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권세

영적인 권세(눅7: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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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평가는 지극히 상대적입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자리는 끝없이 변하고, 그 변한 자리가 전혀 새로운 것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겪고 있는 갈등 속에는 자신의 평가 기준에서 새롭게 다가오는 현상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으므로 인한 대립된 모습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보이는 힘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힘 곧 하나 되게 품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참된 권세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랑을 하면서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자신 속에 있는 대립된 자리 때문입니다. 일생을 살아도 이 대립된 모습이 수정되지 않는 것은 하나의 자리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모든 인간을 하나의 자리에 세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예수님만이 하나 되게 하실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대립된 자리에 오셔서 그것을 열어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대립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다(빌2:5)”라고 했습니다. 이 마음이 바로 영적인 권세를 가지는 열쇠입니다. 이 영적인 권세는 세상적 평가 기준을 뛰어 넘는 축복된 자신의 모습을 가지게 합니다. 그 현장이 본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위대한 세례 요한을 비유를 들어서 영적인 권세를 가진 자 곧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성도의 위상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1. 하나님 나라의 복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게 하십니다(28).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나타내시며 증거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와 이 세상의 자리를 보여 주셨고, 하나님의 자리와 인간의 자리를 증거 하신 것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천국이 가까왔다”라고 외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며 이 세상은 사람이 있는 곳이므로 이 두 세상은 마음대로 왕래가 이루어 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고 인간은 죄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가까이 하고 싶어도 인간 스스로가 그 앞에 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인간을 하나님 앞에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마침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피 흘려 죽게 하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영원한 자유함 속에서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세워 주신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세울 수가 있습니까? 성도가 하나님 앞에 세워지는 것은 곧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는 것이며 그것을 일컬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에게 임할 수 있는 것은 나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판대이신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흘리신 피의 흔적 때문입니다. 그 피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여전히 인간은 축복의 대상이기 보다는 진노아래 있는 심판의 대상인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나를 변호해 주시면서 그 자리에서 보여 주시는 것이 예수님의 흘리신 피의 흔적인 것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아시고 또 그렇게 할 것을 아시면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받아 주셔서 하나님 앞에 세워 주시는 예수님의 자리입니다. 그것을 깨달으면서 그 예수님을 내 안에 모셔 들일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내 속에 임하는 것이며 나를 세우는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것을 일컬어 성령님이 내 안에서 나의 연약함을 붙잡아 주신다고 고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이 내 안에서 일 해 주시므로 하나님 나라의 복을 가지고 세상을 하나씩 하나씩 다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는 은혜로 세워진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권세입니다. 이 자리를 본문에서 예수님은 인간의 자리에서 가장 큰 세례 요한의 자리보다 더 큰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유는 요한의 자리가 은혜의 자리가 아니고 율법의 자리 곧 예수님의 피 흘리신 이전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나를 위해 하나님 옆에서 기도해 주시는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모시고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복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 있는 성도가 됩시다.

2. 믿고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자리에 세워지는 권세입니다(29).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세례 요한의 때가 오기 전까지는 천국이 사람들에게 닫혀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적은 숫자의 사람만이 그 천국을 소유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현장이 바로 노아 홍수 때에는 8명의 노아 가족만 구원받은 것이고,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 받을 때에는 불과 서너 사람이 전부였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애굽에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 받아 해방의 축복을 누렸으나 축복의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20세 이상의 어른들 중에는 불과 두 사람뿐이며 20세 이하의 사람들에게만 허락하신 자리입니다. 그런 이스라엘 민족에게 세례 요한의 시대가 열려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시대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경은 말하기를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마11:12)”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곧 율법 아래에 있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새로운 은혜의 시대 곧 복음이 열려지는 시작의 자리가 세례 요한의 때라는 것입니다. 그 세례 요한이 와서 한 일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는 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은 율법적인 의식으로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몸에 할례 의식을 행하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되는 흔적을 몸에 갖게 한 것입니다. 그런 백성에게 세례를 주라고 한 것은 죄인인 것을 알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세례 요한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이었습니다. 이 회개의 자리가 천국의 관문을 통과하는 길목이 되는 것이기에 이 세례 요한의 때부터 천국은 침노를 당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자리에는 엄청난 변화의 자리였고,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물꼬를 열어놓는 자리였습니다. 이것을 믿고 순종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큰 축복의 자리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라고 인정하여 세워진 자리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은 율법을 행하므로 의롭다라는 자리에 세워진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세례를 받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므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라고 한 것은 사람의 자리가 아니고 영적인 권세를 입는 자리로 바뀌어진 것을 말합니다. 성도는 누구입니까? 죄를 깨닫게 하여 회개하는 자리에 세워진 자가 아니고 예수님을 믿고 고백하면 우리에게 있는 모든 죄를 없애 주신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축복된 사람이 성도입니다. 그 성도의 자리는 죄를 깨닫게 하는 세례 요한의 자리와는 비교가 될 수 없는 영적인 권세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나의 죄를 위해 예수님이 피를 흘려 값을 치루셨기에 그것을 믿고 순종할 때에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세워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 세워지는 것이 영적인 권세의 자리입니다. 우리의 자리를 아시고 피를 흘려 값을 치루셨을 뿐 아니라 나 자신이 어떤 자리에 빠졌을지라도 그런 나를 받아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심을 믿고 순종하면 그런 연약한 자리에서도 강하게 세워지도록 성령님이 도와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영적인 권세입니다. 이 영적인 권세를 가지고 자유하는 복된 성도로 살아갑시다.

3. 하나님의 지혜는 성도를 세워주는 권세가 있습니다(35).

  성경에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를 찾아 주시는 하나님의 자리와 그 하나님의 자리를 알지 못하고 행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속에 기록하셔서 우리를 찾아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의 중심에 세워진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보여지는 하나님의 큰 자리는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것도 일회적인 사랑이 아니고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찾아 주시는 사랑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자리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성도의 자리가 너무나 크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성도의 자리를 알게 하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인 것입니다. 그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리는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그런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행한 아픈 자리 곧 알지 못하고 행한 이스라엘 민족의 부끄러움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 민족이라도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의 자리를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가 하나님의 자리입니다. 이 하나님의 자리를 아는 것이 바로 지혜라는 것입니다. 즉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현상이 아니고 하나님의 실체를 말하는 것으로써 그 하나님의 자리 곧 하나님의 실존은 반드시 세상에서 성도를 세움을 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권세의 자리입니다. 그것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을 부활케 하시고 온 인류를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셔서 믿는 자가 되게 하시며 그 예수님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예수님을 죽여서 무너뜨리셨으나 하나님은 영광스럽게 세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자리에 오기까지 살아온 자리에서 만들어진 자국들 속에 많은 아픔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아픔을 가지고 살아온 자리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우리의 아픔을 품고 죽음의 자리까지 내려가셔서 치료하여 회복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의 현장입니다. 이 하나님의 자리를 믿고 사는 지혜로운 성도를 하나님이 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예수님이 죽음의 자리에서 아픔을 치료하여 회복해 주신 자리를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함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성도가 세상에서 곧 자기 자녀 앞에서 치료 받아 회복된 자로 세워지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권세이며, 이 권세가 세상을 이길 뿐 아니라 세상을 세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 권세는 가정에서부터 세워져서 세상을 세워나가는 축복의 지혜가 된다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떠나 계시지 않으시고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것도 믿음을 고백할 때에 우리 안에 계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성도는 영적인 권세를 가진 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나라의 복을 가지고 믿고 순종하는 성도로서 하나님의 자리와 하나님의 지혜의 자리에서 세움 받는 성도의 복을 세상에 전하는 증인으로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