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은혜

다시 찾은 은혜

추운 지난 한 주간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지내셨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지만 힘이 없어 억울함을 겪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앞장서야할 것입니다.


8절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주전 622년 유다의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한 말입니다.


서기관은 당시 유다 정부의 고위 관리였습니다.


특별히 서기관 사반은 임금으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는 신임을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요즈음으로 한다면 국무총리입니다.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나님 백성 나라의 최고 종교지도자가 최고 행정 관리에게 한 말입니다.


이 때 유다 왕은 요시야였습니다.


요시야는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되어 십 년이 지나자 성전을 수리하게 하였습니다.


요시야는 백성이 드린 헌금을 성전 수리에 쓰게 하려고 서기관 사반을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보냈습니다.


대제사장 힐기야는 왕의 심부름 온 서기관 사반에게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했다 말합니다. 지금은 캐시만 있으면 서점에서 성경책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는 사람이 낱낱이 손으로 베껴 적어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율법책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오랜 동안에 율법책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제사장에게서 율법책을 받은 서기관 사반은 책을 읽어보고 왕에게 돌아가서 보고합니다. 왕이 시킨 대로 다 했고 대제사장 힐기야가 자기에게 책을 하나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왕 앞에서 율법책을 소리 내어 읽습니다.


그러자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 있던 요시야 왕은 옷을 찢습니다.


이유는 조상들이 율법책에 적힌 대로 따르지 않은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유다 백성에게 크게 노하셔서 큰 재난 내리신다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왕 요시야는 율법책을 따라 백성들의 신앙생활을 바로잡는 신앙 운동을 합니다.


먼저 요시야 왕은 예언자 훌다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 율법책의 뜻을 자세히 알아봅니다.


그리고 모든 지도자들과 백성을 성전 앞에 불러 모아 율법책을 크게 읽어 다 듣게 합니다. 그리고 율법책에 적힌 대로 온 마음과 뜻을 다해 지키기로 하나님 앞에 약속하게 합니다. 그 동안 성전과 나라에 펴져 있던 온갖 우상과 우상숭배도구 끄집어 불사르고 없앱니다.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책으로 이스라엘에 새로운 은혜의 바람을 불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말씀을 다시 찾아 우리 자신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새롭게 해야합니다.


다시 은혜를 찾아야 한다는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은혜를 다시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서 은혜를 다시 찾아야 하는지.


누가 은혜를 다시 찾아야 합니까?


다시 은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은 성경에 비추어 우리 자신의 모습과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음을 뜻합니다.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에서 ‘율법책’을 찾았습니다.


‘율법’이면 우리는 흔히 딱딱한 법을 생각하지만 히브리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율법’의 히브리 낱말은 ‘가리키다’, ‘길을 가리키다’는 뜻으로 ‘길잡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 섬기는 법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율법은 가르침 교훈입니다. ‘율법책’은 ‘성경’,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배하는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에서 갈 길을 가리키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합니다.


힐기야가 성전에서 찾은 율법책을 통해 요시야 왕과 신하들과 유다 백성이 자신들과 조상들의 잘못을 바로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수백 년 동안 하나님 섬겨왔는데도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지 못하고 제멋대로 하나님 아닌 것을 섬기다 다시 찾은 율법책을 통해서 자신들의 잘못 된 모습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온 성경의 가르침이 오늘 나와 우리의 삶에도 중요한 말씀임을 똑똑히 알고 그 가르침에 비추어 우리 자신의 어그러진 모습을 바로 보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깨달아야 합니다.


다시 은혜를 찾으려면 듣기에 좋지 않은 말씀도 달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율법책에는 하나님 백성 유다가 하나님을 거슬렀기 때문에 하나님이 몹시 노여워하고 계신다는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자 왕은 두려워서 어쩔 줄 몰라 자기를 낮추는 식으로 옷을 찢은 것입니다.


요시야 왕은 20년 후에 아들 여호야김과는 다릅니다.


예레미야 36장 예언을 적은 두루마리를 신하가 읽어주었을 때 여호야김은 두루마리를 칼로 잘라 불태웠습니다. 말씀이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전해준 예언자 예레미야와 예언을 두루마리에 적은 바룩을 잡아 죽이려고 했습니다.


여호야김과 신하들을 두고 예레미야 36장 24절에 “왕과 그의 신하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자기들의 옷을 찢지 아니하였고”.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말씀대로 살자고 말하면서도 속마음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씀을 읽고 듣기는 하지만 마음에 드는 것만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른체합니다. 그러다 보면 말씀 읽고 듣고 배운다면서 실제로 말씀 아닌 다른 것을 말씀보다 더 따른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전통이나 규칙을 말씀보다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마가복음 7장 8절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사람의 잘못된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있을 수 없다는 깨달음에서 시작된 것이 종교개혁이고 그 결과로 생겨난 것이 개신교회입니다.


디모데후서4장3-4절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설교자가 최선을 다하더라도 때로는 설교를 잘못하는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설교를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정직하게 설교했는데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은혜 받지 못했다는 경우 없습니까?


교회에서는 잘못을 지적하고 바르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설교를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교인들이 듣기 싫어하는 설교를 하다가는 교회가 부흥할 수 없으니, 복, 복, 성공, 출세를 약속하는 설교가 좋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종이니 사람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여러분들도 좋은 말만 들으려고 하지 마세요?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들지 말고 내게 부담이 되고 나를 당황하게 하하고 내 마음을 아프게 하더라도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세상을 향해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듣기 싫은 말씀도 달게 받아들여야 은혜를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에서 율법책 발견했듯이 교회에서 은혜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깨끗한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책 대로 요시야가 개혁하는데 예루살렘 성전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들어와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 섬길 성전 안에 풍요의 신 성공과 많은 생산을 약속하는 신을 섬기기 위해 만든 여러 가지 도구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책은 성전 어느 구석에 박혀 까마득이 잊혀지고 있었습니다.


힐기야가 사반에게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충격적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 섬기는 길을 하나님 몸소 가르쳐 주신 바를 적어 묶어 둔 책인 율법책에 그 때까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세계 성경 25% 우리나라 성서공회에서 찍어낸다.


지구 위에 있는 성경 네 권 가운데 한 권을 우리나라에서 인쇄합니다.


그만큼 성경보급에 우리나라 교회가 큰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큰일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 교회가 과연 하나님 말씀을 잘 보존하고 있습니까? 입만 열면 말씀 중심 하지만 실제로는 명예와 권력과 지위를 추구하며 사람의 욕심을 따라 성경을 맘대로 풀고 써먹지 않습니까?


이처럼 깨끗하지 못한 성전 가운데서 말씀을 발견해야 합니다.


더러워진 성전 가운데서도 아직 말씀을 두신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일 때마다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듣고 생각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일입니다.


성경은 교역자들만이 읽고 풀이할 수 있는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흔히 말하는 대로 모든 사람들에게 열린 책입니다.


말씀을 진지하게 대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자 하는 간절하고도 뜨거운 마음으로써 말씀을 찾으려 하는가데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듣고 배울 때마다 마치 그 본문을 처음 읽고 듣고 배우는 것 같이 정성을 들여 보십시다. 그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려는 말씀이 무엇인지 꼭 듣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리 해 보십시다.


여러분, 어떤 이름난 부흥사가, 어떤 실력 있는 신학자가, 어떤 훌륭한 목회자가 말씀을 다시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 각자가 함께 말씀을 다시 찾아 나서야 합니다. 남들이 성경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얻어 들인 것이 내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는 것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저 제 좋을 대로 성경을 읽고 풀이해도 좋다는 말은 물론 아닙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라면 신학을 전문으로 공부한 교역자들이 연구하여 가르치는 바를 결코 소홀히 다루지 않습니다.


다만 그런 것들이 곧 바로 내 것이 될 수 없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은혜를 말씀을 다시 찾아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십시다.


무엇보다도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우리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듣기 싫은 말씀도 달게 받아들이도록 하십시다.


비록 문제가 많지만 우리 교회에서 이 말씀을 다시 찾도록 하십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님의 도우심을 따라 은혜와 말씀을 다시 찾도록 하십시다.


“내가 은혜를 말씀을 교회에서 다시 찾았노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