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시대를 여는 사람

성공시대를 여는 사람(마25: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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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 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을 꾸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현실은 초라하여 볼품 없을찌라도 자신의 미래와 마음의 자리만은 그 초라함 속에 가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해보기 전에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릴 때 곧 젊었을 때에 꾸는 꿈과 어른이 되어 꾸는 꿈은 그 성격 자체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른이 되어 꾸는 꿈은 초라해 질 수 밖에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의 범위와 행동의 한계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꿈은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요 자신이 꾸는 꿈은 어떤 모양으로도 자신을 그렇게 세워 준다는 것입니다. 꿈이란 어려운 현실에 양약이 되어 그 꿈이 이루어지는 날에는 지난 날의 모든 아픔을 치료해 주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미래에 대하여 약속을 허락하신 분 곧 꿈을 주시는 분이심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자리에 반드시 꿈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공시대를 열어가는 지혜요 본문은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성공시대란 자신의 일생을 후회하지 않도록 자신을 세울 수 있는 지혜의 삶을 열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1. 자신에게도 재능을 주신 줄을 믿고 살아 갑시다(마25:15).

  가장 이상적인 세상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사람이 최상의 대접을 받도록 세움을 받는 세상을 말합니다. 사람이 최상의 대접을 받도록 세움을 받는 자리는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목적이 이끄는 삶 곧 사명적 존재로 살아가는 자리를 말합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자리는 우연히 나타난 하루살이가  살아가는 자리가 아니고 역사를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절대자 곧 하나님의 계획이 있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위대한 시작이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의 자리라면 불필요한 존재는 있을 수가 없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는 그 사람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적합한 능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능력을 사람이 주신 것이 아니기에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의 자리입니다. 이 고유한 영역의 자리에 주어진 재능을 일컬어 성경은 달란트라고 표현했습니다. 달란트는 분량에 그 중요성이 있는 것이 아니고 가치에 그 중요성이 있음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분량에 그 중요성을 두며 살아가는 자리에는 끝없이 경쟁하며 살아야 하고 상대적인 비교 평가에 따라 우등과 열등의 자리에서 사람을 대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가치에 중요성을 두는 자리에는 사람이 그것을 측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가치의 평가는 눈에 보이는 현상의 단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를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시기를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12:49,50)”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밭에서 하루 동안 일 한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신 비유를 통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분량의 자리에는 반드시 이해관계를 따질 수 밖에 없지만 가치의 자리에는 일을 한 그 자체만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량의 자리는 세상이 보는 자리이고 가치의 자리는 하나님이 보시는 자리입니다. 성도는 이 가치의 자리에서 자신을 보는 눈이 열려야 세상의 비바람 곧 비교의 자리에서 저울질하는 인간의 자리를 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믿고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 자신을 향한 계획을 세우시고 그것을 이루시기 위해 나 자신에게 적합한 능력 곧 나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에 나오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분량의 기준이 아니고 가치적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즉 나 자신에게도 하나님께서 재능을 주셨음을 믿고 자신의 가치를 나타내기 위해 그 하나님 앞에서 최고의 믿음을 가진 자로 세상을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2. 슬림형 인간 곧 작은 자리에서 항상 바라보는 자가 됩시다(21,23).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함으로부터 옷으로 가리워야 하는 버블 인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옷은 인간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옷이 인간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그 옷에 따라 인간이 대접을 받고 사람들은 입고 있는 옷을 보고 그것이 사람인 것처럼 판단하고 그것에 집착하게 됩니다. 이것이 버블 곧 거품이라는 것입니다. 이 옷 때문에 또 다른 죄악을 행하게 되고 그것이 자신을 세워 주는 최고의 명예인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 주시는 자리는 이 거품 곧 인간이 입고 있는 옷을 하나씩 벗겨 주시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새로운 옷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권면하십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고 하신 것입니다. 이 새 사람의 옷을 입은 자리를 일컬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셨습니다(고후5:17). 이것이 참 인간의 자리요 인간으로 세워져서 인간의 복을 회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복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복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으로 최상의 자리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사람의 최상의 자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진 자리입니다. 즉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대접받는 자리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를 발견한 사도 바울의 고백은 신앙 생활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빌3:8,9)”고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자신의 미래를 풍성히 열어가는 지혜를 깨닫고 고백하기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고 외친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작은 자리에서 항상 더 큰 세계를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슬림형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요 성공시대를 열어가는 지혜의 열쇠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문에서는 사람이 해 놓은 업적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오직 충성된 마음의 자리만을 보시고 그것에 보상해 주시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충성된 자리만을 붙잡을 때에 다른 욕심에 유혹을 받지 않게 되고 자신의 참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스런 자신의 모습만 찾는다면 낙심하거나 원망하는 자리에 세워지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성도가 성공시대를 열어가는 것이요 세상을 떨쳐 버리는 능력이 됩니다.

3.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풍족함을 배우며 살아 갑시다(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이 중심이며 하나님은 어디에다 초점을 두고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있는 자」라는 자리에 자신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폭도가 아니며 강도의 자리에서 성도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 하나님의 목적이 바로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라는 풍성함과 즐거움의 자리에 세워주는 것입니다. 즉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성공시대를 여는 사람으로 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행동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에게 천부적인 은혜의 선물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적합하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달란트라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성공자의 인생으로 높이 세워 주시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준 것 곧 자신에게 있는 것이 무엇임을 알고 그것에 만족하며 충성된 자로 살아가는 사람임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있는 것에 만족하는 자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가장 필요하며 적합한 것으로 주신 것을 믿을 수 있을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16:4)”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서 성공시대를 열어가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받은 복을 던져 버리지 않고 그 받은 복이 결실을 거두기까지 자신을 잘 관리하면서 자기 자리를 바르게 세우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보여주는 것이 다섯 달란트 받은 자나 두 달란트 받은 자에게 동일한 보상으로 세워 주신 자리입니다.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의 자리에서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성공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것을 가지고 자기 자리에 자랑스럽게 세워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 곧 나의 것으로 풍족함의 자리를 세울 수 있을 때에 사람은 자신의 삶에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이 자리를 발견한 사도 바울은 자족함의 자리에서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했으며 그 자리는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이 가능하다고 외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 안 곧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있음을 믿고 살 때에 나에게 주신 복을 알고 세상을 더 크게 열어가면서 반드시 자신을 세우게 됩니다. 자신에게 있는 것을 만족하며 살아가는 자가 더 큰 세계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공시대를 여는 사람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본문에서 아픈 자리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한 달란트의 자리입니다. 이것은 상대적 비교평가 때문에 자기 자신을 시작도 해 보지 못한 채 포기해 버린 자리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은 결코 차등을 두지 않고 나에게 적합한 은혜를 부어 주시는 아버지 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자리를 믿고 세상의 것으로 덧붙이지 말고 나의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그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복을 충만케 하여 성공시대를 여는 복된 성도의 삶을 살아가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