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 성탄을 맞는 교회

2008년12월 21일 말씀사경회<?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구주성탄을 맞는 교회(마1:18-25)

 

 

 

여러분 성탄인사를 합시다. “메리크리스마스!” 발음이 참 좋습니다(하하)

성탄의 은혜가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제 크리스마스카드를 한 장 받았습니다.

한국 루터교 총회장 엄현섭 목사님이 보낸 카드인데 그 안에 “목사님, 저는 한남제일교회의 전신인 한일교회 출신입니다. 그래서 담임목사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아나운서 정은아씨도 우리 교회 중고등부 출신입니다.”

 

오늘 아침에 미국에 계신 황약슬 장로님께서 안부 인사를 보내오셨습니다. 여러분에게 꼭 전해라라고 해서 전해드립니다.

 

우리 한남제일교회는 12월 셋째 주일, 예수님의 성탄이 있는 그 주일에 시작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1964년에 시작됐으니까 44번째 생일입니다.

교회창립주일의 설교준비를 하면서 제 마음에 언뜻 드는 생각이 ‘교회가 처음 시작할 때 성도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 교회를 시작했던 교회는 바로 ‘구주성탄을 맞는 교회’였습니다.

오늘 교회를 시작했던 처음 마음, 처음 사랑을 회복하여 구주의 성탄을 축하하며 맞이하며 21세기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 될 우리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은헤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인 마태가 기록한 예수님의 성탄에 대한 기록이다.

A.강론/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인가?

 

2가지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1.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다.

18,19절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예수님은 사람의 씨로 잉태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동정녀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은 사도신경에도 나올 정도로 중요한 기독교 교리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의 씨로 태어나면 죄인입니다. 하지만 성령하나님으로 태어난 것은 죄 없는 의인이 됩니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구원이 필요한 존재이지 남을 구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위대한 다윗도 시51:5에서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나를 죄 중에 잉태하였나이다“라고 힙니다.

인간은 다 죄인입니다. 구원받아야 할 대상이지 남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태어나신 예수님뿐이십니다.

행4:12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하게 부모의 죄에 오염이 없이 태어나신 구세주임을 마태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죄가 없으심에 대하여 

요일3:5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벧전3: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라고 했습니다. 의인이 돼서 하나님 앞에 인도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죄에서 구원하실 구주가 되실 수 있습니다.

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어린양도 흠이 없어야 되듯이 예수님도 흠이 없는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것입니다.

 

히4:14-16에서는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렇게 나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도 다 죄 없으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케 하신 이유를 생각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2.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이다.

22절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갈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그 약속은 에덴동산, 하나님 나라의 회복입니다.

22-23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님의 이름은 구원자 예수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골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사9:6-7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모셨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다. 그의 왕권은 점점 더 커지고 나라의 평화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가 다윗의 보좌와 왕국 위에 앉아서, 이제부터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그 나라를 굳게 세울 것이다. 만군의 주님의 열심이 이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눅4: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임마누엘’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시련입니다. 에덴동산의 회복이고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아들의 나라,

-영원한 나라,

-하나님나라의 복음!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살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하고 병들고 죄 많은 사람들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함께 살았던 것처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갈 줄로 믿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아 갈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죄인이기 때문에....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가 없는데...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시니까 우리안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가능한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은 예수님의 탄생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예수님의 나심에 대한 기록으로 어떻게 예수님이 예수님 되실 수 있었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요셉이 그 모델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노라면....요셉은 예수님의 아버지 될 자격이 있습니다. 그 신앙을 찾아 성탄을 맞는 우리의 신앙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B. 묵상/ 구주성탄을 맞는 교회는?

1. 겸손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높여 주십니다.

 

‘겸손하라! 하나님이 높여 주신다!’ 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19절을 봅니다.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

마리아의 남편,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약혼자가 자기도 모르는 임신을 한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입니다.

겸손입니다. 신중함입니다.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요셉이 마리아의 임신사실을 알고 화를 내고 떠 벌렸다면, 율법대로 처리를 했더라면,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를 않죠!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힌 여인처럼 질질 끌고 와서 돌로 쳐 죽이자 했을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을 임신하고 나서 사람들에게 질질 끌려서 왔다고 했다면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어찌 됐을까요? 생각 만해도 끔찍합니다.

 

전5: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오늘도 하나님은 이 시대의 역사를 이끌고 가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고전 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약4: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교회 아래 설렁탕집(한남설렁탕, 또 오소의 주인 오집사)은 불황인데도 잘됩니다.

주일에는 쉬는데도 잘됩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하나님을 잘 믿는 주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너무나 놀랍다고 합니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겸손함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의 종에게도 겸손합니다. 직원들에게도 겸손합니다. 손님들에게도 겸손합니다.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일 하루 장사하면 500만원의 매출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일날 장사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너무 크기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7년 전에 이 장사를 하기 시작할 때에 주일에 쉬지 않았다고 합니다.

셋번째 주일날 교회에 다녀오니 직원 하나가 “자기만 교회에 갔다오고..”라고 하는 말을 들었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하고 그 주일부터 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주일에 쉬니까 직원들이 같이 쉬니까 좋아서 이직하지 않고 손님이 오지 않으면 연락을 해서 오라고 하기도 하고, 주인처럼 일을 하니 손님들이 좋아하고 그러니까 장사가 더 잘되고 하나님 때문에 손해 보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더 크다고 하면서 저에게 간증을 했습니다.

 

며칠 전 (한복하는 이미옥집사) 하나님 때문에 너무나 기분이 좋은 분을 만났습니다.

해마다 성탄의 계절이 되면 가난한 이들을 찾아 사랑의 쌀을 나누어 줬는데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너무 놀라워 두렵기까지 한답니다.

사실 올해는 11월 들어 가게매상이 줄어 가게세 내기도 어려우니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을 그만 둘까했답니다. 며칠이 지나는데 잠이 오지 않더랍니다. 다시 며칠 후 ‘그래도 해야지..나보다 어려운 분들이 많은데..’하면서 결정을 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답니다. 그로부터 정확이 이틀 후 가게에 한 손님이 찾아와서 매상을 올려 주는데 자기가 도우려고 했던 액수의 딱 10배를 주시더랍니다. 할렐루야!

정황상 전혀 올 수 없는 손님이었는데... 찾아 온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밖에 달리 생각할 수 없더랍니다.

바로 이런 것이 겸손함의 영성이요, 요셉의 영성입니다.

 

케냐에서 마사이 족에게 선교하는 안찬호 선교사의 ‘들어 쓰심’이라는 책에 보면 280여 마리의 소가 병들어 죽어 가자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할까봐 한선교사는 더 죽지 않게 해달라고 그 집에 가서 기도를 했더니 그 주인이 찾아와서 하는 말이 “선교사님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280마리를 다 죽일 수 있었지만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160마리나 살려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모든 염려가 다 해결 됐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보다 성경도 많이 알고 설교도 많이 듣습니까. 라디오나, tv를 켜면 얼마나 유명한 목사님들이 나오셔서 말씀을 하십니까. 그렇다 보니 성경말씀도 많이 알고 지식도 높아 졌습니다. 교회에 대해서 아는 것도 많습니다. 그런데 비판은 잘 하는데 신중함이 없습니다. 겸손함이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판단을 해보면 너무나 사람들이 일을 해 버리니 하나님이 일할 시간이 없습니다. 된다, 안된다를 사람이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 판단해 버리니... 하나님이 일하실 시간이 없어 보입니다.

 

만약에 요셉이 법대로 판단을 했었더라면 예수님이 이 땅에 어떻게 태어나셨겠습니까.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심을 믿으시고 좀 더 겸손하시고, 신중하시고 함부로 말하지 말고 주 앞에서 한 껏 낮아 지셔서 하나님이 높이시는 그런 은혜가 우리와 우리 교회와 이 민족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아버지되는 요셉은 가난한 목수였습니다. 배운 것도 사회적인 지위도 없는 평민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매우 신중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말이 이해가 됩니까? 과연 이해되지 않는 일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해 보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던 요셉처럼 노예로 팔려 오고 감옥의 죄수가 되는 억울 한 일을 당해도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겸손히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방해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겸손하게 순종하니까 하나님이 높여 주셨습니다!

이 겸손함의 신앙이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증거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라!)

 

2. 경건하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됩니다. 

24-25절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요셉이 마리아에게 하는 행동은 경건함이 느껴집니다. .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아기를 낳을 때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경건이라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행동입니다.

 

그래서 경건하게 사는 것은 무엇인가?

딤전 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약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경건을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가치로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5:16“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여러분 경건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뉴욕의 어떤 공동묘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가 수년간  일주일에 한번 거의 빼놓지 않고  아들의 묘지에 꽃다발을 갖다 놓았습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꽃다발이 1년이면 52개, 2년이면 104개, 3년이면 156개입니다. 꽃 한 다발에 5달러짜리니까 1년이면 260불, 2년이면 520불, 3년이면 780불이나 되는 적지 않은 돈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어머니가 아들의 묘지를 찾아와서 이제는 얼마 못살게 되어서 마지막 꽃다발을 놓고 가게 될 거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관리인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리워하며 눈물로 꽃다발을 놓고 가는 어머니에게 유감스러운 말을 했습니다.

“부인, 저는 부인의 아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매 주마다 당신이 보내주신 5달러짜리 우편환으로 꽃다발을 사서 아드님의 묘소에 갖다놓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어머니는 자기의 슬픔을 이해 못하는 관리인의 ‘의미없다!’는 말에 섭섭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무엇이 잘못됐습니까?”

관리인이 말했습니다.

“꽃은 불과 몇 시간도 안돼서 다 시들어버리고 다음날이면 썩어 냄새가 나는데 이 공동묘지에 누구 한 사람도 그 꽃을 가까이 하고 향기 맡는 사람이 없습니다. 죽은 사람이 냄새를 맡습니까? 좋아합니까? 그것은 부인의 생각일 뿐이고 죽은 사람은 꽃 냄새 못 맡습니다. 저는 교회 나가는 신자인데 전 가끔씩 공립병원에 입원한 사람들 가운데 소외된 사람들에게 꽃을 사다 준 일이 있습니다. 제가 꽃을 그들에게 갖다 주면 환하게 웃고, 냄새 맡고, 기뻐하는 모습을 봅니다. 부인께서도 매 주마다 이제는 공동묘지에 꽃을 가져오지 말고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꽃을 한번 갖다 줘보십시오.”

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삼 개월이 지난 어느 날, 그 부인이 직접 운전을 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공동묘지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당신이 한 말이 맞았습니다. 제가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꽃을 갖다 주었더니 그들이 너무 너무 좋아하더군요. 좋아하는 그들의 얼굴표정을 바라볼 때 내 마음도 기뻤습니다. 내 마음이 편안해 졌습니다. 그러면서 신경성 질환도 떠나고 몸이 이렇게 건강하게 회복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남을 기쁘게 했더니 자기 마음이 기뻐졌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주었더니 자기도 웃음이 나오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병이 떠나고 몇 주일을 넘길 수 없다던 의사의 말은 거짓말이 되어버리고 성경말씀대로 살았더니 복이 임했다는 말입니다.

 

어려서 선다싱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추운 겨울 높은 산을 넘어 가는데 병들어 쓰러진 사람을 보고 한 사람은 그냥 가고 선다싱은 업고 갔습니다. 힘들게 힘들게 겨우 산을 넘어 거의 다 와서 보니 한 사람이 쓰러져 죽었는데.. 병든 사람을 외면하고 간 사람이 추위에 얼어 죽었습니다. 하지만 선다씽은 병든 사람을 살리려고 애쓰는 바람에 추위도 잊고 사람의 체온에 추위를 견디고 살았다는 이야기 입니다. 남을 살리는 것이 바로 내가 사는 길입니다.

우리의 경건함이 무엇입니까? 내가 주일 성수하고 십일조 생활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의 진정한 경험은 남을 배려하고 도와줄 줄 아는 마음과 삶에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들 속에 함께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성탄을 맞는 성도들의 마음속에 겸손함과 경건함이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한남제일교회가 바로 요셉과 같은 신앙의 교회...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체험하고 더 나아가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까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자신에게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받아들이는 겸손함이 있고 더 나아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경건함으로 땅끝까지 선교하는 교회. 열방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21c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 한남제일교회의 모습이요 하나님이 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일으켜 세우실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