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잔을 가득 채웁시다

우리의잔을 가득 채웁시다(눅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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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에도 전심 전력을 다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호랑이 앞에 있는 토끼를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간주하여 쉽게 처리해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호랑이는 그 보잘것 없는 토끼 하나를 잡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고 기회를 포착한 후에 있는 힘을 다하여 달려 갑니다. 200킬로그램의 몸으로 100미터를 5초에 달리는 속도로 달려 가서 순식간에 처리를 합니다. 그리고 보잘 것 없는 토끼는 1초 뒤에 호랑이한테 잡혀 죽는다 하더라도 있는 힘을 다해 도망을 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족 보존을 위한 생존 경쟁의 현장입니다. 이 자리는 죽고 사는 전쟁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은 자신의 축복된 목표에도 이르기 전에 쉽게 포기하려고 하고, 일찌기 서둘러 판을 거두어 버릴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이 세상에는 반드시 나를 위한 자리가 獵募?것을 믿으면서 그것을 잡기 위해 전력을 다해 달려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택정했다고 했으며(갈1:15), 더 놀라운 것은 나를 복중에 짓기 전에 알았고, 태에서 나오기 전에 구별하였으니 어린 아이 곧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지 말고 담대하게 나아가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렘1:5,7). 즉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서 세워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본문은 우리에게 열어 주시고 있습니다.

1. 잔을 비울 줄 알아야 채워지는 복이 있습니다(38A).-“주라”

  하늘에서 내리는 똑같은 비라고 할찌라도 쓸데없는 비가 있고 단비가 있습니다. 쓸데없는 비는 지금까지 물이 풍족하여 곡식이 잘 자라서 열매를 바라보고 있는데 장마비가 쏟아진다면 이것은 정말 쓸데없는 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비가 가장 필요한 단비가 되는 것은 몇 개월 동안 한 방울의 비가 내리지 않아 논바닥이 갈라지고, 저수지마다 물이 말라서 바닥이 드러나 있는 자리입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축복의 금비가 되는 것입니다. 말라 버렸고 비어있는 자리에는 채워지는 복이 무엇임을 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풍요로움의 자리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살아온 자리에는 항상 채워지지 않은 채 그냥 지나온 자리가 누구에게나 있는 법입니다. 이 자리가 일년을 살아오면서 오늘 마지막 주일인 이 순간에 맞이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미래를 미래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연장선으로 생각하여 자신의 삶을 닫아 버리는 결정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닫아 버린 자리에는 쓸모없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것이 남에게 주어졌을때 큰 기쁨의 자리가 열려지게 되는 축복된 씨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닫아 버리는 결정을 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있는 축복된 씨를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 씨를 주었을때 곧 자신의 삶 속에서 별것 아니라고 묻어 버리지 말고 그것을 줄 수 있을때 곧 비우는 자리를 가질 때에 채워지는 자리를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라고 했습니다. 가장 풍성하게 채워지는 자리를 죽는 자리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틴 북쪽 갈릴리 지방 조그만 시골 마을 나사렛 청년 예수는 평범한 한 사람으로 세워진 자리가 아니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셔서 세상을 세워 주신 것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십자가 죽음이었습니다. 죽는 자리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것을 모두 내려 놓고 내어 주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죽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은 단번에 죽으심으로 온 인류를 세워 주셨을 뿐 아니라 온 인류에게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본문에서는 우리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살겠다고 하므로 주지 못하면 나 하나뿐이지만 나 자신이 죽어서 줄 수 있을때 많은 것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즉 자신을 끊임없이 비우는 삶을 살아갈 때에 더 풍족한 것으로 보상해 주시는 하나님의 자리에 세워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2. 인생은 일방 통행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31,38C).

  인간 삶속에 생겨나는 아픔과 갈등의 원인을 분석해 보면 대부분 일방 통행의 자리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대가 흐를수록 일방 통행의 자리가 더욱 거세지는 것은 자기 사랑의 자리 때문입니다. 자기 사랑의 자리에 세우게 되는 이유는 자기만 손해 보는 것 같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는 생활이 어려울 때에 더 강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입니다. 예수님의 자리에서 우리를 세워 주는 것은 나 하나의 존재를 너무나 귀하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 현장을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라고 하신 자리입니다. 나 자신을 하나님의 상대자로 세워 주신 것입니다. 즉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예수님의 자리는 나의 파트너를 알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자기 인생의 파트너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세상에서 자신을 세워 갈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그 파트너를 이렇게 말하며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31)”고 하셨고,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38)”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두 종류의 인생의 동반자인 파트너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나 자신이 대접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판단하고 싶으며 내가 가르쳐 주어야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은 내가 살아가는 길목에서 함부로 해도 괜찮다고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은 나에게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는 사람이며 항상 나 자신의 삶 속에서 관계로 맺어진 자리입니다. 이것이 공동체 생활입니다. 사람의 자리가 무너져 내리고 자신의 잔이 채워지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생활하는 공동체 속에서 내세우는 일방 통행의 자리 때문입니다. 인생은 결코 일방 통행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내가 대접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되어지는 자리에서도, 그리고 내가 가르쳐 주어야 된다는 사람에게서도 일방 통행으로 자신을 세우지 않을 때에 나의 인생의 잔에 반드시 채워지는 축복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잔이 비어 있는 한 사람이 예수님에게 찾아와서 자신의 이웃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에 이름 없는 사마리아 사람의 선한 모습으로 잔을 채우는 지혜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자신을 향해 사람취급도 하지 않는 유대인 일찌라도 일방 통행하지 않고 자기 인생의 동반자인 파트너로 생각한 자리는 인간을 세워 주는 자리가 되었고, 빈 세상의 공간을 채워 주는 축복의 샘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해 주시는 것을 믿을 수 있다면 우리도 나의 자리에서 나의 동반자와 함께 세상을 열어 가는 성도로 살아 갑시다.

3. 하나님은 우리의 잔을 채워 주십니다(38B).

  어린 아이의 큰 복은 엄마 아빠가 자신의 모든 것을 해 줄 수 있다고 믿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자라 갈수록 그 복된 자리가 사라져 가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러면서 부모님을 대접하지 않고 자기의 자리를 크게 세우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자리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님의 복된 자리 때문에 나 자신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세상의 그 어떤 자리보다도 더 큰 것이며 세상에서 아무리 큰 복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복 보다 결코 앞설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삶속에 구멍이 뚫리지 않고 채워지는 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잔을 채워 주신 자리가 분명하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 자신이 지금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허물진 자리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기쁘게 받아 주셨다는 것은 앞으로 되어질 나의 모든 삶의 현장도 받아 주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이유는 단순히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주신다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이 하나님께로 나온다고 고백만 하면 그리고 나를 하나님 앞에 세울려고 나를 품으시고 죽어 주신 예수님을 믿는다고만 한다면 하나님은 그 예수님의 피와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님 때문에 받아 주신다는 것입니다(요일2:1-2).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성도를 위해 끊임없이 채워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나에게 있는 좋은 것들을 순간 순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을 살아 가기가 쉽지 않기에 우리의 잔을 채워 주시려고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인간의 몸을 입혀 세상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고 했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의 잔을 풍족히 채우시려고 죽어 주신 것처럼 나도 죽는 자리에서 하나씩 하나씩 줄 수 있을 때에 후히 되어 누리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우리에게 안겨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나 자신이 죽으면서 줄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세상에서 보석 같은 존재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보석 같은 존재로 보시는 것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년에 한번 대제사장이 온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 받기 위해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겉옷 흉패 속에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보석을 넣고 들어갔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보석과 같은 존재이기에 가슴에 품고 대제사장이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를 하나님이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자신을 보석 같은 존재로 확신하며 하나님 앞에 세우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상을 열어 갑시다. 하나님이 반드시 채워주실 것입니다. 이유는 나를 대신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하나님께는 우리의 잔을 채워 주시는 길이 있습니다. 믿고 한 해를 살아오면서 비워진 잔만 가지고 새해를 맞지 말고 하나님이 채워 주시는 자리에서 자신의 동반자에게 아낌없이 주는 자가 되어 하나님이 세우시고 채워 주시는 복을 나누는 복된 새해가 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