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위에 세운교회

반석위에 세운 교회(마7: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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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수가 더 이상 대패질을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난다고 할찌라도 목수가 대패날을 관리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을 때에는 그 대패로는 좋은 재목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지리를 가르쳐 주는 교훈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최상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낮과 밤이 교차하는 새 날을 주시는 자리입니다. 밤이 오지 않고 계속해서 낮만 이어지게 된다면, 낮이 오지 않고 계속해서 밤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거기에는 무서운 재앙이 닥쳐올 수 밖에 없습니다. 밤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서 잠을 이루게 하여 밝은 날을 맞이하는 자리는 무엇으로도 바꾸어 놓을 수 없는 축복의 선물인 것입니다. 이 자리가 사람을 새롭게 시작하게 하며 관계 속에서 더 좋은 자리를 회복하게 됩니다. 새 해가 주는 의미도 여기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제의 일을 생각하면서 오늘을 잘 관리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새 날이 왔고, 새 해가 되었어도 대패날이 무디어져서 더 이상 대패질을 할 수 없는 목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가 바로 자신을 모래 위에 세우지 말고 반석 위에 세우는 자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반석 위에 세운 교회가 되어 나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공동체를 복되게 세우는 성도로 살아가도록 합시다.

1. 인생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24.26).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만 이성을 주신 것은 세상에서 선택해야 하는 자리 때문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고 합니다. 이는 최상의 자리를 알고 그 자리로 자신을 세워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 선택이 필요한 것입니까? 그것은 인간의 자리에는 모래 바닥과 반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16:4)”라고 하셨습니다. 온 세상을 적당하게 하셨지만 악인의 자리 때문에 인간의 자리가 무너지게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래 바닥이라는 것입니다. 이 모래 바닥을 성경은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6:25)”고 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다시 대패질을 할 수 있는 목수의 자리는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라는 짧은 생각을 가지는 자리입니다. 그 생각의 자리에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을 가진 자리에서 나아가는 판단이다. 한해를 살아 보았기에 알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사람의 힘으로는 되지 않는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16:9)”고 한 것입니다. 새 해에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자가 됩시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16:3)”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해답을 찾는 성도가 되자는 것입니다. 지난 해에도 그러했지만 새 해에도 그 누구도 예측 할 수 없는 시간이 열려진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눈에는 조카가 선택한 소돔과 고모라 지역이 최고의 자리로 보여졌을찌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믿고  종과 횡으로 걸어 가야지 자기 방식대로 사방을 다니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없는 사람으로만 선택하는 한 해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자리에서 한해를 선택하여 일생에 후회하지 않는 성도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리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이유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복된 선물 곧 은사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그 자리를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롬8:32)”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불쌍한 것과 사람의 능력을 보시지 않고 그 사람에게 있는 믿음을 보시고 쓰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자리에서 한해를 복되게 선택합시다.

2. 폭풍우가 몰아쳐도 반석 위에는 길이 있습니다(25).

  큰 바위라고 해서 집을 지을 반석은 아닌 것입니다. 집을 세울 수 있는 주초를 놓을 자리는 땅을 깊이 판 후에 그 속에 있는 반석 위에다 집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복음에는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이 되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은 반석 위에 덮고 있는 모든 흙덩이를 다 걷어 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흙이 덮여 있지 않은 반석 위에다 집의 기초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삶의 공식입니다. 땅을 깊이 파라는 것은 지난 날의 자신의 삶 속에 자리 잡은 인간적인 자리를 회개하고 그것을 다 걷어 내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볼 때에 예수님이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예수님이 계신 것이요, 성도의 큰 복은 그 예수님으로 자신의 삶을 세우면서 세상을 열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도의 자리에 큰 복이 되는 것은 예수님께는 부활의 축복 곧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여도 그 자리에서 믿음을 가질 때에 무덤의 문을 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릴리 바다의 어부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자랑스럽게 세워진 것이요 그것을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님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반드시 이유가 있고 그럴 만한 시작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폭풍우가 몰아쳐 홍수가 난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 홍수 앞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이 문제입니다. 홍수가 몰아쳐도 길이 그대로 있고, 자신의 집이 무너져 내리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시작은 가능한 것입니다. 새 해에는 땅을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세우는 성도의 삶을 살아 갑시다. 지난 날의 나의 인간적 자리에 덮여진 불신앙의 흙덩이를 걷어 내고 내가 믿는 예수님이 내 삶의 기초가 되고 중심이 되는 성도로 시작해 봅시다. 그곳에는 길이 있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사60:2)”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해에는 우리 가정과 사업장 그리고 교회와 성도의 개인적인 삶 속에 함께 하실 때 반석 위에 세워지는 복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 지구촌은 큰 폭풍우를 만난 것입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 그리고 한국 교회가 반석 위에 세워진다면 반드시 그 위에 길을 발견하여 새롭게 회복의 자리에 세워 지는 복이 임할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 성도들 특히 우리 중앙교회 성도들은 그 하나님의 복을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하는 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축복하는 자녀들, 교회가 축복하는 사회나 나라는 반드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의 삶을 반석 위에 세웁니다(24).

  18세기 미국의 부흥 운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천재적인 머리를 가진 조나단 에드워드는 과학을 연구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케 된다고 했습니다. 이는 전공 분야에서 전문인으로 들어가면 들어 갈수록 문제가 생겨 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이 세상은 우연히 만들어진 진화의 법칙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전문인은 우주 공간을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을 알고 그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라(잠1:7)”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큰 소리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그 말씀이 우리를 구원하시려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는데 그 분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함은 그 말씀 위에 세운 사람 곧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승리한 예수님의 자리를 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변명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진 자의 말은 변명 밖에 없는 것이지만 승리자의 자리에는 간증의 자리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나를 세워 순종하는 성도로 살아서 승리자가 되어 삶 속에 간증하는 자로서 세상을 축복하는 성도로 세워지도록 합시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성도가 세워질 때에 반석 위에 세워지는 복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이르시기를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4:2)”고 하셨습니다. 새 해에 새롭게 떠오르는 해는 의로운 해가 되어 이 민족을 치료하고 온 교회와 가정과 개인들이 치료를 받아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는 자리에 세워지도록 합시다. 그 자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어야 하고 늘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받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 속에 가장 큰 자리는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는 자리입니다. 앞서간 믿음의 사람이 말하기를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곳은 반석 위의 자리이며 거기에는 그 누구도 길을 없앨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래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2:5)”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으로 새롭게 반석 위에 세우는 성도로 살아가도록 합시다.

  결론을 맺습니다. 지금 지구촌에는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지구를 흔들고 있습니다. 이때 성경은 말합니다. 그곳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반석 위에 세우는 믿음의 선택을 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복을 가지고 험한 풍랑을 피해 도망가지 말고 하나님의 집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으로 세워 집시다. 그래서 변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간증거리가 있는 성도의 자리에서 새해를 복되게 그리고 기념되게 열어 가는 성도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