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세우시는 원칙

하나님이 세우신 원칙(대상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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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산악인들이 대원들에게 던져 주는 말 한 마디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조난을 당해서 버티다가 마지막이라고 느꼈을때 30분만 더 버텨라”고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산에서 조난 당한 사람이 조난 당한 현장에서 죽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마을 가까이 내려와서 죽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조난 당한 사람은 자신이 지금 마을 가까이 내려왔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너무 먼 길을 걸어 왔기 때문에 극도로 지쳐 있고, 더 얼마나 가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희망을 가져도 더 이상 기대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죽음이 최후의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더 참고 견디면 좋아지는 결과가 찾아옵니다. 성도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에 믿음을 포기하지 말고 인내하며 순종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유는 아직은 끝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일 해 주시는 자리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짧은 귀절이지만 세상이 제 멋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분명한 원칙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미래는 하나님의 원칙 위에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질서는 분명한 것임을 믿고 삽시다(1).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하나님이 세상을 주관하며 다스리신다고 믿는다는 것은 인간 사회에 어떤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반드시 더 좋은 세상을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더 좋은 세상은 사람이 단순히 기대한다고 되는 것도 아닐뿐 아니라 어떤 물리적인 힘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므로 되어지는 것은 더 더욱 아닌 것입니다. 더 좋은 세상은 반드시 그 세상에 맞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에 더 좋아지는 자리가 열려지는 것에는 하나님의 원칙 곧 하나님의 질서가 분명한 것임을 믿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질서에 맞게 나열하시고 서로가 조화를 이루며 움직이도록 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 원리가 바로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8:22)”고 하신 자리입니다. 이 자리를 바라보면 사람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끊임없이 교차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삶의 자리가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워 주시는 축복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16:4)”고 하셨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리라(롬8:28)”고 하신 것입니다. 즉 모든 것을 사람들 특히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으로 세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질서가 분명한 것임을 믿고 살아갈 때에 나를 위한 하나님이 세워 주신 계획이 있었음을 고백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에게 큰 소리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아무리 자격이 없는 자라고 할찌라도 하나님은 그 사람의 자리를 지워 버리지는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장자가 태어날 때에 그렇게도 좋아했는데 그 아들이 작은 어머니와 동침을 한 자리는 스스로 아버지의 자식이기를 거부한 것이며 가문을 송두리채 무너뜨려버린 불량자의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자의 명분에 올리기에는 적합하지 못할지라도 부족한 아들을 장자라고 세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심으로 세워진 것이지 자신의 업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를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축복의 질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자리에는 이 거룩한 하나님의 질서 곧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고 끊임없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질서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세우고 순종하는 자가 될 때에 장자의 축복권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서를 벗어나지 않는 성도가 됩시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질서가 있음을 믿고 삽시다.

2. 하나님의 질서와 축복권은 그 자리가 다릅니다(2A).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질서는 장자에게 우선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약속이라고 합니다. 그런 하나님의 질서 속에서 주어지는 약속에는 반드시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가 바로 결코 믿음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계획 곧 하나님의 원칙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 곧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장자인 르우벤 지파를 통해서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질서이지만 그 장자가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힌 고로 자격에서 밀쳐 난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와 셋째인 시므온과 레위 지파가 그 자리에 세워져야 하는데 저들은 동시에 아버지의 일생에 가장 큰 위기를 초래하게 한 자들이어서 아버지 야곱이 저들을 세워 주기를 원치 아니한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이 그 아픔을 잊을 수 없어서 고백한 예언의 말씀이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찌어다(창49:5,6)”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째에게 그 약속이 주어졌는데 그가 유다 지파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은 유다 지파에게서 탄생하였고 유다 지파는 온 인류의 찬송이 되었으며 세상을 구원하는 통치자의 권세를 소유한 것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권세는 주었지만 축복권은 요셉에게 주었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 곧 하나님의 질서의 자리는 믿음만 가지면 그 자리는 잃지 않지만 축복권은 믿음을 가지되 어떤 시련과 연단 속에서도 사람의 기준에 따라 맞추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여 끝까지 믿음으로 충성된 자로 세울 때에 주시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다른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에 노예로 팔려갈 때에 유다는 중개인이 되어 거래를 성사시켜 동생을 팔았던 것입니다. 그런 고통의 자리에 빠진 요셉은 변함없이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시련과 고통이 찾아오면 믿음의 자리를 떠날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멀리 떠나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며 어떤 유혹이 와도 하나님 앞에서 그 유혹을 떨쳐 버리고 심령 속에 큰 자유의 복을 누리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성도에게 주시는 성령님의 큰 은혜의 물줄기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축복권 곧 장자가 소유하는 하나님의 축복권을 요셉에게 주었으며 지금도 하나님은 그런 믿음의 사람에게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서 속에서 축복권을 가지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 충성된 삶을 살아 갑시다. 하나님의 질서와 축복권은 그 자리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자리는 믿음의 자리에서만이 크게 보입니다(2B).

  사람이 아무리 세상을 몸부림치며 살아도 하나님의 질서의 자리는 변함없이 인간 역사의 현장을 닫아 버리기도 하고 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역사의 현장을 사람의 눈으로만 바라보면 인간의 계획이 세상을 지배하며 그 누구도 그 세력을 제어할 수 없고 또 그럴만한 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힘의 지배를 받고 사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인간 역사는 지극히 상대적인 법칙 위에서 진행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열려지는 자리가 있다면 반드시 닫혀지는 자리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질서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리입니다. 이 하나님의 질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요셉의 삶의 현장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죽이기로 꾀하면서 하는 말이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창37:20)”라고 하며 인간적 인 힘의 논리로 하나님의 자리를 누르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자리에 닫히고 열리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인간의 자리에 열리고 닫히는 상황은 결코 하나의 방향으로만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열리고 닫힌 자리가 요셉이 팔려간 애굽 땅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으로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질서라는 것이며, 이 자리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별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볼 때에는 하나님의 질서가 인간 세계를 덮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질서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요셉이 고백하기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다(창 45:7)”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질서의 축복을 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원칙이 예수님을 통해 온 인류를 구원 하신 것이며 그 원칙이 사람의 눈에는 미련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고 하셨습니다. 즉 사람의 눈에 작게 보여도 믿음의 눈으로 볼 때에는 인간을 세우고도 남음이 있는 큰 자리가 하나님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증명해 보인 자리가 바로 형들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졌던 요셉을 하나님은 큰 자로 세워 하나님의 축복권을 가진 자로 곧 장자로 세워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질서요 오직 믿음의 자리에 열려지는 하나님의 비밀이며 원칙인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주인이 자주 바뀌는 기계의 자리가 아닙니다. 인간 역사는 만유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이 세우신 원칙에 따라 열리고 닫힌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한없이 열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값없이 여겼기에 하나님께서 잠시 닫고 계신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성도는 하나님의 질서를 깨닫고 그것을 보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축복권을 가진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열어 주시는 자리는 믿음의 사람에게로만 향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