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찌하여

마17:14-20 우리는 어찌하여


- 어느 날 주님께서 12제자를 데리고 산을 향해 가셨습니다. 산에 도착해서 9명의 제자를 산기슭에 남겨 둔채 3명의 제자만 따로 택하여 기도하러 산에 오르셨습니다. 산 정상에서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제자들 앞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영광의 모습으로 변화된 주님 옆에 모세와 엘리야가 갑자기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는 주님의 죽으심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그럼에도 세 제자는 이 위대한 광경의 초반부를 깊은 잠에 빠지는 바람에 놓쳐버렸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이 광경의 끝부분만 조금 볼 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이 모습에 넋이 나간 베드로는 주님께 이곳에 좀더 머물러있자고 제안할 때 구름이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를 덮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무나 두려워 엎드려 있을 때 주님께서 이들을 위로하셨고 눈을 들어 보니 두 사람은 이미 사라졌고 예수님만 계셨습니다.


- 그후 주님은 이 세 제자를 데리시고 나머지 제자들이 머물러있던 산기슭으로 내려갔는데 그곳에서 웬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때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을 발견한 한 사람이 주께 달려와 엎드려 자신의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절히 애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제자들에게 아들을 고쳐달라고 부탁했었는데 그들은 도무지 고치질 못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아이를 데려오라고 하여 즉시 귀신을 꾸짖어 내어좇으심으로 고쳐주셨습니다. 무리들이 돌아간 뒤 제자들이 주님께 조용히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이 귀신을 좇아내지 못했나요? 주께서 그 원인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다. 만약 너희에게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산을 명하여 저리로 옮길 수 있을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이 본문을 통해 주시는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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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신들려 거꾸러지고 거품을 흘리는 등 극심한 증상을 보이는 아들을 데리고와 고쳐달라고 할 때 제자들은 자신들이 고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전에 자신들이 귀신을 좇아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눅10:17-19). 주님으로부터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 (사탄)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수 있는 권세를 부여받았던 이들은 어떤 귀신도 능히 쫓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것이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9명의 제자가 함께 달려들어 힘쓰고 애써도 꼼짝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얼마 후 산에서 내려오신 주님께서 이 아들을 너무나 쉽게 고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제자들이 얼마나 큰 좌절감을 느꼈을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망신스럽고 의기소침해 있던 제자들이 모두가 떠난 뒤 조용히 주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 이때 제자들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마17:20에서는 “너희의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고 했습니다. 막9:29에서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즉 그들의 믿음이 이런 종류의 사역을 수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고,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의 기도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말씀입니다. 기도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 여기서 세 가지 중요한 영적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주님에게 붙어 있어야만 합니다.

- 눅6장에서 제자들에게 부어졌던 사탄을 제어할 수 있는 영적권세가 영원토록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과의 관계속에서만 그런 능력을 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삼손에게 주어졌던 기이한 능력 역시 그가 독자적으로 영원히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머리카락이 잘리는 순간, 즉 그 능력의 원천이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겨지는 순간 삼손은 너무나 평범한 사람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삿16:20). 그래서 우리는 경건의 끈을 잠시도 느슨하게 해선 안되는 것입니다. 잠시 방심하는 순간에 그 틈새를 타고 우리에게 부어진 영적능력은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영적방학을 허용해선 안됩니다. 하루도 기도를 쉬어서는 안됩니다. 중환자에게 계속 인공호흡기를 끼어놓듯 우리들의 기도가 쉬게해선 안됩니다.


둘째는
, 영적능력은 기도에 숨겨져 있습니다.

- 믿음의 씨앗은 말씀이지만, 믿음의 능력은 바로 기도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분이신지를 알아갑니다. 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나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해야 건강한 믿음을 유지할 수 있고, 믿음의 그릇을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없는 말씀은 능력이 없습니다. 내 믿음이 경건의 능력으로 표현되기 위해선 반드시 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들의 속사람이 견고해집니다. 기도와 말씀 이 두 날개가 강해야 높이 멀리 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능력이 넘치는 삶의 비결은 다름아닌 기도였습니다 (막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셋째는
, 영적 능력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이런 종류의 귀신을 좇아내려면 기도의 내공이 보통 것으로는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라면 모두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을 능력을 행할 수 있는 믿음으로 키워야 합니다. 지금 이 아들을 장악하고 있던 귀신은 그 종류가 보통 귀신의 차원이 아닌 매우 강한 종자였습니다. 지금 제자들의 그 믿음, 그 정도의 기도갖고는 절대 상대할 수 있는 귀신들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진영에서 골리앗과 같은 자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영력으로 무장된 다윗 한 사람 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겐 천하무적으로 보였던 골리앗이 다윗에게는 너무나 손쉬운 상대로 보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능력의 비밀입니다.  비록 다윗의 겉 모습은 유약한 소년이었을지라도 그의 영력은 골리앗을 한번에 쓰러뜨릴 강력했던 것입니다. 사단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기도의 능력으로 무장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 사단이 두려워하는 자는 여호수아가 아닌 모세같은 사람입니다 (출17장 아말렉 전투시 후방에서 은밀히 기도로 영적전투를 실행했던 모세). 사단은 깊은 신학지식을 가진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사람, 영력으로 무장되어 있는 사람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 이것을 바울이 깨닫고 그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간곡히 당부했던 것입니다 (딤전4:7). 주님은 제자들이 귀신을 내쫓는 권능으로 무장시키려는 분명한 의도를 갖고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막3:14-15). 주님 승천 후 제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에 전념할 때 그들에게 놀라운 하늘의 능력이 임했습니다. 그 후 그들에 대한 기록은 언제나 기도하는 모습, 능력을 행사하는 모습들입니다. 신앙생활을 하지만 삶의 변화가 없습니까? 능력을 경험하지 못합니까? 당신의 기도생활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쉬는 성도는 언젠가 큰 수치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로 무장하며 경건을 훈련하는 성도는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2009년 모두 기도의 사람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