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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만 보입니까?(마태복음17:1-8)
지난 주간에는 주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야지 세상 사람처럼 흔들리지 말고 살아야지 굳게 다짐합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면 날아가는 겨처럼 믿음은 온데 간데 없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배반하며 가룟유다가 주님을 팔았다는 것이 인간적으로는 이해는 됩니다.
마음은 원하는데 육신이 약하다는 핑계가 주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갖는 것이지 주님이 주신 마음은 아닙니다.
주님은 너희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사도요한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있는 것들은 빛들의 아버지께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말씀하셨던 하나님 앞에서 아담과 하와는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니 세상이 눈에 들어오고 눈에 들어오면 갖고 싶어합니다.
전에는 생명나무만 눈에 보였는데 선악과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갈등을 했을까요? 단번에 먹었을까요?
갈등하기 시작하자 사단이 들어옵니다.
사단이 들어오면 갈등도 하지 않습니다.
선악과가 오히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위해 앞장서서 외쳤습니다.
바알선지자와 아세라선지자 850명을 죽입니다.
그러나 이세벨이라는 여인이 자신을 죽이려하자 멀리 도망을 갑니다.
왜 도망을 갔습니까?
우상섬기는 선지자를 죽인 사람이 무엇이 두렵겠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
그러나 네가 열조보다 못한 것이 무엇이고 열심히 특심할 정도로 일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그때부터 자신이 한 위대한 일이 보입니다.
두렵기 시작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죽음과 부활 말씀하시고 6일 지난 후에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제자 모두가 아니라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만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 딸이 죽었을 때였습니다.
그때도 야이로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외에는 아무도 함께 그 방안에 들어가기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세상을 이기는 방법이 믿음이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 죽은 믿음이다.
베드로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한 주간 믿음으로 사셨습니까?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심을 받고 사셨습니까?
높은 산에 올라가신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앞에서 얼굴이 해같이 빛났습니다.
옷은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광경을 본 제자 중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이야기합니다.
주님 우리가 여기에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주님이 괜찮으시다면 제가 여기에 초막 셋을 짓겠습니다.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선택해서 높은 산에 올라간 제자들은 믿음 있는 제자들입니다.
9명의 제자들은 제쳐두고 3명만 데리고 올라가셨습니다.
죽음과 부활에 대한 말씀을 하신 후에 예수님의 본 모습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 보다는 모세가 보였고 엘리야가 보였습니다.
모세는 구약의 율법을 하나님께 받은 사람이요 엘리야는 구약의 대표적인 예언자입니다.
말로만 듣던 모세와 엘리야를 보았으니 얼마나 놀랐을까요?
우리도 말로만 듣던 천국을 실제로 본다면 기절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서 주님을 말씀하십니다.
나사로를 아버지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는데 저희에게 증거 하게 하여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주님은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저희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죽은 사람이 살아나서 증거한다 해도 듣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땅이 멸망한다고 외쳐도 농담으로 여기면 멸망합니다.
아깝다고 뒤돌아 보면 소금 기둥이 됩니다.
베드로의 말하는 것이 끝나기도 전에 빛난 구름이 제자들을 덮습니다.
그러면서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누구의 말을 듣고 살아야 합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을 먹고 살아야합니다.
이 소리를 듣고 제자들은 두려워서 땅에 엎드립니다.
예수님께서 가까이 오셔서 손으로 어루만지시며 두려워하지 말고 모두 일어서라고 말씀.
제자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눈에 지금 보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건강입니까? 사업입니까? 자녀입니까? 미래입니까?
지금 주님만 보여야 합니다.
100세에 아들을 얻은 아브라함의 눈에 무엇이 보였을까요?
당연히 아들 이삭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갑자기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청천벽력 같은 명령을 받습니다.
우리 같으면 아들 대신 저를 데려가세요.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왜 그러십니까?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요나처럼 하나님 어떻게 원수인 니느웨 성에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 하십니까?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주님만 보여야 하는데 사람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람이 보이는지 주님이 보이는지 모를 때가 더 많습니다.
베드로처럼 모세도 엘리야도 보여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초막셋을 짓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적이 여기가 좋사오니...
주님은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갈 준비를 하는데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가 좋사오니 하는 신앙을 떠나야 합니다.
무엇인가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 무엇인가를 찾으려면 안주해서 안됩니다.
뜨겁든지 차든지 해야 합니다.
지금 여기가 좋사오니 베드로처럼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높은 산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주님만 보고 사는 사람들은 걱정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주님 없는 사람은 걱정이 태산입니다.
주님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게 되고 자신을 위한 바벨탑을 쌓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위한 창고를 짓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주님이 병을 고쳐주지만 감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주님 보고 사세요.
자녀도 아내도 남편도 나에게 만족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섭섭해 하지 마세요.
예수님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은 소망이 하늘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이외에는 보이지 않아야합니다.
아니 볼 수 없어야 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한 낮에 물을 길러 나온 수가성 여인이 있었습니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그리고 물동이를 버려두고 사람들에게 오칩니다.
아무리 주님이 불러도 듣지 못하는 엘리제사장처럼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주님은 부활하셔서 무덤에 없는데 무덤에 주저앉아 울던 마리아가 되지 마세요.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다시 일어서서 주님만 보고 다시 시작합시다. 의지할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다 떠나지만 오직 주님은 우리 곁에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구름 속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내가 그를 좋아한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두려워 떨며 땅에 엎드린 제자에게 가까이 오셔서 손으로 어루만지시며 두려워하지 말고 모두 일어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