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땅을 차지 하는교회

2009년1월 4일-11일 말씀사경회<?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교회(민13:30-14:10)

 

 

 

 

 

오늘은 2009년 새해 첫 주일입니다.

새해 첫 주일 예배를 드리는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아멘

 

그러면 한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랑 안에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입니까?

부자로 사는 것? 아니면 높은 권력자로 사는 것? 내가 소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서 사는 것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 산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 사는 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것이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찬송을 좋아 하십니까? 제가 좋아하는 몇 개를 불러 볼까요?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 하시니...”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변하도다!”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그 영광 찬란해...”

모든 찬송들은 하나님의 사랑, 즉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것에 대한 소망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 부자되고 권력자가 되는 것만이 하나님의 다스리심의 복은 아닙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아 복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아브라함은 말씀의 말씀을 따라 갔고, 다윗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고, 사도바울은 성령에 의지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았습니다.

 

성경의 시작도 하나님의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에덴동산으로 시작되어 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마칩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다스리심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전하시는 것도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 왔다! 천국이 너희 안에 있다! 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다스리시는 나라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천국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나라, 천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천국 살다가 천국가자!”

지옥 살다가 천국가지 말고...천국 살다가 천국가자! 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죽어서만 천국 가서는 안 됩니다. 살아서도 천국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다시 정리합시다.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내가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 내가 사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것이 복 받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 개인이 하나님의 복이 되고 우리 가정이 하나님의 복이 되고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 되고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받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나라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난 여러분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꼭 천국 살다가 천국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한해 동안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고 순종해서 승리하는 한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 땅에서 천국을 살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브라함의 선택은 이 땅에서 천국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을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3가지를 복을 약속받는데 땅과 큰 민족과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대한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은 창세기 12:1-3에 나옵니다.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땅의 복입니다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민족의 복입니다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복입니다.

 

이 3가지 복은 나라구성의 3요소입니다.

나라구성의 3요소는 국가영역인 영토, 국가 구성원인 국민, 그리고 국가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국가권력인 주권 아닙니까.

 

땅은 영토, 큰 민족은 국민,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주권에 관한 것을 의미하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국가건설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국가, 아브라함과 함께 세우시고자 하는 어떤 나라입니까?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는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복을 내리고...내가 저주를 하고...”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 천국입니다.

 

민주주의 나라의 주권은 백성에게 있습니다.

일본 식민지로 살 때의 주권은 일본에게 뺏긴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는 나라가 되게 해 달라는 것은 ‘하나님께 이 나라의 주권을 드리겠습니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시에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했던 것도 바로 이 도시의 주권을 하나님께 드리겠으니 하나님이 다스려 주시고 하나님이 사랑해 주시고 내가 하면 실수 할 수 있으니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다스려달라, 그래서 복 받는 도시가 되게 해달라는 것이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을 봉헌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 안믿는 사람은 뜻을 모르니까 비난할 수 있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은, 특히 이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이것을 놓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천국형성의 한 과정입니다.

이 땅에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첫째, ‘큰 민족의 복’은 애굽 땅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창세기의 마지막인 야곱의 70가족이 430년 만에 출애굽기에서 히브리민족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창세기와 출애굽사이 430년의 역사의 기록이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창세기의 마지막 야곱의 70가족이고, 출애굽기의 시작은 히브리민족입니다. 히브리라는 말은 ‘나그네’라는 뜻으로 애굽 땅에 야곱이 나그네로 왔기 때문에 생긴 말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70가족이 거주하던 고센 땅은 아기가 만들어지고 잉태하는 어머니 뱃속같은 곳입니다. 아기를 낳으려면 해산의 고통처럼 하나님께서는 히브리민족에게 고난을 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애굽땅에 있는 동안에는 새로운 생명이라는 자존감이 없습니다. 그래서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나와야 드디어 생명이 되는 것처럼 생명이 있는 민족을 출생하는 것이 고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히브리 민족을 고난받게 하시고 이들로 하여금 애굽땅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시 광야를 거쳐서 가나안 땅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둘째, ‘땅의 복’은 가나안에서 이루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히브리민족을 가나안으로 다시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가나안은 하나님이 지시하심으로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 이주했던 땅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정하시는데 아무데다 정하시겠습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정말 좋은 땅을 선택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을 보게 되면 지도를 펼쳐보면 중심은 이스라엘 땅입니다. 3개 대륙의 중심입니다. 아시아의 서쪽끝이고 유럽의 남쪽이고, 아프리카의 북쪽입니다. 가장 중심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는 것이 북극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남극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이 땅에 있습니다. 그것도 3개 대륙이 주로 잘 다니는 교통의 중심지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셨던 가버나움도 교통의 요충지입니다. 3개 대륙으로 움직이는 바로 그 요충지입니다. 그래서 가버나움의 북쪽을 보면 유럽이고 남쪽으로 가면 아프리카입니다. 그리고 동쪽으로 가면 아시아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중심에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가나안땅에 가게 하시고 또 히브리 민족을 수많은 땅가운데 바고 그 곳으로 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 땅을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어떻게 차지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오늘 우리의 숙제입니다.

 

국가구성의 세 번째 요소인 주권에 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이냐? 백성의 뜻을 따를 것이냐? 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족이 애굽으로 떠난 사이 가나안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었습니다. 헷 족속, 아모리족속, 가나안 족속, 브리스, 히위, 여브스 족속들과 싸워야 하고 쫒아 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신20:16-18“(16)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17)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 (18)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계획은 신정국가입니다.

하나님만을 주인으로, 왕으로 섬기는 나라, 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가나안에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기생 라합이 중요한 인물이 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가나안의 신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은 믿었기 때문입니다.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하에 애굽땅에 갔고, 애굽땅에서 나왔고 출애굽하고 광야 사막 길을 거쳐, 지금은 가나안 땅까지 왔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차지할 수 있습니까?

신앙인이 가져야 할 믿음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정탐군들을 보냈는데 그들이 돌아 와서 보고한 결과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A.(강론) 본문 민13, 14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인가?

 

두 문단으로 나누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갈렙은 약속의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30절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갈렙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철저한 신뢰입니다. 우리는 이 태도를 가리켜서 믿음이라고 합니다. 갈렙은 믿음의 사람이었고 그 믿음으로 할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10사람들은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31-33절 “(31)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라고 단정을 짓습니다.

그 근거는 철저히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강하고 우리는 약하다는 것입니다. 저들은 거인이요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 고 자기를 비하합니다. 슬픈 일입니다. 이를 가리켜 나온 말이 ‘메뚜기 콤플렉스’입니다.

‘메뚜기 콤플렉스’

메뚜기 콤플렉스의 주요 특성이 있다면 주눅 드는 것입니다.

패배주의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무력감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숫자에 눌리는 소수 콤플렉스도 있고, 힘에 눌리는 무능 컴플렉스도 있습니다. 외모 컴플렉스도 생기고, 가정환경 콤플렉스도 생기고, 학교콤플렉스와 학력콤플렉스도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메뚜기 콤플렉스”는 무엇입니까?

이것을 극복해야 참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뭔지 아십니까?

‘자기 주제에...’ 하는 말입니다. 우리 주제가 어떻다구요? 가난이 어때서요? 가난하다고 해서 배우지 못했다고 해서 천히 여김 받아도 되는 존재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받아 태어난 우리입니다.

 

저는 오늘도 기도 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한남제일의 성도들이 귀히 여김받고 높임받게 해 주세요. 천히 여김받고 조롱받지 않게 해 주세요. 할렐루야!’

 

같은 하늘아래 살면서, 우리도 저 연속극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분위기 있는데 가서 밥도 먹어 보고 차도 마셔보고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자연을 관광도 해보고 할 수 있습니다. 사치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없는 살림에 매일 그럴 수는 없죠! 하지만 가끔은 문화생활을 즐기면서 나를 높일 줄도 알고... 그러면 좋잖아요!

제 마음이 그래요 목회하는 제 마음을 아세요?

 

우리 방과 후 교실 학생들, 토요 공부방 학생들 수준있어요! 극장에도 같이 가고 연극도 가고 제가 갈 때마다 우리 한 목사님께 부탁을 하는 것은 가서 꼭 아이들에게 팝콘도, 음료수도, 햄버거도 사주라고 기죽지 않게 높여 주라고 합니다.

제가 언젠가 학생 수련회도 호텔에서 한 적이 있습니다. 권사님들과 비싼 커피숍 들어가서 먹습니다. 높임받고 귀히 여김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메뚜기 콤플렉스에 빠지지 마세요. ‘우리는 못해!’ 라고 단정짓지 마세요! 힘도 없고 믿음도 없어 천히 여김을 받을까 두렵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 때문에 백성들은 슬퍼합니다.

 

백성들은 10사람의 말을 듣고 밤새 통곡했습니다.

이처럼 믿음없는 사람들은 사람들을 슬프게 우울하게 만듭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14:1-4“(1)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2)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상상해 보세요. 한 두 사람이 우는 것도 시끄러운데 그 깜깜한 밤에 조용한 시간에 온 백성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통곡을 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가나안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을 주겠다고 하시는데 이것을 놓고 밤새 울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런 얘기를 할 때 하나님의 신정국가 설립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 발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는 말입니다.

결국 그 믿음 없는 말 때문에 벌 받아 불뱀에 물려 죽게 됩니다. 불뱀을 보내신 하나님의 심판의 마음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축복을 주겠다는 이들이 밤새도록 통곡하면서 소리를 지르면서 애굽으로 가자고, 여기까지 보내서 우리를 고생시키냐고 이럴때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셨겠습니까. 그래서 그것 때문에 불뱀에 물려 죽습니다. 이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모세가 간청하니 하나님이 보기도 싫은 구리뱀을 만들어서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보는 사람은 살고 안본사람은 죽고..

그리고 모세의 간청에 믿음없는 백성들은 믿음의 훈련을 위해 광야 40년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축복받지 못하는 이유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이 주시겠다는데, 하라는데 못한다고 단정짓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큰소리 치면 하나님이 광야에서 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가난한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이 핍절해집니다.

 

믿음없는 사람들의 말에 백성들은 밤새통곡,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4절“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애굽으로 돌아 가자고 하는 것 때문에 망하는 길을 가게 됐습니다.

 

 

2.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기들의 옷을 찢었습니다.

5-6절“(5)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6)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모세와 아론은 백성들 앞에 엎드리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옷을 찢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백성들의 잘못된 판단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지도자를 원하십니다.

 

교회는 다수결로 결정하는 곳이 아닙니다.

회의의 결정을 다수결로 하는 민주주의 방법을 선택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여 신본주의적 결정을 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의견도 중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수결을 못해서 당회가 결정을 할 때 만장일치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엎드릴 줄 아는 겸손한 사람 그리고 자기 옷을 찢는 하나님을 위해 울 줄 아는 믿음의 지도자를 원하십니다.

 

믿음의 지도자들은 옷을 찢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약속의 땅을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7-8절“(7)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당시의 가나안은 풍요한의 땅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저렇게 좋으니까 하나님이 주셨구나” 하고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영적인 지도자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믿음의 사람들이 가지는 판단기준입니다. 여러분의 판단 기준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 땅을 어떻게 해야 차지하게 될 것 같습니까? 돈이 있으면 될 것 같습니까? 숫자가 많으면 될 것 같습니까?

오늘 믿음의 사람의 고백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입니다.

집도 주시고 교회도 주시고 비전도 이루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으라고 했습니다.

9-10절“(9)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10)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

여호수아 갈렙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니..” 온 회중이 돌로 치려했다고 합니다. 이런 믿음의 말이 돌로 맞을 일입니까?

여러분들 중 혹시 본인이 여호수아 갈렙이라고 착각하시지는 않으신지요. 우리는 온 회중일 수 있습니다. 지금 어렵습니다. 정말 저 땅의 복을 받아야 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면 우리가 할 수 있다’라고 말을 하니 온 회중이 돌을 들어서 때려 죽이려고 합니다. 믿음의 얘기를 하는 사람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여호수아 갈렙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온 회중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을 돌로 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까?

 

그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10절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그 때에 믿음의 고백 때문에 고난받을 때에 나타나셨습니다. 할렐루야!(아멘) 할렐루야!(아멘)

믿음의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면 요단강을 가를 수 있습니다. 홍해바다를 가를 수 있습니다. 적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를 세울 때 나라가 시작될 때 미스바에 모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립니다. 제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손으로 백성들을 지키시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니 이들은 평화로웠고 잃어버렸던 땅도 찾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남았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 성령받아라!”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성령 받으라는 말은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가 만들어 진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하는 인생이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이번 부흥회를 하자고 할 때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여호수아 갈렙의 얘기를 들으십시다. 돌로 치는 자가 아니라 박수치면서 미스바성에 모이시기를 바랍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힘세게 기도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성령을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이 한해동안 새로운 역사가 분명히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꼭 참석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민수기 13,14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은

“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하신다” 는 것입니다.

 

 

B.(묵상)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계명은?

 “약속의 땅을 차지하려면 어떻게 믿어야 하나?”

 

제가 이번 주간에 핸드폰으로 문자를 하나 받았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천국 살다가 천국 가겠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죽어서 갈 나라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은혜를 받으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약속의 땅은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주시려고 하는 가나안 땅입니다.

이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사랑이 있는 땅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이 땅을 차지하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약속의 땅을 차지하려면 어떻게 믿어야 합니까?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3가지 계명을 주셨습니다. 

잘 들으시고 마음에 새겨 이 한해에는 하나님의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미래지향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힌 여인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

사람들은 여인이 지은 죄를 가지고 돌로 쳐 죽이겠다고 했지만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가서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과거를 묻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과거야 어찌 됐든지...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에게 미래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미래지향적입니다.

 

탕자를 보세요! 죄를 지은 아들이 돌아오자 아버지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그리고 새사람으로 살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도 미래지향적인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새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아멘)

 

하나님은 생각이 미래지향적이십니다.

우리도 미래지향적 생각하고 살면 하나님의 미래적인 생각으로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2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미래지향적인 생각의 사람과 과거지향적인 생각의 사람입니다.

30절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

올라가자고 말하는 갈렙은 미래지향적인 생각의 사람이기에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3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돌아가자고 하는 백성들은 과거지향적인 생각의 사람들은 불뱀에 물려 죽거나 광야 40년의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가복음9:62에서 “...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면 밭을 갈면 그 밭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엉망이 될 겁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미래지향적인 생각의 사람인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빌 3:13-14 “...나는...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앞을 향해 가는 것!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 가는 것! 이 신앙이고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억력 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의사가 진찰을 하더니...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참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데... 기억력과 시력,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기억력을 찾으려면 시력을 잃어버리고 시력을 찾으면 기억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당신은 어느 것을 원하십니까?\"

시력입니까? 기억력입니까?

시력을 선택하는 것은 과거는 잊어 버려도 좋으니 미래를 살겠다는 것이고 기억력을 선택하는 것은 미래는 어떻게 되도 좋으니 과거를 찾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 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 환자는 한참 생각한 후에 \"나는 기억력보다는 시력을 원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지나온 것을 기억하기보다는 내가 앞으로 가야할 곳을 보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앞을 향해가는 미래가 뒤를 돌아보는 과거보다 더 중요합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온 길이요, 닫힌 것인 반면에 미래는 새로운 가능성을 위하여 활짝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래지향적인 생각의 사람에게는 비전이 있습니다.

\'비전(vision)\'이란 말은 \"내다 보다\"(라틴어 ‘visio’) \"무엇을 본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내다보고 있습니까?

히브리서 11: 1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비전은 눈앞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는 없지만… 아벨처럼, 에녹처럼,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믿음의 선진들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꿈꾸며… 하나님께서 앞으로 우리위해 해주실 일을 바라며 행하는 일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하나님은 살아 계실 뿐만 아니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히11:6)

 

우리는 비전으로 살아야 합니다.

다윗이 비전을 가졌을 때는 골리앗을 눕힐 수 있었으나, 비전을 잃자 자신의 정욕조차 다스릴 수 없어 간음죄에 살인죄까지 지었습니다. 

사울이 비전을 가졌을 때 많은 왕들을 정복할 수 있었으나 비전을 잃었을 때는 자신의 질투심도 다스릴 수 없어 다윗을 죽이려하다가 오히려 그 가문이 망했습니다.

노아가 비전을 가지고 있었을 때는 방주를 지어 인류의 존속에 기여할 수 있었으나 비전을 잃었을 때는 술에 취해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냈고 자식을 저주했습니다.

엘리야가 비전을 가지고 있었을 때는 하늘로부터 불을 내릴 수 있었으나 비전을 잃었을 때는 이세벨을 피하여 도망하였을 뿐 아니라 자살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비전이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비전입니다. 우리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21세기를 맞는 우리 교회에 주신 비전은 “선교하는 예수공동체!”로 숫자적으로는 “3천의 비전”입니다.

초대교회가 성령을 받아 예수님을 증거하고 선교할 때 120문도에서 3천으로 부흥이 된 것처럼 우리교회에게도 초대교회처럼 선교하는 공동체가 되어 부흥의 비전을 이루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올해 우리교회의 표어도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소서!”입니다.

지난 해 모인 수를 기준으로 해서 15%정도의 부흥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기를 바랍니다.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래지향적으로 생각을 해야 합니다.

과거에 매어서 할 수 있다 없다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싸움, 영적전쟁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개인에게도 가정에게도 생각없이 살지 않고 비전을 가져야 하고 그리고 이것이 여러분의 기도제목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긍정적으로 말을 해야 합니다 .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시고 못하는 것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를 책망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아이의 아버지는 “ 주여,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할 때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할 수 없지만 예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복을 주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귀신을 내 쫒으시고 성난 바다를 잠잠케 하시고 보리떡 5개로 5천명을 먹이신 주님... 무엇보다도 자기 목숨을 바쳐 죄인 되었던 우리를 구원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긍정적으로 말해야 합입니다.

 

성경을 보세요!

7절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긍정적인 말입니다.

32절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매우 부정적인 말입니다.

특히 우리 신앙인은 말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민 14:28에서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말이 기도입니다.

하나님 귀에 들린 대로 응답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보면 우리가 하는 말은 어떤 말이든지 하나님에게 향한 기도가 된다는 말입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부른다고 해서 기도가 아닙니다. 말이 기도라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형편도 나아질 가망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약속하신 것은 꼭 이루시는 분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긍정의 말은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늠하는 잣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떤 말을 하고 있습니까? 어떤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흥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말을 하고, 망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1807년 미국 뉴욕의 허드슨강에 커다란 증기선 한 척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던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 배가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해. 불가능해! 불가능해!”

그런데 웬걸 그 큰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그 사람이 다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저 배를 정지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불가능해! 불가능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무엇을 보든지 전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주변을 살펴보십시오.

절망적인 말이 많은 사람이... 소망 있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말이 거친 사람이... 부드러운 삶을 누리고 살 수 없습니다.

더러운 말이 가득한 사람이... 깨끗한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부정적인 말이 많은 사람이... 긍정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비방을 일삼는 사람이... 칭찬을 받으며 살 수 없습니다.

과격한 말을 늘 하는 사람이... 편안하게 살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존경을 받고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은 그 입술의 열매를 먹고 살게끔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슨 말을 많이 하십니까?

말은 기도입니다. 내가 말한대로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회의를 하더라도 주님께 의견을 제시하십시오. “너희가 말을 하려거든 주께 하듯 하라”

 

우리 민족이 버려야 할 말 가운데 하나가 \"죽겠다\"는 겁니다.

\"힘들어 죽겠다. 답답해 죽겠다. 어려워 죽겠다. 하다못해 너무 많이 먹어서 배 터져 죽겠다, 좋아서 죽겠다\" 이런 사람들은 \"죽겠다, 할 수 없다\"는 중병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그 말이 자신의 인생을 얽어매고 있는 겁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이 병에 걸리면 정말 아무것도 못하게 됩니다.

 

하찮은 말 한마디가 무슨 인생을 지배하랴 싶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말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말이 기도이기때문입니다. 할 수 없다는 병에 걸린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맛 볼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의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회개하십시오.

 

미국 여성기업가 가운데 오스틴이라는 여자 속옷을 팔아 부자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에 뚱보들이 많아지면서 스몰, 미디엄, 라지, 엑스라지 싸이즈 가지고는 팬티를 감당할 수 없어 \"뚱보형\"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에 뚱보는 많은데 뚱보형 팬티는 팔리지 않는 겁니다.

오스틴은 부정적인 말을 쓰지 마라 뚱보형을 \'퀸즈 싸이즈\' ‘여왕사이즈’라고 이름을 바꾸라 명령했습니다. 그때부터 퀸즈 싸이즈가 불티난 듯 팔렸습니다.

긍정적인 말이 오스틴에게 성공을 가져다 준 겁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 첫 열매, 첫 생각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합니다.

다윗처럼 내가 껠 때에 주와 함께..했다는 말처럼 하나님만 생각하고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그래서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며 저 자신에게 말을 합니다.

저녁 기도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거울을 보며 말을 합니다.  \"오창우, 하나님은 너 사랑한다! 하나님이 세운 종이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주 안에서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의 비전을 이룰 것이다.\"

그러면 내 사전에서 부정적인 말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그 말에 능력을 부어 주시기 시작하십니다.

 

여러분도 아침저녁으로 그렇게 해 보세요. 따라하세요.

\"아무개, 너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재다!

나는 하나님의 종이다!

나는 주 안에서 나는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성공자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면 마귀는 떠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주변의 부정적인 사람들이 변하든지 떠나든지 할 것입니다.

부정적인 환경이 좋은 환경으로 바뀌어져 갈 것입니다.

이처럼 입술에서 나오는 말은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말에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긍정적인 보고를 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았고 축복을 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말한 대로 역사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말한 대로 가나안은 그들의 밥이 되었고, \"가서 우리가 취하자\"고 선포했던 땅은 대부분 취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밟는 땅마다 그들의 것이 되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3. 신앙적으로 행동을 해야 합니다.

8절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32-33,4절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욥42: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신앙적으로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하니 어려움이 어려움이 되는 것이 아니고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것과 신학적인 것은 다릅니다.

신학은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 연구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이 나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신학적인 생각은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러지?...” 의심하는 것이고 이런 사람은 상처투성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일만 있으면 하나님께 원망을 합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사람은 안그렇습니다. 신앙적인 사람은 어려움과 고난이 오면 “하나님의 뜻이 계시겠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사랑하는 자식을 징계하지 않으리오”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도 주시고 고난도 주시는 줄로 믿는 것입니다.

 

성경은 신앙적인 사람이 승리를 했지 신학적인 사람은 승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학적으로 생각을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을 다 외워서 어쩌시겠습니까. 신학서적 수 천권을 읽어서 무엇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

성경을 외우지 못해도, 신학서적을 한번도 안읽으셨어도, 하나님은 신앙적인 사람을 축복하시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승리케 하시는 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애굽의 국무총리 요셉은 신앙적인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바라보며 묵묵히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충성을 다한 사람입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살 때에도 감옥에 갇혀 억울한 옥살이를 할 때도, 긴 시간을 고난받고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성경은 그는 하나님이 함께함으로 형통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신앙적인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로 세우셨습니다.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는 성공한 후에도 자기 형제들에게 고백하기를 “형님들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먼저 이곳에 오게 하셨습니다”

한 달란트면 어떻습니까? 다 하나님이 뜻이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적인 사람은 고난이 와도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이 더 잘되게 하신다는 믿음으로 그 어떤 상황도 받아들이고 순종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어떠한 상황이 와도 하나님의 분명하신 뜻을 알고 감사하시고 순종하시면 약속의 땅을 차지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우리의 상황을 어떻게 받이 들이고 있습니까?

어렵다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려움을 통해 더 큰 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어려울 때를 살아가는 지혜는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커널 샌더스의 회심과 성공은 신앙적인 표본이 됩니다.

KFC 앞에 서있는 할아버지를 다들 아시지요? 그 분이 커널 샌더스입니다.

1952년, 65세에 105불짜리 수표 한 장과 고물 자동차 한 대가 전부였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무척 자신만만한 사람이었지만, 당시의 경제 불황으로 사업은 위축되고 경영하던 식당은 화재로 전소하고 말았습니다. 아들마저 잃고 아내도 떠나버리자, 그는 일종의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파산한 채로 근근이 살던 어느 날 그는 한 불쌍한 여인이 예배당 맨 앞자리에 앉아 부르는 찬송을 듣습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하염없는 눈물과 함께 자신의 연약함을 처음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자신 있던 ‘양념 닭고기’ 조리법과 양념 통, 압력솥을 들고 흰색 정장을 입고, 도시의 식당 주인들을 찾아 나섭니다.

 

자신의 닭고기 요리를 팔 때마다 5센트씩 달라고 합니다. 식당의 주인은 가당치 않다고 내쫓기 시작합니다. 1집, 2집, 10집.. 다 쫓겨났습니다. 100, 200집을 넘었습니다. 1,008명의 식당 주인들에게 쫓겨났고 1,009번째의 식당 주인이 수락합니다. 그리고 전 세계에 약 1만 5천 개 이상의 매장으로 확장된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사업이 바로 ‘켄터키 후라이 치킨 / KFC’입니다. 그는 약 9,660억 원의 자산가 커널 핼란드 샌더스(Colonel Harland Sanders)입니다.

 

 그는 10년 후인 75세에 또 새로운 출발을 합니다.

90세, 별세 순간까지 남은 15년을 전 세계를 다니며 간증하고 선교합니다.

어떤 기자가 물었습니다. “생애 정상의 시기는 언제였습니까?”

그는 주저함이 없이 고백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 거듭난 이후, 모든 날들이 내 인생의 정상의 날들이었습니다”

 

성경의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믿음대로 되리라는 신앙적인 태도입니다.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남은 자, 그루터기, 들을 귀가 있는 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 이것이 신앙적 행동하는 사람들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생각이 미래지향적이어야 합니다. 꿈이 있어야 합니다.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긍정적인 것으로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말은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앙적으로 행동하시기를 바랍니다. 내 눈앞에 보이는 크고 작은 일에 너무 연연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놀라운 축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C.(적용) 실천을 위한 성령기도

1. 오늘의 말씀이 나의 말씀이 되게 하소서!

2. 예배, 섬김, 전도의 교회가 되게 하소서!

3. 21세기 3천 비전을 이루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