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속의 축복의 보석

고난 속에 있는 축복의 보석(벧전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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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한 인터넷 소비업체(마더 네이처)에서는 간부 사원을 채용할때 한가지 조건을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먼젓번 직장에서 의사 결정과 관련해 뼈아픈 실수를 경험한 일이 있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어느 세미나 강연장에서 강사가 자기 호주머니에서 10만원짜리 수표 한 장을 높이 쳐들고 말하기를 “이 돈을 갖고 싶은 분은 손을 들어 보세요” 거의가 손을 들었습니다. 또 청중을 향해 말하기를 “제가 여러분에게 조건없이 이 돈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이 돈을 드리기 전에 제가 이 돈을 좀 더럽히겠습니다.” 이 강사는 그 돈을 바닥에 던지고는 구둣발로 마구 짓밟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돈을 다시 들고 말하기를 “제가 마구 짓밟아 버려서 더러워진 이 돈을 그래도 갖고 싶은 분은 손을 한번 다시 들어 주세요” 또 다시 거의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이 강사는 힘찬 어조로 “여러분의 선택을 존경합니다. 여러분은 제가 더럽힌 돈을 선택한 것은 돈의 가치가 그대로 있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인생의 무대에서 실패와 패배의 이름으로 짓밟혔어도 자신의 가치만은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두려워만 하지 말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여 새로운 시작을 해 봅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성도가 세상에서 짓밟혀지는 자리에 놓여졌을때 곧 성도가 고난이라는 힘든 자리에 던져졌을 때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 속에 있는 축복의 보석을 캐내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자리이며 믿음의 선진들이 걸어간 말씀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함께 서 봅시다.

1. 세상의 자리를 이상한 일로 받아들이지 맙시다(12).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라면 이 세상을 이상한 것으로 인정하고 거부하려 하지 말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유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무너지는 자리가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을 성경은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8:9)”고 하신 것입니다. 즉 전혀 가난해질 이유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그 가난의 자리에까지 내려가신 것은 그곳에서 무너지는 성도의 아픔을 담당하실 뿐 아니라 성도로 하여금 그 세상을 받아들이게 하셔서 부요한 자로 세워주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 어느 곳에서나 우리에게 만족한 자리보다는 이상한 자리 곧 나에게 맞지 않는 자리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두 종류의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하나는 자신에게 맞춰 주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자신이 적응하며 자신에게 어울리는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선택하는 자리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어느 것을 사람들이 더 많이 선택을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나에게 맞춰주기만을 바라는 자리는 쉽게 무너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자가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자리의 축복은 하나님은 나의 자리에 오셔서 변함없이 나를 위해 일해 주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자리에서 우리가 취해야 하는 자세는 세상의 일을 이상한 것 곧 나에게 맞지 않는 것으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다 그런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오셔서 나를 위해 일해 주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나에게 맞지 않는 이상한 일을 나에게 맡기지 않으시고 그 세상도 하나님이 다스리심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은 말하기를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권면하신 것입니다. 이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가 나를 넘어뜨리려는 것보다는 나 자신을 다른 세상에서 적응하게 하는 훈련 도장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축복된 배경이 바로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일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세상에서 밀쳐나는 사람으로 세우기보다는 중심에 세워지는 성도로 살아 갑시다.

2. 고난보다 즐거움이 더 큰 것임을 믿고 삽시다(13).

  사람의 고통은 자신 속에 지워지지 않는 고통을 품고 살아가는 자리입니다. 이 고통의 자리가 한이 맺히는 자리이며 심한 정신적 고통 속에 빠져들게 하여 사람과 사람사이를 차단시켜 버리므로 우울한 세상 속에 갇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 고통스런 것인가를 깨닫는 지혜입니다. 가장 고통스런 것은 우리를 죽음의 골짜기로 몰고 가는 것이요 그 다음 고통스런 것은 여인이 아이를 태어나게 하는 해산의 고통일 것입니다. 이 고통의 자리에서 자신을 세운 것을 안다면 인생을 복되게 열어가는 지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요16:21)”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를 세우는 축복된 지혜는 고난보다 즐거움이 더 큰 자리임을 깨닫고 그곳에 자신을 세우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고난이 삼켜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난보다 즐거움이 더 큰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자신을 복되게 세울 수가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절대적인 후원자가 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라(시55:22)”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원자의 계획을 우리에게 알리시기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16:33)”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후원자 되시는 하나님이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 때문에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자리에 찾아오는 고난의 자리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즐거움의 계획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본문은 우리에게 권면하기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자”라고 하셨습니다. 즉 세상을 이상한 것으로만 보지 말고 고난보다 더 큰 즐거움이 나에게 있음을 나타내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에게 왜 하나님은 고난의 자리를 허락하시며 그 고난의 자리는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이 세상에는 두 개의 세상이 대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세계요 다른 하나는 인간의 세상인데 성도의 고통은 인간 세상이 하나님의 세상을 거부하므로 당하는 고통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세상 속에서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열어가야 하므로 그 믿음을 지키는 자리는 세상이 받아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이므로 여기에서 성도는 영적 갈등의 대립으로 고난의 잔을 마시게 됩니다. 이런 성도에게 하나님이 찾아 주심을 약속했고 그 자리에 고난 보다 더 큰 즐거움으로 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믿음의 자리에서 고난을 감당해 봅시다.

3. 하나님이 세워 주실 때까지 인내할때 고난은 보석이 됩니다(14).

  하나님이 모든 천지 만물 중에 사람에게만 주신 축복된 자리가 있는데 그것이 세움 받는 복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자리가 복되다고 고백할 수 있는 자리는 자신이 세움 받은 것을 확신할 때입니다. 그 세움 받는 자리는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축복이 대물림되는 것을 볼 수 있고 그 자리가 자신의 자리 보다 더 나아진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힘든 자리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할 수 있을 때에 자신이 세움 받은 자라는 것을 고백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의 자리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하는 것을 알고 그 자리를 크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유는 그 자리를 복되게 물려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물려주는 자리가 바로 축복의 보석이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반드시 알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에게 허락하시는 것은 이 축복의 보석이 어디에 있는가를 깨닫는 지혜입니다. 본문이 그 자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14)”라고 하신 자리입니다. 욕이란 고난의 자리를 말합니다. 그 욕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을 때에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도가 삶속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세워 주실 때까지 고난 속에서도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인내할 때에 그 욕이 자신에게 축복의 보석이 되어 지나간 삶속에 있었던 모든 아픔의 자리에 보상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셨고, 그 자리에서 우리에게 주신 하늘의 메시지가 바로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축복인 것입니다. 성도가 세상 속에서 인내한다는 것은 그냥 참고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인내의 자리를 요구 하시는 이유는 그 인내의 자리를 세워 주셔서 복되게 하여 그것을 대대로 물려주게 하여 나 하나가 아니고 나의 가문을 세워 주시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리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 12: 2)”고 하셨습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별을 보려면 어둠이 꼭 필요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칠세의 소년 요셉에게 이 별의 자리에 세워 주시는 꿈을 주시고는 13년의 세월 속에 인내를 요구 하셨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삶이었을때 자신을 붙잡아 준 것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웠던 신앙의 자리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약속의 자리입니다. 하나님 앞 곧 하나님이 세워 주실 때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리지 않고 인내할 때에 고난은 축복의 보석으로 다가옴을 믿고 살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결론을 맺습니다. 파도가 일지 않는 바다는 없듯이 바다를 항해하는 항해사와 같은 인생 여정에도 끊임없이 고난의 파도가 일고 있습니다. 그 고난이 축복의 보석으로 다가 왔을 때에 더 큰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이상한 일 당한 것처럼 거부함 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이 세워 주실 때까지 인내하여 믿음의 자리를 새롭게 하는 성도로 살아 갑시다.