셨다. 아니, 깨어질만한 못된 자아 자체를 소유하지 않으셨겠지만, 아무튼 그분은 자신의 개인적인 계획과 소망이 없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누구나 깨어져야 할 ‘옛 사람’의 모습을 각자의 자아 속에 가지고 있다. 이 자아를 깨뜨려 십자가 앞에 굴복시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없다.
예수님처럼, 영성이 뛰어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아 하나님의 계획대로 사는 사람이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준 자의 마음을 알아 그 마음으로 행동하고 말한다.
영성이 뛰어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고 싶어 하시는 말을 하는 사람이다.
영성이 뛰어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의 말로 사람을 살리고 세워주는 사람이다. 영성이 뛰어난 사람은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와 같은 사람이다. 생명나무에는 예수가 계셨고 선악과에는 마귀가 있었다. 마귀의 말은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
죽어 가는 생명을 소생시키고 묶인 사람을 풀어주고 아픈 사람을 치유한다.
깨어진 자아가 하나님 사랑을 받는다
사랑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인간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사랑은 불완전한 사랑이다. 아니 타락한 사랑이다. 상대방을 이용하는 사랑이다.
상대방의 상태와 반응에 따라 사랑의 크기가 결정되는 조건적인 사랑이다. 이 인간의 사랑으로는 사람에게 절대 생명을 줄 수 없다.
자아가 깨어진다는 말은 인간의 사랑이 효력 없음을 철저히 깨닫는다는 말이다. 사랑했던 사람에 의해 철저히 배신당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자아가 깨어진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 그것도 자기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자아가 깨어진 사람이다. 철저하게 실패를 경험해본 사람이 자아가 깨어진 사람이다.
자신이 가진 것이 사람을 살리고 관계를 회복하는 데에는 아무 효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다. 아내와 남편에게, 자녀와 부모에게 철저히 배신당해본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깨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진정으로 깨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나서 하나님께로 나아가 그분으로부터 모든 것을 공급받는 사람이다.
그렇게 할 때 자신의 참 존재와 가치가 회복된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듯 긍휼의 시선으로 남을 바라보게 된다. 이런 사람은 자신 속에 선악과의 속성이 점차 없어지고 생명나무의 속성이 증가한다. 이런 사람은 사람을 살린다.
인간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 그것도 자기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자아가 깨어진 사람이다. 철저하게 실패를 경험해본 사람이 자아가 깨어진 사람이다.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 안 되는 컴퓨터
자아를 깨는 방법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성령의 조명에 의해 깨달은 죄를 십자가에 못 박는 방법이다. 매일 자신을 청소한다.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한다.
개인용 컴퓨터에 메모리 용량이 모자라면 메모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자주 청소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컴퓨터의 속도가 빨라진다.
십자가에 매일 못 박는 방법은 매일 매 순간 컴퓨터의 메모리를 청소해 주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다소 소극적이다. 죄를 못 박아 의의 옷을 덧입게 되지만,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체험하는 데는 미치지 못한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참 교제에 이르려면 깨어진 자아를 채워줄 사랑의 인터넷을 깔아야 한다. 이것이 자아를 깨뜨리는 두 번째 방법이다. 예수님의 방식은 바로 이 두 번째 방식이었다.
이것은 내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초청하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비유적으로 말해본다면 개인용 컴퓨터에 ‘성령’의 초고속 전용선을 깔아 슈퍼컴퓨터의 사랑의 정보를 다운받는 방법이다.
내가 내 힘으로는 살 수 없고 남도 살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사랑의 슈퍼컴의 능력을 전용선(성령)을 통해 ‘나’라는 컴퓨터에 불러들여 하나님의 동영상도 보고 하나님과 채팅도 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십자가에 못 박는 것도 있고 하나님의 사랑에 거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주류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말은 한번도 안 하셨다(이는 바울의 권면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라는 말은 여러 번 하셨다. 우리는 이 둘 다를 해야 하지만 주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한다. 그래야 깨어진 자아가 재대로 작동한다.
이는 마치 컴퓨터 메모리를 청소도 해주어야 하지만 하나님과 인터넷 소통으로 깊고도 다양한 사랑을 체험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많은 아들들아 영광으로 들어가자!
히브리서 2장 10절 말씀을 보자.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이 말씀을 쉽게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즉 만유의 창조주이시며 만유가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그의 택하신 자녀들을 구원하여 당신의 영광으로 이끄심으로써 그리스도를 온전케 하신 일은 지극히 합당한 일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만드신 후 모든 아들들이 그 어떤 조건도 없이 하나님의 영광의 지성소에 들어가서(불완전해도 충분히) 사랑을 받도록 준비 해 놓으셨다.
우리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채워지면 우리는 주님의 영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자아가 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은 채워지지 않는다.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죄 성을 포기하지 않은 더러운 성전에 임재하실 수 없는 것이다.
축사, 치유, 예언 못하는 반쪽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면서 축사, 치유, 예언하지 못하는 것은 반쪽 사랑이다. 하나님은 많은 아들들을 통해 아픈 자를 치료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낙망한 사람에게 사랑이 담긴 예언을 말해 주길 원하신다.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다면 고쳐주고 싶을 것이다. 그 사람이 죽어간다면 살리길 원할 것이다. 그를 향한 사랑이 클수록 그 사랑을 표현하고 싶을 것이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살리시고 고치시고 축사하시고 예언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채워지면 우리는 주님의 영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자아가 깨어지지 않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채워지지 않는다.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죄 성을 포기하지 않은 더러운 성전에 임재하실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을 닮기 위해 날마다 죽는다고 역설한 바울의 자아 죽이기는 성경이 우리에게 권하고 있는 탁월한 영성훈련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이와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연습을 적극 권면하고 싶다. 전술하였듯 그것은 주님의 방법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품속에 항상 계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에(요 1:18) 그 넘치는 사랑을 우리에게 제한없이 주셨다.
십자가에 자아를 못 박는 것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날마다 받는다면 그 사랑은 저절로 우리의 이웃에게 흘러나갈 것이다. 이것이 자아 깨뜨리기의 적극적 방법이다.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은 결코 남에게도 줄 수 없다.
필자는 잠자리에 들기 전 5분, 일어나서 5분, 이렇게 매일 10분씩 하나님의 품에 안겨 그분의 사랑을 받는 시간을 갖고 있다(요 1:18). 그리고 생활 속에 틈만 나면 고린도전서 13장을 묵상한다(요일 4:16).
이렇게 5년 째 ‘하나님 사랑 받기’ 훈련을 지속해오고 있는데 개인적 경건생활에 많은 유익을 체험하고 있다.
이렇게 해오는 동안 내 목적을 위해 남을 조정하고 이용하려고 했던 나의 죄 된 속성이 점점 엷어지고 있다. 자아가 깨어지기 시작하면서 남에게 생명을 주고 싶은 마음이 증가하고 있다.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남에게 실제로 주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아내와의 사이가 좋아졌으며 자녀와의 관계가 회복됐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영이요 생명이기를,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처럼 갈급해 하고 있다(요 6:63).
이젠 나를 통해 내 속의 아버지가 사랑으로 나타나시기를 간절히 소망하게 됐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 나라가 ‘나’라는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 이 땅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때 생명의 복음도 나타나고(요일 2:27), 능력(고전 2:4)도 나타나고, 예언(고전 14:5)도 나타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