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1:19-26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서론)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바로 자신의 죽음에 관한 것이다. 최고의 신학자요 전도자요 선교사였던 바울의 죽음관에 대한 고백을 통해 주의 음성을 들어보자.
(강해)
1. 19-20절/ 1:19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 바울 최고의 소망 : 살든지 죽든지 내 삶을 통해 그리스도가 존귀히 여김을 받는 것
- 이 일에 있어서 바울은 절대 부끄러운 자로 드러나지 않기를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래서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라고 말했던 것이다. 주님을 만나고 그분의 십자가 은혜, 부르심의 은혜에 대하여 눈이 뜨여진 뒤 바울은 그의 삶의 모든 것이 180도 변해버렸다. 예수님에게 완전히 붙들린 자가 된 것이다.
. pk 간증 : 총각시절 한 어느 한 자매를 만난 후 (지금의 아내는 아니었음) 열병에 걸렸었던 적이 있었다. 늘 그 여자 생각뿐이었다. 시를 써본 적이 없었던 내가 시상이 막 떠오르는데 하루 밤에 노트 한권에 그녀를 향한 시를 가득 기록하기도 했던 적이 있었다. 이 열병과 바울이 주님에게 붙들린 열병을 비교한 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운 것이지만 누구에게 붙들렸다는 것에서는 같은 사건이다.
-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예수님에 대한 이러한 열병같은 사랑의 고백, 사랑의 헌신은 사실상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이 모습은 바울 혼자의 모습이 아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이라면 누구든지 경험했던 것이었다. 바울은 무슨 수퍼 성도가 아니었다. 바울의 이러한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의 원인은 바로 그의 삶을 주장하기 시작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 때문이었다. 교리와 교육으로 예수님이 누구인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분을 삶으로 경험한 사람만이 자신의 삶을 바울과 같이 살든지 죽든지 자신의 육체를 오직 그리스도의 존귀함을 위해 드릴 수가 있게 된다. 예수님을 경험해야 한다. 그분을 만나야 한다. 그분이 내 삶을 주장하고 그분에게 내 삶을 온전히 맡기고 드릴 때 비로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는 것이다. 주님과 내가 한 몸에서 공존하려면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사시도록 자신을 죽였다. 이 옛자아가 또 살아나면 또 죽였다. 그래서 “나는 매일 죽노라” (고전15:31) 고백하며 살았다. 이런 마음 속에서야 주님께서 살아 역사하실 수 있다. 주님이 살고 있나? 내가 살고 있나?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문제는 내가 살면 주님이 죽고 주님이 죽으시면 나도 같이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론은 내가 죽어야 한다!
2. 22-24절/ 1: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1: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1:24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 만약 바울 자신만을 위한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바울은 지금 죽음을 택하겠다고 한다. 왜냐하면 육체의 죽음은 곧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만남과 연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께 택함받고 부름받은 사명자였다. 그 사명은 (= 내 일) 바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이었다. 이 일은 자신의 육신이 살아있을 때만 가능했다. 그래서 그 두 사이에 끼여있는 자신의 신세를 놓고 볼때 나 자신만을 위해서는 죽는 것이 유익한 일이나, 복음사역을 위해서는 살아있어야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다고 한 것이다.
-> 도전하겠다. 지금 내가 복음에 얼마나 유익한 자인가?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더 연장시킬 이유가 분명한 이유를 갖고 있는 사람인가? 만약 복음의 진보에 더 이상 유익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에 더 이상 살아있을 이유가 무엇이겠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복음적 관점에서 대화해야 한다. 바울의 이 고백은 복음의 진보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헌신한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고백이고 인생관이다. 거듭난 이후에도 평생 자신만을 위해 살다가는 성도도 있고, 평생 복음을 위해 자신의 삶을 불태우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삶이 가장 지혜로운 삶일지 계산해보라. 그리고 결단하라.
3. 25-26절/ 1: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1: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를 인하여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 바울은 자신이 석방될 것을 확신했다 (cf. 19절). 주님의 timetable에 자신이 죽을 때가 아니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주님은 바울은 다시 교회사역을 위해 풀어놓아 주시길 원하셨다. 바울의 사역으로 교회의 믿음이 강화될 것이다. 성도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이 더욱 풍성하게 될 것이고, 그들의 주님에 대한 자랑이 바울의 복음사역으로 더욱 풍성케 될 것이다.
-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역자된 우리들 역시 바울의 이러한 사명관을 소유하고 사역에 임해야 한다. 이 땅에는 아직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 들었으나 믿음이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은 성도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들은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다. 내가 자유할 때 그들을 섬겨야 한다.
- 서울안디옥 교회 성도들을 통해 이들의 믿음이 성장하고, 삶에 산 소망과 새로운 기쁨이 가득차게 되고, 예수안에서 그들의 자랑거리, 간증거리가 풍성하게 되는 이 축복이 임하길 간절히 기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