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4:1-11 인생 실패자 헤롯
-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로마정부는 이스라엘을 4개 지역으로 분할하여 그 곳을 다스리는 분봉왕들을 두었습니다. 그때 갈릴리 지역을 다스렸던 왕이 오늘 등장하는 헤롯 안티파스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교활함을 지칭하여 “여우”라 부르셨고 (눅13:32), 예수께서 죽으시기 전날 예수님을 심문했던 왕도 바로 이 왕이었습니다 (눅23:7). 오늘 본문은 이 헤롯이 세례 요한을 붙잡아 처형시킨 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제일 큰 화제거리는 예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헤롯은 예수에 대한 정보를 계속 듣고 있었습니다. 이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들으면 들을수록 헤롯왕은 점점 더 불안해졌습니다. 무엇때문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1-2절/ 14:1 그 때에 분봉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14:2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저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도다 하더라
- 헤롯은 자신의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했던 세례요한을 잡아 처형시켰던 자입니다. 눈에 가시같았던 세례요한이 이 땅에서 없어졌으면 바랬고 또한 그럴 힘이 있었기에 그렇게 했습니다. 한동안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세례 요한과 똑같이 회개를 외치는 예수라는 자의 소문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이 예수는 한술 더떠 놀라운 이적까지 행사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추종자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호랑이를 피하나 했더니 더 무서운 곰을 만난 것입니다. 헤롯은 이 예수를 죽었다 다시 살아난 세례 요한으로 생각했습니다. 부활한 세례요한이 능력가운데 예수의 몸에서 역사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정도였으니 헤롯이 예수님 소문을 들었을 때 얼마나 두려워했겠습니까? 그래서 사람은 죄를 짓고는 못살게 되어있습니다. 자기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양심을 거스려 행하면 늘 불안한 삶을 살수밖에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는 올곧은 자기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상황에 직면해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죄의 잔흔인 것입니다 (창3:10). 내게 득이 되면 하고, 득이 없으면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바른 일(=선)이면 하고, 바르지 않으면(=악) 하지 않는 사람으로 키워야 할 것입니다.
- 그렇다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겠습니까? 다 자기 입장에서 판단할 텐데 과연 선,악의 구분을 누가 한답니까? 이런 질문은 인간이 중심인 인본주의 안경을 끼고 있는 자들이 지금까지 줄곧 해답을 얻지 못하고 불필요한 논쟁을 해오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를 죄라고 말합니다. 자기 스스로가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죄입니다 (cf. 창2:17). 그리스도인된 우리는 철저히 선은 하나님 한분임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떤 순간에도 우리의 판단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이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윗의 그런 삶을 보고 망하는 삶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행위를 보고 계시며 믿음을 좇은 행위를 정확하게 보상해 주심을 믿고 살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다윗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셨고 그를 높여주셨습니다. 헤롯은 선악을 분별하며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하여 인생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악을 분별하며 사는 법을 배우셨습니까?
2. 3-4절/ 14:3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14:4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 헤롯이 세례요한을 붙잡아 옥에 가둔 이유를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이는 요한이 헤롯을 향하여 “옳지 않다”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개혁자를 좋아하지만 그가 내 잘못을 지적할 때는 참지 못하고 그를 싫어하게 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 그가 나를 미워하고 있구나 혹은 내 편인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라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 자녀를 키우는 아빠로서 내 자녀들에게 좋은 소리할 때보다는 나쁜 소리 할 때가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좋은 소리할 때든지, 쓴 소리할 때든지 자녀를 향한 사랑의 마음은 똑같습니다. 반면에 제 이웃의 자녀들에게 제가 한번도 쓴소리 해본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소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이 세상 그 누구든지 그에게 경고해 주는 사람을 붙여주셨습니다. 어떤 자동차에도 브레이크가 있듯이, 그 누구에게도 안전장치로 그런 사람을 붙여놓은 것입니다. 이 경고음을 들을 때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지혜로운 사람이냐 미련한 사람이냐 판명이 나게 되어있습니다. 잠9:8을 보겠습니다.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 하나님은 우리 모두 인생 성공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실패자로 끝난 사람들이 꽤나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을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주님의 뜻입니다. 제가 이들의 삶을 연구하면서 발견한 것은 이것입니다. 그들이 망하기 전에 하나님의 경고를 몇 번 받았다는 겁니다 (cf. 왕상11:9). 이 하나님의 경고는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선지자들의 쓴소리를 받고 돌이키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 헤롯 역시 선지자 세례 요한을 통해 경고를 받았습니다. 마음에 든다고 자기 아내를 내치고 동생의 부인을 빼앗아 아내 삼은 일이 옳지 않다도 지적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은 그의 소리를 내쳤습니다. 오히려 그를 붙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 헤롯은 쓴소리 듣는 법을 배우질 못했습니다. 헤롯은 그렇게 극악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막6:20). 세례요한의 설교를 듣고 감명받고 뉘우칠 줄도 알았고, 세례요한을 존경까지 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자기를 향한 쓴소리는 받지 못하여 실패자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 나를 향해 쓴소리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한 두명입니다. 이들을 내치면 안됩니다. 그들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들을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그들의 말을 지혜롭게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들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듣지 않기 때문에 망하고 실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다윗 역시 큰 범죄를 저질렀으나 이를 지적해준 선지자의 말을 내치지 않고 돌이켜 회개함으로 실패자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자신의 소임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여 다윗을 살려냈습니다. 이와 같이 목회자의 권면을 잘 받을 줄 아는 성도 되시길 바랍니다.
3. 6-11절 / 하나님의 사람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 헤롯의 또 하나의 실수는 자신을 파멸로 이끌 사람을 가장 가까이 두고 아꼈다는 것입니다. 그가 맞이한 새 부인이 바로 그 장본인이었습니다. 겉은 아름다운 꽃과 같았으나 속은 마귀였습니다. 헤롯은 이 여인으로 인해 평생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를 죽인 것입니다. 설마 내 아내가 그런 사람일까? 방심한 것입니다. 청소년들은 특히 친구 사귀는 일에 신중해야 할 것이고, 좋은 배우자를 위해 정말 기도의 씨앗을 많이 뿌려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좋은 신앙인격자와 사귀어야 합니다. 정들고 친구가 되고 나면 그를 객관적으로 볼수 없기 때문입니다.
- 헤롯이 인생 실패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세 가지 원인을 살펴보았습니다. ①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악을 분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② 쓴소리 듣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③ 사람을 분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 세 가지를 잘 배우고 적용하여 모두 인생 성공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