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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일을 행하리라. 사43:18-21
학교 다닐 때 체육시간이 있었습니다.
운동장에 모이면 선생님이 항상 누구 이름 부르고 기준하면서 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모든 학생들이 기준을 한 그 학생을 중심으로 다 모이게 됩니다.
학생들은 또 기준이야 하면서도 다 모입니다.
무질서하게 서 있다가도 기준 소리만 나면 모두 하나가 되어 모입니다.
기준이 없으면 무질서가 계속 됩니다.
인생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기준입니다.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기준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을 성경을 멀리하면 점점 인생의 우선순위가 바뀝니다.
기도를 쉬게 되면 숨이 점점 막히는 답답함을 호소하게 됩니다.
다윗이 사울왕에게 쫒기는 인생을 살다가 아비멜렉 왕 앞에서 미친척한 적이 있습니다.
목숨을 피하려 미친척까지 했던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하나님 앞에서 노래했습니다.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내 영혼이 주님만을 찬양하겠습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금생과 내생에 유익이 있습니다.
세월은 흐르고 지금도 계속 쉬지 않고 흘러가고 있습니다.
확실한 진리요 평범한 진리이지만 연말연시가 되면 그때 진리가 깨달아집니다.
그래서 이 진리를 깨달은 수많은 시인이나 가수들이 세월의 무상함을 노래했습니다.
서유석씨 노래. “가는 세월 그 누구가 막을 수가 있나요.”
찬송가에도 세월에 관한 찬양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찬460)
우리는 각자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세월을 지금까지 보내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아직 보내야할 세월과 시간이 많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앞으로의 인생세월이 별로 안남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올 때에는 순서대로 왔지만 갈 때에는 순서가 없습니다.
부모보다 자녀가 먼저 가는 일도 있습니다.
먼저 갈 것 같았는데 한참 후에 가신 분도 있습니다.
아주 나중에 갈 것 같은 분이 무엇이 바쁜지 제일 먼저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지 않으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가는 세월 앞에서는 누구도 저항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진리이고 이것이 인생입니다.
길어야 100년 밖에 살지 못하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습니다.
좋은 일, 행복한 일, 기쁜 일, 감사한 일, 복된 일을 만납니다.
그러나 반대로 슬픈 일, 불행한 일, 화나는 일, 원망스런 일, 저주스러운 일들도 만납니다.
누구든지 짧은 인생 속에서 좋은 일만 생기고 나뿐 일은 하나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올해에도 우리들은 이런일 저런 일, 여러 가지 일들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저렇게 인생을 살아오면서 과거의 자신은 어떻다고 평가하십니까?
첫째 많이 불행했다, 둘째 조금 불행했다. 셋째 불행도 행복도 않고 그저 그렇다.(So so!), 넷째 조금 행복했다. 다섯째 정말 많이 행복했다.
정말 많이 행복했다 자신 있게 손을 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솔직하게 대답한다면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욥5:7)
그러나 하나님은 슬프고 고달픈 불행한 인생을 사는 우리를 위해 예수님 보내 주셨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과 함께 행복하고 밝고 복된 인생을 이민 땅에서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려면 기준을 정해야합니다.
과거 속에서 잊어야 할 것은 빨리 완전히 잊고 기억할 것은 영원토록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새 일을 행하리라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무엇입니까?
18절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고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나를 파괴하고 불행하게 하는 과거의 상처 고통 슬픔 수치들을 속히 잊어버리라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택한 선민으로 자존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70년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가장 큰 상처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과거의 상처는 늘 그들을 계속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늘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늘 불안했습니다.
늘 불행하다는 꼬리표를 스스로 달고 다녔습니다.
하나님은 과거 고통으로 괴로워하며 불행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명령입니다.
Forget the former things ; do not dwell on the past.
항상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고 우울하던 어떤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자매님의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유를 하루는 너무나 마음이 괴롭고 고통스러워 교회에 기도하러 갔는데 낮에 자기 뒤에서 댕그랑 댕그랑 요란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니 온갖 깡통 쓰레기 잡동사니가 줄에 매달려 자기를 따라서 끌려오는데 그 줄이 자기 목에 메어 있더랍니다.
계속 뒤를 돌아봐도 또 있고 또 있고, 눈을 감아도 또 있고 또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겁게 그것들을 끌고 교회에 와서 앉았는데 자기 뒤에 그 쓰레기 잡동사니가 산더미처럼 가득히 쌓여서 뒤에 있더랍니다.
그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너는 왜 그 많은 쓰레기 잡동사니를 목에 걸고 다니냐?
진정으로 회개하고 다 청산하라.
그래서 통곡하며 불신앙을 회개하고 모든 죄를 다 고백하자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더니만 쓰레기 더미들을 순식간에 다 날려버리고 아무것도 없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마음이 날아갈듯이 즐겁고 평안과 기쁨이 몰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자기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여러분 쓰레기 같은 과거 추억들 훈장처럼 주렁주렁 목에 달고 다니면서 스스로 우울하고, 스스로 무거워하고, 스스로 불행해지지 마십시오.
나이들면 기억력이 떨어지며 건망증도 문제이지만 구질구질한 것들을 평생 잊지 않고 자기 목에 매달고 다니는 사람도 진짜 문제입니다.
불행한 옛일을 잊지 않고 세밀히 기억하며 생각날 때마다 마치 일 년 전에 붙여놓았던 껌을 다시 떼어 씹고 또 씹으며 사는 사람은 건망증 사람들보다 더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기억하지 말 것 빨리 잊어야 할 것은 오래 기억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쉽게 잊어버립니다.
타락한 우리의 성품입니다.
이때에는 하나님께 자신의 나약함을 솔직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잊어야 할 옛것을 잊지 못하는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로 인하여 불행을 스스로 만든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잊어야 할 것들을 속히 잊게 해주세요.”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술을 마십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성령의 술을 마시며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잊을 것은 속히 잊어야 합니다. 그래야 너와 내가 행복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혹시 마음에 잊지 못하는 원수 같은 사람이 있지는 않습니까?
한 맺힌 사람이 나의 가슴 한 가운데 자리 잡아 계속 나를 불행으로 몰고 있지는 않습니까? 용서함으로 잊어버리십시오.
하나님이 나 같은 큰 죄인도 살려주었는데 그 사람도 살려주어야 마땅하지 않겠느냐 큰 자비를 베풀어 보십시오.
하나님께 나는 살려달라 기도하면서 그 사람은 죽여 달라 기도하면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도 되시지만 그 사람의 하나님도 되시고 모두 하나님도 되십니다.
“새해도 되었으니 이제는 용서하고 이제는 잊어버려야지!” 결심하십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너를 잊지 못해! 용서 못해!” 하고 여전히 눈을 부릅뜨는 분이 있다면 오늘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자신도 하나님께 용서받으십시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외치며 새로운 출발을 하십시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새해를 주셨습니다.
새해에는 반드시 행복해야 합니다. 밝게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더구나 이 추운 미국 땅에까지 와서 불행하게 사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예수님의 귀한 은혜를 헛되게 쏟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과거의 불행의 추억을 깨끗이 잊어야 합니다.
미움과 두려움과 수치를 잊어야 합니다. 원한도 원망도 잊어야 합니다.
슬픔도 고통도 잊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고통을 잊을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들과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사43:19-21)
그 동안 너무 목말랐습니다. 그 동안 너무 지쳤습니다.
그 동안 너무 불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합니다.
“이제는 광야에 길이 나며 사막에 강이 생길 것이라.
이제 더 이상 너희가 목마르지 않을 것이요, 더 이상 고통으로 부르짖지 아니하리라.
오히려 내 백성, 나의 택한 자의 입술에 웃음이 가득하고 찬송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사막에 꽃이 피어 향내내리라.
주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이 꽃동산되리. 사자들이 어린 양과 뛰놀고 어린이들 함께 뒹구는 참 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
사막에 숲이 우거지리라. 사막에 예쁜 새들 노래하리라.
주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이 낙원되리라.
독사 굴에 어린이가 손 넣고 장난쳐도 물리지 않는
참 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
하나님께서는 분명 우리에게 좋은 일을 마련해 주십니다.
십자가 강도를 낙원으로 인도하신 우리 주님.
주님은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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