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12월 7일 말씀사경회<?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수영을 배우자!
한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가던 부인이 남편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여보, 나하고 어머니하고 물에 빠지면 누굴 먼저 건져낼 거예요?”
여러분이라면 누구를 먼저 건져 내시겠습니까?
남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어머니를 먼저 건져 낼거야! 어머니는 한번 돌아가시면 끝이지만 부인이야 또 얻으면 되잖아!”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남편에게 실망한 아내가 지혜자를 찾아 갔습니다.
“선생님, 이런 남편하고 살아야 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혜로운 선생님께서 대답을 했습니다.
“부인, 그냥 사세요. 그리고 부탁이 있는데.. 오늘부터 수영을 배우세요!”
맞습니다. 누구 때문에 상처를 받고 고민하는 사람은 차라리 먼저 수영을 배우십시오. 그러면 쓸데없는 실망이나 허탈감은 이겨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렇게 사랑해서 선택하고 사는 부부라도 완벽한 배우자, 완벽한 환경도, 나를 만족시켜줄 그 어느 것도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것은 교회 공동체에도 없습니다.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님도 장로님도 권사님도 없습니다. 다 부족합니다. 그저 노력할 뿐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믿을 분이 없습니다. 사람보고 상처받지 마십시오.
물에 빠질 대를 대비해 수영을 배우는 것이 지혜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나를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나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교회는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신앙 좋은 아내의 치마폭을 붙잡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탄 분위기가 나질 않는다?
12월은 예수님의 성탄의 계절입니다.
요즘 경기가 어려우니까 다들 성탄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탄의 분위기는 무엇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성탄분위기가 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까?
성탄분위기는 무엇보다 교회에서 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일인 성탄절을 4주 앞둔 1달을 교회력에서는 대림절, 대강절이라고 큰 명절로 지킵니다. 소위 성탄의 분위기를 잡는 시기가 대림절, 대강절입니다. 대림절은 말 그대로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이미 이 땅에 오신 그 2000년 전의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기 보다는 다시 오실 예수님, 재림예수님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대림절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12월 25일이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이라고 한다면 어떤 것을 준비하셨다가 맞이하시겠습니까?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 날을 종말론적인 의미로 준비했습니다.
그 날이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무엇을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마태복음 24,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비유,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에게 하는 것이 바로 나에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기억하고 도와주며..나누며 살아야지....하며 이렇게 준비했다는 말입니다.
어려울수록 콩 하나라도 나눠먹는 심정을 가지는 것, 이런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성탄의 분위기 아닐까요?
우리 교회에서도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생각하며 이번 성탄절에 사랑의 쌀 나누기 행사를 하는데 잘하는 일입니다.
누가가 소개한 시므온
오늘 성경은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던 한 평범한 성도의 이야기가 소개 되고 있습니다.
시므온이라는 분입니다.
복음서의 기록에 보면 아기 예수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찬양을 한 분이 몇 명 안 됩니다.
마태복음의 동방박사 그리고 누가복음에 양치는 목자, 그리고 시므온과 안나 정도입니다.
시므온은 어떻게 핏덩이같은 아기예수님을 보고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야이신 것을 알 수 있었을까요?
오늘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누가가 전하려고 하는 것은, 성령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나고 축복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이 대림절 둘째 주일에, 시므온을 통해 주님을 어떻게 준비하고 만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A.(강론)/ 누가복음 2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인가?
1. 아기 예수님은 모세의 법대로 예루살렘에 가셨다.
22절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모세의 법대로...’
1) 부모는 아기 예수님을 하나님께 바치는 헌아식을 했다.
23-24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모세의 법에는 아이를 낳은 부모는 두 가지 예식을 합니다. 하나는 산모를 위한 정결예식으로 속죄제를 드리고 다른 하나는 헌아식으로 아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생명을 하나님께 바치니 하나님이 이 아이를 책임지고 키워달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부모가 비둘기 두 마리를 제물로 드린다고 한 것은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본래 번제는 양으로 드리게 되어 있는데... 경제적으로 부족하면 비둘기로 드리라고 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육신 부모, 요셉과 마리아는 가난해도 모세의 법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법의 의미는 가난한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의 동전 두닙도 기억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자격을 갖추지 아니하면 회비를 제대로 내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은 제물을 드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은 성경의 정신, 복 받는 정신에 어긋난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예수님의 부모와 같이 가난해도 하나님을 섬길 줄 아는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런 신앙이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가 되는 영광을 받게 된 이유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2) 시므온은 성령의 인도로 예수님을 만났다.
25-27절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린다는 것은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해 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 민족을 위해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조용히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좀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당시의 사람들과는 좀 다른 태도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나라가 메대와 바사에게 찢기고 헬라에게 빼앗기고 로마에게 또 넘어갔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위로는 다윗과 같이 위대한 왕이 나타나서 로마를 쳐부수고 독립된 나라, 부강한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나라를 기대했고 하나님은 그렇게 해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사랑의 왕진 가방’이라는 책의 저자는 의사로서 중국과 북한에 병원을 짓고 병든 이들을 치료해주는 분입니다.
이분의 책에 보면 일을 하면 할수록 나의 기도제목이 바뀌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아무개 병원 잘 운영되게 해 주세요..내가 하는 일을 놓고 도아 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지금은 하나님 저에게 음성을 들려주세요. 하나님의 쓰임받게 해 주세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인 신앙생활!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의 신앙이었다는 말입니다.
요즘처럼 어려울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위로가 무엇입니까? 무엇이기를 원하십니까?
경제를 일으켜 잘 먹고 잘 살게 해주세요, 북한을 망하게 하여 남북통일을 이루게 해주세요, 교회가 부흥하여 큰 교회 만들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하십니까.
제가 두려운 것은 내가 큰 교회를 만들 수 있는가 없는가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과연 이 시대에, 이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것이 무엇인가 하는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신다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에 나오는 대로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쫒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했을 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를 모른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실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냐는 그것만은 아닙니다.
많은 일을 해야지요. 하지만 다윗도 성전건축을 못했어요.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셔서 못했습니다. 다윗은 철저하게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고 믿었습니다. 그것에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자손 만대까지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바울도 그렇게 많은 일을 했지만 남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정작 자신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까 항상 두려운 마음을 가졌고 그 두려운 마음으로 행동했습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아닙니다.
역사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시므온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시므온이 원하는 이스라엘의 위로가 이렇게 내가 하고 있는 일에 하나님이 도와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그 어느 때 보다도 큰 교회들이 즐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러운 일이기도 합니다만은 과연 하나님은 어떻게 느끼실까? 하는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큰 교회에 가면 총회장도 되어야하고 기독교 대표자도 되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도 상관이 없는 그런 한국교회! 과연 그 속에 두려움이 있냐는 것입니다.
세습이라는 말은 하기가 싫습니다. 목사 아들이 목사되기가 어렵기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얘기가 무슨 얘기인지 여러분은 아실꺼라 봅니다.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다고 했습니다.
‘의롭다’는 말은 ‘정직하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경건’이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위로’라는 말은 ‘하나님의 함께하심’‘하나님의 변호자 되심’‘’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는 성령의 지시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성전에 들어가서 아기 예수님을 만나고는 ‘아, 이 아기가 그리스도시구나’ 알게 되고 찬양하게 됩니다.
만약에 지금 우리 주님이 재림주로 오신다면...
그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알아 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두렵지 않습니까? 떨리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다리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성급합니다. 금방 무슨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 해 합니다. 앞에 홍해 바다가 가로막혀 오도 가지도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 14:13).” 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믿음은 의(義)의 궁극적인 승리를 받아들이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기디리는 믿음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믿음입니다.
여러분, 시므온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기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남은자”“그루터기”입니다. 바로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칠천명과 같은 사람이요, 14만 4천명과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메튜헨리는 “땅의 침묵자”라고 했고 토인비가 말하는 “창조적인 소수”입니다.
마24,25장에 마지막 때의 비유를 기억하십시오
24:36에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두 사람 중에 하나는 데려가고 다른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양과 염소로 나뉜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주님을 성령안에서 알아보시고 하나님의 함께함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2.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안고 찬양과 예언을 했다.
28-29절 “(28)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1) 예수님은 세상의 구원자라고 찬양했다.
30-33절 “(30)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2)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예언했다.
34-35절 “(34)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35)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시므온은 예수님을 알아보는 몇 안되는 사람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성령안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났기때문입니다. 성
“성령 안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B.(묵상)/ 성령 안에서 살려면?
1. 교회중심으로 생활하면 성령 안에 살게 되고 든든히 서게 됩니다.
22,25절 “모세의 법대로...예루살렘에 올라가니..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안나도 교회 안에서 주야로 금식을 하면서 생활했습니다. 교회중심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안에 성령이 계셨고 성령의 지식를 받고 성령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25-27절 “성령이 그 위에...성령의 지시를...성령의 감동으로”
계 2:17“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행 9:31“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히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교회중심으로 살아 가면 성령안에서 살게 되고 든든해 집니다.
저는 우리 교회 교인들을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병문안을 가면 거의 대부분이 감사입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습니다.”
원망을 하는 것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거의가 감사입니다. 성령 안에서 살아가니까 불안한 모습은 없고 든든합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어렵게 어렵게 산동네에 집을 샀습니다. 그런데 사는 집이 뉴타운이 되자 집값이 올랐습니다. 팔고 아파트를 사려는데.. 겨우 되려나.... 그러다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해야지 하려니까.... 조금 부족합니다.
그래서 그 집을 전세를 놓고 십일조를 하고 교회다닐 수 있는 지하철 6호선이 닿는 곳에 작은 연립주택을 샀습니다.
제가 가보니까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이 열립주택에 살게 된지 2년이 안되는데 또 다시 재개발이 지정되어 집값이 두 배이상 되었습니다. 이 집사님이 저에게 간증을 하면서 “목사님, 저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다 하시니까요”
교회 중심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많은 간증들이 우리 교회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성탄절 분위기 누가 띠우시겠어요? 찬양대가 띠우시고, 교회학교가 띠우시고 기쁨으로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성탄절에는 예배당에 오세요,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세요. 여러분 성령이 역사하시는 교회, 이 안에서 든든하게 살아가게 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적의 역사가 날마나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면 성령 안에 살게 되고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30-32절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살후 2: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롬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그러면 성령안에서 살게 되고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구원의 은혜에 감사는 증거를 보이며 사십시오!
배려(配慮)하는 마음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밤에 한 손엔 지팡이를 잡고 다른 한 손엔 등불을 들고 길을 걸었습니다.
그와 마주치게 된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정말 어리석군요. 앞을 보지도 못하면서 등불은 왜 들고 다닙니까?”
그가 답하였습니다.
“당신이 나와 부딪히지 않게 하려고요. 이 등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바로 구원을 받은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대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배려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들은 남에 대한 배려(配慮)가 너무 없습니다. 남에 대한 배려는 아랑곳없이 무조건 자기 자신만 살아남으려든다.
대형마트 때문에 근처의 소규모 슈퍼들이 문을 닿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교회들이 버스를 들이대고 교인들을 실어 나르는 바람에 작은 교회들이 문을 닫습니다. 이제는 지 교회까지 설립하여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기 까지 합니다. 그래서 목회 실업자 목사님들이 늘어 가고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이렇게 하여 큰 교회가 되는 것입니까?
한국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이 과거 보다 못합니다. 일은 많이 하는데... 사회가 신뢰하지를 않습니다. 몰라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이 와서 선교를 할 때에 지도를 펼쳐 놓고 선교사들이 지역을 나누어서 선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지역마다 활동이 왕성한 교단이 있는 것입니다. 본래 한국교회는 지역을 나누어 선교를 하고 500미터에 하나씩 교회를 세울 정도로 남을 배려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이름도 한남동에 있으면 한남동교회가 되는 거고, 불광동에 있으면 불광동교회라고 이름을 짓습니다. 그 동에 다른 교회가 세워지면 1교회, 2교회, 3교회 순으로 이름을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배려잖아요.
오바마도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었기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적어졌다는 말을 합니다. 무슨 일을 안해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그 하는 행동과 태도를 보면서 느끼는 것입니다.
반드시 알아야 할 바가 있습니다.
“남에 대한 배려가 없이는 자기 자신도 제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남에 대한 배려와 보살핌은 결국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는 나 자신을 위한 배려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감사의 증거는 배려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우리들..무엇을 준비하시렵니까?
성령 안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C.(적용)/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와 실천
빌1:19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1.이 말씀이 나의 말씀이 되게 하옵소서!
2.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