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삽시더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삽시다(사49: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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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씨의 「상처는 스승이다」라는 시 한편을 소개해 봅니다. 「상처는 스승이다. 절벽 위에 뿌리를 내려라. 뿌리 있는 쪽으로 나무는 잎을 떨군다. 잎은 썩어 뿌리의 끝에 닿는다. 나의 뿌리는 나의 절벽이어니. 보라 내가 뿌리를 내린 절벽 위에 노란 애기 똥 풀이 서로 마주 앉아 웃으며 똥을 누고 있다. 나도 그 옆에 가 똥을 누며 웃음을 나눈다. 나의 뿌리가 되기 위하여. 예수의 못자국은 보이지 않으나 오늘은 상처에서 흐른 피가 뿌리를 적신다.」 절벽 같은 험한 세상에서 인생은 뿌리를 내리고 살아 갑니다. 그 뿌리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는 잎이 뿌리 쪽에 내리듯이 삶속에 있어지는 수많은 세월의 잎사귀들을 받아 들여 더 좋은 세계를 열어 가자는 것입니다. 더 좋은 미래를 열어 가자고 결심한 자리에 나를 비참하게 하는 냄새나는 자리가 있을찌라도 남의 냄새가 아니고 자신의 냄새임을 알고 그런 나를 위해 거룩한 상처 자국이 있다는 것과 그 상처에서 흘러 내린 피가 냄새를 풍기는 나의 뿌리를 적셔 주심을 믿고 살자는 것입니다. 즉 서글픈 인생의 자리를 새롭게 세워주기 위해 그 뿌리에 물이 아닌 피를 흘려 주시려고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의 온 몸에 상처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허락하신 최고의 은혜의 자리입니다. 본문은 그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의 자리를 깨닫지 못하는 자기 백성에게 기쁘게 다가 가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하는 백성에게 하나님은 은혜의 자리 위에 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사는 축복을 깨닫는 성도가 됩시다.

1. 나를 결코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고 삽시다(15).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가장 중요한 자리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서로가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존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광활한 우주 속의 천체는 중력의 관계 속에서 오차 없이 일정한 궤도를 유지하고 있고, 땅 위에 있는 모든 만물들은 낮과 밤과 추위와 더위의 교차되는 관계 속에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면서 풍성한 생명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 가장 위험하면서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그 관계가 막혀지는 자리입니다. 막혀진다는 것은 틈새가 생긴 것이 아니고 멈춰진 자리입니다. 공기는 흐르고 있는데 막혀진 자리의 공기는 심각하게 오염되어 버리고, 지구는 변함없이 돌아가는데 막혀진 지구가 되어 처처에 지구가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며 지내던 인간 관계가 막혀지므로 서로가 잊혀진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 삶의 고통의 현장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천국 복음은 막혀 버린 자리를 뚫어 주시는 하나님의 자리를 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뚫어 주시는 인간의 자리를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라고 했습니다. 이는 자연 생태계의 문제는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고 인간의 삶이 사막이 되어 자연 생태계를 병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갈수록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영적인 자리 곧 영혼의 메마름 때문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막혀진 인간의 자리에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보내 주셔서 막혀진 자리를 뚫어 주셨는데 그 말씀에 육신을 입혀서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 분이 독생자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고 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과 막혀진 자리를 열어 주시려고 십자가를 지시고 피 흘려 죽으신 것이며 그 예수님을 믿는 자를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값없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이 은혜의 자리에 이스라엘이 세워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은혜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의 피 값으로 맺은 약속이기에 결코 잊을 수 없는 은혜의 자리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피를 쏟으며 낳은 아들을 어머니가 잊을 수 있어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만 하면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를 받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2. 나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고 삽시다(16A).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낳은 자식이 부끄럽고 그래서 아이를 버리고 죽이는 일입니다. 단순히 사람이 저지른 행위만을 보며 무서운 것이라고 말한다면 너무나 엄청난 것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에서 행해지는 악행이 너무나 잔인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삶속에 자리 잡고 있는 무서운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과 함께 기록되어지는 것이 싫어서 아예 그 기록에서 지워 버리겠다는 마음이 가장 무서운 자리라는 것입니다. 지워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가정 속에 자리를 잡으면 그 가정은 파괴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가정뿐만 아니라 어느 사회 단체에서도 자신의 마음에서 지워 버리고 싶은 것이 가득차면 그 사회는 반드시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지워 버리고 싶은 마음이 다스리는 행태가 끊임없이 바다의 파도처럼 거칠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일찌라도 사람의 자리에 자리 잡고 있는 선한 모습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떤 어려움이 와도 자신의 삶에서 지워 버릴 수 없는 부모님의 자식을 향한 마음입니다. 이 기록하고 싶은 선한 마음이 가난하고 힘들었던 지난 날의 삶을 세워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부모님과 자녀간의 마음이 자꾸만 퇴색되어져 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악한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그런 세상이 올 수 있음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무너져 가는 세상을 회복하는 자리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어 주시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 주시는 말씀이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지워 버리지 않으시고 내 이름이 새겨진 그 손으로 나를 붙들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복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복음으로 오신 것이요, 우리의 연약함을 맡아 주시고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당신의 손바닥에 새긴 내 이름을 부르시면서 하나님께 나 자신과 내가 힘들어 하는 그 세상을 위해 기도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요일2:1, 롬8:34). 이것처럼 특혜의 자리는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도의 불행은 우리를 붙잡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그 손을 놓아 버리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가 이스라엘 민족의 자리입니다. 그 원인은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등을 돌려 버린 것 때문입니다. 이런 인간의 자리에 있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시려고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우리를 받아 주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 기쁘게 자신을 세우며 살아 갑시다. 하나님은 나를 끝까지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복을 누리는 특혜의 사람으로 세우며 살아 갑시다. 성경은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는 사람의 자리를 크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3. 나를 기쁘게 품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고 삽시다(16B).

  세상에는 언제든지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이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증거입니다. 그 역사의 수레바퀴는 결코 저절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사람의 손에 의해 돌아가는 것은 더 더욱 아닌 것입니다. 희비가 엇갈리는 상태는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세움을 받는 자리와 무너져 내리는 자리입니다. 역사의 현장에는 어떤 권세자라고 해서 특혜를 보는 것도 아니고 미미한 존재라고 해서 제외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지극히 공정하신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움직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세워지는 자로 나타나기를 원하고 그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이 세워지는 현상을 본문에서는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다」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기쁘게 품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누구이십니까? 그분이 바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도 내어 주시고 그 독생자를 통해 우리를 천국 백성으로 세워 주실려고 우리의 허물진 자리에 그 값으로 거룩한 피를 흘려 독생자를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를 낳은 어머니가 너를 버릴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으리라」고 하시며 끝까지 우리를 품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자리는 어린 아이가 재롱을 피울 때 가장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부모님의 자리와 가족들의 자리입니다. 보고 또 봐도 보고 싶은 것이라서 자꾸만 요구하는 것은 부모님과 가족 앞에서 표현하는 그 모습이 좋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녀를 세워주는 자리요 기쁘게 품고 있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곧 성도를 하나님 앞에 세워서 기쁘게 품고 계시는 하나님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는 성도를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천사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힘들게 하는 세상을 향해 “나의 성도를 내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시50:5)”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는 최고의 자리가 제사 곧 예배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 성도의 삶을 하나님은 기쁘게 품으시려고 우리의 성벽 곧 우리의 삶의 울타리가 하나님 앞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의 울타리를 지켜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성도가 이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고 기쁘게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성도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신을 회복시켜 우리의 공동체를 신앙의 공동체로 세워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사람도 잊어버리시는 사람이 없다는 것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들고 계신다는 것이며 그것도 모자라서 세워 주실려고 기쁘게 품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할 수 없다는 것에서 결론짓지 말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사는 복을 누리며 살아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