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을 생각 하는도다

 마16:21-23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 주님께서는 오랫동안 가슴속에 품고 계셨던 놀라운 것들을 꺼내놓기 시작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과, 그 교회를 지옥의 권세가 절대 넘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천국열쇠의 권세를 교회에 주셨음을 밝히셨습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고대하고 계셨을지 짐작할만 합니다. 이 말씀을 제자들이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저 듣고만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게 될 것과 3일 후에 다시 살아날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이 제자들에겐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님을 붙들고는 “결코 그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했습니다. 이에 주님이 베드로를 향하여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꾸짖으셨습니다. 도대체 주님과 제자들 간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를 살펴보면서 2008년 마지막 주일에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보겠습니다.


(교훈)


1. 21절/ ... 비로서 가르치시니


-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 주님께서 지금까지 말씀할 수 없었던 것들을 비로서 가르치셨습니다. 주님께서 오랫동안 이 때를 기다리셨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신앙의 그릇이 주님의 이 계시를 받을 수 있는 분량으로 성장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님은 신앙 그릇의 크기를 보시며 그에 맞게 상대해 주십니다. 내 신앙이 어린아이의 수준이라면 그 정도의 말씀밖에는 이해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신앙이 성장하길 기대하고 계십니다 (
히5:11-14).  2008년 한해 나의 신앙이 얼마나 성숙했습니까? 내년에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의 신앙이 크게 성장하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더 큰 계시와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크게 쓰임받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이런 꿈을 갖고 도전하는 성도를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2. 22절/ 주님의 말씀을 바로 듣지 못했던 베드로


- 사람은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 일 것입니다.  누구와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 역시 이것 때문일 것입니다.  당신의 자녀들과의 의사소통은 어떻습니까?  원활하십니까?  주님의 제자들 역시 자신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들었던 우리와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주님 말씀의 앞 부분만 듣고는 끝부분에 언급하신 죽은 후에 부활할 것이라는 정말 중요한 내용은 듣지 못했습니다.  성경을 편식하면 안될 이유입니다. 내 입맛에 맞는 것만 먹으면 바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모든 말씀을 다 들어야 합니다. 성경 66권을 균형있게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성경에서 창세기가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이라 창세기만 100번 이상 읽은 분이 있다고 합니다. 감사할 일이지만 이 분의 신앙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을 가능성이 높기때문에 교회에 유익을 주기보다 해를 입힐 가능성이 큽니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 하지 않습니까? 내 신앙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게 해선 안됩니다. 구원에 대한 지식에만 머물러 있어선 안됩니다. 구원 이후의 성도의 삶 (성결, 사역, 권능,은사, 교회, 종말론...)에 대한 지식 등 성도라면 알아야 할 것과 과정들이 참 많이 남아있습니다. 부지런히 배워 온전한 신앙을 이뤄야 합니다 (히6:1-2). 2009년에는 새로운 신앙목표를 세웁시다. 성경에 달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십시오. 주님이 돌아가신 후 제자들이 실망과 절망가운데 자포자기 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주님 말씀의 한쪽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 제자들 모두 주님께 호되게 꾸지람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
막16:14, 눅24:25-26). 하나님의 말씀을 대충 적당히 보는 습관을 버리십시오. 한 글자, 한 문장도 소홀히 하면 안될 것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신앙인이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사고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분열케 만들 것입니다. 


3. 22-23절/ 베드로와 예수님 신앙의 차이점


-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많은 고난을 당하고 죽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왜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붙들고 간(諫)하며 (책망, rebuke) “절대 그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This shall never happen to you!)라며 감정적으로 주님을 대했던 것입니다. 아마 우리 가운데 누구라도 그곳에 있었다면 모두 베드로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난당하는 것을 어찌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을까요? 그가 가는 길을 막든지, 무엇인가를 하든지 해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베드로의 심정이 그랬던 것입니다. 어느 누가 주님을 해하고자 한다면 목숨을 걸고 주님을 지켜드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cf.
요13:36-37).


- 이런 베드로를 향해 주님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고 하셨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려고 하는 사람을 실족케 하는 사람입니까? 베드로와 같이 인간적인 생각을 앞세우는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을 생각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사셨던 분이십니다. 무엇을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행하며 사셨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일이 우선이었습니다. 이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도 하나님의 일이었기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12명의 제자를 선택한 것도 하나님의 일이었기에 자신의 입맛에 맞고 안맞고를 떠나 하나님의 뜻을 좇아 그대로 수용하시고 그 12명을 선택하셨습니다. 편안하게 적당히 제사장들과 타협해가면서 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미 버리셨기에 그들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하는 극한 고통과 부끄러움을 맛보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이었기에 그것까지 용납하시며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고자 하셨습니다. 주님의 생애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시며 사신 생애였습니다.


- 아직 우리는 그 지경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매우 가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할 뿐입니다. 그저 생각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예수님의 삶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도 이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내 생각에 왠 사람의 일이 그렇게도 가득차있던지... 성도라면 하나님의 일로 가득차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할까요? 바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머리를 하나님의 일로 가득채우시면 가능해집니다.
계14:1을 보면 종말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추수꾼들의 이마에 뭔가 쓰여진 것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바로 하나님의 이름과 어린양의 이름입니다. 성령의 인침을 받았기에 그들의 생각에는 하나님의 일만 충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성령에 사로잡힐 때만 가능합니다. 슥4:6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슥4:6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한 삶으로 새 해를 맞이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