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의 비결

일체의 비결(빌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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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질문을 했습니다. “너는 커서 장차 무엇이 되고 싶으냐?” 첫번째 아이가 “돈을 많이 벌어서 큰 부자가 되고 싶어요” 두번째 아이는 “장군이 되어 싸움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되겠어요” 세번째 아이는 “대통령이 되어 나라를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되겠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구석에 앉아 다른 친구들의 말만 듣고 있던 아이에게 선생님이 “너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 그러자 그 아이는 “저는 아버지가 하는 일을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의아해서 다시 묻기를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시는데?” 그러자 아이는 조그만 목소리로 “우리 아버지는 종치는 일을 하십니다. 그 종소리에 사람들이 깨어나고 또 기도도 드립니다. 저는 아버지를 따라 종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이것은 김요한의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 중의 하나입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일체의 비결은 자신의 삶 속에 최상의 가치를 담을 수 있을 때입니다. 본문의 사도 바울은 인생의 거친 파도 속에서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큰 소리로 외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게 해 준 자리는 자신의 삶이 그냥 사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가를 아는 성도가 될때 최상의 가치를 담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이 자랑스러웠던 것이었습니다. 일체의 비결을 열어 갑시다.

1. 예수님 안에 열려지는 은혜를 붙잡읍시다(10,13).-“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세상을 살아갈 때에 이치를 깨닫는 것처럼 세상을 보기 좋게 사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이치는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쓰레기의 자리가 아닙니다. 그이치의 자리를 일컬어 「맥」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독단적인 힘을 가지고 홀로 서 있는 것이 아니고 전부가 맥으로 연결 되어 있습니다. 맥이라고 하는 것은 지속하는 시간이 짧은 전류의 흐름과 같은 것입니다. 이 맥이 생명을 유지시켜 주고, 이 맥이 온 땅을 기름지게 해 주며 이 맥이 인간으로 하여금 생기 있는 삶을 살아 가도록 해 줍니다.  이 맥을 잘 짚어가는 사람 곧 세상의 바른 이치를 깨닫고 거기에서 성실하게 살아갈 때에 그 사람을 일컬어 성공한 사람 또는 남다른 비결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최상의 가치를 자신의 삶 속에 담을 수 있는 지혜를 깨닫게 됩니다. 성도가 세상을 살아가는 길에도 축복된 맥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이 예수님 안에서 열려지는 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세상을 건전하게 열어가고,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세우는 이치는 스승이 필요 없는 제자와 부모가 필요가 없는 자식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즉 스승을 아는 제자로 세워지고, 부모를 존경하며 세워 드리는 자식이 될 때에 우리 사회는 건전한 사회 구조를 이루게 되고, 인간의 자리를 건강하게 세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의 삶이 건강하게 열려지는 길은 오직 예수님 안에서 자신의 삶을 세울 수 있을 때입니다. 인간의 자리에 믿음이 있는 것을 아는 자리는 자신의 삶이 예수님의 영향력을 받고 산다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할 때에 성도라는 이름이 세상 속에 부끄럽게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향력을 깨닫게 될 때에는 자신의 삶 속에 고통이 찾아 왔을때 그 고통을 예수님이 맡아 주시고 자신의 삶을 예수님이 인도해 주심을 고백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일컬어 예수님의 손길이 자신을 이끌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자신을 이끌어 주심을 믿을때 곧 예수님 안에 있는 자신을 믿을 때에 자신의 삶의 가치는 땅의 자리 곧 인간의 자리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축복을 움켜 쥘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감옥의 생활이지만 예수님 안에서 기쁨을 알았고, 예수님 안에서 패배자가 아니라 모든 것을 할 수 있노라고 자유의 축복 곧 최상의 가치를 큰 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삶을 열어가는 일체의 비결의 첫걸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열려지는 은혜를 붙잡고 살아 갑시다. 그 자리가 바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13)”고 고백하는 자리입니다.

2. 자신이 받은 은혜를 더 크게 봅시다(11).-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인간이 살아가는 자리에 가장 기본적인 철학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인생을 그 누구도 대신 살아 줄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삶을 복되게 세우는 지혜는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누구도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자신의 삶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쉽게 짓밟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자신의 마음을 닫아버린 채 원망과 시비의 자리에다 자신을 세우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믿음의 자리마져 제쳐 버린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자신이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리에는 자신을 위한 절대적인 후원자와, 꼭 필요한 후원자가 있어야 합니다. 절대적인 후원자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결코 절망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적인 후원자는 나 자신에게 꼭 필요한 후원자가 누구임을 알게 해 주며 그 후원자가 있을 때에 만이 절대적인 후원자를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후원자는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꼭 필요한 후원자가 있을 때에 만이 찾아 주시는 것입니다. 나에게 꼭 필요한 후원자는 누구입니까? 그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인 것입니다. 본문의 사도 바울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악한 상황에서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한 것은 꼭 필요한 후원자가 자신을 세워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보는 눈이 크게 열려졌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자기 자신이 받은 은혜를 크게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고백하기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다”라고 했습니다. 이 후원자가 있어야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도 자신을 세울 수가 있고 절대적인 후원자이신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이렇게 세울 때에만이 후회하지 않도록 세워 주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시91:14)”고 하신 것입니다. 세상에는 두가지의 가치관이 사람의 미래를 열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은혜의 가치관이요, 다른 하나는 이해 관계의 가치관입니다. 후자는 자신을 닫혀지게 하지만 은혜의 가치관은 자신의 자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끊임없이 자신을 열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 열어 주시는 복은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고 그 예수님을 인정하며 살 때에 성령님이 나의 삶을 붙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긴장의 연속입니다. 팽팽한 긴장의 자리를 성령님이 붙들어서 받쳐 주시면 우리의 마음은 열려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족하는 은혜라고 말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자신이 받은 은혜를 깨달아서 자신에게 꼭 필요한 후원자인 자신의 모습을 복되게 세워 절대 후원자이신 하나님으로 최상의 가치를 나타내어 세상을 열어가는 자가 됩시다. 그것이 바로 일체의 비결인 것입니다.

3. 삶은 완성이 아니고 끊임없이 배우는 것임을 압시다(12).-“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세상에는 지식이 있어도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식은 모자라도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능력의 자리는 다른데 있지 않고 세상을 살아 가면서 그 세상을 잘 적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현대인에게 가장 큰 약점은 자신에게 좋고 나쁜 것으로만 기준을 삼고 좋으면 선택하고 나쁘면 아예 생각조차 하기 싫어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생명체는 선택의 자리라기 보다는 자신이 사는 세상을 받아 들여야 살아 가도록 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세상도 나 자신에게 만족한 세상은 없습니다. 반대로 그 어떤 세상도 나를 불행한 자로 세우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것을 알고 끊임없이 낮은 자리에서 배우며 살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의 자리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부족한 미완성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것으로 채워지게 하여 세상을 닫아 버리지 않고 닫혀진 자리를 열어 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노랫말이 너무 좋아서 그 글을 소개해 봅니다.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 가야 해. 사랑은 미완성 부르다 멎는 노래.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불러야 해. 사람아 사람아 우린 모두 타향인 걸. 외로운 사람끼리 사슴처럼 기대고 살자. 인생은 미완성 그리다 마는 그림.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그려야 해. 친구야 친구야 우린 모두 나그넨 걸. 그리운 사람끼리 모닥불을 지피고 살자. 인생은 미완성 새기다 만 조각, 그래도 우리는 곱게 새겨야 해. 그래도 우리는 곱게 새겨야 해.」미완성 인생이기에 오늘의 삶속에 조금 부족하고 못 이룬 것이 있다고 할찌라도 포기 하거나 원망하여 접어 버리지 말고 모두가 미완성이기에 꿈을 가지고 살아 보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신 자리가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기회와 축복은 미완성의 자리인 나를 붙잡고 있지 말고 그런 나를 찾아 주시는 예수님을 붙잡고 자신에게도 세워지는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세상은 온통 울통불통한 비 포장 도로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부족한 인간의 자리에 나타나는 현상이 불평과 원망의 자리입니다. 이런 자리에 있던 사도 바울이 예수님 안에서 열려지는 은혜를 받고 깨달은 것이 바로 완전하지 못한 인생의 자리입니다. 여기에서 부족함과 풍부함에 따라 춤추지 않게 되는 자신의 모습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미완성 존재이기에 끊임없이 배우는 자로 세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나 자신을 새롭게 회복하는 배움의 자리에 세워 일체의 비결을 배워 가는 성도가 됩시다.

결론을 맺습니다. 성도의 위로와 소망, 그리고 끝까지 붙잡아야 하는 신앙적 자리는 예수님 안에서는 우리를 세워 주시는 자리가 있다는 것을 믿고 자신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 지혜는 예수님 안에서 열려 지게 하는 은혜를 받아 그것을 크게 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동일하게 보지 말고 늘 새롭게 받아 들이는 자로 자신을 열어 가야만 자신을 세우는 큰 자리를 볼 수가 습니다. 이것이 일체의 비결을 배워 가는 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