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3:33 누룩 비유
2008년 9월 28일 김승호 목사
오늘은 마13장에 기록된 네 번째 비유인 누룩 비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누룩비유와 쌍둥이 비유로 불리는 겨자씨 비유는 하나님 나라는 볼품없고 미약한 시작이지만 놀랍고 신비로운 생명과정을 통해 성장이 이루어지게 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겨자씨 비유가 외적 성장, 양적 성장을 말하고 있다면 오늘 누룩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내적 영향력에 대한 것입니다. 살펴보겠습니다.
1. 본문내용
- 주님께서 또 다시 천국에 대하여 다른 각도로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어릴 적 집에서 빵을 구어 만들 때 어머니께서 밀가루에 누룩을 넣어 반죽을 하면 그 반죽이 부풀어 올랐던 것을 떠올리면서, “천국은 어느 여자가 밀가루 반죽에 넣어 그 밀가루 세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를 부풀게 한 누룩과 같습니다”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 용어 설명 /
- 세 말 : 39리터 (한 말 = 13리터. 100여명이 족히 먹을 수 있는 많은 분량, cf. 창18:6 아브라함이 손님을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음식을 만듬).
- 누룩 (효모, 발효제, yeast)
2. 교훈
1)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접촉하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누룩입니다.
- 누룩은 성경에서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용어입니다. 죄, 또는 외식에 대해 경고할 때 누룩을 삼가라는 식으로 구약이나 신약에서 사용되어진 용어입니다 (cf. 출12:5, 마16:6). 그러나 이 비유에서 언급된 누룩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세상에 흩뿌려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누룩은 이 세상을 변화시킬 그리스도인들을 가르킵니다. 누룩이 밀가루에 섞여져 밀가루를 부풀어오르게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과 접촉할 때 그들을 부풀게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이 세상에 분명한 목적을 갖고 보내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어디에 있든 특별한 목적을 갖고 보냄받은 자들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에겐 삶에 대한 고귀한 사명감이 없이 그저 살아갑니다. 늘 같은 스토리 뿐입니다. 진부합니다. 새 것이 없습니다. 감동적인 것이 없습니다. 그들끼리의 만남과 사귐을 통해선 결코 누룩의 부풀케하는 변화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 그러나 그리스도인들과 접촉한 사람들에겐 이러한 부풀케됨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영적인 바이러스가 그들에게 전염이 되는 것입니다. 누룩이 섞였다면 밀가루는 반드시 부풀게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에게 접촉된 사람은 반드시 부풀게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누룩의 전염된 것입니다.
- 누룩의 부풀케함의 모습이 사도행전에 가장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에 파송합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접촉하기 시작합니다. 이들과 접촉한 밀가루마다 부풀어오르기 시작합니다. 베드로, 빌립, 바울, 무수한 무명의 그리스도인들, 이들이 접촉한 사람마다, 가정마다, 도시마다 이 누룩의 부풀어짐의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당신이 접촉하는 사람마다 이러한 부풀게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과 접촉한 사람들의 인격과 삶의 철학에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품이 바뀌게 됩니다. 자신만의 욕망을 좇아 살던 이기적인 사람들이 남을 배려하고 용납할 줄 아는, 희생할 줄 아는 사람으로 놀랍게 부풀어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행2:43-47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2) 누룩의 사명을 감당키 위해선 세상과의 적극적인 접촉이 절대적입니다.
- 누룩은 밀가루에 섞여야 합니다. 반죽이 되면서 밀가루는 누룩의 힘에 의해 부풀어 오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내 주위의 사람들과 섞여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모르는 사람에게 접근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거절당하고 망신당할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밀가루에 섞여지지 않는 누룩은 그 존재가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본을 보여줍니다.
- 창18:1-8을 읽겠습니다. 지나가는 세명의 행인을 무조건 초대하여 그들이 감동을 먹을 만큼 음식을 대접합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큰 감동을 먹었습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이웃을 집으로 초대하여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시작하면 됩니다. 서서히 누룩의 영향력이 그들에게 전가될 것입니다.
- 여자, 특히 아내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손이 부지런하고 억척스러운 분들이 이러한 누룩의 역할을 잘 감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사마리아 여인이 바로 그 순간 마을로 돌아가 마을 사람들을 부풀릴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포기하지 않고 다섯 번씩이나 결혼할 정도로 자기 생에 대한 의욕이 강했던 여인이었던 것처럼 부지런하고 억척스러운 기질의 여인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누룩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3) 더 효과적인 누룩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늘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 매우 적은 부풀림으로 그치는 누룩이 있고, 엄청난 부풀림을 이루어내는 누룩도 있습니다. 누룩안에 역사하는 능력이 다릅니다. 이러한 차이는 다름아닌 성령의 능력이 얼마나 역사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는 누룩에는 놀라운 부풀림이 일어납니다. 이왕 누룩이 된 이상 다른 누룩보다 더 큰 부풀림을 역사케 하는 누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베드로도 놀라운 부풀림의 역사를 일으킨 누룩이었으나 바울만큼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바울에게서 끊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 이러한 역사가 끊이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늘 그리스도와 접속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느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했고, 그 사랑에 붙들려 자신을 아낌없이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 은혜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부풀리는 역사를 계속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을 보면 그의 능력의 근원은 다른데 있지 않았습니다. 주님과의 연합이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그의 사랑이 그를 가장 위대한 누룩이 되게 하였습니다. 주를 향한 사랑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미치듯이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 누룩의 사명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 주를 사랑하는 누룩 바이러스가 접촉하는 사람에게 전염될 때 놀라운 부풀림이 일어나게 됩니다.
- 사랑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를 사랑해야지 결단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전염병과 같습니다. 내 의지대로 되질 않습니다. 사랑은 부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만을 바라볼 뿐입니다. 기도할 뿐입니다. 사랑이 부어지면 그때부턴 자동적으로 이 누룩의 역할을 수행케 됩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그 놀라운 변화는 성령세례 하나밖에 설명되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40일 새벽부흥회에 도전하십시오. 우리 모두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변화되어 이곳 사람들을 부풀리고 더 나아가 전 세계 사람들을 부풀리는 파워풀한 누룩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