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여호와를 시험하지말라

히3:7-11절 주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1)
주님의 영성교회

전도자 요한 웨슬레의 (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말 중에 즉 \'가장 최선의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지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 시간이 최선의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어떤 상황이든, 우리에게는 최선의 시간이고 최대의 행복입니다.
이 시간 현재가 언제나 극적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엠마오로 가는 두제자와 동행했던 것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눈에 보이는 이상으로 더 확실하게 우리의 식탁에 같이 앉아 주시고, 우리의 침상에 같이 누워 주십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사실보다 더 중대하고 귀한 일은 없습니다.

7절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그러므로,,라는 (헬)\'디오\'는 8절의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는 말씀에 연결된 말씀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범한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함을 시사 하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히브리 저자는 시95:7-11에서 인용하면서 이것을 성령께서 하신 말씀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저자가 인용한 시편의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가 있음을 시사한다.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이 말씀은 “선지자나 천사나 모세보다 더 높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든,,이란 의미로 수신자들,,즉 당시의 이스라엘,,저와 여러분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과 아울러 즉각적인 행동을 하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 말씀에서 알 수가 있듯이, 우리는 항상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귀를 열어놓아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로,,“만일 어떤 사람이 내 마음 문을 두드리면서,,누가 여기 사는가?,,하면, 나는 대답하기를 여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신다. 전에는 마틴 루터가 살았으나 지금은 죽었다고 대답하노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나타난 인간 역사를 살펴볼 때,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사람의 공통점 한 가지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늘 귀를 열어 놓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노력했으며, 또한 그 삶의 전부를 주님께 맡긴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는 위대한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종교개혁을 이룩한 마틴 루터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시골교회 무명신부였습니다.
루터 안에 루터는 없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므로 그의 삶은 변화되어 위대한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예수와 함께하는 루터를 통해 종교 개혁이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세계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루터가 자신의 삶을 주님께 맡긴 결과의 산물입니다.

8절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이 말씀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 할 때에 발생했던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반역 행위를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직접적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반항하거나 거역한 적은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들의 지도자 모세에게 대적함으로써 하나님에게 반역하였습니다.
(출14:10-14;15:24;16:2-9;17:1,2).

이스라엘 백성의 수많은 반역 중에서 본 절의 내용이 말하는 반역은 출17:1-7에 나타난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여행할 때 물이 부족하자 모세와 더불어 다투었던 사건입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물을 주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호렙산의 반석을 쳐서 물을 내었는데 그 곳의 이름을 \'맛사\' 혹은 \'므리바\'라고 칭하였다(출17:7).
그러나 70인역에서는 \'맛사\'와 \'므리바\'라는 지명 대신에 \'격동\'(호 파라피크라스모스)과 \'시험\'(호 페이라스모스)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번역은 번역자가 시편95:7-11절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
이르시기를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 맛사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찌어다
그 때에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며 나를 탐지하고 나의 행사를 보았도다
내가 사십년을 그 세대로 인하여 근심하여 이르기를 저희는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도를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이 말씀을 번역할 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분노를 초래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사실에 비추어 해석한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강퍅케 하지 말라,,의 (헬)\'메 스클레뤼네테,,에서 \'메\'는 부정어이며 “스클레뤼네테,,는 ”말라서 굳은,, “딱딱한,,의 뜻을 갖는 ”스클레로서,,에서 파생한 동사입니다.
“강퍅함,,은 애굽 왕 바로가 하나님의 이적을 눈으로 보고 체험하면서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대적했던 것처럼(출9:35)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서 일절 거부하는 성향으로 굳어져 버린 인간의 심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마음,,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의 중심적인 요소,,즉 벧전3:4절 ”속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간의 지성(잠10:8;11:29), 감정(신28:47;삼상25:31;시34:18;사21:4) 의지(시64:6;잠6:18;전10:2;눅24:25;롬10:10;고전2:9;엡6:6)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9절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거기서,,,출애굽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방황했던 광야를 의미합니다.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시험하여 보았고,,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저주받은 사실, 즉 광야 40년 세월동안 저주받아 죽은 사실들,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은 사실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객관적인 증거로 하나님의 행사(에르가)를 보고자 하였습니다.

사십년 동안에,, 맛소라 사본과 70인역에서는 이 40년을 하나님의 진노의 40년으로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히브리 저자는 본 절에서 70인 역을 인용하면서도 이 40년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연결시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진로 속에 광야 40년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셨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시사 하는 말씀입니다.

거리 한 모퉁이에 빛이 바랜 먼지투성이 악기 몇 점을 땅바닥에 펼쳐놓은 채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열댓 명의 구경꾼이 모여 저마다 관심 있는 악기를 만져 보며 흥정을 했습니다.
악기 주인이 헌 바이올린을 들고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이 바이올린 얼마면 사겠소?,, 몇몇 사람이 1마르크에 사겠다고 했습니다.
한참 후 누군가 2마르크에 사겠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 값을 높이 부르지 않았습니다.

노인이 결정을 내릴 순간 누군가 \"나는 3마르크에 사겠소,,라고 소리치며, 노인의 손에 들린 바이올린을 소중히 받아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깨끗한 손수건을 꺼내 먼지를 털고 악기 구석구석을 닦았습니다.
흐트러진 바이올린 선을 매만져 높고 낮은 음을 튕기며 조율을 했습니다.
그리고 반짝이는 바이올린을 어깨 위에 올려놓고 너무도 아름다운 곡을 연주했습니다.
하얀 손수건 위에 갈색의 바이올린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신사는 조용히 그곳을 떠나자, 사람들은 그의 등 뒤로 박수를 칩니다.
거장의 손에 잡혔던 바이올린은 단번에 3천 마르크를 부른 새 주인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의 핸들이 누구에게 맡겨지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의 가치와 무게는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10절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이 세대,,라는 말은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체험했던 이스라엘 열조들을 가리키는 말씀으로 출애굽 하여 광야 생활을 하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강퍅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므로 하나님께서 격노하셨다.

“노하여,,라는 (헬) \'프로소크디사,,는 증오, 혹은 극도의 혐오,,를 느끼는 감정을 의미하는 헬라적 용어로 하나님께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뢰하지 않음과 강퍅한 마음에 대해 얼마나 강하게 분노하셨는가를 암시하는 말입니다.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미혹되어,,의 (헬)\'플라논타이,,라는 말로서 “방황하다, 속다, 잘못하다,,라는 의미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항상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잘못된 길을 걷고 있었음을 시사 하는 말입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였다. 이것은 단순한 무지(無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잘못을 가르쳐주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스스로가 거부해 버렸음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오래전 아프리카에서 제트비행기가 이륙시간이 되어도 이륙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유인즉 기체 내에 생쥐 한 마리가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무려 4시간이나 걸려서야 겨우 생쥐를 잡아내고 거대한 제트 여객기는 창공을 향해 날았습니다.
쥐가 기관 속에 들어가서 기관고장을 일으키면 아무리 큰 비행기일지라도 추락하기 때문에 작은 한 마리의 생쥐일지라도 시간을 허비해가며 쥐를 잡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위대한 인간도 생쥐처럼 숨어드는 사탄을 잡아내지 않으면 실패하게 됩니다.

당시의 이스라엘백성들도 그들의 마음에 교만과 불순종이라는 사탄이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어그러진 길을 가므로 결국에 진노를 받아 광야에서 죽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11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
내가 노하여,, (헬)오르게,,라는 말로서 죄를 싫어하시는 하나님의 본성에서 비롯된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진노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길을 계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부함으로 범 죄 하였고 하나님은 그에 상응하는 진노와 심판을 행하셨습니다.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
민14:21-23절, 28-30절의 말씀과 유사한 것으로 특히 민14:30절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라는 말씀과 동일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심판하실 것을 맹세하셨습니다.
이러한 맹세와 심판은 그들의 죄악에 대하여 정당하고도 적절한 보응입니다.
한편 심판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안식의 ”카타파우신,,라는 말은 창2:2절 안식하시니라,,에서 처음 언급되었으며, 그 후 십계명 가운데 출20:8절 “안식일,,의 규례가 제정되었습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안식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신12:9).
그러나 신약시대에 이 안식의 영적인 의미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 성취될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키는데, 그곳은 악의 세력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의와 공평이 실현된 곳즉 하나님의 나라,,영원한 낙원 천국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행7:49절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계14:13절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12절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삼가,,라는 (헬)블레페테,,는 ”조심하라,,는 의미로 “\'명령어,,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너희 중에 누가,,,이 말은 히브리저자는 성도들 중에 더러는 기독교 신앙을 저버리고 유대교로 들어갈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였음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그들은 유대교에서도 기독교에서 섬기는 같은 하나님을 섬기므로,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이 배교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히브리저자는 그러한 자들에 대해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지 아니하는,,이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말로서 새로운 문단의 시작인 본 절과 새 문단의 마지막 결론이 되는 19절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신앙은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앙을 가리키는 것으로 민14:11절 연관됩니다.
민14:1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신1:32;9:32;시106:24).

“악심,,은 민14:27,35절 ”이악한 회중,,이란 표현으로 두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이 얼마나 극에 달했는가는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은 믿음이나 신뢰의 부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대한 거부를 뜻하는 것으로, 따라서 본 절의 “믿지 아니함,,도 믿음에 대한 부족이 아니라, 믿음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며 그것은 참으로 ”악한,, 것임을 시사 하는 말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히브리저자는 본서에서 하나님에 대해 “살아계신,,이란 수식어를 첨가하여 자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히9:14;10:31;12:22).

이러한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것은 “죽어 있어서 인간의 부르짖음에 응답할 수 없는 이방신들과 대조를 보이기 위하여 흔히 사용된 문구입니다.(시115:4-8;사44:9-20;렘10:1-16;합2:19).

한편 “떨어지다,,의 (헬)아포스테나이,,는 ”분리되다, 떠나다, 배신하다,,\'라는 의미로 불신앙의 결과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믿는 형제들,,가운데 소수가 기독교를 버리고,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은 하나님의 최종 계시인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것으로, 옛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과 비교될 수 있으며, 그것은 하나님과의 완전한 분리를 초래하는 불법한 행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착한 늙은 부부의 집에 젊은 식모가 새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 식모는 행실이 좋지 못해 이웃에 사는 젊은이와 눈이 맞았습니다.
몇 달이 지나자 그녀의 몸에 아이가 생기게 되었고, 이것을 안 노부부는 식모를 나무라지도 않고, 다행히 어린애가 없어 애태우던 터라 친절히 식모를 위로하면서, 조금도 걱정 말아. 어린애를 나면 우리가 양자로 삼을 테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윽고 달이 차서 식모는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노부부는 출산 비용을 전부 부담했고, 출생한 아이를 양자로 삼는 수속을 밟았습니다.

그런데 수개월이 지나자 식모는 또 다시 몸이 무거워졌습니다. 이때도 친절한 노부부는
“어린애가 하나뿐이면 쓸쓸해 할꺼야, 동생이 있는 편이 좋아.”하고서, 두 번째 아이도 양자를 삼았습니다. 식모에겐 같은 일이 세 번 있었습니다. 어디까지나 마음 좋은 노부부는 이때도 그다지 화내지 않고 출생한 아이를 또 다시 양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대은(大恩)을 받은 젊은 식모는 산후의 몸이 회복되자마자, 노부부의 집에서 나가겠다고 말합니다.
깜짝 놀란 노부부가, “대관절 어떤 불만이 있어서 나간다는 거지?” 하고 물으니까, 그 식모는 태연히 하는 말이 “이렇게 아이 많은 집에서 식모살이 할 수는 없어요.

습1:6절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
딤전5:8절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이처럼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은 돌이키는 일, 즉 배교하는 일을 가장 싫어하시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