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배척 당하신 예수님


마13:53-58 고향에서 배척당하신 예수님


-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고향 나사렛을 떠나 이스라엘 곳곳을 순회하시며 사역을 하셨습니다 (마9:35). 오늘 본문은 오랫동안 방문하지 않았던 고향을 방문하셨을 때 벌어진 일에 대한 기록입니다.  고향을 방문하셨던 주님은 늘 규례를 따라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고향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세있는 가르침과 능력을 보고 놀라워하면서도 (54절) 그들의 머릿속에 떠올려지는 예수의 인간적 모습 때문에 그를 하나님의 선지자로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55-56절). 이에 예수님께서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도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들의 불신앙 때문에 아무 권능도 행할 수 없으셨습니다 (막6:5).  이 본문을 통해 교회에 들려주시는 주의 음성을 들어봅시다.  


1. 내가 알고 지내는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신앙이야 말로 진짜 신앙입니다.


- 오늘 본문은 공생애 이전의 예수님의 삶이 매우 평범했음을 암시해줍니다. 예수의 어린시절, 청년시절을 지켜보며 살았던 고향사람들은 이렇게 변화되어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매우 당혹해했습니다.


-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놀라운 일이 내 안에서 일어납니다. 언어가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집니다. 깡패 김익두가 신앙인이 된 뒤 겸손한 양같이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된 것을 나를 모르던 사람들 앞에서 간증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 간증을 듣고 사람들이 도전을 받습니다. 그의 간증을 듣고 그가 변화된 것을 쉽게 인정합니다. 그러나 고향사람들, 가족들은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그들에겐 나의 변화된 삶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에겐 마이크 잡고 강단에서 한 두 시간 폼잡고 감동을 줄 수 있지만,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들에겐 이것이 통하지 않습니다.


- 흔히 구원을 거듭남(출생)의 한 가지로만 생각하는데 너무 단순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신 후 (거듭남) 시내산에서 그들에게 한가지 약속과 한가지 요구를 했습니다 (출19:5-6). 그 약속은 제사장 국가와 거룩한 민족이 되게 해 주시겠다는 것이고, 그 조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거룩한 민족이란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민족을 말합니다.  거듭난 후 내 주위에 사람들로부터 내가 달라졌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너무 멋있고 존경할만한 사람이 됐다는 평을 들어보셨습니까? 동시에 범접할 수 없는 고결함 때문에 마구 접근하기도 어려워하는 존재 말입니다. 나로 인해서 모일 때마다 고스돕치던 습관이 그쳐졌습니까? 남 흉이나 보던 관행이 그쳐졌나요?  관행이던 뇌물주고 받기, 일상적이던 거짓말, 음란한 이야기들, 이기적 욕망으로 가득찬 대화들... 이런 것들이 나로 인해 제동이 걸리고 그쳐졌나요?


- 앞으로 구체적이고 참된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결단을 합시다.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녀들, 내 친구들, 내 직장 동료들에게 내가 정말 변했다, 저 사람은 진짜 그리스도인이야 라는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기로 굳게 결단합시다.  그들과 다른 것이 고작 교회나 참석하는 종교인의 모습이라면 천국과 무관한 신앙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심판받고 버림받은 이유가 바로 겉 모습은 거룩한 종교적 모습을 갖추었으나 속 사람이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나의 변화된 모습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복음의 능력은 삶을 바꾸는 능력입니다.  이런 능력은 이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것입니다.


2. 선지자가 고향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는 이유는 그를 인간적인 안목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누구를 존경하는 것은 그의 신비로움 때문입니다. 연예인들을 우상처럼 떠받들고 좇아다니는 이유는 베일에 가려진 그들의 삶에 대한 신비로운 상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의 참 사생활을 보고나면 그 신비로움이 아침안개처럼 사라져버립니다. 더 이상 그가 우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 이런 현상이 영적세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의 어린시절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그의 인간적인 부족한 부분들에 대한 기억 때문에 그의 말씀을 바로 받지 못합니다. 그의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장애물이 없기 때문에 말씀을 받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대언자일 뿐입니다. 그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일 뿐입니다 (살전2:13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그래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구원받고, 치료받고, 변화되는 은혜를 경험합니다. 그런데 그분을 잘 아는 사람은 이런 저런 인간적 생각들 때문에 정작 들어야 할 그분의 말씀을 바로 받지 못합니다. 그분의 개인 신상에 대하여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때문에 말씀에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 일반적으로 새신자들은 설교말씀을 꿀송이같이 받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교회에서의 이런 저런 사역에 참여하면서 목사님의 인간적 면모를 보게 됩니다.  가끔 의견충돌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목사님의 말씀이 인간의 말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이전에는 그 어떤 말씀도 아멘으로 받았고 모든 것이 은혜로왔습니다. 그러나 이젠 이상하게 아멘 으로 화답이 되질 않습니다. 신앙생활이 더 이상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저 습관을 좇아 교회에 나올 뿐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이 과정을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이 과정을 잘 이겨낸 성도만이 그 교회에 정착하여 일꾼으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정상적인 신앙생활이나 영적성장이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 선지자가 고향사람들, 가족들에게 배척을 당해야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의 권위가 그들에게 인정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목회는 영적권위로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영적권위를 인정하며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영적성장과 풍성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인간적인 안목의 덫에 걸려 신앙생활의 실패자가 되지 마시고 인간적 안목을 극복하여 더 성숙하고 강건한 영적 거인으로 성장하여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일꾼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불신앙\" 때문입니다.


- 다른 곳에서는 그토록 수많은 능력을 행하셨던 예수님이 막상 고향에서는 능력을 행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막6:5). 주님은 여느 곳과 같이 그곳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주려 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부어줄 수 없었습니다. 그때 주님의 몸컨디션이 안 좋으셨냐구요?  아닙니다.  이유는 단지 그들의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 아브라함은 믿었기 때문에 나이 100세에 아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출애굽의 역사를 이룰 수 있었던 것도,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트릴 수 있었던 것도, 독뱀에 물린 자들이 구원얻은 것도, 야이로가 자기의 병들어 죽은 딸을 고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믿음을 통해서 였습니다. 반대로 망한 자들은 한결같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믿음을 배우지 못했던 그 누구도 하나님의 능력을 맛볼 수 없었습니다.


- 천국이 천국이 될 수 있는 것은 믿음의 사람들만이 거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신앙의 사람들은 천국입성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풍성하게 부어지는 곳이 되려면 우리 모두가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믿음의 통로를 통해 은혜와 능력을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키웁시다. 더 이상 인간적인 안목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합시다. 믿음으로 도전합시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맛보며 살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