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족 하기를 배우는 삶


빌4:9-13 자족하기를 배운 삶


    인간이 동물보다 우수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은 바로“배움”의 능력때문입니다. 그 어떤 동물보다 연약하게 태어나지만 배움을 통해 가장 강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 배우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똑같이 공부하는데 어떤 이는 ‘공부능력’이 뛰어나서 자기가 원하는 대학, 직장에 쉽게 들어갑니다. 배움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배움에 대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께서 그토록 위대한 신앙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잘 배우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무엇을 배웠는지 자세히 살펴봅시다.


1. 10절/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 지금 바울은 자신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빌립보 성도들이 한 동안 중단했던 재정적 지원을 다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얼마 동안 바울에게 재정적 후원을 중단했던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다시 시작한 것입니다. 바울이 기뻐한 것은 기대하지 않았던 돈이 생겨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를 그토록 기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성도들이 자신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 바울의 요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성도의 신앙과 성도들의 목회자를 향한 생각은 정비례 한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를 향한 생각이 중단되었다는 것은 그들의 신앙이 병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초기에 자신을 향한 뜨거운 생각과 관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을 때 그들이 얼마나 감격스러워했고, 바울을 얼마나 사랑하고 애뜻하게 생각했는지. 세월이 흘러 자신이 로마에 투옥되었을 때 이 소식을 들었던 빌립보 성도들은 힘써 투옥중인 바울을 섬기고자 했습니다. 무슨 연유였는지 이 일이 중단되었습니다.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했든지 아니면 다른 이유였든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것이 바울을 매우 근심케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빌립보 성도들로부터 재정적 후원이 온 것입니다. 이에 바울이 주 안에서 크게 기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목회자를 통해 복을 나눠주시길 원하십니다 (
마10:11-13,40-42, cf. 민6:22-27)


- 지난 주 한 자매님이 집에서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왔습니다. 뇌물로 가져온 것도 아니고, 그냥 같이 먹고 즐기며 시간 떼우고자 가져온 것도 아닙니다. 목회자에 대한 애정의 마음을 담아 가져온 것입니다. 이것이 저를 기쁘게 했습니다. 음식 때문이 아니라 그 자매의 목회자를 향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은혜 가운데 신앙이 잘 자라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에게서 은혜가 떨어지면 말씀 전하는 목회자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은혜가 회복되면 말씀을 달게 받습니다. 목회자에 애정도 같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신앙을 한번 진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2. 11-13절/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바울은 자신이 그토록 기뻐하는 것이 돈 때문이 아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궁핍한 상태에 있었는데 후원금을 받아 기뻐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물질적인 문제는 자신이 이미 초월하여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형편에 처해있든지 자족하기를 이미 배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무얼 배웠다구요? 네, “자족”하기를 배운 것입니다.


- 자족하기를 배우지 못한 사람은 환경에 따라 기뻐하고 슬퍼합니다. 그러
나 바울은 물질에, 환경에 좌우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약속에 신실하심을 의심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을 수없이 약속하셨습니다 (시81:10, 신28:1-6, 마6:32-33). 이러한 믿음의 가장 큰 원수가 바로 물질, 환경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우기로 한 것입니다.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 처해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그 상황을 용납하며 주 안에서 기뻐하는 훈련을 한 것입니다. 이 자족의 배움을 통해 바울은 환경에 좌지우지하는 삶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늘 마음의 평강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돈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절약하라고 하시나 보다, 금식하라고 하시는구나 생각하며 삽시다. 극한 상황에 처하면 주님께 기도하면서 주님의 뜻을 구하면 그뿐입니다. 불평할 이유도, 근심할 이유도, 좌절할 이유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번에는 어떤 좋은 것을 준비해 놓으시고 날 놀라게 해 주실려나 기대하고 그 상황을 즐기면 그뿐입니다. 흔히 말하는 도통한 경지에 이른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께서 그때 그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셨기에 바울은 자기 자신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한 가장 부요한 자로 살았습니다(고후6:10, 엡3:20).


- 우리들의 삶 가운데 싸움과 다툼이 왜 있습니까? 자족하기를 배우지 못한 결과입니다. 모두 욕망을 좇아 살기 바쁜 탓에 정말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채우는 것만 배웠지 비우는 것을 배우지 못한 결과입니다.
어려서부터 내 인생을 살찌우는 것, 성공하는 법만 배워온 탓입니다. 그래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람, 자수성가 한 사람, 재벌 자녀들의 공통점이 \"자기 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심각한 일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존경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자신을 비우는 것을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16:24).

- 진리는 보편적입니다. 그래서 자족을 배운 성도들, 그것을 삶에 실천하며 사는 성도들은 세상 사람을 감동주게 되어있습니다. 존경 받게 되어있습니다. 자족을 배우지 못하고 욕심을 좇아 사는 사람들로 득실대는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로 조롱받고 멸시받고 버림받고 있는 모습은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3. 9절/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 대형교회의 환상에 젖어 있는 신학생, 목회자들에게서 배우고 있는 신자들 역시 부자됨에 대한 환상, 성공의 술에 만취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런 삶을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들이 바라보아야 할 것은 바울의 삶의 자세입니다. 그의 삶이 우리의 푯대가 되고 본이 되어야 합니다. 고액 연봉의 직장, 더 좋은 차, 더 넓은 집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 그래서 안식과 평강을 누리며 사는 자족을 배운 삶입니다. 자족하며 삽시다. 올 여름 수련회 때 전 가족이 이를 배워봅시다.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운 사람에게 상상을 초월한 복과, 자유함이 있을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