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3:45-46 진주장사 비유
마13장의 여섯 번째 비유인 진주 장사 비유를 살펴보겠습니다. 흔히 다섯 번째 비유인 감추인 보화 비유와 쌍둥이 비유로 함께 다루어지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내용이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1. 감추인 보화 비유와 진주상인 비유 비교
- 본 비유의 영적 교훈을 살펴보기 이전에 본 비유와 감추인 보화의 유사점과 다른점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각기 두 가지씩입니다. 유사점은 ① 무엇을 발견한다는 내용과, ② 발견한 후 자기 소유를 다 팔고 산다는 내용입니다. 다른점은 ① 감추인 보화에선 천국이 보화와 같다고 했고, 진주장사 비유에선 천국이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고 했습니다. ② 감추인 보화 비유에선 어떤 사람이 그 보화를 찾다가 발견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진주장사 비유에선 이 장사는 진주를 찾는 도중에 극히 좋은 진주를 발견한 것입니다.
2. 용어 해석
- 진주를 찾고 있는 이 장사는 하나님을 말하며, 진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얻은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cf. 행20:28 하나님이 자기 피를 주고 사신 교회). 감추인 보화는 구원받는 성도의 관점, 진주장사는 이들을 찾으시는 하나님 관점에서 설명된 천국비유입니다.
3. 교훈
1) 하나님은 자신의 전 소유인 아들 예수를 팔아 우리를 사신 진주장사이십니다.
- 우리는 오랫동안 버려져 고아와 같이 돌봄없이 이 세상에서 살아왔습니다. 야수들로 가득찬 정글과 같은 세상에 던져져 나홀로 생존을 위한 힘겨운 투쟁을 하며 겨우 겨우 살아왔습니다. 사업실패로, 시험성적 문제로 자살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습니다. 하루에 5-6시간씩 물길러 그것도 식수가 아닌 더러운 흙탕물을 그냥 마시며 하루 하루 힘겹게 살아가고있는 아프리카인들도 있습니다. 이 땅에는 자기 몸을 팔아 살아가는 수백만의 여자들도 있습니다. 전쟁, 기근은 끊임이 없습니다. 이 세상 어느 곳 쉽게 살 수 있는 곳은 없어 보입니다. 정말 이런 세상에서 하루 하루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모릅니다.
- 어쨌든 하루 세끼는 먹어야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럭저럭 하루 하루 살아가곤 있지만 앞날이 정말 걱정됩니다. 나이는 먹어갑니다. 자녀들은 겁 없이 쑥쑥 자라납니다. 어찌됐든 내 자녀들이니 책임져야 합니다. 남편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정신없이 일해서 집에 돈을 벌어와야 합니다. 아내는 그걸 갖고 가정 경제를 힘겹게 꾸려갑니다. 내 집 소망은 버릴 수 없으니 저축합니다. 자녀들 사교육비로 허리가 휘지만 강남 아줌마들 이야기 들으면 내 자식들 무슨 학원이라도 보내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습니다. 이길 수 없는 경쟁임을 알면서도 안할 수 없습니다. 밤이 찾아오고 지친 몸 내일 아침을 무작정 기약하며 쓰러져 잠을 청합니다. 어김없이 아침에 눈이 떠집니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무의미한 인생...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어쩌다 이 지구행성에 태어나 이렇게 살고 있을 뿐입니다. 과연 사람의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정말 우리의 인생에 어떤 의미나 목적이 있는 걸까요?
-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길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 인생의 어떤 의미와 목적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힘겹고 피곤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 잘 알고 계십니다 (전1:8).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마음의 쉼을 약속하셨습니다. (마11:28-29). 하루 하루 이 세상 살이에 매여 이 땅의 것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생의 참 의미와 목적을 알려주셨습니다. 성경은 다름 아닌 잃어버린 당신의 자녀들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 풍족하고 부요하게 지내던 사람들은 이 예수님의 메시지를 싫어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향해 무섭게 회개할 것을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에게는 천국의 소망으로 위로해주셨습니다. 병든 자들,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이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소망하며 사는 믿음의 삶에 대하여 설교하셨습니다. 버림받고 의지할 것 없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 설교를 듣고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염려와 걱정으로 하루 하루 살아가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새 삶의 방식에 대하여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책임져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면서 (마6:32-33)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 관점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의미한 존재로만 알았던 내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꼭 필요한 존재요 의미있는 자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재물의 있고 없고에 영향받지 않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삶으로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져주시는 것을 신뢰하며 사는 믿음의 삶입니다.
- 그런데 어느날 그들의 소망이었던 예수님이 무기력하게 붙잡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들이 받았던 충격이야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3일 후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의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게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다름아닌 구약에서 약속된 메시야였습니다. 자기 백성들을 구원할 자를 보내겠다던 그 구약의 약속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기로 약속한 메시야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전 소유였던 자신의 독생자였습니다. 그분을 우리 대신 죽이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소유를 내어주시고 우리를 사신 것입니다 (고전6:19-20). 자신의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내어주셨다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더 이상 의심해선 안될 것입니다 (롬5:8).
2)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지극히 귀한 보배들입니다.
- 우리는 종종 내 자신의 초라한 모습때문에 실망하고 좌절할 때가 많습니다. 뭘 해보겠다고 발버둥쳐보지만 환경을 바꿀만한 그런 능력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이때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새롭게 일어설 수 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 이 비유는 우리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전 소유를 투자하여 우리를 자기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정말 믿기 힘든 말씀입니다. 그래서 믿으라고 합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cf. 출19:5 나의 소유 (히,쎄구라 - 특별한 보배), 습3:17 기쁨의 대상
-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자녀도 있고, 근심을 주는 자녀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자녀라 할지라도 모두 부모의 자애로운 사랑의 울타리 안에 놓여 있음에는 다름이 없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향한 본능적인 사랑에 속박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역시 예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사랑의 끈에 포로된 분이십니다.
- 혹시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습니까? 눈을 들어 아버지되신 하나님을 소망합시다. 우리가 그분의 보배로운 자녀일진대 가만히 계시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능하신 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사43:1-4, 롬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