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참으로 많은 위대한 인물을 배출하였다. 그 중 모든 성도들에게 최고의 신앙의 본을 보여준 인물은 바울임에 틀림없다. 오늘은 바울이 이러한 위대한 신앙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1. 10-12절/ 무엇에 확실히 “붙잡힌 삶”이었다.
- 사도바울의 삶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예수님께 잡힌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지금 누구, 혹은 무엇에 잡혀 살고 있나? 내가 무엇에 잡혀있는가에 따라 내 인생은 결정지어진다. 이번에 숭례문을 전소시킨 장본인 최모씨 (70세)는 토지보상에 불만을 품고 정부를 상대로 오랫동안 어거지 요구를 해가며 협상을 벌였으나 끝내 자신의 욕심이 채워지지 않자 결국 민족의 국보 1호를 깡그리 날려버리는 자신의 고국에 지울수 없는 대역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원인은 바로 그 마음이 \"욕심에 붙잡혔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마음은 무엇인가에 붙잡혀 살게 되어있다. 돈? 섹스? 취미? 지위? 대학? ... 지금 내 마음이 무엇에 붙들려 있는가?
- 그래서 신앙교육이 중요하다. 신앙교육은 인생의 바른 틀, 바른 성공관의 길잡이 역할을 해 주기 때문이다. 무엇이 바르고 틀린 삶인지에 대한 권위있는 분별력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어린시절, 청년시절에 내가 무엇에 붙잡혀 살것인가가 결정되어야 한다.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 빌립... 모두 청년의 때에 주님을 만나 주님께 붙들리는 은혜를 입은 후에 세상의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인생으로 쓰임받을 수 있었다. 무디 역시 청년시절 예수님께 붙들리는 은혜를 입은 후 2억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복을 받았다. 무디 한 사람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었고 가정이 변화되고 사회가 변화될 수 있었다. 그 무디가 복음에 붙잡힐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준 킴벌 교사의 이야기는 신앙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내게 맡겨진 어린 영혼들 (내 자녀, 교회학교 학생)에게 지울 수 없는 신앙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고 신앙교육에 임해야 한다. 이런 마음을 갖고 살 때 부모되고 교사된 우리들의 삶이 흐트러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 이러한 붙들림의 기회가 우리 인생에 한 두 번은 찾아온다. 이것을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사람도 많다. 반면에 이 찾아오는 기회를 붙들고 자신의 삶을 위대한 삶으로 전환시키는 사람도 많이 있다.
- 당신은 지금 무엇에 붙들려 한번 주어진 고귀한 인생을 소비하고 있는가? 바울은 예수께 잡혔다. 우리 모두 예수님께 잡힌 인생들이다. 바울은 그 잡힌 바 된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삶이었다. 처음에는 잡혀야 된다. 어느 사람도 예수님을 가지 스스로 잡는 사람은 없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자기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오직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잡아주실 때만 내가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이 붙들림의 은혜 속에 우리 모두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에 바울 같이 그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삶을 살고 있느냐는 것이다. 붙잡히되 바울과 같이 확실히 붙잡혀야 한다. 대충 붙잡히면 사울과 같이, 가롯 유다같이 비극적 결말로 인생을 끝나게 된다. 옆 사람에게 질문해 보자. \"당신은 확실히 예수님께 붙들인 사람입니까?\" \"언제 어떻게 붙들리게 되었습니까?\"
2. 13-14절/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삶이었다.
- 누구든 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면 인생이 분산되어 집중할 수가 없게 된다. 분명한 목표가 정해지면 집중의 무서운 힘이 발산되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능력에 사로잡히게 된다. 우리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서는 바울과 같이 자신의 인생을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바울은 이것을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삶이라 표현했다.
- 푯대는 내가 달려갈 인생의 방향을 분명히 보여주는 등대이다. 바울이 자신의 인생을 올인할 수 있었던 푯대는 어떻게 세워질 수 있었나? 바로 하늘의 부르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 바울을 만나실 때 이미 그에 대한 인생의 청사진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를 부르실 때 그 청사진이 그에게 전달되었다. 바울은 이 부르심을 거스리지 않고 인생의 가장 귀한 것으로 받들었다. 예수님에게 붙들린 자들이 누리는 가장 큰 은혜는 바로 이 푯대의 은혜이다. 예수님에게 온전히 붙들린 제자들에게 주어진 복중의 복은 그들의 삶을 향하신 하나님의 분명한 청사진이 주어지는 복이다. 이들의 인생은 찝찝하지가 않다. 너무나 분명한 확신속에서 살아가는 인생이다.
- 주님을 바로 만난 사람치고 이 푯대가 없는 사람을 본적이 있는가?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남은 인생을 아낌없이 그리고 주저없이 쏟아부울 가장 가치있는 “푯대”를 보여주신다. 그 푯대를 향하여 마음 껏 확신있게 달려가며 살 수 있도록 해주신다. 군인이 싸우는데 무얼 위해 싸우는지도 모르는 것 만큼 초라한 것도 없을 것이다. 주님은 자신에게 붙들린 자들이 가장 보람된 인생을 살도록 보장해 주시는 분이다.
- 이 푯대를 향하여 달려갈 때 바울이 한 일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이 경주에 방해되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7-8절).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다. 가지치기였다 (요15:2).
둘째는 주님이 주실 “상”에 대한 소망이었다 (14절). 자신의 수고에 반드시 상을 주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어떤 고난이 있어도 짧은 인생을 참고 인내하며 그 목표를 향해 힘차게 달려갈 수 있었다.
-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자에겐 \"삽질\"이 없다. 그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서 카운트하고 계시다. 힘들 때가 있다. 그렇게 뿌렸는데도 열매가 없을 수도 있다. 잠시 실수하여 주님의 채찍을 맞을 때도 있다. 이 모든 것은 그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과정속의 일이다. 실수, 실패, 딴 짓... 이 모든 것을 주님께서 인정해 주신다. 주저앉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일어나라. 그리고 그 푯대를 향하여 전진하자. 바울이 해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 시골뜨기 베드로와 그 동료들이 해냈다면 우리들은 더 멋있게 해낼 수 있다. 세상이 유혹하는 헛된 영광에 눈썹하나 까딱이지 말고 주님께 붙들린 자, 그분이 보여주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자의 삶을 살아서 주님이 우리 삶을 통해 세상에 보이실 걸작품을 세상에 보여주는 주님께 붙들린 자의 삶을 살도록 하자.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