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세워지는 신앙

성도가 세워 지는 신앙(요1:4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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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사람들을 유혹하는데 사용해 왔던 도구를 팔려고 시장에 내 놓았습니다. 도구의 종류는 다양했습니다. 악마가 사용하는 도구답게 흉악하고 괴상망측한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진열된 도구들 한쪽에 값을 매기지 않은 작은 쐐기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저건 뭐죠? 왜 값을 매기지 않았어요?” 물건을 사러 온 다른 악마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응. 그건 절망이라는 도구인데, 파는 게 아니야. 난 저걸로 틈을 벌려 강하다고 하는 그 어떤 사람도 쓰러뜨리거든. 그래서 다른 건 다 팔아도 저것만은 팔 생각이 없어. 내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야.」세상이 힘들게 느껴지고 삶이 자꾸만 갈등 속에 빠져 들어가는 이유는 나 자신에게 자꾸만 틈새가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삶속에 자리 잡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어서 힘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우리의 모든 삶이 더 좋은 모습으로 자리를 잡는 은혜의 자리가 열려지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 갑시다. 본문은 그런 인간적이고 신앙적인 갈등에서 아름답게 자리를 잡게 되는 한 신앙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신앙이 자리를 잡게 될 때 복된 성도의 자화상을 소유하게 됩니다. 성도를 세워 주는 신앙의 자리를 열어 가 봅시다.

1. 복된 성도의 자화상은 어떤 것입니까?
   (1) 참 이스라엘 사람입니다(47).
   이스라엘과 비 이스라엘의 자리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방인 우리를 불러 구원시킨 자리에서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은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엡2:12)”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자리를 하나님은 너무나 분명하게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과 비 이스라엘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세움 받은 민족이요, 비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멀어진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세움 받은 민족이라고 하는 것은 일시적인 충동에 의해 선택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430년의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기적으로 해방 받아 지금 살고 있는 가나안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너무나 엄청난 과오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것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에게 절하면서 하는 말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큰 소리로 찬양한 것입니다. 이 자리는 어떤 벌이 내려져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때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말 한마디가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 말이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이 온 땅을 너희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출32:13)”라고 했습니다. 이는 조상 적부터 약속하신 것을 잘라 버리지 말아 달라는 간청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의 줄기를 이어 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끊어지면 이 줄기는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이란 자리는 조상적부터 심어 놓은 하나님의 약속의 줄기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스라엘의 자리에 세워진 사람이 믿는 성도들이며 본문에 나오는 나다나엘이라는 사람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며 구별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스라엘의 자리에는 반드시 회복되는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는 진실한 마음의 자리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찌라도 그것과 상관없이 이스라엘 곧 성도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자리는 결코 후회되지 않게 자신을 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자리는 너무나 중요한 자리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나다나엘이라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세워 주신 것은 사람은 몰라주어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늘 마음을 새롭게 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마음의 자리를 잃어버리지 않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 나다나엘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마음이 늘 새로워지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 곧 부족한 인간의 자리를 사랑하시며 변함없이 받아 주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울 때에 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의 흘리신 피값으로 우리를 의롭다고 순간 순간 확인시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예수님이 내안에 계시다고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담대하게 나아가는 자신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 자리에는 거짓된 것 곧 간사한 것이 인간을 덮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 세워졌을 때에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기도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생활을 나다나엘이 했던 것을 예수님이 보시고 그것을 확인시켜 주시고 있습니다.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하시며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다고 하는 것은 잃어버린 민족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라의 대표적인 나무입니다. 어렵고 힘든 세상이 자신에게 보여질 때에 성도의 복된 자화상은 늘 하나님 앞에 세우며 그 하나님 앞에 기도하므로 세움 받는 자리를 열어가는 것입니다. 새해를 복되게 품고 열어 가는 성도의 자화상을 새롭게 하는 참 이스라엘 사람 곧 택함 받은 참된 성도로 세워지는 신앙의 자리를 회복하며 살아갑시다.

2. 복된 자화상을 회복하는 신앙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1) 예수님 앞에 자신을 세우는 것입니다(46).
  예수님이 유대 땅에 탄생하시므로 유대인들에게 생겨 난 갈등의 자리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는 자리였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으로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자리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성경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저들은 메시야의 탄생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아는 자들이었고, 자기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메시야를 보내 주실 것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믿고 살아 온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이 자신들에게는 메시야로 받아 들이고 싶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저들에게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처녀 마리아에게만 그 메시야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려 주셨을 뿐 철저히 비밀 속에 감추신 것이 하나님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로써는 할 수 없는 기사와 표적을 행하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직접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나타내었을 때에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고 믿지 못하면 나의 행하는 그 일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으라”고 까지 했으나 끝내 거부하고 만 것입니다. 무엇이 저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거부하게 한 것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기준 곧 조상적부터 섬겨 온 신앙 방식과 자신들의 경험과 상식에 비추어 볼때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말합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며 거부할 때에도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인 것을 믿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만이 받은 축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그 사람들만 하나님 앞에 세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제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본문에 나오는 나다나엘이라는 사람이요, 그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의 자리에서 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나다나엘의 복된 자화상이자 성도의 복된 자화상인 것입니다. 자신을 예수님 앞에 세우는 것처럼 큰 자리는 없습니다. 이유는 그 예수님만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워 주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다나엘이 빌립이라는 친구를 통해 예수님 앞에 세워진 것을 보면 모든 사람은 축복된 계기를 만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계기가 바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나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이 문을 열고 나아가야만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세워진 것을 알게 되는 현상을 나다나엘을 통해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그 자리는 자신의 신앙을 기쁘게 고백하게 되며 자신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진 것을 확신하면서 세상을 열어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나다나엘이 고백하기를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외칠 때에 예수님께서 주신 약속이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성도가 세상에서 자신을 세우는 최상의 복된 자화상이요 불안하고 두려운 세상에서 자신을 든든히 세우는 신앙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지는 자리란 하늘과 땅을 열어주시는 통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약속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시려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33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 시간은 사람의 시간에서의 33년이지 하나님의 자리에서는 전혀 조급하지 않으시며 손해 보았다고 가슴 칠 필요가 없는 자리입니다. 이유는 하나님께는 가고 오는 모든 세대를 충족시켜 주실 수 있는 보상의 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된 성도의 자리는 신앙의 자리가 어떻게 자리를 잡는 가입니다. 세상은 이 신앙의 자리를 흔들어 놓기 위해 온갖 사건 사고가 생기고, 엄청난 상황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철길 옆 강아지의 울음소리 때문에 열차가 멈추는 법이 없고, 새벽에 닭이 울지 않는다고 해서 새로운 아침이 멈춰진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은 그것에는 관심이 없으시고 그 세상에서 성도가 신앙의 자리만 든든히 자리를 잡기만 하면 하늘과 땅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의 통로가 연결된 것을 보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신앙의 자리가 무엇입니까? 본문에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아 온 그 하나 때문에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복된 자화상이 입혀진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자리이며 하나님은 이것을 가장 귀하고 크게 보시는 자리입니다. 새해에는 모두가 개척자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복된 자화상을 회복하는 신앙의 자리 곧 우리를 받아 주시는 예수님 앞에 세우는 성도가 되어 거친 파도를 극복하는 자로 살아갑시다.

  결론을 맺습니다. 성도의 삶에 신앙을 빼어내면 너무나 나약한 자리를 보여 주게 됩니다. 이유는 지금까지 살아온 자리에 신앙으로 말을 하며 세운 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새해에는 정말 성도의 자리에서 신앙의 자리가 흔들리지 않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복된 자화상을 보여주어 반석위에 세워진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