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유턴

하나님의 유턴(삿16: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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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자리는 어떻게 열려져 있습니까? 그 자리는 성공보다 실패를 자주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면서 세워 주시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믿음을 가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너무나 확실하게 보여 주는 성경의 사건이 삼손이라는 사람을 믿음의 영웅으로 세워 주시고는 말하기를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히11:38)”라고 크게 세워주신 자리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넘어지거나 실패한 적이 없는 사람들 뿐 아니라 너무나 크게 실패한 자리까지도 회복해 주셔서 놀랍게 축복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기생 들릴라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인한 도덕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영웅들의 명부에 올린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세워 주시고자 하는 희망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로 유턴하는 믿음의 자리를 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삼손은 부끄러운 자리 곧 두 눈이 빠지고 몸은 놋줄에 묶여 있을찌라도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믿음을 보여 주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영웅의 자리에 세워주실려고 유턴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지금 우리에게도 열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그 참혹한 인간 삼손의 자리가 하나님 앞에서 영웅의 자리로 세워지는 축복된 사건의 현장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로 유턴하는 성도로 살아 갑시다.

1.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고속도로가 있음을 믿고 삽시다(28A).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며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으로 찾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일컬어 기분 좋게 속도를 낼 수 있는 쭉 뻗은 도로라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물리적인 세상에서는 기분 좋게 속도를 내며 달려 가다가도 예상치 못한 막혀진 도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사람의 삶을 결정짓게 하는 정신적인 세계와 영적인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달려가도 막히지 않은 자리에서 자신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보여 주는 현장이 본문에 나오는 삼손의 자리입니다. 물리적인 법칙만이 통용되는 자리에서 보여지는 삼손의 자리는 완전히 끝난 자리였으며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설령 그 자리가 있다고 누군가가 말해줘도 별 소용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야만 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런 삼손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열어주신 고속도로의 결과적인 현상을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라고 하셨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인생이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자리를 알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기쁘게 감당하는 사명적 존재의 인생행로를 말하는 것입니다. 삼손에게서 보여지는 가장 귀한 자리가 여기에 있기에 하나님은 그를 영웅들의 명부에 자랑스럽게 세워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찾아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중에는 능력과 배경이 없어서도 아닌데 자신의 삶을 멈춰진 자리에 놓여진 채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삶이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어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수 없도록 지친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찾아주신 것이 바로 삼손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고속도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고속도로를 개통한 자리가 본문에 나오는 삼손의 마지막 인생의 절정인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힘이 바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자리입니다. 인간 삶을 결정짓는 정신적 세계와 영적인 세계가 열려지는 것은 물질적인 계산에서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어떤 계산도 필요하지 않는 믿음의 자리에서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워 그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라고 하셨고,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고 하셨습니다. 크고 비밀한 일 곧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는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성도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유턴이 있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그 하나님의 유턴을 믿고 기도한 것입니다.

2. 때로는 하나님이 막히게 하시는 막다른 길도 있습니다(28B).
  
  고속도로를 기분 좋게 달려갈 때에 만날 수 있는 이상 변화가 있습니다. 하나는 교통 사고의 자리요, 다른 하나는 도로가 차단되는 자리입니다. 교통 사고의 현장에는 불가항력적 상황일수도 있기에 나 자신의 선택과는 무관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도로가 차단된 자리는 오로지 나 자신이 선택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자리에는 이런 막다른 길을 만나게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막다른 길에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자리가 바로 모든 것이 정지된 것만 같고, 급기야는 죽고 싶을 정도의 충동을 경험하게도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성도가 찾아야 하는 최상의 자리는 하나님이 나를 위해 길을 막아 주셨다는 것을 깨닫는 자리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가는 길에 생기는 일을 모릅니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을 믿을 수 있을 때에 막다른 길에서 자신이 선택해야 하는 폭을 더 넓혀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나를 위해 길을 막고 있는 것을 보여 주신 자리가 나귀를 타고 가는 발람 선지자의 자리입니다. 그 막다른 길에 계시는 하나님의 사자를 짐승은 보았는데 사람 곧 발람 선지자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민22:31-33). 본문에 나오는 삼손은 그야말로 고속도로를 기분 좋게 질주한 사람입니다. 힘으로는 당할 수 없는 삼손이었기에 세상 사람들은 두렵지 않았으나 자기 속에서 살아나는 자기 자신을 이길 수가 없어서 세상을 감당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끝나버린 막다른 길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 막다른 길은 두 눈이 뽑히고 몸은 놋줄에 묶여진 자리입니다. 이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자리에 있는 모든 것은 일순간에 멈춰질 수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은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모두가 은혜로 공급받은 것임을 깨닫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므로 깨달은 사도 바울이 고백하기를 “하나님이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9)”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시는 것을 깨닫는 성도의 지혜는 반드시 세상을 열어갈 수가 있습니다. 이유는 그 하나님이 세워 주실 뿐 아니라 그 하나님께는 홍해 바다 속에도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막다른 길에서 나의 처지만을 생각하며 선택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막아주셨다면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것을 믿고 하나님 앞에 다가가서 그 열쇠를 받아가는 성도로 살아 갑시다. 이것이 성도가 세상을 부러워하지 않는 최상의 복을 알고 사는 것이요 자신의 마지막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세우는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삼손의 자리입니다.  

3. 하나님의 유턴은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성도의 자랑이 됩니다(30).

   본문에서 인간의 자리가 쉽게 무너지는 것을 보여 주면서 그 인간을 세워주실 뿐만 아니라 영웅의 자리를 허락해 주신 것은 인간의 자리에 열어 주시는 하나님의 유턴이 있음을 알게 하셔서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를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막다른 길에 세워진 삼손의 모습은 두 눈이 빠지고 몸은 놋줄에 묶여 있는 그야말로 그 어떤 길도 찾을 수 없는 자리입니다. 그런 삼손의 자리가 영웅의 명부에 자랑스럽게 올려질 수 있었던 것을 가르쳐 주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삼손이 하나님께는 유턴의 자리가 있다는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의 사건입니다. 이 하나님의 유턴의 절정의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무덤에서 부활케 하신 자리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과거가 훨씬 더 좋게 느껴질 때가 많고 오늘의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초라하게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길에 나타나는 수많은 굴곡과 모퉁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후진하지 않으면 안되는 자리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사람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비웃는 소리이기도 하고 자신을 조롱하는 소리도 들려질 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소리들이 무서워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앉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리 곧 하나님의 유턴의 자리는 역전의 기회가 있음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현대를 디지털 시대라고 합니다. 디지털 시대란 단순한 속도의 경쟁이 아니라 그곳에는 예상을 뒤엎는 점프의 단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리는 단순히 반전시켜 체면 유지를 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리에는 목동의 자리에 있는 다윗을 점프하게 하셔서 이스라엘 역사의 성군이 되는 자리로 열어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나사렛 예수님이 부활하여 온 인류를 하나님의 자녀로 높이 점프하게 하셔서 세워 주신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점프하도록 해 주신 자리에서 고백한 사라는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창21:6)”라고 했고, 다윗은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셨다(시23:5)”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백하기를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9)”고 외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향하여 영웅의 자리에 세워지게 된 삼손의 자리를 성경은 말하기를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고 했습니다. 이는 마지막 하나님의 유턴의 자리에서 후회 없는 인생으로 세운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지막 인생 길에서 하나님의 유턴의 복을 알고 그 자리에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웅의 자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내 생애 마지막을 축복의 기회로 유턴시키는 자리가 있음을 믿고 끝까지 자신을 믿음 위에 세우며 삽시다. 이것이 성도의 자랑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하나님께는 결코 후회함이 없는 시작이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구분하지 않으시고 같은 상항 속에서 연결시켜 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1:13)”고 한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삼손은 죽는 것도 부끄럽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유턴의 자리에서 영웅의 전당에 세워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