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하여 제목숨을 잃으면

마16:25-28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필생즉사 사필즉생 (必生卽死 死必卽生). \"싸움에 있어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왜선 133척을 전선 12척으로 싸워야 하는 명량해전을 앞두고 전투력의 절대 열세를 정신력으로 극복하기 위해, 장수들의 전투의지를 불태우기 위해 이순신 장군이 군사들에게 한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길 바랍니다.


1. 25절/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 지금까지 제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좇아 가족과 직업을 다 버리고 주님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 해왔습니다. 어느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누구로 생각하는지 그들의 의견을 물으셨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하나님의 sign으로 보셨습니다 (17절 네가 복이 있는 자로구나. 내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지식은 사람이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알려주셔야 만 알 수 있는 것이란다). 그리고는 자신의 마음 속 깊이 감추고 계셨던 비밀들을 제자들에게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과,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 그리고 교회에 천국 열쇠를 맡길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게 될 것인데 3일 후에 살아날 것이라는 놀라운 비밀까지 털어 놓으셨습니다. 자신의 중요한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참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베드로가 주님을 향해 항의를 하며 거부의사를 분명히 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갑작스런 반응에 주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호통치셨습니다. 그리고는 모든 제자들을 둘러보시며 지난 주 살펴보았던 24절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 신앙생활은 내 생각대로 하거나 다른 사람을 흉내내서 할 때 반드시 실족하게 되어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반드시 성경대로 해야 합니다. 뭔가 잘 안 풀릴 때 이 원칙을 붙드십시오. 신앙생활은 주님을 좇는 삶, 주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cf. 계14:4 이 사람들은 ...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이 가운데 주님을 좇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꿈과 욕망을 좇는 사람일 뿐입니다. 지금 마16장의 제자들 역시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단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마음에 감동과 은혜를 받아 주님을 좇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언제까지 자기욕망을 좇는 자들로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주님은 이 두 가지를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바로
자기비움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 25절은 바로 그 다음에 제자들에게 주신 보충설명입니다. 25절에서 주님이 강조하신 것은 “
나를 위하여” 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주님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고 내어 드릴 수 있는 주님의 사람들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삶의 목표이어야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성도님들께 묻습니다. 주를 사랑하십니까? 주를 위해 내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습니까?


-
바울의 예를 살펴보면 주님의 이 말씀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어느 날 전혀 예상치 않게 주님께서 바울을 만나주셨습니다 (행9장). 자신의 상식과 논리로 볼 때 틀림없는 이단이요 사기꾼이었던 예수가 자기 앞에 나타나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이 주님을 위해 오래전에 택함받은 복음의 그릇이라고 말씀해 주실 때 그는 그 크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기 딴에는 목숨바쳐 하나님을 섬기겠노라 했던 것이 고작 하나님을 대적한 것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너무나 큰 충격속에 3일 동안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하나님께 열납되는 기도를 시작합니다 (행9:11). 우리가 변화되지 않는 이유는 자신 자신에 대한 이러한 애절한 성찰의 기도를 해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면문제의 해결을 위한 간구의 기도만 할 뿐 내 자신을 성찰하는 기도를 해본적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주님을 만난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누가 지어낸 거짓 이야기가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비밀이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구약성서에 감추어있던 이 하나님의 인류구원의 비밀들을 이때 모두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구약의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죄를 속죄받기 위해 수천년동안 그토록 열심히 드려왔던 셀 수 없는 희생동물들은 바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지 못한채 여전히 동물제사만을 고집하며 시대착오적인 삶을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오류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고후3:14-16).


-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과거를 깨끗이 씻기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고후5:17). 자신의 목숨을 걸고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의 욕망을 좇아 살 수 밖에 없는 죄의 권세에서 자유함을 얻은 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를 피값주고 사셨기에 우리와 주님은 뗄레야 뗄 수 없는 한몸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의 구원입니다. 예수와 하나되었기에 그분의 죽음이 내 죽음이 된 것이고, 그분의 부활이 내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분의 영광이 내 영광이요, 그분의 나라가 내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관계는 그래서 혈맹의 관계입니다. 주께서 자신의 피를 걸고 우리를 구하셨듯이 이제 우리도 우리의 피를 걸고 주를 섬기는 것입니다 (
고후5:14-15).


- 사람은 무언가를 위해 자신의 삶을 드립니다. 어떤 이는 돈을 위하여, 어떤 이는 권력을 위하여... 내 삶에 내 생명을 드릴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렇지 못한 인생은 참 비참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주님을 위하여 100번이고 1000번이고 자신의 생명을 드릴 수 있는 자들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 베드로에게 마지막으로 확인코자 하셨던 한가지는 바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였습니다 (요21:15-17). 3년간의 제자훈련의 목표는 바로 제자들이 주를 자신의 생명을 걸고 사랑할 수 있는 자들로 세우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성도는 이런 행복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다른 어떤 것에 내 생명을 드리지 마십시오. 오직 주님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쁘게 희생할수 있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26-27절/ 26절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27절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 인간의 수명을 70~80으로 보는 안목으로 보면 이 땅의 삶에서 가장 많은 것을 얻은 사람이 가장 행복할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런 근시안적인 삶을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성도는 영원의 관점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영원의 시각에서 70~80년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그 후에 있을 영원한 삶, 즉 천국에서의 영생이냐, 지옥에서의 영생이냐를 결정짓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죄의 종자로 태어나 지옥으로 갈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자들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이 지옥운명을 천국운명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에 미혹되어 이 큰 것을 놓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역사의 마지막 날 주님께서 각 사람의 행한 대로 심판하실 때 자신을 통해 그 심판을 피하고 영생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이 헛되고 헛된 이 땅의 그 무엇때문에 장님이 되어 영원한 것을 보지 못하고 죽는 자입니다 (cf. 눅12:16-21 어리석은 부자). 그래서 이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성도들끼리 서로 모이기를 힘쓰고, 함께 위로하며 격려해가며 이 중차대한 천국준비에 한치의 실수가 없도록 교회로 부르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3. 28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 주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자신이 그 왕권을 갖고 오는 것을 볼 자들이 있다고 하신 말씀은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성령을 교회에 부어주심으로 교회가 하늘의 영적 권세로 무장되어 이 세상을 주의 복음으로 정복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성도들에게 권세와 능력으로 무장시키시고 이 세상을 대적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성경에 그토록 기도를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성도들이 기도를 통해 성령의 권능으로 무장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올해 모두 기도의 사람, 권세있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