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지 비유

마13:24-30, 36-43 가라지 비유



마태복음 13장에는 많은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비유장이라 불리우기도 합니다. 그 첫 번째 비유가 씨뿌리는 비유였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비유인 가라지 비유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본문 내용


한 농부가 자신의 밭에 좋은 씨앗을 뿌린 뒤 잠을 잤습니다. 그때 그 농부의 원수가 그 밭에 가라지를 덧뿌려놓았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그 밭에 알곡과 가라지가 뒤섞여 있음을 주인의 종들이 보았습니다. 깜짝놀라 주인에게 가라지들이 어떻게 자랐는지 묻습니다. 원수 짓이라는 주인의 말씀에 종들이 그 가라지들을 뽑아 버리려했습니다. 이에 주인은 알곡까지 뽑을 것을 염려하며 가만 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추수할 때 추숫군들이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를 것이고 알곡은 따라 모아서 주인의 곳간에 넣을 것이라 했습니다.

※ 용어 해석 (37-38절) / ① 좋은 씨 뿌리는 농부 = 인자 (예수님), ② 밭 = 세상, ③ 좋은 씨 = 하나님의 자녀, ④ 가라지 = 마귀의 자녀, ⑤ 가라지 심는 자 (원수) = 마귀, ⑥ 추수때 = 세상 끝날 (종말), ⑦ 추수꾼 = 천사들


2. 교훈


1)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사단의 공격을 대비해야 합니다.


- 하나님은 지금도 이 세상에 좋은 씨, 즉 천국 자녀들을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8:30). 지금도 자신의 종들을 통해 천국 복음을 뿌림으로 당신의 잃은 자녀들을 되찾는 일을 하십니다. 이것이 좋은 씨를 세상에 뿌린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미리 택정하신 당신의 자녀들을 부르시며 십자가 복음으로 의롭게하시며 거룩한 자녀로 천국에 합당한 자들로 세워가고 계십니다. 지옥으로 운명되어진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옮겨지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러나 원수 사단은 이를 가만히 지켜 보고만 있지 않습니다. 반드시 반격을 하는 것입니다. 사단이 어떻게 반격을 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교회로 보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가라지를 심어 놓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교란시키고 흔들어 놓습니다. 이 가라지들로 교회가 이끌어지도록 유도합니다. 가라지들의 목소리가 많아지고 이들이 주의 종들의 사역과 알곡의 영적 성장에 치명적 손상을 입히도록 합니다. < cf. 출12:38 출애굽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많은 잡족들이 함께 광야교회를 이루게 된 것 - 이들이 늘 원망과 반역의 주동자들이 되었음은 자명한 일임.>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주도권은 가라지들의 손에 놓여 있었습니다. 주님과 충돌하면서부터 이들이 가라지들이었음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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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유를 통해 사단의 전략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이 지상 교회들을 육적교회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가 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가라지들을 심어놓는 것입니다. 100% 알곡인 교회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알곡들이 교회의 영성을 지켜야 합니다. 교회의 세속화를 막아야 합니다 (교제 장소, 애인 구하는 곳, 혹은 장사하는 곳, 혹은 인맥을 형성하는 곳 cf. 소망교회). 가라지들이 교회 리더로 세워지게 해선 안됩니다 (cf. 민27:15-18 성령충만한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심, 행6:3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를 교회 일꾼으로 세움).


2) 우리는 누가 가라지고 알곡인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 종들이 밭에 있는 가라지를 뽑아 없애려 하자 그러다 알곡까지 뽑을 것을 염려하여 주인이 이를 허락지 않았습니다. 우리 눈에 가라지 같아 보이는 알곡이 있고, 알곡같아 보이는 가라지가 있습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의 마음밭에서 진행되어지는 이 하나님의 은밀한 생명역사는 오직 하나님 한분밖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는 한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누가 알곡인지 가라지인지 자의적으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지난 2천년 교회사를 통해 여기에서 많은 잘못을 행해왔습니다. (eg. 스데반, 12제자, 사울의 기독교 잔멸행위, 교회사의 잘못된 이단정죄 사례...)


- 내가 알고 있는 교리와 다른 교리를 주장한다고 해서 남을 혹은 그들의 교단을 이단으로 정죄하면 안됩니다. 물론 분명한 이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도 않은데도 형제를 가라지로 몰아선 안됩니다. 알곡과 가라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만 구분되어지는 것입니다. 알곡끼리 서로 원수같이 대립해선 안됩니다. 상대방의 차이를 인정하며 용납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알곡으로 서있기를 힘쓰는 성도가 바른 성도입니다.


3) 알곡과 가라지는 마지막 심판 때 천사들에 의해 정확하게 갈라지게 될 것입니다.   


- 세속적 역사관은 종국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마지막 심판의 날이 있음을 분명히 말해줍니다. 그 날 알곡과 가라지가 비로서 드러나고 갈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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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누가 알곡이고 누가 가라지인가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나를 위한 대속의 죽음임을 깨닫고 거듭난 사람이 알곡입니다. 반면에 가라지는 이 믿음이 없습니다. 이 믿음이 없기에 이들은 행위로, 노력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겉으로 흉내는 내지만 이 믿음의 씨앗이 없기 때문에 결코 하늘 생명의 열매가 맺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20년 30년 신앙생활했다고 하지만 그저 껍데기에 불과한 육적 종교적 행위만 하는 자들입니다 (요3:5). 이들의 믿음은 겉은 화려해 보이지만 속은 지푸라기에 불과한 가짜 믿음이기에 마지막 불시험을 절대 통과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참 믿음은 이 불시험을 거뜬히 통과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믿음과 신앙생활은 예수님의 십자가위에 세워진 견고한 집이기 때문입니다 (고전3:13). 당신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우리 교회의 성도들은 모두 알곡들이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 비유를 보면 이곳에도 가라지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마지막 날, 한치의 실수도 없는 이 천사들의 판별식에 한 사람도 가라지로 떨어지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 알곡과 가라지의 판별식 뿐만 아니라 그날에는 알곡들에 대한 또 다른 심판도 있을 것입니다. 알곡은 알곡이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을 1년에 한두번 열어보았던 사람들은 그날 엄청난 자책과 후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목회자의 권면을 이런 저런 핑계로 피하며 세상적 삶을 더 사랑했던 사람들이 크게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 종말론적 신앙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며 사는 성도만이 세상욕심과 쾌락에 마음이 빼앗기는 것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cf. 마24:42-51). 이 세상 영광이 얼마나 거짓되고 포장된 허영된 것이라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은 다 허구임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마지막 날을 바라보며 그 날을 소망하며 주님 앞에 서는 순간을 애타게 기다리는 성도가 참된 알곡입니다. 지금 내게 부어진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 섬김의 기회를 선용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