ㅊ천국에서 큰자

마18:1-14 천국에서 큰 자


 

- 오늘 설교의 본문인 마18:1-14은 얼핏 보면 4개의 다른 주제인 것 같아 보이지만 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님은 여기서 본질적으로 이질적인 세상 질서와 천국 질서의 차이를 제자들에게 일깨워주시고 계십니다. 먼저 본문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큰 자인가에 대해 여쭸습니다 (1절). 그러자 주님은 한 아이를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고 너희가 돌이켜 이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너희 중 큰 자가 되고 싶다면 이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2-4절). 바로 그 다음에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는 죄를 주님이 얼마나 심각하게 간주하는 지에 대해 6-10절에 거쳐 심각히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작은 자에 대한 주님의 초미의 관심사를 잃은양 예화를 통해 분명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12-14절). 이 본문을 통해 주시는 주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첫째는
, 낮은 자가 높은 자를 섬기는 이 세상에서 부름받은 제자들은 애초부터 주님과의 한판 승부는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1절).


- “천국에서는 누가 큰 자입니까?” 라는 질문의 속내는 자신들이 남보다 높아지고 싶은 욕망이 숨겨져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계급화, 서열화의 문화, 즉 먼저 태어난 자, 더 실력 있는 자, 더 많이 가진 자,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대접받고 군림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 길들여져 살아온 그들이 주님의 제자로 하나 둘씩 부름받아 부풀려지면서 “조직”이 구성된 후 제자들 간에 이런 경쟁과 갈등은 너무나 필연적인 것이었습니다. 잠재되어 있던 것이 밖으로 표출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제자간의 서열은 수석 제자로 베드로, 그 다음이 야고보, 요한... 이런 순이었습니다. 시기, 질투, 반목, 다툼으로 가득찬 세상의 모습이 주님을 따르고 있는 제자들에게서도 그대로 재현된 것입니다. 이 모습이 우리들이 몸담고 있는 직장, 학교, 친구들, 교회, 심지어 가정에서조차 벌어지는 것입니다. 다른 예를 드는 것 보다 우리나라 정당의 모습을 보면 쉽게 수긍이 가실겁니다.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실명을 구체적으로 거론치 않더라도 이 갈등에서 자유로운 정당은 한 곳도 없습니다. 주님이 그토록 외치셨고 세우시고자 하셨던 그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제자들을 통해 세워질 수 있을까요? 주님의 대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어떻게 이 갈등을 해소하고 주님의 나라를 세우시려 했는지 주의 음성을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야 합니다.


둘째는, 해결책 없어 보이는 이 문제에 대한 주님의 처방은 너무나 간단했습니다.“자기를 낮추라”는 한 마디였습니다. (3-4절)


- 인간이 되어 하나님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삶은 한 마디로 “자기를 낮추신 삶”이었습니다. 가장 높은 지위인 하나님의 지위를 포기하셨습니다 (빌2:6). 그리고 인간이 되시고 그 중 가장 낮은 위치인 종의 신분으로 까지 낮아지셨습니다. 그리고 더 자신을 낮추어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십자가에서 가장 극악한 죄인으로 죽으신 것입니다 (빌2:7-8).


- 제자들이 주님의 평범하지 않은 모습으로 여러번 당황해하고 힘들어 했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그들의 리더였던 주님이 자신을 낮추고, 낮은 자들을 종같이 섬기는 것에 가장 당혹스러워했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리더십에 물들어 있던 제자들로서는 감당키 힘들었던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로 하여금 자신과 함께 늘 같이 생활토록 한 데는 이러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는 천국문화를 제자들이 두 눈으로 보면서 몸에 익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와 함께 살면서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몸에 배는 것과 같은 이치였습니다.


- 그러나 주님과 오래 함께 지냈건만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는 리더십을 배울 마음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세속적 리더십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고집스런 제자들에게 청천벽력같은 선언을 하셨습니다.
이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3절). 이 말씀은 제자들의 가슴에 품고 있던 헛된 꿈을 산산히 깨뜨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지금까지 주님을 좇은 것은 앞으로 있을 그 좋은 날, 즉 큰 자가 되어 대접받고 군림하는 그 날을 소망하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 자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것이라는 것을 처음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었을 때 베드로가 보인 히스테리적 반응을 기억하실 겁니다 (마16:22). 그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한치의 양보도 없었습니다. 한발도 물러서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엄히 꾸짖기까지 하셨습니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을 배우지 않고서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까지 하셨습니다 (3절). 천국에서 큰 자는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이며, 이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자가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5절).


- 주님이 말씀하시는 “어린 아이”란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겸손한 자라든지 혹은 자기 고집이 없는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 가치 없는 자, 그래서 버림받고 소외된 자를 (과부, 고아, 범죄자, 외국 근로자, 철거민들, 지체장애자...)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 덩어리이십니다 (요일4:7-8). 그래서 낮은 자들을 향해 철이 자석을 향하듯 본능적으로 그들에게 긍휼의 손길을 내미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성으로 이해될 것이 아닙니다. 곤경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는 자식을 향해 이것저것 계산않고 무조건 달려가 건져주는 부모의 불타는 듯한 사랑인 것입니다. 왜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나?
신7:7을 보십시오.  신7: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  즉 가장 못나고 보잘것 없고 힘없고 누구의 관심이나 돌봄도 받지 못한 가장 작은 자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고 품어주셨다는 것입니다. 


- 세상이 가장 이해 못하는 것이 이 바보같아 보이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호6:6). 제자들의 문제는 주님이 그들 곁에서 자신의 몸으로 말씀하고 계시는 이 음성을 듣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니 듣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외면한 것입니다. 그것이 싫은 것입니다. 그들의 육의 본성에 너무나 거슬리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 6~10절은 이 낮은 자들을 외면하고 (마치 어린 아이들을 외면하고 있는 제자들처럼) 그래서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신앙에 대하여 마음 문을 닫아버리게 하는 실족케 하는 범죄가 얼마나 무서운 죄인가에 대해 주님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럴 바에야 손, 발, 눈이라도 뽑아버리고 불구자가 되어 그런 죄를 범치 않고 천국에 가는 것이 낫다고 까지 하셨던 것입니다. 지금 내 마음에 무엇이 가득차 있는지 확인해 봅시다. 이 제자들과 같이 높아지고자 하는 허영심을 좇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내 주위에 내가 정성껏 섬겨야 할 작은 자들을 외면한 채 큰 자, 높은 자들만 섬기고 살아왔는지 살펴야 합니다.


- 교만으로 가득한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들의 시선이 낮아지신 주심, 낮은 자를 섬기신 주님이 아닌, 높아진 목사들, 부요하고 화려한 것들로 장식된 곳에서 만족해하며 군림하는 자들을 바라보며 그 꿈을 꾸게 할 것입니다. 주님은 결코 그렇게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자기 포기, 자기를 낮추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내 기득권, 서열, 직분 모두를 내려놓고 주님이 본을 보여주신 낮아짐의 삶, 낮은 자를 섬기신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작은 자를 업신여긴 적이 있다면 철저히 회개하고 주님의 용서함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
10절). 앞으로 낮은 자들을 대할 때 예수님으로 간주하고 섬기도록 합시다.


셋째는
, 주님은 100마리의 양 가운데 길을 잃은 한 마리를 위해 99마리를 버려둔채 그 한 마리를 찾는 분이십니다 (12-14절)


- 이 길 잃은 한 마리가 바로 주님이 말씀하시는 어린 아이이며, 낮은 자, 작은 자입니다. 세상에서 잊혀진 그 누구의 관심도 갖지 않는 자를 말합니다. 왜? 경제적 득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경제적 동물이기에 내게 득이 되는 것은 절대 놓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득도 없고 보상도 없는 일에 자신의 전 생애를 투자하는 별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로 주님의 이 교훈을 듣고 깨달아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눅14:12-14
14:12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14:13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14:14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댓가없이 섬기는 것, 가장 보잘 것 없고, 세상에서 가장 가치가 없어보이고 버림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최고의 관심과 사랑, 긍휼의 대상이고, 이들을 섬기는 자가 천국에서 가장 큰 자라는 진리를 깨닫고, 손 걷어 부치고 남은 인생을 낮은 자를 찾아 섬기는 인생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가장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 주님께서 이런 삶을 사셨으며 잃어버린 양된 나를 어느 날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십자가의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섬김이 무엇인지, 낮아짐이 무엇인지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오랫동안 거꾸로된 문화에 길들여져 살아온 지라 한순간에 바꾸기가 힘들겠지만 이제 더 이상 내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겠노라 다시 한번 다짐합시다. 주께서 그럴 능력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누가 천국에서 큰 자일까요? 답은 가장 많이 낮춘 자이며, 낮은 자를 가장 많이 섬긴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