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왕 메세지

미래의 왕 메시야(렘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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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의 잘하고 잘못하고를 떠나 돈 때문에 부부가 갈라서야 하는 이혼 법정에 증인으로 어머니가 출석했다면 그 자리는 어떤 자리이겠습니까? 그것도 자식이 이혼하는 자리에 증인으로 나오라고 했을때 주저하지 않고 나오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세상에 사는 정상적인 자리에 계시는 모든 부모님의 마음은 하나같이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하며 자식을 보듬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영원히 짝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자식은 부모님의 사랑을 헤아리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자식을 향해 사랑해 달라고 목매지 않습니다. 이유는 자식이 돌고 돌아서 부모에게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의 자리를 인간에게 보여주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인간의 아픔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자기 몸을 바치는 자리에 까지 던지시며 우리를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힘이 없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기 때문이 아니고 왕의 자리에 계시면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를 열어 주시려고 하나님의 독생자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본문은 그 예수님이 미래의 왕 메시야라고 증거 하시고 있습니다. 그 메시야는 무엇을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까?

1. 세상을 세워 주시는 메시야이십니다(5).-“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사람이 사는 세상과 사람이 없는 짐승만 사는 세상은 어떤 차이가 나는 것입니까? 힘으로 비교한다면 짐승이 사람보다 훨씬 더 강할 것이며 재주를 부린다면 사람이 가히 따라갈 수 없도록 날기도하고 이곳 저곳을 뛰어 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힘이 있고 재주를 부린다고 해도 그것은 자신의 생존 본능일 뿐입니다. 그것은 곧 세상을 세우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위대함이란 세상을 세우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세상과 복된 세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너지는 세상이 아니고 세워 지는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세상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세워지기 때문에 시간적 의미와 공간적인 의미가 함께 균형을 이루어가야만 좋은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간적 의미에서 세워진다는 것은 쫓기면서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함을 가지는 것 곧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자신을 후회하지 않도록 세우는 것이요 공간적인 의미에서의 세워지는 것은 관계 속에서 서로를 인식하면서 함께 하는 것 곧 서로가 유익된 가치를 나누면서 서로를 인정하며 살아가는 자리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간적 의미에서 세상을 세운다는 것은 존재 가치를 소유하는 것이요, 공간적 의미에서 세상을 세운다는 것은 도덕적 가치를 유지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이 자리를 본문에서는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좋은 세상과 복된 세상은 공평과 정의가 살아 있는 세상인 것입니다. 공평이란 정당한 권리 행사를 할 수 있고, 그것이 인정 되어지는 자리를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반드시 함께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정의의 자리입니다. 정의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자리에 더 적절한 가치를 나타내는 자리를 말합니다. 이 공평과 정의는 사람의 자리에서는 정말 힘든 자리이기에 예수님이 오셔서 이것을 사람의 자리에 세워 주신 것입니다. 거기에는 분명한 원칙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주신 말씀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고 하신 자리입니다. 인간 사회에 공평과 정의 곧 세상을 세워주는 참된 지혜는 예수님 안에서 서로를 섬기는 자로 살아 갈 때에 있어지는 영적이며 도덕적인 규범인 것입니다. 이는 곧 눈높이를 맞추는 것을 알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 곧 메시야가 이 세상에 왕이 될 때에 인간 세상은 세워 진다는 것입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내 심령과 가정, 우리 교회 속에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는 왕으로 모시고 살아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복되게 세우는 힘 있는 공동체가 되도록 합시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축복이요, 하나님은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2. 구원의 소망을 주시는 메시야이십니다(6).

   역사의 현장에는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의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중심의 자리가 사람이 존귀한 자로 세워지는 자리입니다. 이것을일컬어 사람들은 말하기를 「누구의 시대가 왔다」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에 세워지는 사람의 생각 하나가 세상을 정반대의 자리로 바꾸어 놓을 수도 있고, 더 좋은 변화를 가져오게 하여 인간적인 자존감을 세워 주게도 하는 것입니다. 정반대의 자리에 세워지는 것은 악순환의 자리이지만 더 좋은 변화를 가져오게 하여 인간의 자존감을 세워 주는 자리는 사람에게 소망을 가지게 하는 자리입니다. 인간의 자존감을 세워 주는 자리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지게 하는 것은 함께 사는 자리에서 미래를 열어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분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고 하셨습니다. 생명을 풍성히 얻게 하는 예수님의 자리에 세워진 사람이 누리는 복을 가르쳐 주시기를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마10:5)”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세상에 구원의 소망을 주시는 메시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우리를 만나 주시기 위함인 것이며, 지금도 그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가 있기에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도의 참된 소망은 천국의 문이 자신을 향해 열려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요,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기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문에 서 계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이유는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해도 인간의 자리는 출입이 자유로울 수 없는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제를 받을 수 밖에 없는데 그런 나를 자랑스럽게 통과시켜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 자리를 본문은 말하기를 “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세움 받는 자리는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선택된 자리이며 세상의 자리를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입은 자리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세상에서 우연한 자리가 아니라 필연의 자리에서 세움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예수님이 오셨기에 이 구원의 소망을 주시는 메시야를 우리의 삶속에 찬양하며 세상을 살아갑시다.

3. 새롭게 역사를 열어 주시는 메시야이십니다(8).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는 자리와 성도가 하나님의 구원의 복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새롭게 열어 주시는 자리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새것에 대해 큰 매력을 느끼면서도 자신에게 있는 것을 새롭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쉽게 마음이 열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큰 소리로 외칩니다. “해 아래는 새것이 없다(전1:9)”라는 것입니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사실이 되기 위해서는 새것에 대한 자리를 바르게 인식해야만 합니다. 먼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인간이 만드는 모든 창작품들은 새것이 아니고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새것이란 모든 재료에서부터 새로운 것으로 되어졌을 때를 말하는 것이며, 인간이 만든 창작품들은 동일한 재료를 가지고 새롭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해 아래 곧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서는 새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께서 새롭게 해 주시는 메시야의 강림을 학수 고대하며 세상의 어려움을 이겨낸 것입니다. 그 자리가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미래의 왕 메시야를 예언한 것입니다. 그 메시야의 사역을 말하기를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방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세워 주시되 북방 땅으로 쫓겨 간 나라에서 고통을 당한 보잘 것 없는 자리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무너진 자리를 수축해 주시고, 아픈 상처 자국은 싸매 주시어서 새롭게 역사를 시작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곧 아무리 보기 좋고 괜찮은 민족이 있어도 보잘 것 없는 이스라엘과는 바꿀 수가 없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자립니다. 그 일을 해 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복과 소망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으로 늘 자신을 새롭게 세우면서 행복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새롭게 해 주시는 메시야의 사역이 있기에 우리는 그 어떤 자리에서도 포기하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는 나를 통하여 그 일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선택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선택하셔서 행복한 자로 세우시려고 메시야를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통해 성령님을 우리 속에 거하게 하셔서 그 길을 열어 주시는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구리라(행2:17)”라고 했습니다. 새롭게 역사를 열어주시는 미래의 왕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우리 모두 기쁨으로 모시고 새해를 향해 힘찬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는 성도가 됩시다.

  결론을 맺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자리인 메시야의 사역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 자리는 말씀이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진심으로 받아 들이게 될 때에 성령님이 우리 속에서 일해 주시므로 그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자신 속에 있음을 고백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 예수님이 우리의 세상을 세워 주시되 구원의 소망을 갖게 하셔서 역사를 새롭게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성도가 행복하게 되는 미래를 맞이 할 수가 있으며 자신을 통해 그 축복을 비는 권세자로 세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임한 성도의 특권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열어 주신 분이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그 메시야와 함께 새해를 열어가는 성도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