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

유혹

마4:1-11


공부하는 학생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공부\'라는 말과 \'시험\'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간혹 \'공부\'나 \'시험\'으로
너무 스트레스를 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한 평생 공부해야 하고,

그에 따르는 평가로서
시험을 치러야 하는 것 같습니다.

\'무슨 고사\'나
\'무슨 시험\' 등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학교에 입학하는
입학 시험에서부터
중간 시험, 월말 시험, 학기말 시험,
졸업 시험, 자격 시험이나 임용 고시,
승진 시험까지 얼마나 많은 시험이 있습니까?

은혜라는 말을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참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은혜라는 말은
원래의 성경적인 의미나
신앙적인 의미와는 상관없이
아주 부적절하게 쓰입니다.

또, 다른 하나의 용어로
\'시험\'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시험이라는 용어는
신학적인 의미가 아주 다양하나

가장 부적절하게 사용되며
남발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마태복음
4장 1절에서 11절 사이에서는
예수님께서 광야에 나가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는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실 원문에서는
페이라스데나이라는
단어로 쓰여져 있습니다.

이 페이라스데나이라는 단어는
페라이조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이 페라이조라는 단어는
\'미혹하다\', \'유혹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우리가 흔히들 사용하는
\'시험\'이라는 말보다는 \'유혹\'이라는 말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한 번역이라고 생각됩니다.

시험에는 많은 종류들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시험은 사탄,
마귀로부터 다가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오늘 본문에서 시험을 받는 것처럼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시험을 받아서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말미암아
그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시험을 받았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줄 방책을 의논하매\"

가룟 유다는
사단의 유혹을 받아서 예수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밭을 판 값을 온전히 다 내어놓지 않고
얼마를 감추었을 때

베드로가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고 하면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받았던
물질에 대한 시험에 대해서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한 시험은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에게
신앙의 연단을 위해서, 신앙의 성숙을 위해서
하시는 시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22장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를 시험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했을 때

그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바치라고
시험하는 장면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또, 시험의 많은 부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숙시키고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
많은 환난과 역경을 주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그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지,
하나님의 도를 지켜나가는지를 시험하기도 합니다.

또, 성경에 보면
사람이 사람을 시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셉이
그 형들의 진실성을 시험하는 장면을 볼 수도 있고,

솔로몬을 향해서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을 시험하는 장면도 볼 수 있고,

다니엘의 친구들을
환관장이 시험하는 장면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많은 종류의 시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단에게서
오는 시험은 너무나 달콤하고
매력적이고 매혹적인 시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런 거부 반응 없이
이 시험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혹에 넘어가는 그런 경우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험,
이런 유혹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이런 유혹을 담대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또 다른 한 시험으로서
우리의 믿음의 성숙과 연단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실 때,

고난과 환난과 역경을 주실 때
우리는 기도하면서 참고 인내하면서
낙심하지 말고 그것을 잘 견뎌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성숙시키기 위해서,

더 연단 시키기 위해서 하는
시험이라는 것을 모르고 절망하고
낙심해서 주저앉아 버리는
그런 경우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유혹을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1절 2절 말씀을 보시면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그 때 사단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라는 것이
첫 번째 시험이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단의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이어서
사단은 다시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유혹하였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인기와 명예에 대해 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 시험은
이 사단이 예수님을
높은 산꼭대기에 데리고 올라가서
천하 지경을 다 보게 하고

예수님이
사단 자신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천하만국을 주겠다는 권세에 대한 시험을 하게 됩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하면서
이 사단의 유혹을 물리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인
아브라함 마슬로라는 사람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구를 단계로
설명한 것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인간의 욕구를
다섯 단계로 말하고 있는데

생리적인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감과 애정의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다섯 가지 욕구를 관찰해 보면

사단은
예수님께 첫 번째로 빵,
즉 경제적인 문제를 가지고 유혹을 했고,

두 번째는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시험을 했고,

세 번째는
권력과 권세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이
원초적인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그 원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안간힘을 씁니다.

먹고 자고 입는 문제,
가장 근본적인 문제 아닙니까?

이 문제가 해결되면
그 다음에는 명예를 얻고자 합니다.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자 힘씁니다.

인간이
배고픈 경험을 해 본 사람은
배고픈 고통이 얼마나 큰 지 알고 있습니다.

사십 일을 주리고
금식하신 예수님을 찾아와서
\'이 돌덩이를 떡이 되게 해 보라\'
거기에다가 단서까지 붙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덩이를 떡이 되게 하라\"

다른 사람이
나의 자존심을 건드릴 때
그것을 잘 수용할 수 있는 것도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한 것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전부다 자신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고,

분노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쓸데없는 과잉반응을 일으키게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유혹 앞에,
마귀의 시험 앞에 노출되어져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독일의 함부르크 대학의 교수였고
유명한 신학자이자 목사였던
틸리케 목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파도가 해변을 향해서
쉴새없이 밀려오는 것처럼
사단의 유혹은
우리 성도들에게 쉴새없이 밀려오고 있다.

그리고
유혹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항상 해변의 모래가 물에 젖어 있듯이
나의 가까운 곳에 유혹은 항상 존재한다.

그리고 이 유혹은
나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오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유혹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배고픔의 문제,
이 문제로 허덕이는 사람에게는 경제적인 문제,
빵의 문제를 가지고 사단이 접근해 옵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다 어떤 형태로든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욕구를 믿음 안에서
승화시켜나가지 못할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욕구는
사단이 우리를 유혹하는 하나의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되리라 생각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들이
그 일등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스트레스를 받고,
긴장감 속에 살아갑니까?
잠잘 때까지도 긴장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경 쇠약에 걸리고
심지어는 자살을 하는 아이들까지도 있다고 합니다.

별을 네 개 달았던
육군 대장이었던 분이
신앙인이었는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전역을 하는 날
자신의 심정은 4층 꼭대기에서
밀려 떨어지는 경험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냥
바닥에만 있던 사람은
떨어지는 느낌이 안 드는데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밀려서
떨어지는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끝없이 올라가려는
출세 지향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권력의 욕구도 가지고 있고,
정치적인 욕구도 가지고 있습니다.

물질을 작게 가진
사람은 오히려 허망함을 덜 느낍니다.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그 허무함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시험을 경험할 때,
특별히 유혹이라는 의미의 시험을 경험할 때
우리는 중심을 똑바로 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 외에는
우리가 이런 시험을 물리칠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나라의 한 왕이
많은 사람들을 불러놓고 시험을 했다고 합니다.

그 왕이 사람들에게
잔에 포도주를 가득 따라 줄 테니

이 포도주를 쏟지 않고
우리 성을 한바퀴를 돌고 돌아오면
높은 관직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출세하고 관직을 받으려고 시험에 참가했습니다.

포도주를
한 잔씩 들고 시내를 나갔습니다.

시내를 나가니까
시내에 온갖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자신들을 구경하는 사람,
물건을 파는 사람뿐만 아니라
예쁜 아가씨들도 있지 않습니까?
수많은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포도주 잔을 들고 성을 한바퀴 돌고 돌아왔는데

어떤 사람은
왕이 따라준 포도주 잔에
포도주가 반도 남지 않고 다 흘러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한 사람은
포도주가 한 방울도 쏟아지지 않고
그대로 담겨있는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왕이 어떻게
그렇게 포도주를 쏟지 않고
돌아올 수 있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 사람이 자신은
시내에 나가서 아무 것도 보지 않고
이 포도주 잔만 보고 길을 걸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반면에
포도주를 쏟았던 사람들은
길에서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며
두리번거리다가 포도주를 쏟고 만 것이었습니다.

시내에 나가서
무엇을 보았느냐는
왕의 물음에 포도주 잔만 바라본 사람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온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 중에
세상에 대해 너무 눈을 뜨고
두리번거리는 사람은 세상의 유혹에서
결단코 자기 자신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오직 주만 바라보고
말씀과 기도로 살아갈 때
우리가 세상의 유혹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두리번거리면 시험을 견딜 수 없습니다.

어떤 학생 가운데는
시험을 치다가 시험에 빠지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말 말씀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 가지 시험을 물리치신 방법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고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마귀의 유혹을
말씀으로 이겨내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구약 성경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데
우리가 성경을 많이 읽고 묵상하고
우리 마음에 품고 살아갈 때
우리는 세상의 유혹을 다 이기고
승리할 수 있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적과의 싸움에서 다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단이 우리 마음속을 비집고
들어와서 유혹할 때는 넘어지고 자빠졌습니다.

영웅호걸들도 그러했습니다.

때때로 다른 사람과의
싸움과 경주에서 패배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넘어지는 이유가
이 사단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항상 말씀과 기도로 무장함으로
사단이 주는 시험과 유혹을 이기는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