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와 행인같은 그리스도인

나그네와 행인같은 그리스도인
   
나그네와 행인 같은 그리스도인


본문 / 베드로전서 2장 11~12절

서양에 어떤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묘비문을 자기가 미리 썼습니다. 죽어서 묘비를 세웠는데, 그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아, 당신들이 지금 존재하듯이 나도 그러 했노라. 그러나 이제 내가 죽어 있듯이 당신들도 죽어야 할 것이다. 나를 따를 준비를 하여라.” 묘지를 지나가는 사람마다 이 묘비문을 읽어보았습니다. 어느 날 한 여행객이 이 비문을 읽고 나서 거기다가 몇 자 더 추가해서 적었습니다. “당신이 어떤 길로 갔는지 알지 못하는 한 나는 당신을 따를 의사가 없노라.”
이 세상에는 사람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어지럽고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압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하나님 나라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면서 살게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고 했습니다. 옛날 성경에는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나그네와 행인 같다.’는 것입니다. 나그네는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입니다. 낯선 사람인 것입니다. 시민권이 따로 있고 이민을 와서 사는 사람입니다. 행인이란 지나가는 길손입니다. 한 곳에 계속 있지 않고 잠시 머물다가 떠나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가 가는 존재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도 여관과 같은 곳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자기가 나그네인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사는 집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많은 돈을 들여서 사치스럽게 꾸며 놓고 삽니다. 잠시 후에는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많은 보화를 쌓아놓고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생이 나그네와 행인임을 모르거나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나그네라는 것을 알지만, 목적지를 모르기 때문에 이 세상을 떠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여, 그저 하루하루를 먹고 마시며 허랑방탕하게 삽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어두워지고 죄악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유럽 속담에 ‘어리석은 자는 방황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여행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방황하는 이유는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독일 태생의 미국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길을 잃었을 때, 더 빨리 뛰는 유일한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닙니다. 남보다 얼마나 빨리 달려가고, 빨리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나!’ 이것이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목적지를 모르기 때문에 방황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나그네임을 알 뿐만 아니라, 종착지가 어디라는 것을 분명히 압니다. 이 세상에서 잠시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면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게 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늘의 소망만을 가지고 삽니다.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인 디트리히 본훼퍼 목사는 독재자 히틀러의 반대세력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받고 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어느 날 아침 같은 방을 쓰는 죄수들을 위해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기도 전에 간수들이 그를 데리러 왔습니다. 사형집행을 예감하였지만, 그는 간수들 앞에서 평온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동료 죄수들이 마지막 이별의 순간을 아쉬워하며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할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이 왔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것이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본훼퍼 목사와 같이 소망을 가지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살지만, 하늘의 본향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삽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삽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향락을 부정하며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결코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 하늘나라를 사모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을 볼 때, 이상한 사람들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40~41절을 보면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에는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지금은 같이 일하고, 같이 먹고, 한 가족으로 같이 사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어떤 신앙을 가지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더라도 굳건하게 우리의 신앙을 지키며 사는 사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목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취미와 행복관이 달라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살기는 하지만 이 세상을 영원한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항상 마음을 하늘나라에 두고 사는 것입니다.


나그네와 행인 같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은?
오늘 본문에 보면, 나그네와 행인 같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닮았고, 그래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육신은 늙고 병들어 죽지만, 영혼은 죽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은 이 땅에 매이지 않습니다. 현실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육체의 정욕은 영혼을 거스릅니다. 영혼과 반대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영은 신령한 것을 기뻐하고 좋아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어서 기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기를 기뻐하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는 먹는 것, 자는 것, 노는 것, 세상 향락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영혼을 거스르고, 영혼과 싸우는 것입니다.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게 되면, 영혼이 피곤해지고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항상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합니다. 말씀대로 살면 기쁨이 있고, 평강이 있고, 행복함이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즐기고, 깨어 기도하기를 힘쓰고, 하나님의 일을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육에 속한 사람은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좋아합니다. 육체의 쾌락을 좋아합니다. 세상의 쾌락을 좋아합니다. 이렇게 육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은 삶의 자세가 다릅니다. 그래서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제가 대학생 시절에 가정교사를 여러 해 동안 했습니다. 믿음이 좋은 장로님, 권사님 가정에서 일할 때는 천국! 과 같았습니다. 새벽예배를 같이 갑니다. 함께 가정예배를 드립니다. 항상 찬양이 있고, 기도가 있습니다. 이런 가정에서 가정교사로 일할 때는 너무 행복합니다. 그런데 예수 안 믿는 부잣집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지옥생활이었습니다. 부모는 경쟁이나 하듯 외도를 하고, 날마다 싸웁니다.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곳이 바로 지옥인 것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과 육에 속한 사람은 이렇게 차이가 납니다. 영혼을 거스르면서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산다면, 병든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건강한 영혼이 이성을 지배해야 건강한 이성을 갖게 되고, 건강한 이성이 육체를 지배해야 건강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로 육체가 이성을 지배하게 되면, 병든 이성이 되고, 병든 이성이 영혼을 지배하게 되면 그 사람은 완전히 병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2. 나그네와 행인 같은 우리는 행실을 선하게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 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善)’은 아름다운 마음으로 착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베풀면서 사는 것입니다. 매우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나그네와 행인 같은 그리스도인들’은 아름답고 사랑스런 나그네로 살아야 합니다. 나그네의 삶을 사는 동안 선을 행하면서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잠깐 머물다가 떠날 인생이기에 더욱 진실하게 살고, 선하게 살고, 바르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남은 여생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며 살아야 합니다.
미국의 J. C. 페니라고 하는 사람은 미국에 체인점을 이천 개나 갖고 있는 부자로, 58세에 파산하였지만 신앙으로 시련을 극복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새 출발을 할 때, ‘너희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자신의 사업과 생활의 표어로 정하였습니다. 서서히 사업이 일어나면서 그는 교회와 사회사업에 많은 돈을 바쳤습니다. 은퇴 목자를 위해 플로리다에 백 가구의! 주택을 지었습니다. 그는 말년에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전에는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이니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가진 다음부터는 주는 기쁨이 움켜지는 기쁨보다 훨씬 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페니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길 바랍니다.
시편 90편 10~12절에 보면,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인생은 짧습니다. 사랑하면서 살아도 모자라는 소중한 이 시간에, 사람들과 싸우고 미워하며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잠시 머물다 가는 이 세상에서 선한 행실을 가짐으로 아름답고 매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 12절에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비방을 받으면서도 항상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싫어하고 비방하고, 예수 믿하면 무조건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그리스도인들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오해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 중에 비방받을 짓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중에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 아직 옛 사람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 사람도 있어서 세상 사람들에게 비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받은 성도들은 그 삶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알게 모르게 선을 베풀면서 살아갑니다. 이 어두운 세상을 밝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희생 봉사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1901년 2월 5일 뉴욕의 한 호텔에서 철강왕 카네기와 금융왕 모건이 앉았습니다. 모건은 카네기의 철강회사를 사들이기 위해? 오래전부터 주식을 몰래 사 모으고 있었습니다. 거래는 단 15분 만에 끝났습니다. 이날 모건이 카네기에게 지불한 돈이 4억9천2백만 달러였습니다. 모건이 카네기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서 현금을 제일 많이 가진 부자가 된 것을 축하합니다.” 그 당시 일본의 일 년 예산이 1억3천만 달러였으니 ‘최고의 부자’라는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날 카네기로부터 철강회사를 사들인 모건은 그 후 몇 몇 철강회사를 더 합병해 자본금 10억 달러의 세게 최대의 회사인 U.S 스틸을 설립했습니다. 세계 최대의 갑부로 등장한 것입니다. 이분은 국가의 신용등급을 평가하기도 하는 JP 모건사의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날은 ‘세계 최고의 재벌이 탄생한 날’로 기억되지 않고, ‘세계 최고의 자선가가 탄생한 날’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카네기는 바로 그 전에 펴낸 그의 저서에서 “부자의 인생은 두 시기로 나누어야 한다. 전반부는 부를 획득한 시기이고, 후반부는 부를 분배하는 시기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카네기는 그의 주장대로 사업에서 은퇴한 그 날로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1902년 워싱턴에 카네기협회를 설립했습니다. 그는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액수 2천5백만 달러의 사재를 털어 미국 전역에 2500여개의 도서관을 지어 헌납했으며, 카네기 회관, 카네기 공과대학, 카네기 교육진흥재단 등에 모두 3억 달러를 기증했습니다. 카네기의 이러한 자선 행위에 이어 록펠러재단(3억5천만달러- 1913년), 포드재단(5억달러-1936년) 등이 설립된 것은 모두 카네기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었습니다. 카네 기가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자기가 가진 것을 가지고 선한 일을 하고 하나님께 갈 때, 얼마나 보람이 있겠습니까!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있는 사람은 더 물질이 많아지고, 없는 사람은 더 살기가 힘들어집니다. 빈부의 차이가 갈수록 얼마나 더 심해지는지 모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많은 재산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면, 이와 같은 정신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성도들이 여러분 중에서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님 재림하시는 날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비방을 들어도 핍박을 받아도 선을 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머지않은 장래에 이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님 앞에 설 때, 어떤 모습으로 서길 원하십니까? 우리의 나그네 생활은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남은 시간을 썩어질 육체를 위하여 살지 않길 바랍니다. 이제는 곧 떠나게 될 세상을 너무 사랑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모두 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것조차 결국은 다 두고 떠나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남은 시간을 착하고 아름답게, 선한 일을 많이 하면서 살다가 주님을 만나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