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7:1-8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 한번 옆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행복했고 또 다시 경험해 보고 싶은 곳은 어디입니까? 답은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어떤 분은 배우자와 처음 만난 곳, 어떤 분은 여행중 가슴속 깊이 각인 될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운 곳 ... 등등.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족과 직업을 다 버린 채 주님만을 바라보며 힘들게 좇아다녔던 제자들이 어느 날 지울 수 없는 황홀한 체험을 했던 현장을 기록한 장면입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돌아온 후 주님은 제자들을 이끌고 한 산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 딱 세 명의 제자만을 택하여 산 정상에 오르셨습니다. 그곳에서 기도하실 때 (cf. 눅9:28-29) 제자들의 눈앞에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해같이 빛나게 변화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 곁에 등장하시고는 무슨 대화를 나누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대화가 굉장히 길게 진행된 것 같습니다. 세명의 제자가 그만 졸음을 참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버렸습니다 (눅9:32). 그러다 잠이 깬 베드로가 모세와 엘리야가 떠나려는 것을 보고는 즉시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초막 하나씩을 지어드리겠습니다 말했습니다. 그때 빛난 구름이 세분을 덮었고 구름가운데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제자들은 너무 두려워 엎드렸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두려워말라 위로하셨습니다. 이들이 눈을 들어 보니 모세와 엘리야는 가버리고 오직 예수님만 남아있었습니다. 제자들이 경험한 이 신기한 체험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주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1. 1절/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 가셨더니
- 주님은 12명의 제자 중 딱 세명만 택하여 그들을 데리고 산 정상에 올라 이 신비한 체험을 경험케 했습니다. 왜 12명 모두를 데리고 가지 않으시고 이 세명에게만 이 특별한 은혜를 체험하게 했을까요?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을 통해서 볼 때 이 세명은 매사에 적극적이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승천하신 후 다른 사도들과는 달리 세 명 모두 주를 위해 큰 일을 수행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반석으로서 그 사명을 충실히 감당했고, 야고보는 사도로서 첫 순교를 당하는 사명을 감당했으며, 야고보의 형제 요한은 최후까지 살아남아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여 인류역사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주님의 계시를 교회에 남기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 12명의 사도들 가운데 이 세명이 이토록 큰 은혜를 입고 큰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복음서를 주의깊게 살펴보면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들은 매우 극성적으로 주님과의 관계를 가지려고 했던 자들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열성이야 너무나 잘 알려져 있으니 설명을 약하기로 하고, 야고보와 요한 이 두 사람 역시 매우 적극적이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주님께 나아와 노골적으로 후에 높은 자리를 자기들에게 달라고 할 정도였고 (막10:35-37) 그 기질 역시 매우 다혈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눅9:52-54). 그러나 이 세명 모두 주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가장 앞장섰던 자들이었음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 은혜를 적극적으로 사모하는 사람들이 결국 은혜를 받습니다. 주님은 모든 제자를 사랑하셨지만 이토록 적극적으로 주님께 매달리고 열심을 내는 자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고, 그래서 주의 일에도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한결같이 적극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인 사람들입니다. 교회일이든, 하나님의 일이든, 세상일이든 적극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져 갑니다. 그런 사람들이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들의 것이다 라고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 성경은 은혜를 구하는 자들에게 부르짖어라, 구하라, 찾아라, 두드리라, 간절히 찾아라... 등등의 권면을 수도 없이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은혜를 입고 영적 역사의 전면에 크게 부각된 것도 이를 악 물고 하나님께 악착같이 기도한 탓이었습니다. 신약의 무수한 사람들이 주님께 악착같이 찾아나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받았습니다. 주님께 부름받은 사도들 가운데 많은 자들이 얌전히 수동적으로 행했던 제자들은 이 변화산상의 은혜의 자리로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무엇 일이든 적극적이었고 남들보다 더 크게 쓰임받기를 원했던 이 세 명의 제자를 주님은 특별히 산 정상으로 함께 데리고 가서 이 놀라운 영적체험을 하게 해 주셨습니다. 2009년 한해는 영적은혜를 받는 일과 주를 섬기는 일에는 남들에게 뒤지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참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잠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2. 3절/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 주님이 신령한 모습으로 변화되자 마자 곧바로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율법과 선지자의 대표로서 바로 구약성경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모세, 엘리야 세 분이 뭔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마태복음에는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누가복음에는 그 대화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눅9:30-31을 읽겠습니다. <(30절)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절)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세 분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즉, 구약성경에 감추어있던 하나님의 비밀은 바로 이것, 즉 예수의 죽음입니다. 이 예수의 죽음은 수천년동안 감추어왔던 하나님의 비밀이며 인류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신약성경은 구약속에 감추어져있던 예수의 죽음과 그 속에 감추어진 영적의미를 설명해주는 책입니다. 당신은 예수의 죽음안에 감추어져있는 이 비밀을 발견하셨나요? 이 비밀을 발견한 사람은 복받은 사람입니다.
- 우리가 바라는 구원은 질병, 가난, 정치적 억압에서의 구원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해주는 구원은 바로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믿지 아니하는 죄로부터의 구원이 해결되지 않는 한 그 어떤 구원도 피성적인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에 대하여 이야기 한 것입니다.
- 여기서 한가지 집고 넘어 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눅9:32을 보면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세분이 예수의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고 있을 때 이 세명의 제자들은 깊이 졸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작품이요 하나님의 계획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제자들이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쿨쿨 자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이들을 책망치 않으시고 묵묵히 인류구원의 계획을 모세와 엘리야하고 이야기하고 계셨습니다. 이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십니다. 주님이 직접 우리를 찾아와 부르십니다. 그리고 시작하신 구원의 역사를 끝까지 깨끗하게 매듭을 지으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 주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내가 발버둥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만져주시고 자신의 계획을 성실하게 이루어 가십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구주이십니다.
3. 4-5절/ (4절)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절)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 이때 잠자고 있던 베드로가 일어나 그 광경이 너무나 황홀하여 주님과 모세, 엘리야를 위해 초막 셋이라도 짓겠으니 여기서 내려가지 말자고 했습니다. 눅9:33에서는 베드로가 하는 이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기록해 놓았습니다. 왜요? 잠자다 막 일어났으니 자신이 무슨 말하는도 모른채 횡설수설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때 이 세분을 덮었던 구름 사이에서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 육신이 약하여 주님과 함께 계속 기도할 수 없었던 이들은 그만 잠이 드는 바람에 꼭 들어야 했던 하나님의 비밀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의 비밀에 대하여 더 깊게 이야기해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영적인 힘이 부족했습니다. 잠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아직까지 영적인 깊은 사역을 수행할 준비가 안돼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세 제자에게 성령의 권능이 임했을 때 이들이 하나님의 깊은 영적비밀들에 대해 참여할 수 있는 자들로 변화될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육신에 이끌려 살아가는 연약한 성도가 아니라, 성령의 권능으로 무장되서 하나님의 깊은 일들에 참여할 수 있는 신령한 성도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참 제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